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단전호흡 1. 단전이란 무엇인가 흔히들 심신이 허약한 사람에게 단전호흡을 권장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정신질환자로부터 단순한 비만에 이르기까지, 혹은 현대의 임상병리학적 차원에서마저 속수무책인 사람들에게 마치 만병통치약쯤의 처방으로 이해되어지고 있는 단전호흡의 신비. 과연 그것은 영원한 베일 속에 가려져 언제까지고 밝혀지지 않는 원인불명의 불가사의인가. 단전호흡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호흡하는 것을 단전호흡이라 하고, 그것은 우리들의 삶과 선도 수련에 어떤 의미와 의의가 있으며, 단전호흡으로 인한 구체적인 득과 실은 무엇인가? 본 장은 이런 의문으로부터 출발하여 필자의 경험을 토대로 하나하나 성실하게 의구심을 풀어 나가도록 한다. 단전호흡은 크게 두 가지 차원으로 구분하여 이해되어질 수 있다. 하나는 신체의 건강에 주안점을 두는 육체적 차원이고, 또 다른 하나는 마음의 깨달음에 주안점을 두는 차원이다. 육체의 건강적 차원에서의 단전호흡은 사실상 많은 사람들을 여러 종류의 질병에서 구해준다. 즉 심신 허약자 및 성인병과 각종 현대병에 시달리며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생기 넘치는 활력과 심신의 강건을 되찾아 주며, 단정호흡에 충실을 기하면 종국에 가서는 건강도 자연히 완벽을 되찾게 된다. 물론 정확한 수련법을 착실하게 준수해야 한다는 전제가 뒤따른다. 그렇지 않을 경우, 여러 가지 잘못된 방법론에 기인한 폐단도 경우에 따라서는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한편, 이런 육체적 수련의 차원을 뛰어넘어 정신적 깨달음을 추구하는 단전호흡은 수련자에게 여러 가지 크고 작은 고통을 안겨 주게 되는데, 그 과정이 끝나면 자아가 완성되고, 견성, 깨달음, 득도, 도통의 즐거움을 누리게 된다. 단전호흡은 이와 같이 탁월한 육체적 강건을 획득하여 무병장수를 누리게 되는 차원과, 정신적 깨달음에 의한 득도를 통하여 신인합일을 이루어내게 된다는 차원의 이중적 양면성이 있다. 그러나 이 둘은 전혀 상반된 반대의 개념이라기보다는 늘 함께 상존하는 동전의 앞뒤와 같이 표리관계로 이해되어져야 한다. 육체의 건강 없이 정신의 건상을 기대하기 힘들 듯이, 정신의 건강 없는 육체적 건강이 있을 수 있는가? 수련자가 열심히 단전호흡을 거듭하여 수련에 박차를 가하게 되면 그 수련 정도에 따라 정신적인 깨우침을 얻게 되는데, 이런 정신적 깨우침을 얻게 되면 부수적으로 건강도 괄목할 만큼 좋아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선도의 수행법 자체가 우선적으로 건강의 완성을 추구하여 이룩한 연후에, 정신적 깨달음으로 몰입해 들어가는 순서를 밟게 되기 때문이다. 정신과 육체는 하나일 수밖에 없는 것이, 예를 들어 기분이 나쁘면 소화가 안 된다든지 몸이 아픈 환자는 얼굴이 일그러져 있으며 정신적으로도 편안하지 못한 상태임을 우리는 항상 보아오고 있지 않는가. 환자에게 수술을 가할 때 마취는 왜 필요한가? 그것은 육체와 정신이 하나이기 때문이다. 육체와 정신은 마치 음양과 같아서 단전호흡을 하게 되면 육체의 건강을 얻음과 동시에 정신적인 편안함도 얻게 된다. 단전호흡을 하면 정신이 맑아진다. 우리는 이미 이 우주 삼라만상 천지 만물이 기로 구성되어 있음을 앞 장에서 터득하였는바, 단전호흡은 바로 이 기를 운용하기 때문에 육체와 정신이 동시에 고루 충실해지고 밝고 맑아지며 편안해지는 것이다. 앞 장의<정· 기· 신> 편에서도 이미 피력한바 있듯이, 육체(몸)는 바로 신(마음)이 머물고 있는 집이다. 단전호흡이란 바로 호흡을 통하여 육체의 건강을 이루고 심신의 안정을 도모하는 것이다. 나아가 그로 인하여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무궁한 힘을 일깨우고,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신의 세계에 다다르며, 신인합일을 이룩하여 인즉천의 경지에 오른 후, 깨닫지 못한 다른 많은 사람들을 깨달음의 길로 이끌어 주는 지로사의 역할을 하는 데 그 의의가 있는 것이다. 단전이란 무엇을 이름이며 선도와 단학 등에서의 호흡법을 왜 단전호흡이라 부르는지 그 어원부터 접근해 보자. 단(丹 : 구슬), 전(田 : 밭)에서 단이란 ‘구슬’을 의미하고, 전이란 그 형상에 의할 것 같으면 ‘미닫이 문’을 의미한다. 그래서 ‘단전’이란, 미닫이 문을 열면 그 안에 구슬이 있다는 뜻이다. 또는 ‘밭 전’을 달리 의역하여, 농사에서의 밭은 부엌에서의 솥(鼎)과 같은 역할을 하므로 ‘솥 안에 구슬이 생긴다.’라고 해석하기도 하는데, 궁극적으로 따지고 보면 ‘문을 열면 구슬이 있다’와 ‘솥 안에 구슬이 생긴다.’라는 말은 같은 뜻의 이야기다. 다만 그 체험과정에서 어떠한 느낌을 받았느냐에 따라 미묘한 해석의 차이를 불러일으키게 되지만 그러한 차이는 오히려 강한 일치감의 다른 표현들이라고 봄이 마땅하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구슬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구슬은 이미 본질적으로 내면에 존재하고 있는 구슬, 원천적인 조화의 힘을 이미 가지고 있는 구슬을 말한다. 흔히 수련을 하다가 생겨나게 되는 기적(氣的) 차원의 물질화된 고체와 이 구슬을 착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채약(採藥:나중에 언급됨)과정에 있어서의 소약과 대약을 이름이다. 단! 이 구슬을 다른 말로 여의주(如意珠)라고도 하는데, 이는 각각 우리의 몸 삼단전에 하나씩 존재한다. 즉 우리 인간의 몸에는 삼단전이 있고 세 개의 구슬, 삼주가 있다는 이야기다. 2. 삼단전의 위치 삼단전은 하단전, 중단전, 상단전을 일컫는다. 동양침술의 경혈학적 측면에서 볼 때, 십이경락과 기경팔맥 중에는 임맥이라는 매우 중요한 선이 있는데, 이 선은 우리 몸의 정 중앙에 위치하며 경혈수는 전 24혈이다. 지면사정이나 본서 주제의 일관성을 고려해 볼 때, 이러한 한방적 차원에 관한 고찰은 다른 기회를 이용하여 피력하기로 하고, 우선 우리가 삼단전을 이해하기 위해서 이 24경혈이 위치해 있는 임맥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상세히 알아둘 필요가 있다. 따라서 도해에 자세히 그 위치와 각 경혈마다의 명칭을 소개한다. 도해를 보면, 우리 몸의 정면으로 중앙에 한의학적 차원에서의 중요한 선이 있는데, 이 선상에 회음으로부터 승장에 이르기까지 24개의 경혈이 위치해 있고, 그 중에서 하단전은 석문, 중단전은 옥당에 자리 잡고 있다. 상단전은 승장보다 훨씬 위의 얼굴 앞이마의 인당에 위치하고 있는데 인당은 임맥이 아니고 독맥에 속한다. 이 하· 중· 상단전을 하나하나씩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우선 하단전은 삼단전 중 가장 아래로 위치하는데, 경혈로 볼 때는 관원과 기해사이의 석문이 바로 그 자리다. 하단전은 삼단전의 뿌리에 해당되는데, 정을 생성 변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삼단전인 상단· 중단· 하단에 있는 세 개의 구슬을 찾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하단전에 있는 구슬, 즉 정주를 먼저 찾아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상단전의 신주, 중단전의 기주, 하단전의 정주를 찾는 문이 바로 하단전의 석문에 있다는 이야기다. 이 정주를 찾지 않고서는 기주와 신주를 찾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하단전의 정주를 찾아야 중단전의기주를 찾을 수 있는 문이 열리고, 중단전의 기주를 찾아야 상단전의 신주를 찾을 수 있는 문이 열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단전의 정주를 찾지 못하면 중단전의 문은 결코 열릴 수가 없다. 하단전의 정주는 참으로 중요한 구슬이다. 任脈(全24穴) (會陰起-->承漿終) 회음 용문 곡골 중극 관원 석문 기해 음교 신궐 수분 하완 건리 중완 상완 거궐 구미 중정 단중 옥당 자궁 화개 선기 천돌 염천 승장 하단전의 석문! 문자 그대로 굳게 닫힌 돌문을 호흡으로 힘차게 열자. 그곳에 정주가 있다. <도해>의 경혈 위치를 활용하여 다시 한 번 되짚어 보면, 석문은 기해를 위로 하고 관원을 아래로 하여 그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데, 기해는 음이고 관원은 양이다. 이 음양을 조화시키는 태극의 자리에 바로 석문이 위치해 있는 것이다. 석문 단전호흡은 음(기해)과 양(관원)의 조화를 추구하는 태극(석문)에 변화를 이루게 하여, 우리 몸의 깊숙한 내면에 기운을 일으켜 우주의 기운과 교류를 도모하고 나와 우주와의 합일을 이루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천지자연과 두루 통하게 되면 천지의 정기가 바로 나의 기가 되는 것이다. 본서 2부에서 자세히 설명이 되겠지만, 현재의 우주는 선천의 시대를 지나 후천으로 접어들고 있다. 이런 후천의 시대에는 필연적으로 <후천 인간 개벽의 도문>을 열어야 하는데 그 문이 바로 이 하단전 석문인 것이다. 하단전의 수련에 집중적으로 정진하다 보면 어느덧 자연스럽게 하단전이 도태되고 중단전이 열린다. 중단전은 어디에 위치하는가, 역시 침술 경혈학적으로 말하자면 임맥의 옥당혈에 중단전이 있다. 실제로 만져보면, 우리의 양 가슴에 젖꼭지(유두)가 있는데, 이 양 젖꼭지를 횡으로 연결하여 임맥과 만나는 지점에 전중혈이 있다. 이 전중혈에서 위로 한 치 육푼이 되는 지점에 옥당이 있는데 이 자리가 바로 중단전이다. 이 중단전이 도태되면 천지만물과 나의 마음이 합일된다. 이러한 차원으로 올라가게 되면 나는 오욕칠정을 다스리고, 또 벗어나 자연과 더불어 초연하게 된다. 그리하여 중단전이 도태되면 상단전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열린다는 것은 도태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즉 새로운 열림은 그 전 과정의 도태를 의미함이다. 침술 경혈학적으로, 상단전은 독맥의 인당혈에 위치한다. 인당혈은 양 눈썹 사이의 정 중간이다. 상단전은 중단전의 도태에 의해서 열린다. 열린 상단전의 하는 일은 깨달음에 이르는 데 있다. 깨닫는다(覺)는 것은 자연의 이치와 우주의 이치를 안다는 것인데, 이것은 필연적으로 상단전이 열림으로써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상단전이 열리게 되면 범인들이 볼 수 없는 세계, 보이지 않는 세계를 능히 보게 된다. 즉 영혼이라든지, 귀신이라든지, 천상계 등의 정신세계를 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와 같이 하단전에서 중단전, 중단전에서 상단전으로 세단전이 도태되고 열려서 세 개의 여의주를 찾게 되면 대우주와 소우주가 하나가 되고 우아일체와 신인합일의 경지에 오르게 된다. 이렇게 삼단전을 열어 삼주를 얻게 되면, 선도에서 말하는 양신이 생기게 된다. 이 양신이 생기면 두정을 열고 양신을 머리 위로 출신시킨다. 출신을 처음 시킬 때는 작으나, 수련할 때마다 거듭하여 양신을 출신시키다 보면 그 양신은 점점 성장하여 결국 수련자의 육신만큼이나 커지게 된다. 양신이 일정 크기만큼 성장했을 때 하늘을 보면 흰 빛을 발견하게 되는데, 흰 빛이 보이는 즉시 양신을 타고 그 빛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본서에서 나중에 자세히 피력하겠지만, 바로 이것이 영계편에서 말하는 2천 전생계이다. 하여, 이는 선도 수련이 드디어 1천 영계를 뛰어넘어 바로 2천 영계에 들어감을 뜻하는 것이다. <5장과 6장 참조> 다시 한 번 강조하거니와 삼단전으로 들어가는 문은 하단전이다. 흔히 하단전을 기해나 관원으로 오해하여 수련하는 사람이 있다. 혹은 막연히 배꼽 밑 세 치(三寸) 또는 5cm 등으로 설명되는 웃지 못 할 경우가 종종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기해는 음이다. 기해는 음이므로, 기해를 단전으로 오해하여 수련하면 수련이 지나치게 부드럽고 약하며 음적이 되어버린다. 반면 관원은 양이므로, 관원을 단전으로 오해하여 수련하면 수련이 힘의 위주가 되므로 강하고 양적이 되어버린다. 기해, 관원, 이 두 자리는 음과 양의 자리를 조화시키는 태극의 자리가 바로 침구학에서 말하는 금기혈인 석문이라는 경혈인 것이다. 단전은 인류와 나를 구원하는 문이다. 내 스스로 호흡을 통하여 굳게 닫혀 있는 돌문을 열어서 끊임없는 정진으로 기운을 통하고, 신인합일하여 구천 삼도계를 보게 된다. 구천 삼도계를 봄으로써 스스로를 구하게 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구원의 문, 석문이 아니가. 남녀노소 선악인 구분 없이 누구나가 이 돌문인 단전을 열어 진정한 참 나를 찾아야 한다. 이제 진정 자신을 알고 스스로를 구원하고자 하는 사람은 수없는 세월 동안 닫혀 있던 돌문(石門)의 먼지를 털어내고 그 문을 열어 소우주의 길을 걸아야 한다. 비록 그 길이 고족하고 멀더라도······. 3. 호흡법 옛 침구서들을 살펴보면 어느 서적이건 간에 석문혈은 금구, 금침혈로 나와 있다. 이는 침이나 뜸을 떠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호흡 이외 여타의 어떠한 것으로든지 충격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 되는데 왜일까? 그 이유가 바로 석문호흡에 있는 것이다. 즉 호흡만이 돌문을 열 수 있다는 뜻이다. 침이나 뜸으로는 열리지 않고 오직 호흡에 의한 기만이 석문을 열리게 한다. 석문을 열기 위한 호흡은 어떻게 하는 호흡인가? 호흡을 하기 전에 우선 알아두어야 할 것은 단전이 먼저 그곳에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단전은 마치 그릇과 같은 것, 호흡에 의해 들어오는 기를 물이라고 한다면 단전은 그것을 받아 고이게 하는 그릇이다. 물이 끊임없이 들어와도 그릇이 없으면 기는 모이지 않는다. 이래서는 수련에 진전이 없다. 수련이 이루어지려면 기가 모여야 하는데 그 기를 모아드는 그릇을 단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따라서 반드시 우선적으로 단전이 자리를 잡아야 한다. 단전이 자리를 잡고 있어야 호흡에 의하여 들어오는 기가 곧장 쌓이고 쌓여 축기가 되고 수련에 진전을 본다. 단전이 자리를 잡게 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독자적으로 혼자 하는 방법과 선각자의 도움을 받아 이루는 방법이 있다. 혼자 할 때는 단전에 의식을 집중하야 수련을 한다. 보다 자리를 빨리 잡기 위해서는 먼저 공부가 된 선배가 기로써 석문에 자극을 주어 그 속도를 빠르게 하는 것이다. 선배의 도움을 받을 때는, 보다 더 공부가 심오한 분이 하늘의 기운을 곧바로 잡아 단전이라는 그릇을 만들어 주는 것이 최상이다. 그러나 이런 최상의 방법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 최소한 전신주천은 이룬 사람이어야 이러한 방법이 가능하다. 하여튼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단전의 자리를 잡는 것! 이제 자세를 알아보자. 호흡 수련에 있어서는 자세 역시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수련자는 자세를 바르게 하기 위한 수련 역시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자세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와식과 좌식, 입식이 그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와식은 누워서 하는 수련법이고 좌식은 앉아서, 입식은 서서 하는 수련법이다. 와식수련부터 알아보자. 와식을 하려면 편하게 누워야 한다. 이 때의 몸과 마음은 최대한 편안하게 할 것. 다음, 양발을 어깨넓이로 넓혀 역시 편안한 상태로 두고, 양 손도 손바닥이 하늘로 향하여 쥐지도 펴지도 않은 편안한 상태로 둔다. 이 때 양팔은 그림에서처럼 몸에서 45° 정도의 각도를 유지한다. 눈은 감은 채로 하늘을 응시하는 가벼운 기분을 유지할 것. 이상이 와식의 기본자세이다. 좌식은 앉아서 하는 자세이다. 좌식은 여러 가지 변형이 가능하나 그 중 가장 일반적이고 기본적이며 핵심이 되는 자세를 설명하기로 한다. 양다리는 반가부좌 자세. 어느 쪽 다리가 위로 가든 상관이 없다. 그저 편안하면 된다. 이런 상태에서 엉덩이를 약간 뒤로 빼내어 허리를 곧게 펴고 머리를 쭉 뽑아 올린다. 이 때 턱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약간 끌어당겨 코와 배꼽 밑의 단전과 일치시킨다. 가슴은 활짝 펴고 어깨는 경직되지 않도록 자세를 편히 한다. 다음, 양팔에 둥그런 느낌이 들도록 하여 양손을 단전에 둔다. 왼손을 위로, 오른손을 아래로 겹쳐서 두 손의 엄지 손가락을 서로 결합한다. 와식, 입식에 비하여 좌식의 기본자세는 대단히 중요하며 입문과정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방법이다. 입식은 입문과정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별 도움이 되지 않으므로 다른 기회를 이용하여 천천히 피력하기로 한다. 와식이든 좌식이든 자세가 갖추어지면 호흡을 시작한다. 호흡은 들이마시는 숨과 내어뱉는 숨을 합한 말이다. 숨을 들이마실 때는 가늘고 길게 들이마시고, 또 내어뱉을 때도 마신 만큼 가늘고 길게 뱉는데, 초보자는 가능한 4~5초의 호흡이라도 부드럽고 일정하게 해야 한다. 숨을 들이마실 때는 공기를 물이라고 생각하여 들이마시면 훨씬 도움이 된다. 코로 들어온 공기, 즉 물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 가슴을 지나 위장으로 내려가고, 배꼽 아래 단전인 석문까지 흘러내려간다는 느낌을 가진다. 즉, 코로 들어온 공기가 물 흐르듯 임맥을 타고 흘러내려가 석문에 뚝뚝 떨어져 고인다고 생각(느낌)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호흡을 하게 되면 석문단전에 기가 모이게 되고 서서히 석문이 열린다. 석문에 의식이 집중이 잘되면 될수록 기는 잘 모이게 되는데, 기가 모이게 되면 모인 만큼 석문은 빨리 열린다. 결국 석문의 자리를 인식하는 것과 의식을 집중하는 것은 석문을 열기 위한 기본적인 힘이다. 석문단전에 기가 모여 쌓이는 것을 축기라고 하는데, 이렇게 기가 모이게 되면 여러 가지 자각 현상이 생긴다. 즉 수련자 스스로가 기가 모이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그 느낌은 어떠한 것들이고 그 자각현상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수련자에 따라 각기 다양하지만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들을 몇 가지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단전이 떨리는 경우가 있다. 혹은 수련 중에 땀이 상식 이상으로 많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 혹은 몸 구석구석을 바늘로 찌르는 듯 아픈 경우도 있고, 평소에 늘 지병으로 앓고 있던 질병이 낫거나 호전되는 경우도 있다. 몸이 가볍고 기분이 좋아지는 경우도 있고, 단전이 자리 잡을 때 단전이 뜨거워지는 경우도 있고, 몸의 체온이 더워졌다가 식어서져 차가워졌다가 하는 경우도 있고, 몸이 주변의 기운에 대하여 압력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등등의 현상들을 느낌으로써 스스로의 단전에 기가 모이는 상태를 자각할 수 있는 것이다. 그의 일반적인 현상으로 정이 많이 배출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단전에 모인 기운이 완벽히 기로 변화하지 못하고 정으로 변화한 상태에서 몸 밖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즉 기를 축적시켜 운기를 해야 하는데 운기를 미처 하지 못한 상태에서 기가 다시 정으로 변화하게 되는 경우로서 이 때 변화한 정은 수련자가 꿈을 꾸거나 잠을 잘 때 몽정 등을 통하여 정액의 상태로 몸 밖으로 빠져나오는 것이다. 이 때 몽정의 양과 횟수는 대단히 많고 잦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서마저 몽정을 하지 않게 되면 그 정은 썩어서 오히려 몸 어는 한 구석에 이상이 생기게 되는데, 이때는 몸에 음침한 기운이 맴돌기 때문에 누구라도 한 눈에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이런 사람은 얼굴빛이 시커멓다. 수련자는 이를 특히 경계해야 한다. 기를 운기 시키지 않으면 썩게 되고, 기가 썩으면 당연히 정도 썩어 병이 생기는 것이다. 마치 고인 물은 썩고 흐르는 물은 썩지 않는 이치와 같다. 대맥이나 소주천등의 운기가 중요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몽정의 현상은 한 마디로 호흡을 통하여 들어온 하늘의 수기가 정으로 변화하여 점점 쌓이게 됨으로써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는 축기 단계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정 -> 기 -> 신으로 발전과정 중에 정이 기로 변화하지 못하고 몽정으로 빠져나오는 것이다. 이때는 호흡의 시간을 늘려 호흡 수련의 강도를 더욱 높여야 하며, 항문을 꽉 조여 수축한 상태에서 호흡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평소에 5초 정도의 호흡으로 수련을 하였다면, 호흡을 10초 정도로 늘려 항문을 수축하고 호흡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미약한 기와 정은 단숨에 뜨거운 열기로 화하게 되고, 이 뜨거운 열기는 단전에 있는 구슬의 조화로 인하여 완벽한 기로 변해 대맥으로 흐르게 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조식에 있다. 숨은 오랫동안 참는다거나 인위적으로 멈추는 것은 아주 좋지 않다. 항상 자연스럽게 숨 쉬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이든 인위적으로 하게 되면 폐해가 크다. 자연의 호흡, 자연스러운 호흡을 추구해야 한다. 하늘 꽃이 겨울눈처럼 내리고 홀로 앉은 정적한 방엔 신명들이 모여 앉아 보이지 않는 향기를 마신다. 세속을 떠난 이의 마음도 세속을 위해 있는 것 홀로 앉아 신명들과 차를 마시는 이 마음 뉘 알까 아득히 멀리서 불어오는 이 바람이 나의 숨결임을 참으로 뉘 알까 신명들도 모르는데... |
출처: 이연희실장 010.4836.0860 원문보기 글쓴이: 혜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