리즈 데이비스(T.W. Rhys Davids)와 빨리경전협회(Pali Text Society)의 성립

[용마가]

리즈 데이비스(T.W. Rhys Davids)와 빨리경전협회(Pali Text Society)의 성립)
황순일(동국대 인도철학과 교수)

1. 들어가는 말
근대 유럽의 불교경전 번역사업은 당시 사회전반을 통제하고 있는 기독교적인 분위기와 자신들의 문명에 대해 식민지의 사상이나 문화를 열등하거나 적어도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일종의 정치적인 도구로 보려했던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적인 경향 하에서 시작되었다. 고대 중국의 경우, 불교경전 번역이 하나의 국가적인 사업으로서 왕가의 풍부한 재정적 지원하에서 조직적으로 이루어졌다면, 근대 유럽의 불교경전 번역사업은 몇몇 학자들의 개인적인 열정과 이들의 노력에 공감하는 몇몇 독지가들의 재정적인 뒷받침에 의해 개별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많은 시사점을 가지고 있다.

영국의 불교경전 번역사업은 1881년 리즈 데이비스(T.W. Rhys Davids)에 의해 창립된 빨리경전협회(Pali Text Society)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이 시기는 빅토리아 여왕치세에서 대영제국이 그 절정에 달해 있던 시기였다. 동인도회사를 통한 간접통치를 거치면서 산스끄리뜨 문헌들을 중심으로 하는 인도학은 식민지 인도경영에 필요한 하나의 첨단학문으로서 각광을 받고 있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 활약한 대표적인 동양학자이자 인도학자로서 막스뮬러(Max Muller)를 들 수 있다. 소설 『독일인의 사랑(German Love)』으로도 유명한 그는 문헌학 및 언어학자이면서 사실상 비교종교학의 창시자였다. 특히 그는 1879년부터 1910년까지 옥스퍼드 대학에서 50여권으로 출판된『동방성서(The Sacred Books of the East)』의 책임 편집자이자 번역자로서 종교학 및 인도학 분야에 잘 알려져 있다. 1790년 경에 윌리엄 존스(William Jones)에 의해서 산스끄리뜨어(Sanskrit)가 유럽고전어인 라틴어(Latin) 및 희랍어(Greek)와 유사하다는 점이 밝혀진 이래 산스끄리뜨어와 산스끄리뜨 문헌들에 대한 연구는 인도유럽어족이란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 내면서 많은 비교언어학적 발전을 이끌어 냈다.

막스뮬러는 이러한 언어학적 발견을 문화적인 측면에 적용하여 아리얀(Aryan)족이 기원전 1500년경 북서쪽으로부터 인도로 이동해 들어왔다고 주장했다. 그의 이론은 후에 ‘아리얀 침략이론(Aryan invasion theory)’이란 형태로 발전하면서 영국의 식민지 인도통치를 합리화는 하나의 도구로 이용되기에 이르렀다.

한편 여기에 대해서 스리랑카를 중심으로 발견되는 불교문헌들에 대한 연구는 산스끄리뜨 문헌들에 대한 연구에 비해 그렇게 각광을 받지 못했던 시기였다. 식민지 경영이란 측면에서 보았을 때, 스리랑카는 인도에 비해서 그 중요성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불교문헌들의 연구가 자신들의 식민지 지배를 합리화 해주는 도구로서 역할 할 가능성도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빨리경전협회(Pali Text Society)가 창립되고 오늘날까지 그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 협회의 창립자였던 리즈 데이비스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2. 리즈 데이비스
리즈 데이비스(T.W. Rhys Davids)는 1843년 에섹스(Essex) 지방의 콜체스터(Colchester)에 정착한 웨일즈 출신의 목사이자 교회역사(ecclesiastical history)학자였던 토마스 윌리엄 데이비스(T. William Davids)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런던의 한 법무관(solicitor)의 딸인 루아자 윈터(Louisa Winter)로서 교회 일요학교의 선생님으로 활동했지만 불행히도 리즈 데이비스가 10살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나 버린다. 17세가 되던 해 리즈 데이비스는 런던의 뉴 칼리지(New College)에 입학하게 되는데, 그는 이 시기에 인도파견공무원(Indian civil service)이 되기를 결심하게 된다. 그 당시 인도파견공무원이란 직업은 비록 집안은 가난하지만 많은 교육을 받은 사람들에게 선망이 되던 직업으로서 독실한 기독교적 배경에서 청빈하게 살아온 리즈 데이비스로서는 의외의 선택이 아닐 수 없었다.

당시 인도파견공무원(Indian civil service)이 되기 위해서는 대학교육을 받아야 했다. 그의 아버지로부터 지원을 받지 못한 리즈 데이비스는 독일유학을 결심하게 된다. 그 당시 독일은 영국의 고학생들이 영어개인교사를 하면서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던 기회의 땅이었다. 그는 당시 독일의 영역이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 후 폴란드에 반환된 쉴레지엔(Schlesien) 주의 수도인 브레슬라우(Breslau)로 향하게 되는데, 브레슬라우 대학에는 상대적으로 영국 고학생이 적었으며 유명한 산스끄리뜨 학자인 스텐즐러(A.F.Stenzler)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이때 스텐즐러에게 받은 문헌학적 훈련이 저명한 빨리어 학자로서 리즈 데이비스를 있게 한 초석이 되었음에 틀림이 없다.

1863년 브레슬라우 대학을 졸업한 리즈 데이비스는 인도파견공무원 시험에 응시하게 되는데 그는 인도가 아닌 세일론(Ceylon) 파견공무원으로 체용 된다. 불과 21세의 나이에 콜롬보(Colombo)로 파견된 리즈 데이비스는 스리랑카 파견공무원으로 지역 언어인 싱랄라어(Sinhala)와 타밀어(Tamil)를 익히게 된다. 그가 처음으로 불교 및 빨리어 문헌들과 인연을 맺게 된 것에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3. 불교와의 만남
갈라(Galla) 지역의 지방순회판사로 있을 때 리즈 데이비스는 불교교단 내부의 분쟁과 관련된 법률사건을 맞게 된다. 스님들에 의해 법원에 제시된 문서는 오래된 싱할라문자(Sinhalese scripts)로 기록된 빨리어(Pali) 율장(Vinaya)의 일부분이었다. 이 문헌을 이해하고 사건을 해결할 수 있었던 영국인 판사는 이미 산스끄리뜨어에 익숙해 있었던 리즈 데이비스 밖에 없었다. 그는 당시 명망이 높았던 빨리 학승 야뜨라물레 스리 담마라마(Ven. Yatramulle Sri Dhammarama)의 도움으로 이 사건을 빠르게, 그리고 합리적으로 해결하면서 유명해지게 된다. 훗날 리즈 데이비스는 자신을 처음으로 빨리어와 불교의 세계로 이끌었던 이 스승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상하고 있다.

"처음 그가 나를 찾아왔을 때, 그는 이미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미 고통스러운 불치병의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가 저명한 빨리어 학자이지만, 불치병으로 고생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열악한 상태에서도 한 외국인을 가르치기 위해 사원을 떠나 나를 찾아준 것에 대해서 아직도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의 깊은 눈은 신비로운 광체로 빛나고 있었으며, 나의 빨리어에 대한 질문에 끊임없이 불교적인 내용을 첨가하여 설명했습니다."

리즈 데이비스는 이 일을 계기로 빨리어 문헌들과 불교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식민지 파견공무원으로서 남는 여분의 시간들을 빨리어 연구에 투자하게 된다. 공부가 깊어 가면서 그는 당시 스리랑카에서 가장 유명한 학승인 힉까두웨 스리 수망갈라(ven. Hikkaduve Sri Sumangala)와 왓까두웨 스리 수부띠(ven. Waskaduve Sri Subhuti)와 인연을 맺게 된다. 이들과의 인연은 훗날 리즈 데이비스가 빨리경전협회(Pali Text Society)를 창립했을 때 스리랑카 스님들의 적극적인 지지로 이어지게 된다.

한편 리즈 데이비스의 이러한 재능은 당시 세일론 총독이었던 허큘리스 로빈슨경(Governor Sir Hercules Robinson)에게까지 알려지게 되었으며, 1868년 경에 스리랑카 고대 왕조의 수도인 아누라다뿌라(Anuradhapura)의 고고학 조사관으로 파견되게 된다. 주로 유적지를 정비하고 사진을 찍는 작업들을 수행하면서 그는 고대 유적지에 버려진 체 흩어져 있던 비석들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비석의 비문들이 세일론 섬의 잃어버린 과거를 밝혀줄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고 생각한 리즈 데이비스는 자신의 연구 성과들을 『왕립아시아학회지(The Journal of the Royal Asiatic Society)』에 기고하기 시작하면서 동양학적 소양을 갖춘 세일론 파견공무원으로 학계에 널리 알려지게 된다.

한편 동양학에 대한 관심이 깊었던 총독 로빈슨경은 이 시기를 즈음하여 스리랑카의 각 사찰에 흩어져 보관되어 있는 책과 오래된 필사본들을 수집하여 콜롬보에 동양학 도서관(Oriental Library)을 설립하기로 결정했다. 리즈 데이비스에 의해 수집된 여러 비문들도 이 도서관의 자료들에 포함되게 된다.

리즈 데이비스의 세일론 파견공무원 생활은 1872년경에 비극적으로 끝나게 된다. 그는 자신의 상관이던 트웨인함(C. W. Twynham)의 끊임없는 견제와 계속되는 몇몇 불미스러운 사건들에 의해 총독의 눈 밖에 나기 시작했으며 결국 파견공무원에서 해임되게 된다. 지치고 자존심이 상한 체 영국으로 되돌아온 리즈 데이비스는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법률 공부를 시작하기로 결심한다. 그는 1877년에 법정변호사(barrister)의 자격을 얻게 되었지만, 그의 관심은 자신이 젊은 청춘을 바쳤던 세일론과 불교 쪽으로 이미 기울어 있었다.

훗날 그와 결혼한 케롤라인 리즈 데이비스(Caroline Rhys Davids)에 의하면 이 당시에 “리즈 데이비스는 세일론에서 물려받은 정신적인 유산에 매료되고 쫓기고 있었다”고 한다. 1914년까지 23판을 찍었던 그의 저서 『불교(Buddhism)』는 원래 기독교전도협회(Society for Promoting Christian Knowledge)를 위해 작성된 책이다. 기존의 전도사였던 스펜서 하디(Spence Hardy)나 이머슨 텐넌츠(Emerson Tennent)의 책들이 주로 근대 싱할라 자료들에 의존한 것인데 비하여 리즈 데이비스의 책은 영국에서 최초로 빨리어 경전들을 근거로 쓰여졌다는 점에서 중요성을 지닌다.

비록 그는 막스 뮬러(Max Muller)와 같은 심각한 인종적인 편견을 갖지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테라바다 불교와 빨리어의 연구가 영국의 식민지 지배를 공고히 하기 위한 도구로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을 영국정부에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다닌 점이나 영국인, 스리랑카인 및 붓다 당시의 석가족이 동일하게 아리안(Aryan) 민족임으로 영국인들은 불교에 대해 중립적인 입장을 취해야 한다고 주장한 점은 아직까지도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빨리경전협회(Pali Text Society)를 설립하여 서구의 문헌학적 불교학의 토대를 마련한 그의 공로는 널리 찬양되고 있다.

4. 빨리경전협회의 성립
리즈 데이비스는 1881년에 있었던 ‘인도불교사의 몇몇 관점을 통해 나타나는 종교의 기원과 발전’을 주제로 한 허벗 강연(Hibbert Lectures)에서 빨리불교문헌을 편집, 번역, 그리고 출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빨리경전협회(Pali Text Society)를 설립하려는 자신의 의지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초기불교의 성서들이 우리에게 전해져 있다. 세계사에서 유일하게 기독교에 필적할 만한 종교운동의 전체적인 기록들이 남아 있는 것이다. 이렇게 중요한 문헌들의 출판은 웨다(Veda)의 출판이 종교 및 종교사 연구에 공헌한 것에 상응하는 중요한 결과를 가져다 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리즈 데이비스는 자신의 빨리경전협회에 대한 아이디어가 초기영어문헌협회(Early English Text Society)에서 비롯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이 협회는 주로 필사본의 형태로만 남아있는 초기 영어문헌들을 출판하는 것을 목적으로 1864년에 설립되었다. 이들은 “한편으로 가장 중요하면서도 아직까지 출판되지 않은 모든 필사본들을 출판하고, 다른 한편으로 출판된 영어책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책들을 다시 편집 출판하여 학자들의 연구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빨리경전협회(Pali Text Society)는 빨리경전, 논서류, 주석서류, 그리고 역사서를 포함하는 거의 모든 빨리어 문헌들을 모으고, 편집하여 로마자(Roman scripts)와 특수문자를 조합한 형태로 출판하고 각각의 출판물에 대한 영어번역작업을 진행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그는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 그리고 미국의 동양학자들의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전 유럽의 도서관에 흩어져 있는 싱할라문자(Sinhalese scripts)로 기록된 필사본들과 세일론 섬에 무수하게 남아있는 필사본들에 대한 연구와 조사에 착수할 수 있었다.

초창기에 빨리경전협회가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는 불교경전의 로마자 출판 작업에 대한 스리랑카 스님들의 적극적인 지지였다. 아마도 리즈 데이비스는 그 당시 유럽의 동양학자들과 스리랑카의 스님들을 연결시켜 줄 수 있는 유일한 학자였을 것이다.

물론 리즈 데이비스 이전에도 조지 터너(George Turnour)와 로버트 실더스(Rovert C. Childers)와 같은 세일론 파견공무원 출신의 훌륭한 인도학자가 있었다. 조지 터너는 1837년에 『마하밤사』(Magāvaṃsa)의 첫 38장을 로마자로 편집하고 영어로 번역 출판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실더스는 1875년에 최초로 빨리-영어 사전을 출판했을 정도로 유능한 언어학자였지만, 1876년 갑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떠나 버렸다. 실더스의 사전은 리즈 데이비스의 40여년에 걸친 평생의 작업을 거처 그의 제자 스테드(W. State)에 의해 완성된 빨리경전협회의 빨리-영어 사전의 저본이 되었다.

앞에서 언급한 갈라(Galla) 지역 지방순회판사로 있을 때의 에피소드가 말해 주듯이 리즈 데이비스는 당시 세일론의 지식인 사회에서 식민지 파견공무원임에도 불구하고 빨리어 및 불교에 대한 학문적인 열정을 지닌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직위를 이용하여 세일론의 저명한 학승들 및 불교교단과 인연을 맺을 수 있었고, 당시의 일반적인 세일론 파견공무원들과 달리 세일론의 불교교단들을 존중했으며 그들로부터 광범위한 신뢰를 받을 수 있었다.

빨리문헌들이 지니고 있는 가치에 비해서 빨리어 문헌들에 대한 연구와 그 출판 작업은 어떤 경제적인 이익을 가져다 주지 못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리즈 데이비스가 빨리경전협회를 설립한 배후에는 이렇게 경제적으로 열악한 상황에 있었던 학자들에게 그들의 작업에 대한 보상을 해 주려는 의도가 숨어 있었다. 그는 이러한 경제적인 도움을 파견공무원일 때부터 알고 지냈던 세일론의 불교학승들로부터 앞으로의 출판비용을 선납 받는 방식으로 받을 수 있었다. 1882년 빨리경전협회 보고서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1882년 봄에 세일론에서 가장 중요한 교단에 소속된 70명 이상의 스님들로부터 빨리경전협회의 작업에 대한 감사 및 설립자에 대한 신뢰와 함께 앞으로의 출판비용을 선납하겠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체계화된 교단의 승려들이 이렇게 빨리 자신들이 믿고 있는 종교의 신성한 경전을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로마자로 출판하는 것에 지지를 보내온 것은 정말로 중요한 일입니다. 저는 이러한 일이 아마도 그들이 자비로운 마음을 가진 불교 스님들이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란 점에 어떠한 의심도 없습니다."

리즈 데이비스는 1901년 빨리경전협회 보고서에서 빨리삼장을 모으고, 편집하여 로마자(Roman scripts)와 특수문자를 조합한 형태로 출판하는 작업이 거의 끝나가고 있으며, 이제 협회활동의 두 번째 단계로서 번역과 경전의 내용에 따른 분류 작업을 진행할 때가 다가오고 있음을 선언하고 있다.

5. 빨리경전협회의 발전
1901년 『빨리경전협회지』 (Journal of the Pali Text Socisty)에 나타난 빨리삼장의 편집 및 로마자 출판 작업의 진행상황을 보면, Vinayapiṭaka는 이미 작업이 끝이 났고, Suttapiṭaka는 Dīghanikāya가 조금 남았을 뿐 나머지는 끝이 났으며, Khuddakanikāya는 Nidesa, Paṭisambhidā, Apadāna를 제외하고 모든 작업이 끝났으며, Abhidhammapiṭaka는 작업이 절반정도 진행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빨리경전협회가 1881년부터 약 20년의 기간 동안에 총 12,809 페이지 정도로 추산되는 빨리삼장 중에서 8,609 페이지를 출판하여 약 67% 정도의 작업을 완성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상 여기에 빨리경전협회가 재정적인 문제를 포함한 여러 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목표를 달성하면서 오늘날까지 그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던 두 번째 요인이 자리 잡고 있다.

빨리경전협회가 성공할 수 있었던 두 번째 요인은 리즈 데이비스가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점은 아마도 유럽의 문헌학적 전통에 기인한 차분함이 그에게 남아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1800년대 후반 빨리경전의 편집과 번역 작업은 빨리경전협회에 의해서만 이루어졌던 것이 아니었다. 앞에서 언급한 조지 터너에 의해 『마하밤사(Magāvaṃsa)』의 일부분이 편집되고 번역되어 출판되었으며, 로버트 실더스에 의해 『대반열반경』등이 편집되고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1861년부터 1872년 사이에 자따까(Jātaka)의 일부분이 유럽의 학자들에 의해 편집 출판되었고 실더스를 거처 리즈 데이비스에 의해 빨리경전협회의 작업과는 별도로 진행되었다.

또한 막스 뮬러(Max Muller)를 중심으로 『동방성서(The Sacred Books of the East)』 시리즈가 1879년 이래 계속해서 출판되고 있었으며 불교 경전들도 그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리즈 데이비스는 결코 서두르지 않았으며 협회가 창립된 이래 ‘1년에 두 권씩’ 이란 출판원칙을 철저하게 지켜왔다. 1907년 『빨리경전협회지(Journal of the Pali Text Socisty)』에 나타난 다음의 연도별 출판물 목록을 통해서 이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리즈 데이비스가 이렇게 서두르지 않았던 배경에는 경제적으로 학문적으로 여전히 불안정했던 그의 상황이 또 다른 요인으로 자리 잡고 있었던 듯하다. 1882년부터 1904년까지 리즈 데이비스의 공식적인 타이틀은 런던대학 유니버시티 컬리지의 빨리어 및 불교문헌학 교수였다. 비록 타이틀은 교수였지만 강사료 이외에 정해진 봉급을 받는 자리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는 여전히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에 있었다. 따라서 그는 처음에 왕립아시아학회(Royal Asitic Society) 사무실의 관리인으로 활동했다. 1887년에 와서 이 협회의 총무(secretary)로 선출되면서 그는 겨우 안정을 찾게 된다.

이 시기에 그는 정규직으로 왕립아시아학회의 총무자리를 맞고 있었고 비정규직으로 런던대 교수로서 활동하면서 스스로 빨리경전협회의 회장을 겸임하고 있었던 것이 된다. 기록에 의하면 그는 빨리경전협회지의 편집과 출판 이외에 협회의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협회의 사서로서 일정액의 봉급과 함께 사택을 부여받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아마도 이렇게 복잡한 리즈 데이비스의 주변 상황이 그를 빨리경전협회에만 집중하지 못하도록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빨리경전협회를 자신의 부인인 케롤라인 리즈 데이비스(Caroline Rhys Davids)와 함께 관리할 수 있을 정도의 규모로 운영하게 된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사실상 이러한 전통은 빨리경전협회에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필자가 1996년 처음 영국 옥스퍼드를 찾았을 때 가장 먼저 향한 곳이 빨리경전협회였다. 고풍스러운 건물과 단정한 사무실을 기대했었던 필자가 도착한 곳은 출판사 창고 한구석의 작은 책상하나였고, 그나마 격일제로 근무하는 협회의 간사는 자리에 있지도 않았었다. 1960~1970년대에 빨리경전협회를 이끌었던 오너(I. B. Horner) 또한 별도의 사무실 없이 자신의 집을 협회의 사무실로 사용하면서 지냈던 것으로 유명하다. 아마도 여기에는 한국과 영국 사이에 어떤 정서적인 차이가 있는 듯하다. 어떤 협회가 창립된다고 했을 때, 우리 한국인의 정서가 어떤 유형자산, 즉 건물과 사무실 등으로 향한다면 영국인의 정서는 어떤 무형자산, 즉 협회의 활동과 학문적인 성과 등으로 향한다는 점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한편 이 시기에 리즈 데이비스는 왕립아시아학회(Royal Asitic Society)를 통해서 동양학 연구의 진작이 영국의 식민지인도 지배를 공고히 할 수 있다는 점을 영국정부에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다니게 된다. 물론 그의 이러한 행동은 후대 많은 비판의 여지를 남기게 되지만, 당시 영국 동양학의 상황은 독일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했다. 영국의 경우 산스끄리뜨 교수직이 단 2개뿐인 것에 대해서 대학을 정부가 주도하는 독일에는 적어도 20여개의 산스끄리뜨 교수직이 설치되어 있었던 것이다. 왕립아시아학회와 리즈 데이비스의 노력은 정부 주도로 오늘날 SOAS(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로 알려진 런던대의 동양학ㆍ아프리카학 대학의 설치로 이어지게 된다. 리즈 데이비스의 이러한 활동은 62세 되던 1905년에 맨체스터 대학 비교종교학 교수로 임용되고 경제적으로 학문적으로 안정을 찾으면서 끝나게 된다.

빨리경전협회의 회장으로 리즈 데이비스의 활동 또한 그렇게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붓다와 거의 동시대로서 불교와 상호 밀접한 영향을 주고받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자이나(Jaina)의 문헌들을 빨리경전협회의 목록에 포함시키려던 시도는 거센 저항의 소리에 부딪혔으며 초기 경전이 약 3~400여년 이상의 구전 시기를 거치면서 나타나게 된 동일한 문구들의 지루한 반복을 영어문체에서와 같이 약어를 사용하여 축소하려던 시도 또한 회원들의 거센 저항으로 결국 무산된 것 등은 유명한 사례이다.

이러한 잡음에도 불구하고 빨리경전협회가 비교적 큰 불협화음 없이 발전해 올 수 있었던 배경에는 각각의 빨리 경전들이 각각의 학자들에 의해 독립적으로 편집되고 번역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아마도 여기에 빨리경전협회가 성공할 수 있었던 세 번째 요인이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점은 1901년 『빨리경전협회지(Journal of the Pali Text Socisty)』에 나타난 출판물과 그 편집자 목록에서 잘 나타나 있다.

이 목록에 의하면 다양한 빨리 경전들이 자코비(Jacobi), 뮬러(Muller), 올덴베르그(Oldenberg)와 같은 당대의 유명한 학자들에게 빨리삼장이 체계적으로 배분되었으며 그들의 책임 하에 편집 작업이 진행되어 왔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책임편집의 전통은 편집된 경전의 번역작업에도 이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서, Vinayapiṭaka의 경우 리즈 데이비스와 올덴베르그에 의해 부분적으로 막스 뮬러의 『동방성서(The Sacred Books of the East)』시리즈에서 출판되었던 것이 오너(I.B.Horner)에 의해 완전한 형태로 출판되었으며, Dīghanikāya의 경우 리즈 데이비스 자신에 의해 책임 번역되었고, Majjhimanikāya는 찰머스(R. Chalmers)에 의해 책임 번역되었으며, Samyuttanikāya는 케롤라인 리즈 데이비스와 우드워드(F. L. Woodward)의 공동 작업으로 번역되었고, Aṅguttaranikāya는 우드워드와 해어(E. M. Hare)의 공동 작업으로 번역되었다.

물론 이러한 개별 편집, 개별 번역방식은 빨리경전협회의 편집서들에서 특수문자가 완전하게 통일되지 않은 문제점과 번역서들에 있어서 번역용어가 통일되지 않은 문제를 남기게 된다. 전자의 경우 그렇게 심각한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심각하게 다루어지지 않았지만, 후자의 경우 번역용어의 통일이 가져다 줄 수 있는 어떤 효과에 대한 환상 때문에 오랫동안 문제가 되어왔다.

1990년대에 빨리경전협회 회장을 지낸 곰브리치(R. F. Gombrich) 교수는 각각의 문장의 맥락에 따라서 다른 의미로 사용된 다의적인 초기경전의 용어들에 대해서 하나의 통일된 번역어를 제시하려는 시도 자체가 거의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하는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개별 번역방식은 개개인이 각각의 맥락에 적합한 용어를 선택해 내고 이 용어들의 장ㆍ단점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장점이 있으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번역용어 통일이 이루어져야지, 다양한 맥락과 상관없이 번역용어를 미리 선정하는 것은 학문적인 발전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다.

따라서 빨리경전협회의 개별 편집, 개별 번역 방식은 비록 번역용어의 통일문제와 같은 부작용을 가지고 있지만, 아주 사소한 문제로부터도 발생할 수 있는 협회의 내부적 불협화음을 잠재울 수 있다는 측면에서 빨리경전협회가 오래도록 명맥을 유지하여 내려올 수 있게 했던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그렇다고 빨리경전협회가 기존의 번역을 수정하고 발전시키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는 않았다. 오너(I.B.Horner)에 의해 진행된 Vinayapiṭaka의 재번역과 마가렛 콘(Margaret Cone)에 의해 진행되고 있는 새로운 빨리-영어사진 작업에서 보이듯이 협회의 출판물들을 끊임없이 수정하고 보완하여 발전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끊임없이 나가고 있다.

6. 맺는 말
빨리경전협회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심각한 재정적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출판물의 숫자를 줄이기는 했지만 빨리경전협회는 빨리불교문헌들을 편집, 교정, 번역, 그리고 출판하려는 목표를 결코 수정하지는 않았다. 1922년에 리즈 데이비스가 죽자 제정 문제가 더욱 악화되었다. 특히 『빨리경전협회지』는 1924년에서 1927년 까지는 아예 출판이 중단되어 버리고 만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빨리경전협회의 수입의 대부분은 기본적으로 출판된 책의 판매와 회원들의 회비에 의존하고 있었다. 사실상 협회에 별다른 대안이 없었기 때문에 판매수입 및 회원수의 감소는 자연스럽게 출판 계획의 축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 제2차 세계대전이 겹치는 난관을 협회 창립자의 부인인 리즈 데이비스(Caroline A. F. Rhys Davids), 로즈(W. H. D. Rouse) 그리고 스테드(.W.Stede)가 제2, 3, 4대 빨리경전협회의 회장으로서 간신히 극복해 오다가 1959년 오너(I. B. Horner)가 제 5대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맡게 된다.

오너가 빨리경전협회의 회장으로 활동했던 초기 10여 년간은 유럽과 미국에서 불교에 대한 관심이 증가되고 있었던 시기였다. 빨리경전협회의 경우 회원수와 매출이 크게 증가하면서 빨리경전협회의 출판문헌 목록을 확대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이 시기에 빨리삼장의 색인이 출간되었고 비나야와 밀린다팡하 등과 같이 오래전에 번역된 문헌들의 새로운 번역이 진행되었으며 무시되어 왔거나 새롭게 발견된 문헌들을 편집 로마자화하고 영어로 번역하는 작업이 진행되면서 빨리경전협회의 출판목록이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출 수 있는 틀을 마련했다.

현재 빨리경전협회는 노만(K.R.Norman), 곰브리치(R.F.Gombrich), 랑스 카진(L.S.Cousins)의 뒤를 이어서 브리스톨 대학에 있는 루파 게틴(M. L. Gethin)이 이끌고 있다. 현재 빨리경전협회는 이러한 빨리불교문헌들의 편집, 교정, 번역, 그리고 출판사업 이외에 빨리어와 빨리문헌을 연구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장학 사업과 피터 스킬링(Peter Skilling)의 주도로 태국의 방콕에서 진행되고 있는 ‘The Fragile Palm Leaves Project’를 지원하고 있다. 미얀마, 캄보디아, 그리고 라오스 등이 정치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겪으면서 이곳의 사찰에서 보존해 오고 있던 오래된 필사본들이 태국 등지의 시장으로 흘러나오고 있다. 피터 스킬링은 이렇게 흘러나온 오래된 필사본들을 수집하여 보존하고 목록을 만들고 스캐닝 하는 작업을 통해서 기존의 빨리경전협회 편집본들을 교정, 발전시킬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기본적으로 빨리경전협회는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협회라기보다는 불교를 전공하는 학자들을 위한 협회로서 빨리 경전 연구를 촉진하고 지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사전과 문법서 등을 포함한 빨리경전협회의 출판물들은 일반인들 보다는 불교를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서 주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 한계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흔히 ‘불교혼성영어(Buddhist Hybrid English)’라고 농담 삼아 이야기하고 있는 복잡하고 난해한 용어들이 일반인의 단순한 접근을 막고 불교를 전공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의미가 전달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지만, 불교를 전공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120여년에 걸친 빨리경전협회의 불교경전 번역사업과 그 성과물들은 불교를 이해하고 연구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자산으로서 자리 잡고 있다.

황순일｜동국대 인도철학과 교수
동국대 인도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옥스퍼드(Univ. of Oxford)대학에서 동양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충북대 인문학연구소 전임연구원, 경전연구소 전문연구위원을 역임했으며 현재 동국대 인도철학과 조교수로 재직중이다. 박사학위논문 <비유와 직역주의: 열반의 교리적 발전에 대한 연구, 빨리 경전 및 아비담마 문헌 주석서류 등에 나타나는 해석과 한역 아함과 아비달마 문헌 논서류 등에 나타나는 해석을 중심으로>와 <초기경전을 어떻게 볼 것인가? -곰브리치 교수의 경우-> <테라바다(Theravaada)의 공간 개념과 열반> <무기설을 통해 본 무여열반의 의미> 등의 논문이 있다. 영국정부로부터 ‘British Korean Scholarship Award’를 수상했다. <불교평론 26호 2006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