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후의 나의 삶
인천대건고등학교 생명과학반
유동혁
“자 모두들 다 적었지? 지운다? 오케이. 그럼 페이지 36쪽을 펴봐라. 함수의 극한은 간단한 거야. 지금까지 배워왔던 것을 한 단계 응용한 것으로…uc0….”
지루하다.
언제까지 이런 수업이 이어지는 걸까. 수업을 하는 선생님. 그걸 듣는 30명. 이해가 안 가도 넘어가는 그 시원함이 내 목안에서 맴도는 말을 꺼내들게 한다.
“아직 이해 못한 애들이 있는 것 같은데요. 선생님.”
“아, 어, 그러냐. 그럼 이 문제 다시 설명해 주마.”
그리고 대화가 끝난 후 느껴지는 따가운 시선.
‘다 끝난 걸 왜 질문하고 있는 거야?’
‘그거 하나 몰라?’
‘나머지는 학원에서 물어보란 말이야.’
‘바보 아냐?’
그래 바보다. 이해 안 가는 걸 어떡하라는 건데?
선생님께서 다시 조곤조곤 설명해 주시는 것을 다 적고 이해가 다 될 무렵, 때마침 종이 울렸다.
“아… 끝났네. 함수의 극한은 다음 시간에 설명하도록 하고, 숙제해 오렴. 다음 시간에 보자.”
“안녕히 가세요.”
“감사합니다.”
이런 일상이 반복되면서 세월은 화살처럼 빠르게 흘러가 나는 어느덧 대학을 졸업하고 짝을 만나 결혼하고, 안정된 직장을 찾아서 일하게 되었다.
내 나이 37살, 이름 유동혁.
중견기업 회사에서 회계업무를 맡고 있지. 이 일이 적성에 맞냐고? 당연히 아니지. 내 성격은 밖에서 무언가를 주도하고 새로운 걸 탐구하는 일이 좋거든. 뭐라고? 근데 왜 이 일을 하냐고? 글쎄다. 나도 잘 모르겠네. 성적 따라 살다보니 이렇게 되어 버렸네. 지금 직업을 바꾼다면? 음, 그러네. 방송 PD라든가 아니면 성격이랑 정반대지만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 그래, 작가도 한번 해 볼만 할 것 같네. 그 일을 하면 행복할 것 같냐고? 당연하지. 내가 좋아하는 일인데. 그런데 할 수 있게 만들어 주겠다니? 무슨 뜻이니 꼬마야. 어느 틈엔가 작은 꼬마가 퇴근하는 내 눈 앞에 서 있었다.
-나는 사람들의 불만이 낳은 결정체. 당신의 현재를 바꾸어 드리죠. 20년 전으로. 당신이 가장 그리워하는 그 시절로.-
“꼬마야. 집에 가거라. 부모님 걱정하시겠다. 갑자기 이것저것 물어보더니 무슨 말을 하는 거니?”
-응답은 네, 아니오. 고등학교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습니까?-
“갈 수만 있다면야 뭐 좋지.”
-그럼 20년 전에 세계에서 만납시다. 시간은 똑같이. 오후 10시 47분으로.-
그렇게, 잠깐 만나 내 인생을 바꾸어버린 꼬마는 내 뇌리에 깊숙이 박힌 채 평생 잊히지 않았다.
“야! 유동혁. 집중 안 해?”
“아 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학원의 교실 안이었다. 기억을 되짚어보니 이 학원은 분명 고등학교 시절에 다녔던 학원이 맞았다. 살짝 눅눅한 곰팡이 냄새. 수업시간에 간간히 들리는 여자애들이 수다 떠는 소리. 설명하시는 선생님의 목소리. 펜 떨어지는 소리. 내가 20년 전에 가지고 있던 기억과 완전히 일치했다.
“이 문제는 미분 가능성을 조사하는 것과 동시에 함수의 연속과 등비수열의 응용을 묻는 문제이니까 최상의 난이도라고 말해도 손색이 없다. 잘 필기해 둬.”
“네.”
어느덧 12시가 되어서 집에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니 12시 20분 언저리. 내가 이렇게 늦게까지 공부했던가…uc0…. 그리고 꼬마가 예전처럼 갑자기 나타났다.
-오랜만에 답답한 교실에서 듣는 수업은 어떠셨나요?-
“기분이 좋다고 해야 되나, 기분이 오히려 나쁘다고 해야 되나, 잘 모르겠네. 답답한 건 사실이지만.”
꼬마는 불안한 눈을 하며 양심에 찔린 양 나를 빤히 쳐다보고 말했다.
-학생 시절로 되돌아가신 것에 후회하신다는 건가요?-
나는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안심시키며 웃는 얼굴로 말했다.
“아니 오히려 뭔가 재밌는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니 공상과학소설에나 있는 일이잖아. 뭔가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럼 만족하는 거군요?-
“응. 대만족이야.”
-그럼 매일 밤 이 시간 즈음에 만나러 오겠습니다. 참고로 육체적인 기능은 옛날로 되돌아가요. 하지만 지능은 눈치 채셨 듯이 그대로입니다. 그럼.-
“그래. 내일 이 시간에.”
나는 가볍게 내 방을 한번 둘러보고 옛날에는 하지 않았던 복습을 하기 시작했다.
‘이거 오랜만에 미적분 과정 다시 하려니 꽤나 힘드네…uc0….’
- 다 음 날 -
“잘 다녀와.”
“어, 갔다 올게요. 엄마.”
양복이 아닌 평소와는 다른 교복을 입고, 운동화를 신은 채로 직장이 아닌 학교를 향하며 집을 나섰다. 시끌벅적한 교실에 들어서자 어린 시절 동창들이 있었고, 나는 알지만 자신들의 미래는 모르며 지금 행복한 미소를 간직하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친구들을 보았다.
“동혁! 오늘 평소보다 늦었네. 무슨 일 있었어?”
“아냐, 버스를 착각해서.”
“응 그렇구나. 아슬아슬하네 지각하지 않도록 조심해.”
“알았어. 고마워.”
자리에 앉아 1교시 수업을 기다리며 이어폰을 꽂고 수학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5문제쯤 풀었을까, 페이지를 넘기고 다른 문제를 풀려는 찰나 선생님이 들어와 HR을 시작하셨다.
“자리에 앉고. 오늘의 전달사항은…”
이런 하루하루가 빠르게 지나갔다. 성적은 내가 기억하고 있는 성적보다 월등히 높게 나왔다. 수학은 3등급에서 1등급으로. 영어는 3등급에서 2등급으로. 국어는 평소대로 보니 1등급이 가볍게 나왔다. 과학 탐구 과목은 전부 다 잊어버렸기에 생물과 화학을 집중적으로 공부하니 성적이 점점 올라가 1회고사와 4회고사의 성적차가 매우 크게났다. 그렇게 2학년이 지나고 3학년이 되어 기계와 같이 공부만 하는 삶을 살아갔다. 하지만, 내 뇌리에 스쳐가는 옛 기억이 되살아났다.
‘이렇게 공부만 하면 내 미래와 똑같이 살게 되지 않을까? 성적이 몇 단계 높아져도 말이야.’
그런 생각을 한 순간, 내 마음 안에는 한 가지 결심이 섰다. 이제부터 나만의 삶을 살기로.
우선 나만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계획과 나의 삶을 살기 위한 재력이 필요하다. 나는 고등학교 3학년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서울권 대학에 안정적인 성적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대학교 재학 중에 소설을 한 편 쓰기 시작했다. 주인공은 변변찮은 삶을 살아가는 회사원이 한 요정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판타지 같은 이야기. 당연히 나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렇게 소설 한 편을 성공적으로 쓰고 출판사에 연락하여 원고를 건네주었다.
-이거 우리 이야기 아닌가요? 우리 이야기인데 저한테 허락을 맡아주셔야죠.-
“무슨 소리야. 허락해 줄거 아닌가?”
-그건 그렇지만…uc0….-
출판은 되었지만 그렇게 성공적인 시작은 아니었다.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오는 듯싶었지만 다시 순위가 내려가면서 무난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행히도 책은 꾸준히 팔려준 덕에 생활비 정도는 받을 수 있게 되었다. 한 달에 150. 이정도면 충분한 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1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입대하여 지옥 같은 2년의 생활을 보내고 2학년에 복학하여 새로운 책을 쓰기 시작했다. 장르는 추리물. 주인공은 고등학생. 여러 가지 의뢰를 처리하는 그런 머리가 평범하게 좋은 남자아이. 이 책은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고 번역되어 해외에 팔릴 정도로 성공적인 결과를 받았다. 고료는 꽤나 많이 나왔고,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돈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문득 내 옆에 있는 요정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다.
-행복하신가요?-
“어. 행복해. 교과서에선 알려주지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기뻐하는 걸지도 몰라. 하지만 뭔가 허전해. 마음속에 작은 구멍이 난 느낌이야. 그 답을 찾고 싶어.”
마음은 무언가 더 높은 것을 원했다. 그래서 대학교 졸업과 동시에 엄청난 수의 추리소설과 연애소설을 썼다. 이렇게 소설을 쓰면서 나의 답을 찾길 바랐다. 내가 만든 캐릭터에 꿈을 부여하며 나의 답을 찾아주길 바랐던 것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료가 올라가고 인기작가가 되고, 행사에 나가고, 학교에서 글 쓰는 강의를 할 때 즈음에 깨달았다. 강의 한 번에 바로 깨달았다. 진정한 행복을 누리는 자는 얼마 없다는 것을. 내 눈앞에 있는 고등학생들도 꿈이 있지만, 학교가 그것을 방해한다는 것을. 우리나라의 현실이 그것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내 나이 서른일곱. 20년을 되돌아가 살았던 삶. 그 20년이 내 삶의 한 켠을 비추어준 느낌이 들었다. 내 꿈을 찾은 것. 글로 이 학생들을 구해주겠다는 꿈. 그것이 37살에 겨우 찾은 나의 유일한 꿈이다.
-행복하신가요?-
“어. 행복해.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세상에서 가장 밝은 미소를 보여주자, 요정은 점점 흐려지더니 사라졌다.
‘이 세상에서 당신만큼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들을 더 보여주세요.’라며. 그리고, 나의 삶은 정반대로 바뀌어가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Fin
첫댓글 다시 보니까 더럽게 못 썻네;; 많이 써봐야겠다.
동혁 군, 제가 어색한 문장 등을 퇴고해 올린 상태입니다. 자신이 제출한 원문과 대조해 보세요. 미세한 차이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다른 친구들 글에도 감상평을 올려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