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사 원통보전의 멋스러움과 석성산 정상 아침
풍경으로 기억될
한남정맥 4구간 (초당역~신갈역)
1. 일자: 2018. 5. 20 (일)
2. 산: 석성산(471m), 선장산/할미산(349m)
3. 행로와 시간
[초당역(07:40) ~ (작전도로) ~ 통화산 갈림(08:20) ~ 통화사(08:27~32) ~ 석성산(08:45~50) ~ 잣고개(09:14) ~ (도로 공사 중 / 알바) ~ 전적비(09:35)
~ 할미산/선장산(09:52) ~ 향림동산 갈림(10:06) ~ Café Floresta(10:26) ~ (도로) ~ 금일초교(10:55) ~ 어정가구단지/어치지고개(11:04) ~ (골프장 옆길/새천년길) ~ 공원(12:15) ~ 신갈역(12:24),
4시간 44분/ 14.69km]
한 달 만에 정맥 길에 오른다. 무리하면 안 됨을 알기에 어느 때보다
꼼꼼히 코스를 살핀 끝에 들머리를 초당역으로 잡았다. 정맥에서 벗어나긴 했어도 시간과 거리를 줄일 수
있어서다. 일부 길은 지난 3구간에서 이미 다녀온 탓도 과감한
결정에 힘을 보탠다.
집을 나서며 올려다 본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가득하고 일출의 여운도 느껴진다. 날씨가 참 맑아 좋다. 이 얼마 만에 경험하는 상쾌한 아침이던가? 일찍 집을 나선 덕에
초당역 부근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도 8시가 되기 전에 들머리에 선다.
동백지구 아파트 뒤편으로 저마다의 모습으로 멋을 낸 고급 주택들을 통과해 석성산으로 향한다. 작전도로가
순식간에 통화사 갈림에 날 데려다 준다. 농밀한 숲을 통과하며 숨을 크게 들여마셔 본다. 가슴 가득 들어오는 상쾌한 공기가,‘바로 이거야’를 느끼게 해 준다.
통화사 경내에 들어서다
멈칫한다. 금빛 글씨로 새긴‘원통보전’현판을 단 멋지고 단아한 사찰 건물은 3년 반 전 오늘을 불러온다. 그때는 용인시청을 들머리로 군부대를 돌아 이리로 올랐고, 오늘처럼
통화사 법당의 고풍스러운 모습은 그때도 감동 그 자체였다. 인간이 느끼는 아름다움은 대개 자연미, 예술미, 문화미로 나뉜다. 자연의
아름다움이란 우리가 늘상 시각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대상이기에 별다른 설명이 없어도 알아챈다. 그러나, 예술미라는 인공적 아름다음과 문화미라는 정신적 가치는 나름의 훈련과 지식없이는 쉽게 잡아낼 수 있는 게 아니다. 통화사 법당은 그 웅장한 비례부터 고색창연한 나무의 질감 그리고 무엇보다 여닫이 문의 다양한 문양 디테일이
예술적 창작성과 아름다움을 불러온다. 기단을 딛고 올라 문에 새겨진 문양을 보며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렸다. 그 모습에 옆을 지나던 남자가‘나만 멋지다고 느끼는
건 아닌가 보죠’하며 절집 곳곳을 살핀다. 멋진 예술작품을
바라보는 눈은 연대감을 불러온다.
통화사에서 석성산 정상은
지척이었다. 그새 긴 계단이 놓였다. 치고 오르니 정상석
주변으로 커다란 데크까지 설치되어 있다. 또 감동한다. 이번에는
맑은 날 늦봄 아침 산에서 바라보는 탁 트인 풍경이 넓게 펼쳐진다. 아파트 숲 뒤편 멀리 서해바다까지
조망되는 듯하다. 엷은 코발트빛 하늘 밑으로 산과 들과 건물들이 어우러진 풍경을 한참 동안 멍하니 바라보며
감동한다. 일찍 집을 나서길 잘했다.
지도에는 선장산으로 명기된
할미산으로 향하는 길을 물으니, 친절한 아저씨 ‘다리 공사로
길이 끊겼을 텐테’하고 걱정하며 방향을 잡아준다. 잣고개
근방에서 길이 어지러워진다. 고속도로 허공 위로 구름다리 공사가 한창이다. 좀 더 가면 우회로가 있겠지 한 생각은 순진했다. 한참을 가다 돌아서
없는 길을 만들고 고속도로를 무단횡단하여 겨우 등로를 찾았다. 1km 이상을 헛고생했다. 들머리에서 꾀부려 단축한 거리를 다 까 먹고서야 금줄이 쳐진 할미산 등로에 들어선다. 개발의 어지러운 잔재들을 뚫고 오른 할미산 정상은 폐허다. 빛바랜
산성 입간판 만이 화려한 한 때를 말해준다.
지도를 들여다 본다. 밑이 뚫린 말발굽 마냥 등로가 이어진다. 88CC 측면을 돌아나오는
정맥 길이 왠지 어수선해 보인다. 또 꾀를 낸다. 어차피
길은 향린동산과 동백저수지 부근에서 만난다. 지름길을 택한다. 어디로
향하는 줄도 모르고 일단 좌틀해 내려온다. 동백저수지 밑으로 난 소로를 통해 영동고속도로 밑을 지나더니
급기야 양귀비가 지천으로 심어져 있는 Café Floresta에 멈춰선다. 찻길을 따라 걷는다. 동백중학교 앞에서 큰 길가 마주한다. 다시 지도를 들여다 본다. 정맥과 도로는 만나게 되어 있다. 길가 야생화를 벗 삼아 꽤 오래 걸었다. 중일초등학교 앞에서 정맥
길과 만난다. 등로를 벗어났다고 아우성치던 트랭길이 조용해진다. 순식간에
남은 거리가 5km 대로 줄어든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어정가구단지를 돌아 들어 어치지고개에서 숲에 들어선다.
만골공원, 새천년약수터라는 표지판이 여러 곳에서 보이고 숲이 우거진 골프장과 아파트 단지를 끼고 만들어진 산책로를 따라
걷는다. 일요일 아침의 여유가 곁을 지나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느껴진다.
1시간 이상 숲을 걸었다. 힐링이었다. 그 끝은
신도시를 상징하는 커다란 공원과 신갈전철역이었다.
마치 놀이동산에서 청룡열차를
타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용인 경전철 대신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향한다. 아침 반 나절 너무 많은
걸 보았나 보다.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든다.
지하철로 대변되는 일상은 번잡하기가 말할 수 없다.













<
에필로그 >
어제 아침 회사로 출근하다 과천터널을 나서며, 아침 햇살에 빛나는 거대한
병풍처럼 내게 다가서던 관악산 연봉들의 장엄한 풍경을 바라보며,‘최근 몇 년 동안 가장 맑은 날이네. 이런 날엔 산에 있어야 하는데’라며 탄식하던 기억이 조바심으로 바뀌고
급기야 아픈 무릎은 뒷전으로 보내고, 마음은‘그래 맞아 의사도
걷는 게 좋다 했으니 적당한 델 찾아보자’로 변한다. 한번
터진 조바심은 바스락거리며 온갖 궁리를 낸다. 그 끝은 그리 멀리 가지 못한다. 한남정맥 4구간….
통화사 원통보전 앞 마당을
서성이며 잠시 마음의 평온을 얻었다. 절은 심란을 잠재워 형상 너머 본질을 보게 하는 힘이 있다더니
허언이 아닌가 보다. 어지러운 등로를 이리 저리 돌아다니다 돌아오는 길, 절집의 단아한 풍광만이 기억에 남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