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시에 닥친 절체절명의 순간, 죽음의 위기를 극복하고 인생으로 다시금 초대받은 열한 사람의 감동적인 생존 기록을 담은 실제 이야기를 담은 책 『일 분 후의 삶』. 지난 2007년에 출판되어 숱한 화제를 낳았던 초판의 완성판이다. 각박하고 비정한 우리들의 현재 삶을 버려서라도 의로움을 구하는 맹자의 ‘사생취의’ 정신이 어느 때보다 간절한 오늘날, 작가가 이 책에 담고자 한 뜨거운 휴머니즘의 정신은 남다른 울림으로 다가온다. 저자가 직접 인터뷰한 열한 명의 생존자들은 공무원, 고속버스 운전기사, 신인 프로복서, 실습 항해사, 건설 기사, 등반가 등 평범한 풀잎, 소박한 들꽃 같은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7천 미터 높이의 날카로운 설벽을 거슬러 오르는 과정에서, 망망대해에 홀로 빠지면서, 암흑의 지하 미로에 갇히면서, 자신이 탄 비행기가 추락하는 걸 알게 되면서 난데없이 생의 극한에 닿게 된다. 이 책은 살아나려고 온 힘을 쏟은 사람들의 이야기이자, 동시에 다른 사람들을 살려내려고 온 힘을 다한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친구를 구하려다 얼음물에 빠져 심폐도 안구도 정지해버린 소년. 그 소년의 푸르뎅뎅한 신체를 주검으로 보지 않고 아직 부활할 수 있는 ‘내 아들의 동창’이라고 생각한 의사 등 서로의 안위를 지키며 생명의 불씨를 지피는 뜨거운 휴머니즘에 대해 작가는 ‘살아라, 그리고 남들도 살게 해라!(Live, and let live!)’ 정신이라고 말한다.
국악인 공옥진 선생 이야기
"전쟁이 나자 정읍에서 경찰 일을 하던 남편은 먼저 피난을 가고, 제 곁에는 태어난 지 사흘 된 딸아이만 남았습니다. 아이 업고 퉁퉁 부은 얼굴로 뒤따라 천태산으로 피난 가는데, 산후조리를 못해 손발이 저리고 쑤셔왔지요. 그런데 누군가 ‘저기 경찰 부인 간다’고 밀고를 했더랬습니다. 저는 인민군의 손아귀에 잡혀서 곧장 처형대로 끌려갔어요. 붉은 완장을 찬 사람이 마지막 소원이 뭐냐고 하기에 내가 소리꾼이니, 소리나 한가락 하게 해달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저는 ‘새야 새야 파랑새야’를 불렀는데, 순간 주위가 숨 죽은 듯이 고요해지더군요. 노래가 끝날 때까지 제 갓난아기는 낯 모르는 아주머니 품에 안겨서 고아가 될 처지도 모르는 채 자고 있었어요. 인민군이 한가락 더 하라고 해서 ‘심청전’도 불렀습니다. 완장 찬 사람은 그걸 다 듣고 인민군에게 총을 거두라고 하더니, 재주가 아깝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고단할 때 노래나 한두 곡 불러달라’고 하더군요. 제가 파묻힐 뻔했던 흙구덩이 앞에서 아기를 다시 품에 안고 나니 눈물이 비 오듯 쏟아졌습니다. 저는 저를 구원할 것은 소리라고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