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서문학관
원서문학관은 시인이자 소설가인 오탁번 교수와 부인인 김은자 교수가 함께 자신의 모교인 충북 제천시 백운면 애련리에 있는 백운초등학교의 폐교된 애련분교를 매입해 문학의 터를 잡았다.
‘원서(遠西)’는 ‘먼 서쪽’을 의미하는 그의 고향, 백운의 옛 이름이다. 2004년 3월 문예창작교실을 시작으로 정식으로 문을 열어 서울과 지방 문인들의 교류의 장을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시인, 작가를 꿈꾸는 이들을 지도하고 있다. 문학관에는 전시실과 세미나실외에 각종 부대시설이 있는데 전시실에는 정지용의 지용시선, 백록담, 산문과 작가 김기림 작가의 시론, 작가 이기영 작가의 서화 등과 1950년대 초등학교 교과서 등을 소장하고 있으며, 구상, 조병화, 김춘수 등 시인 50명의 얼굴 사진과 김춘수, 서정주, 김남조 등 육필원고 100여점을 전시하고 있다.
매년 여름방학에는 ‘어린이 시인학교’를 열고, 문예창작교실과 시낭송회, 시인과의 대화 등 문학 행사 개최한다. 어린이 시인학교는 백운초등학교 어린이 20∼30명을 대상으로 1주일간 무료로 운영하고 있으며, 문학관 내에 야생화 정원과 시비정원을 조성하여 현대인들의 휴식과 영상의 공간을 마련하여 지역 내 새로운 명소로 자리잡고 있다.
■오탁번
1943년 7월 3일 제천에서 태어남.
고려대학교 영문과 및 동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하였다. 196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1978년부터 고려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하였고, 고려대학교 명예교수이다. 한국시인협회장을 역임하였다.
1987년 제12회 한국문학작가상, 1994년 동서문학상, 1997년 정지용 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시집으로는 <너무 많은 가운데 하나> <생각나지 않는 꿈>,<겨울강> <1미터의 사랑>
소설로는 <처형의 땅> ,산문집<오탁번 시화> , 평론집<현대시의 이해>가 있다.
봄편지 /오탁번
무당새가 우편함에 또 알을 깠다
올해는
큰 우편함 작은 우편함
양쪽에 다 둥지를 틀었다
주근깨 나란한 하늘빛 알이
다섯 개씩
앙증맞은 둥지 안에
반가운 편지처럼 다소곳하다
무당새가 우편함에 둥지를 틀면
우체부 아저씨는 골치 아프지만
할아버지는 싱글벙글한다
우편함 대신으로
대문 옆에 갖다 놓은 항아리 안에
편지를 넣던 우체부가
우리 할아버지 흉을 본다
— 어르신은 꼭 애들 같아요
예쁜 무당새가
아기자기 봄소식 전해주는
애련리 198번지
우리 할아버지 집
폭설 / 오탁번
삼동(三冬)에도 웬만해선 눈이 내리지 않는
남도(南道) 땅끝 외진 동네에
어느 해 겨울 엄청난 폭설이 내렸다
이장이 허둥지둥 마이크를 잡았다
― 주민 여러분! 삽 들고 회관 앞으로 모이쇼잉!
눈이 좆나게 내려부렸당께!
이튿날 아침 눈을 뜨니
간밤에 또 자가웃 폭설이 내려
비닐하우스가 몽땅 무너져내렸다
놀란 이장이 허겁지겁 마이크를 잡았다
― 워메, 지랄나 부렀소잉!
어제 온 눈은 좆도 아닝께 싸게싸게 나오쇼잉!
왼종일 눈을 치우느라고
깡그리 녹초가 된 주민들은
회관에 모여 삼겹살에 소주를 마셨다
그날 밤 집집마다 모과빛 장지문에는
뒷물하는 아낙네의 실루엣이 비쳤다
다음날 새벽 잠에서 깬 이장이
밖을 내다보다가, 앗!, 소리쳤다
우편함과 문패만 빼꼼하게 보일 뿐
온 천지(天地)가 흰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하느님이 행성(行星)만한 떡시루를 뒤엎은 듯
축사 지붕도 폭삭 무너져내렸다
좆심 뚝심 다 좋은 이장은
윗목에 놓인 뒷물대야를 내동댕이치며
우주(宇宙)의 미아(迷兒)가 된 듯 울부짖었다
― 주민 여러분! 워따. 귀신 곡하겠당께!
인자 우리 동네 몽땅 좆돼버렸쇼잉!
실비 /오탁번
비 내릴 생각 영 않는 게으른 하느님이
소나무 위에서 낮잠을 주무시는 동안
쥐눈이콩만 한 어린 수박이
세로줄 선명하게 앙글앙글 보채고
뙤약볕 감자도 옥수수도
얄랑얄랑 잎사귀를 흔든다
내 마음의 금반지 하나
금빛 솔잎에 이냥 걸어두고
고추씨만 한 그대의 사랑 너무 매워서
낮곁 내내 손톱여물이나 써는 동안
하느님이 하늘로 올라가면서
재채기라도 하셨나
실비 뿌리다가 이내 그친다
첫댓글 오탁번 선생님의 시를 좋아했습니다.
해학적이면서 가슴이 짠해지는 시들이 많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