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갑사(甲寺)
봄에는 마곡사요 가을에는 갑사(春麻谷 秋甲寺)가 좋다는데 가을이 한참 지난 초겨울에 갑사가 있는 계룡산을 다녀왔다.
예전에 2번 갑사를 왔었는데 초여름과 겨울이었다. 봄에 마곡사를 가본 적도 없으니 '춘마곡 추갑사'의 실체는 아직 모르는 셈이다.
'甲寺' 으뜸가는 절이란 뜻일까?
백제 구이신왕 원년(420) 아도화상(고구려에서 신라에 들어와 신라에 처음 불교를 전하고 선산에 도리사를 창건했다는 그분)의 창건설이 전해오며, 분명한 기록으로는 무령왕 3년(503)에 중창했다고 하니 당시 백제 도읍 웅진의 중요한 사찰이었으리라.
아무튼, 1,500년 넘게 계룡산 서쪽의 주인으로 동쪽의 동학사와 함께 터줏대감 노릇을 해왔으니, 이름에 '으뜸甲'이 들어간다고 해도 하등 이상할 게 없겠다.
이름이 갑이니 갑질도 잘할까? 라는 쓸데없는 생각을~~ ㅋㅋ
생각해보니 이름에 갑사가 들어간 절도 꽤 있는 것 같다,
도갑사(영암), 불갑사(영광), 원갑사(무안), 오갑사(충주), 또 없나? ^^
초겨울 잎을 모두 떨군 나무들에서는 치열한 생존본능보다는 스산함이 느껴진다. 겨울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눈이 덮인 것도 아니어서 산은 더 메말라 보이는 시기이기도 하다.
일주문에서 갑사를 향하는 길, 겨울의 풍족하지 않은 아침 햇볕을 받는 나무들에서는 안쓰러움이랄까? 뭐 그런 느낌이.....
갑사 사적비
현종 원년(1659)에 세운 비로 갑사의 창건과정과 역사를 기록했다. 사각의 바윗돌을 받침돌로 삼아 비를 세웠고 지붕돌의 보주가 이채롭다.
비 몸 위쪽에 ‘公州鷄龍山岬寺事蹟碑銘(공주계룡산갑사사적비명)이라 쓰여 있어서, 당시에는 절 이름이 岬寺로 지금과는 다름을 알 수 있다.
비문은 여주목사 이지천이 짓고 공주목사 이기징이 글씨를 썼다고 한다. 사찰의 사적비를 사대부 고관들이 쓴 것인데 이들은 인근 공주의 세거 성씨인 여주이씨들이라 하니, 갑사와 특별한 인연이 있었던 걸까?
갑사 강당
다포 양식에 맞배지붕을 얹은 조선 후기 건물이다.
‘계룡갑사(鷄龍甲寺)’라고 쓴 현판에 정해년 가을에 절도사 홍재의가 썼다(丁亥菊秋 節度使洪在義 書)고 되어 있어 검색해보니, 홍재의는 임오군란 때 고종을 구한 공로로 무감(武監)에서 포천 현감으로 제수받았던 인물로, 이때는 충청수군절도사로 있을 때여서 현판을 쓴 정해년은 1887년임을 알 수 있다.
측면에 도리(기둥과 기둥 위에 얹어 그 위에 서까래를 놓는 부재)가 드러난 맞배지붕의 단순함을 난 좋아한다.
나무 아래 사모지붕을 한 저 예쁜 건물엔 무엇이 있으려나?
종각이다. 조선 선조 때 만들어진 보물 제478호인 갑사 동종이 걸려 있는 종각이다.
그런데 저렇게 사면을 다 막아 버리면 동종은 어떻게 보나? 정답은 구멍이다 구멍 사이로 옹색하게 들여다보아야 한다는.... ㅠㅠ
헐! 예쁜 사모지붕 종각의 구멍으로 안을 들여다봤더니 동종이 거의 유폐 신세다. 사방이 막힌 독방에 갇힌 채 바닥에도 종에도 먼지가 뽀얗게 앉았다. 물론 사용 하지도 않는다(삐까번쩍한 범종루에 새로 만든 범종이 있다).
400살이 넘었고 명색이 보물인데 이런 대접을 받으니, 종 입장에선 '내가 이러려고 갑사 종이 되었나' 하는 자괴감이 절로 들 것만 같다.
갑사 동종
종에 선조 17년(1584)에 만들었다는 명문이 있다. 갑사가 불에 타버린 정유재란의 병화에도 살아남은 것이다.
명문에는 당시 갑사(甲寺)의 이름이 갑사사( 岬士寺)로 기록되어 있다.
한국 종의 특징 중 하나인 상부에 음통이 없으며, 당좌 사이에는 지장보살입상이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공출되었다가, 광복 후 갑사로 돌아오는 수난도 겪은 종이다.
세수하면 이렇게 깨끗한 얼굴인데..... (사진 :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공우탑(功牛塔)‘
공우탑이라는 이름처럼 사찰 중건에 공이 많은 소를 기리기 위해 세운 탑이라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탑 몸에 공(功)’ ‘우탑(牛塔)’이라는 명문이 남아 있다.
갑사석조약사여래입상 갑사 옆 계곡 가에 움푹하게 파인 자연 동굴형 바위 안에 있다. 왼손에 약합을 들고 있는 약사여래이다.
등산은 지구의 중력에 반하는 행위이다. 그래서 힘들다. 초겨울날의 좁은 산골짜기는 오전의 반나절이 지나도 해가 들지 않아 쌀쌀한데도 몸에 땀이 난다.
갑사에서 한 시간 반쯤 걸려 연천봉 바로 아래 고개에 올랐다. 몸에 난 열과 낮은 기온에 얼굴은 술 마신 사람처럼 달아올랐다.
오늘 산행은 갑사에서 연천봉고개로 올라 관음봉, 삼불봉을 거쳐 갑사로 내려오는 부채꼴 모양의 원점회귀 산행이다.
그렇게 다시 능선을 따라 걸어가면 관음봉이다. 계룡산 최고봉인 천황봉이 군사보호구역으로 묶여 입산이 통제되어서 관음봉이 그 역할을 대신하는데, 위치로도 관음봉은 연천봉, 전황봉, 삼불봉을 연결하는 꼭짓점이어서 정상의 느낌이 확연하다.
북쪽 삼불봉 너머로 세종시의 아파트들이 빼곡했는데 사진에는 희미할 뿐이다. 카메라를 수리 보내 조그만 디카를 들고 갔는데 얘도 좀 이상한 것 같다.
닭 볏산 연천봉, 관음봉, 삼불봉을 잇는 능선은 뾰족뾰족한 바위봉들이 연속 이어지는 그 모습이 마치 닭 볏 같다는 데서 계룡산(鷄龍山)이란 이름이 유래되었다(닭 벼슬이러고 썼더니 벼슬은 사투리고 볏이 표준어란다).
오른쪽이 동학사계곡이고 그 끝에 대전 유성이 희미하게 보인다.
계곡 속에 푹 파묻힌 동학사. 계룡산 주 능선 양쪽 동, 서에 동학사계곡과 갑사계곡이 자리하고 있다.
역광에 찍었더니.....
마치 필터를 사용해 찍은 것 같은 효과가~~ ^^
저 끝 안테나가 뾰족한 곳이 계룡산 최고봉 천왕봉이고 그 오른쪽 봉우리가 쌀개봉이다.
관음봉에서 자연성능 능선을 따라가면 삼불봉에.....
남매탑
삼불봉에서 동학사 쪽으로 좀 내려가면 남매탑 또는 오뉘탑이라고 부르는 오층석탑과 칠층석탑 한 쌍이 나란히 서 있다.
공식명칭은 청량사지 오층석탑(보물 제1284호), 청량사지 칠층석탑(보물 제1285호)으로, 이곳에 청량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고, 지금은 탑과 관련된 전설의 주인공인 상원조사의 이름을 딴 상원암이란 암자가 있다.
청량사지 오층석탑 - 보물 제1284호
한 눈에도 정림사지 오층석탑에서부터 시작된 백제 탑의 전통을 이은 석탑이다.
1단의 기단 위에 5층의 탑을 올렸는데, 5층은 몸돌만 있고 지붕돌이 없어져 탑 위쪽이
`두리뭉실한 모습이라 아쉽다.
그냥 남매탑의 '오빠 탑', '누이 탑'할 걸 '청량사지 오층석탑' 하니 너무 쌩뚱맞다 ^^
청량사지 칠층석탑 - 보물 제1285호
전체적으로 폭이 좁고 길쭉한 모양의 탑이다, 1층 몸돌에는 직사각형의 감실을 두었다.
2,3,4층의 지붕돌은 후대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며, 옆의 오층석탑에 비해서 조형미가 좀 떨어지는 느낌이다.
같은 자리에 탑을 세우면서 모양을 달리했다는 건 만든 시기가 다르다는 뜻일 텐데 어느 게 먼저일까?
천진보탑이 있는 신흥암
남매탑을 보고 다시 뒤돌아서 금잔디고개를 넘어 갑사 계곡으로 내려오다 보면 수정봉 아래, 갑사에 딸린 여러 암자 중의 하나인 신흥암을 만난다.
신흥암에는 천진보탑(天眞寶塔)’이라 부르는 바위가 있다. 사람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자연 그대로의 탑인데, 이 탑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석가모니가 열반한 후 인도의 아육왕은 구시나가라국에 있는 사리탑에서 많은 양의 사리를 발견하여 이를 시방세계(十方世界 열곳의 방향에 있는 중생의 세계)에 나누어 주었다.
그때 비사문천왕(사천왕 중 북쪽을 담당하는, 다문천왕이라고도 하며 우리나라에선 보통 비파를 들고 있다)을 이곳 계룡산에 보내어 이 바위 안에 담아 두도록 하였는데, 뒷날 갑사를 창건한 아도화상이 이를 발견하여 ‘천진보탑(天眞寶塔)’이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천진보탑 (사진 가져온 곳 : '디지탈공주문화대전')
자연 바위임에도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68호). 특별한 날에는 빛을 발하는데 그 빛이 하늘을 꿰뚫는다고 한다.
이번에 제대로 둘러보지 못했는데 다음에는 꼭~~ ^^
겨울 갈수기는 '용문폭포'라는 거창한 이름조차 초라하게 만들었다.
갑사 대웅전
겨울의 짧은 해가 넘어가기 전 마지막 빛을 비추고 있다. 아침에 법회를 하는 중이라 둘러보지 못해 다시 들렸다.
갑사의 오래된 다른 건물들처럼 정유재란(1597)에 불타 버려, 전쟁이 끝난 후 선조 37년(1604)에 다시 지었다.
정면 5칸, 측면 4칸 크기의 여유 있는 건물로 다포 양식에 맞배지붕을 얹었다.
대웅전에는 소조삼세불(塑造三世佛)이 모셔져 있다. 중앙에 석가모니불, 우측에는 아미타불, 좌측에는 약사여래이고, 문수, 보현, 관세음, 대세지 등 4대 협시보살이 봉안되어 있다.
대웅전 수미단 뒤의 괘불함. 국보 제298호인 삼신괘불탱이 들어 있다. 쾌불 크기가 엄청나니 괘불함도 길이가 10m가 넘는다.
갑사삼신불괘불탱 (甲寺三身佛掛佛幀) 국보 제298호 (사진 :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뼈대(?) 있는 사찰들은 대부분 큰 괘불들을 갖고 있어 특별한 행사 때 꺼내서 걸어 놓고 사찰의 자부심을 뽐낸다.
그러다 보니 국보, 보물로 지정된 것만도 54점이나 되는데, 길이 12.47m, 폭 9.48m의 갑사 괘불은 그 중 두 번째로 크기가 큰 괘불이다.
상, 중, 하 삼단 구도인데 가운데에는 비로자나불, 석가, 노사나불 등 삼신불이, 상단에는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상, 제자상, 금강역사상 등이 배치되었으며, 맨 아래에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상, 사천왕상, 사리불 등이 있다.
이 괘불은 효종 원년(1650)에 제작되었다.
국보, 보불로 지정된 괘불의 목록을 잘 정리해 놓은 분이 있어서 링크.
http://blog.daum.net/goungja2/1036
대적전(大寂殿)
갑사의 대웅전, 강당, 팔상전, 삼성각, 표충원 등 오래된 전각들이 모두 맞배지붕인데, 대적전민 팔작지붕이다.
갑사의 중심부에서 남동쪽 계곡 건너편에 요사채와 함께 따로 떨어져 있어 한적한 느낌인데, 원래는 이곳이 갑사의 대웅전이 있었던 자리라고 한다.
정유재란에 불탄 갑사를 재건하면서 절의 중심을 좀 더 넓은 지금의 자리로 옮긴 것 같다.
대적전 앞에는 보물 제257호인 승탑이 마치 탑이나 석등인 양 서 있는데, 원래는 갑사 뒤편에 쓰러져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 세웠다고 한다.
이름은 대적전인데 비로자나불 대신 석가모니불이 문수, 보현보살의 협시를 받으며 계신다. 남의집에 사는 석가모니불은 전세 들어 오신걸까? ^^
갑사 승탑 - 보물 제257호
받침돌 위에 3단의 기단을 올렸다. 맨 아래는 사자, 구름, 용을, 가운데는 돌출된 꽃장식들 사이로 악기를 연주하는 주악천인상(奏樂天人像)을, 맨 위는 연꽃을 장식했다.
팔각인 탑 몸돌의 4면에는 자물쇠가 달린 문을, 다른 4면에는 사천왕상을 조각하였다.
지붕돌은 기왓골을 정교하게 표현하였으며, 그 위의 머리 장식은 모두 없어졌다. 현재의 보주는 후에 새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조각이 웅장하고 뛰어난 기단에 비해 지붕돌이 작아서 왜소하게 느껴지는 이 고려시대 승탑의 주인은 누구였을까?
철당간은 보수 중이다.
갑사 철당간 - 보물 제256호 (사진 :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절에 행사가 있을 때 절 입구에 달아두는 깃발인 당(幢)을 걸기 위한 장대를 당간. 장대 아래쪽은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돌기둥을 당간지주라고 한다.
철이나 돌로 만든 당간들은 없어지고 당간지주만 남아있는 경우기 대부분이어서 당간을 볼 수 있는 곳은 몇 되지 않는다.
갑사 철당간은 유일한 통일신라 당간이다. 철통 28개를 연결하여 만들었는데 현재는 24개만 남아있다.
靈圭大師 土窟址 入口(영규대사 토굴지 입구)
철당간에서 주차장으로 내려오는 길가에 돌에 새긴 작은 비가 서 있다. 글씨가 마모가 심하고 해가 넘어간 뒤라 잘 알아볼 수가 없는데, 옆에 비석보다 더 작은 안내석 같은 게 있어 읽어보니, 임진왜란 때의 승병장 영규대사에 관한 것이다.
오석에 글을 새겨서 시멘트 받침에 끼운 작은 비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의승장 영규대사
천지가 유린되는 임진왜란
말발굽에 칡넝쿨 마디마다
의병꽃 피어니고 풀잎도
날 세워 싸움터로 향할때
장삼을 방패삼아 낫 들고
일어나서 빗발치는 조총알을
몸으로 막으시며 부러진
낫끝으로 청주성을 탈환하신
거룩하신 대사님이시여!
여기!
그날의 함성모아
님 곁에 묻습니다
갑사에서 출가한 기허당 영규대사(騎虛堂 靈圭大師)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최초로 승병을 일으켜 의병장 조헌과 함께 청주성을 공격하여 탈환하였고, 이어서 금산전투에 참여하여 싸우다가 부상을 당해 이틀 만에 이곳에 돌아와서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그의 묘소는 갑사에서 멀지 않은 계룡면 유평리에 있고, 갑사에는 왜적을 맞아 싸웠던 승병장 영규대사, 서산대사, 사명대사의 영정을 배향한 표충원이 있다.
|
첫댓글 내년 봄 정기답사인 청도에 갑사가 많았지요...
대작갑사, 소작갑사 등 다섯 개의 갑사가 있었다는데.
나는 갑사 옆의 신원사 중악단 건축구조가 너무 재미있어 오래 있었는디~~~
등산하며 문화유산 답사도 하는 추임새의 산행은 새해에도 계속됩니다
1월에는 겨울 서리꽃 하얗게 피는 광주 무등산으로 갑니다
동참 환영합니다요~~ ^^
언제일까나... 급땡김~~~
기회가되면 분청향기님도 뵐겸 무등산행에 동참하고 싶어요
다음주에 1월 근무 일정 나오는 거 봐서 날짜를..... ^^
아~구리님^^
수도권송년회에서 만날꼬에요~~ㅎㅎ
머...산행도 같이 할수있다면 것도 좋구요~~^^
수도권 송년회 나오시는군요.
잔뜩 기대하고 갑니다
오!! 저두 초겨울에만 항상 갑사를 다녀왔어여. ㅎㅎ 공주 터미널 앞에서 혼자 된장찌개 시켜 먹는데., 그맛을 아직 잊을수가 없어요. ㅎㅎ
매번 혼자가서.. 절 앞 식당에서 동동주 한잔 먹기 힘들던 갑사...ㅎㅎ
아이구. 이 겨울 또 가고프네요. 발걸음한지 10년은 다 된거 같아요. ㅎㅎ
저도 10월에 갑사 다녀오며 계룡산 오르고 싶다했었는데 추임새님 계룡산이야기 구석구석 잘 보았습니다. 계룡산 가는날 좋은참고서가 되겠네요.
분청언니... 소녀같아요^^*
아! 오랜만에 보는 계룡산....
지난 날 동학사에서 폭포를 거쳐 최고봉 천왕봉(당시에도 군사시설 있었는데, 주둔 군인의 호의로 철책안에 입장해 정상을 오름)과 여러 능선을 거쳐 공주쪽 갑사로 내려온 기억이 새롭군요.
그 뒤론 유성을 지나 동학사를 자주 찾았는데, 특히 눈내린 겨울 산행이 인상적...언제나 함께하는 추임새님과 피앙새의 정겨운 모습이 아주 좋네요.
두달에 한번씩은 꼭옥 가는 갑사길... 저는 개인적으로 갑사길이 넘 좋아.. 아이들 데리고 제일 많이 갔던 곳인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