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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
역사의 현장을 민낯 그대로
― 백시종의 『여수의 눈물』
김미수
『여수의 눈물』은 여순사건에 대한 정보를 검색하면서 읽으면 더욱 흥미로운 소설이다. 여전히 여순사건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순사건은 아직도 여순반란사건이나 여순 여순사건, 여순반란사건, 여수 14연대 반란사건, 여순봉기, 여순항쟁, 여순군란이라고도 부른다. 제주 4·3사건과 함께 해방정국의 소용돌이 속에서 좌익과 우익의 대립으로 빚어진 민족사의 비극적 사건이다.
1948년 10월 전라남도 여수시에 주둔 중이었던 14연대 군인들이 제주 4·3사건 진압을 위한 출동 명령을 거부하고 무장반란을 일으킨 사건. 반란군은 여수를 점령한 뒤 순천으로 이동했으며 이후 전라남도 일대를 점령했다. 이승만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한 뒤, 5개 연대를 투입해 여순 지역 탈환에 성공했다. 진압 과정 중 무고한 민간인이 희생당했으며, 이 사건을 계기로 이승만 정부는 반대세력에 대한 무제한적인 탄압을 제도화해 강력한 반공국가를 구축하게 되었다.
남도의 마지막 항구 여수에 주둔하던 14연대가 이승만 정권의 제주도 진압 출정 명령에 불복했다가 군경 합동토벌군에 쫓겨 지리산 깊은 곳에 숨어 지내던 때다. 대체로 마을 주민들은 그들을 산사람으로 불렀지만 토벌군을 포함한 행정요원들은 공비 아니면 빨갱이 그것도 아니면 빨치산이라고 호칭했다. 그때만 해도 솔직히 반반이었다. 반은 산사람 쪽이고 반은 토벌군 편이었다. 아니, 어느 쪽이라고 딱히 편을 가를 수 없는 상황인지도 몰랐다. 두 쪽 다 소위 말하는 민족의식 속에 숨 쉬는 지극히 보편적인 상식의 잣대가 없었다.
관련 자료들과 병행하여 『여수의 눈물』을 읽으면 역사적 사건을 소설로 형상화한 작가의 관점을 파악할 수 있고 여순 사건의 실체에도 한발 더 다가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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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인 서병수는 대학에서 정년퇴임한 뒤 폐교를 구해 작업실로 쓰려고 한다. 마침 고향 여수에서 초등학교 동창이던 김귀석이 교장으로 있던 폐교로 향한다. 그곳에서 폐교 뒷벽에 붙은 흑백사진을 발견한다. 그 흑백사진에 자신의 형, 서병걸이 찍힌 것을 발견하고 그 사진을 주머니에 훔쳐 넣는다. 서병걸은 군인이던 아버지의 죽음을 현장에서 목격한 장본인이다. 그들의 아버지는, 이승만이 몸담은 자유당 여수지구당 위원장직을 갖고 있었고 차기 총선에 출마할 준비를 갖춘 예비국회의원이었다. 이 소설은 여순사건과 관련되어 죽임을 당한 아버지의 삶의 궤적을 추적하는, 두 아들의 ‘아버지의 정체성 찾기’가 기둥 줄거리다.
그때 형은 초등학교 1학년이었다. 문제의 남자가 학교를 찾아왔고, 아버지를 잘 안다는 남자를 집 쪽으로 안내했는데, 남자는 동네 어귀에서 아버지를 보자마자, 더러운 배신자라고 소리 지르며 총을 꺼내 쏘았고 앞으로 고꾸라져 엎딘 아버지의 등짝에 탕탕 두 발의 총알을 더 박아 피곤죽을 만든 다음 출입금지가 해제된 지리산 쪽으로 새처럼 훨훨 도주해 버린 것이다. (57쪽)
이처럼 서병수와 서병걸은 군인이던 아버지가 박상돈이라는 빨치산에 의해 처형되었다고 믿으며 아버지를 미화하는 어린 시절을 보낸다. 이들은 성장한 뒤 아버지를 죽인 박상돈이라는 인물을 찾아내는데 그는 비전향 장기수로 살다가 북으로 송환되는 인물임이 밝혀진다. 그러나 여전히 그가 왜 당시 아버지를 죽였는지 의문은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서병걸은 성장한 뒤에도 변함없이 아버지의 삶의 궤적을 따라 살아간다.
형은 월급이 쥐꼬리만 한 시외버스 검표요원으로 일하다가 노조운동에 가담하는 바람에 철퇴를 맞고 오랜 백수 노릇 끝에 임시방편으로 몸을 의탁한 곳이 고물상이다. 군대에서 극진히 모셨던 선임하사의 도움이었다. 평생 군대에 말뚝을 탕탕 박아서인지 지독한 보수꼴통이었다. 우선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의 기치를 들고 조직된 귀신 잡는 해병예비역 모임이니, 반공연맹이니, 자유통일이니, 한비수호협회 등등 온갖 보수 모임의 중간간부를 약방의 감초처럼 도맡아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것이다. (99쪽)
반면 주인공 서병수는 폐교 문제로 고향에 내려온 뒤 여수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 사건 전말의 참혹함을 듣게 되면서 이승만을 정통으로 하는 보수세력을 더욱 증오하며 서병걸과 갈등을 겪는다.
“나도 알아. 미국의 새파란 젊은이들이 피 흘려 희생해 주었으므로 북한군과 중공군을 무찔렀고, 그래서 대한민국이 지금 이렇게 존재감을 나타낼 수 있다는 사실, 나두 다 안다구. 그러나 그때 북한군의 뒤에 누가 있었어? 무적의 탱크며, 성능 좋은 야포며, 보병용 따발총이며, 그 모두가 어느 나라의 제품이었느냐구? 바로 소련이었잖아? 소련이 개발한 화기들이잖아? 결국 소련이 북한군을 앞세워 남쪽 침공을 시도한 거야.(…)우리 뒤에는 누가 있었어? 미국이 있었잖아! 3년 동안 미군정이 조선총독부 자리에 앉아 일본처럼 우리를 통치하고 나서 이승만 정부를 탄생시킨 직후였잖아? 그러니까 그것은 우리가 벌인 동족상잔의 싸움이기 전에 소련과 미국이 서로의 자존심을 걸고 나선 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구. 미국도 소련도 결코 물러설 수 없는 힘의 대결장이었으니까. ‘냉전’이란 말이 왜 생겼어? 세상 질서는 오로지 하나, 미국이냐 소련이냐 둘 중에 누가 더 확실한 강국인가 힘겨루기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바로 6・25였단 말이야.” (317쪽)
하지만 두 형제는 소설 말미에 이르러 아버지의 죽음의 비밀을 알게 된다. 아버지 서창만이 독립투사로서 동상을 제막하려는 즈음 아버지의 실체가 밝혀지면서 아버지에 대한 두 아들의 환상은 깨진다. 아버지의 죽음을 둘러싼 비밀이 밝혀지는 과정은 우리가 믿고 있던 여순사건이 어느 정도의 허구를 기반으로 회자되어 오늘에 이르렀을지 가정해 보거나 의심해 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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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사실이나 진실이 은폐되거나 왜곡되어 전해지는 이유를 이 소설에서는 부정적 인물들을 통해 형상화한다. 그런 인물들은 자신의 탐욕을 위해 다른 사람들의 희생과 아픔에 대한 연민을 보이지 않거나 역사 인식을 결여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드러낸다. 그중에는 남편인 서창만을 철저히 허구적인 인물로 만들어 놓은 서병수의 어머니가 있다.
아버지의 7주기 제사를 지낸 다음 날 어머니는 마을 사람들의 돈을 갈취해서 야반도주했으며, 이후 전쟁의 폐허 속이라 헐값이었던 서울의 노른자위 땅이나 건물을 숨겨 온 돈으로 대량 구입했으면서도 추적해 오는 수사팀에 행여 들킬세라 철저히 몸을 낮추었으며 경우에 따라 신분까지 감추었다. 오죽했으면 처음에는 변두리 판자촌에 숨어 지내며 시장통에서 일수장수 도장 찍다가, 순댓국 밥장수 앞치마를 입었다가, 건어물 도매상을 거쳐 시장번영회 대표 자리에까지 올랐다.” (18쪽)
어머니는 남편에 대한 기억이 허구임을 알면서도 끝까지 그것을 은폐하고 그 대가로 받은 돈으로 강남의 빌딩을 마구잡이로 사들여 부를 얻는 인물이며, 김학봉이라는 정부를 통해 남편을 끝내 독립유공자로 만드는 공작을 하는 인물이다.
또한 김종원 대위 역시 여순사건 현장에서 일본군 장교 출신답게 일본도를 휘두르기도 하는 부정적인 인물이다. 주로 학생들로 이뤄진 시민군이 형성한 방어선을 뚫지 못하자 함포사격을 명해서 여수 시내에 들어온 군인까지 죽이고 주민들을 학교 운동장에 모아 놓고 학살을 자행한다. 황말암은 김종원을 ‘철모 쓴 미친 장교’라고 말하며 그에 대한 증언을 들려준다.
“오죽하면 손가락총이라는 말이 생겼겠소? 14연대의 여수경찰서 기습작전으로 무력점령이 있고 나서, 우익인사들과 경찰간부와 기독교 신자와 그 가족을 심판 처형했는데 그 수효가 1백 명에 이르렀소. 진압군의 손가락총 즉결처분은 그에 대한 피의 복수였소. 여수 시내 초등학교 운동장 귀퉁이에 깊고 넓은 엄청난 구덩이를 팠소. 그리고 고성능 마이크를 통해 여수시민들을 여러 곳으로 분산 집합시켰소. 여수를 5일 만에 탈환한 진압군은 여수시 전역을 불태우는 일부터 먼저 했소. 주택이 훨훨 타는 마당에 집 안에 숨어 있을 수 없도록 미리 방책을 세운 것이오.” (273쪽)
이렇게 사건의 현장에 있었던 김종원 대위는 여순사건의 가장 잔혹한 살인자로 등장하면서 이후에는 한국전쟁과 공비토벌작전 등의 공로를 내세워 훈장을 8개 받고 호위호식하는 부정적 인물의 전형으로 그려진다.
무엇보다 이 소설에서 가장 부정적인 인물로 서술되는 것은 이승만 대통령이다. 작중 화자인 서병수를 통해 직설적으로 그에 대한 증오심을 토로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그를 원래부터 권력지향적인 인물로 설정해 놓고 그 설정은 흔들림이 없이 서술된다. 여순사건 당시의 상황과 맞물린 이승만의 선택에 대한 변명의 여지는, 이 소설에서는 주어지지 않는다.
“그때 박용만이 하와이에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군대를 조직해서 무기도 사들이고 군사훈련도 받게 했거든. 말 그대로 여차하면 출동하여 일본군과 정정당당히 싸울 수 있는 실력 있는 군대 말이야. 일본을 이기기 위해서는 오로지 무력밖에 다른 방도가 없다고 판단한 거지. 한데 이승만이 그걸 이용한 거야. 박용만의 독립군은 일본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미국 정부를 상대한 거라고. 기회가 오면 미국을 공격하여 하와이를 탈취, 새로운 정부를 세우기 위해 그 같은 훈련을 반복하고 있다고 새빨간 거짓 증언을 한 거지. 아무런 죄도 없는 박용만이 이승만 대신 반역죄로 잡혀가고, 이승만은 자유의 몸이 되어 상하이로 가서 임시정부 대통령이 된 거야.” (243쪽)
이 서술만 보아도 이승만에 대한 고정된 관점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승만의 경우는 물론이고 박용만에 대한 역사적 평가도 달리 대입하면서 소설을 읽을 여지도 있다. 가령, 박용만이 당시에 하와이에서 준비했던 무장폭력 운동의 실효성과 정당성 측면을 따져 본다든지, 이승만이 기독교인으로서 무장봉기 같은 폭력적 해결보다 윌슨을 통한 민족자결을 관철하려 했기 때문에 박용만에 대해 조처를 취했다는 식의 비판적 관점을 대입하면서 읽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정리하자면, 『여수의 눈물』은 선한 인물과 악한 인물의 구도 속에서 화자가 지향하는 선한 인물에 대한 고찰을 지향한다. 이를테면 역사의 희생자는 a라고 설정해 두고 가해자 b를 마음껏 성토하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의 현장을 민낯 그대로 그려내고 가슴에 품었던 말을 속 시원히 털어내는 서술을 선택하며 그것이 이 소설의 개성이라고도 할 수 있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면을 더듬는 행위는 아마도 독자의 몫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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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적인 인물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은 긍정적인 인물들이다. 이승만에 맞섰던 인물, 최능진도 그중 한 인물이다. 그는 안창호와 함께 독립운동을 했으며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구속되었던 실존인물이다. 이승만이 출마한 동대문 갑구에 입후보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과 기호 1번이 되어 친일경찰 처벌요구 등의 주장으로 인기가 높아서 이승만의 당선을 위협하기에 이르는 인물로 그려진다.
황말암 역시 이종원과 함께 사건 현장의 가해자였으면서도 이종원과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인물이다. 그는 여순사건 이후 참회하는 삶을 살기 위해 사건의 기록화를 남겨 참회하고자 평생을 바친다. 또한 전교조 출신인 김귀석은 여순반란사건이라는 명칭을 여순항쟁으로 바로잡기 위해 국회의원으로 출마하려는 인물이다. 더불어 김찬구라는 인물 역시 인상적이다. 그는 여운형의 비서 활동을 하면서 광복 전후에 건국준비위원회가 왜 공화국 건설의 주춧돌이 되지 못했는지를 보여 준다. 이후 그는 조현병 환자로 전락하지만 자신을 ‘최능진’이라고 주장한다.
“민족의 비극인 6・25전쟁터에서 내가 한 일이 뭔 줄 아남? 전쟁을 일으킨 김일성을 만나 전투를 중단시키고 남북이 하나 된 자랑스런 나라를 만들자고 제안하는 일이었어. 네놈도 국가와 민족을 생각한다면, 눈을 들어 저 처절한 전쟁터를 바라보란 말이야. 죄 없는 양민이 무한대로 죽어 넘어가고 피 끓는 청춘을 한껏 즐겨야 할 남북의 청년들에게 군복을 입혀 서로를 향해 총을 쏘게 하고 픽픽 쓰러지게 하고 그 싸늘한 시체로 언덕과 산을 만들게 하는 저 참혹한 전장을 어찌 방관하며 한탄만 하고 있을 수 있는가 말이여.” (390쪽)
이 소설의 인물들은 서로에게 총을 겨누는 적 아니면 동지인 상황이 첨예할수록 가해자는 더욱 가해자 같아지고 피해자는 더욱 피해자 같아진다. 삶과 죽음이 각자의 손에 쥐어진 무기에 의해 쉽게 결정 나는 사건의 현장에서 희생자의 대다수는 적이든 동지든 처음부터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총부리를 겨누는 상황이 닥치면 자신이 살 수 있는 쪽으로 일단 붙고 본 대다수의 희생자들이 있었을 것이다. 이들은 자신이 붙은 쪽의 이념이나 사상이 어떠한지는 그다음의 문제였던 것이다. 그러나 서로 총부리를 겨눈 상황에서 어느 쪽에 붙었느냐에 따라 빨갱이거나 혹은 빨갱이가 아닌 것이 되었을 것이고 그들의 가족들 역시 빨갱이 가족이거나 빨갱이가 아닌 가족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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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의 눈물』은 후반부로 갈수록 피해자와 가해자 간의 갈등을 봉합하려는 서술을 보여 준다. 우선 황미라는 여순사건의 가장 큰 가해자인 김종원의 핏줄이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서병수는 그녀와 연인 관계가 된다. 황미라는 김종원이 유숙정이라는 여자를 겁탈하여 낳은 자식이라는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아는지 모르는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서병수에게 여순사건에 대해 가해자의 핏줄로서 발언하지 않는다.
“그들의 억울함을 잠재우는 사과와 용서와 화해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여수는 여전히 지옥이나 마찬가지라고 했어요. 항구도시 여수에 아무리 나무를 많이 심고, 꽃으로 장식한다고 해도 아름다운 시가지에 걸맞은 현대적 건축물을 여기저기 세운다 해도 섬과 섬을 잇는 아름다운 다리를 여러 개 건설한다 해도 여전히 야만의 도시고 죄악에 물도 소돔이 수밖에 없다고 했어요.” (362쪽)
“너무 오래된 진실은 진실이 아니라고 하잖아요? 진실을 진실이라고 인정하지 않으면 달빛처럼 희미해져서 끝내 퇴색해 버린다고 하잖아요? 여순사건도 그렇게 모른 척 오래오래 방관하다가 쓱쓱 지워 없애 버릴 속셈 아녜요?” (360쪽)
또한 황미라는 여순항쟁 양민집단학살 추념예배를 주선한다. 미평북교회에서 30년 시무했던 고봉찬목사 역시 화해를 강조한다.
“그것은 가시방석보다 더한 불구덩이 같았소. 물론 이 골짜기에서 3백 명 양민이 집단학살되었을 때 나는 그 현장을 지켜보았던 유일한 증인이기도 하오. (중략) 만약 그때 미국 극동사령관 맥아더가 없었다면, 아니 소련의 스탈린과 사전 조율된 서른세 살의 만주유격대 김일성이 없었다면 과연 이승만이 불법인 계엄령을 내리고 양민을 그처럼 무차별 학살했을까요? 아닙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 솔직하게 그때로 돌아가 그 위급했던 상황들을 하나하나 들춰내 봅시다. 소련은 1945년 8월 24일 제25군단을 평양에 입성시켰고 그보다 보름 늦은 9월 7일 미군이 서울에 들어왔습니다. 정확히 그 순간부터 남북이 38선을 기점으로 두 동강이 난 것입니다. 남북이 하나 되리라는 기대는 그야말로 개꿈에 지나지 않았소. 미국도 소련도 절대로 양보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들이 내세운 너무 젊어 패기가 넘쳤던 김일성과 늙은 이승만 역시 한 발자국도 뒤로 물러설 위인들이 아니었소. (중략) 그때는 요즘의 공산주의가 아니라 모두가 고루고루 잘사는 감상적인 사회주의였소. 그때 만약 이승만처럼 힘으로 제압하고 힘으로 밀어붙이지 않았다면 십중팔구 대중적 인기에다 조선민족 전통성을 앞세운 김일성의 강력한 영도력에 삽시에 압도당하고 말았을 것이오. (중략) 소련 같은 공산주의로 적화 통일되기 일보 직전인 절체절명의 순간인데 친일 경찰이 뭐 그리 큰 대수냐고 이승만은 생각한 거요. 친일경찰뿐 아니라 일제를 위해 우리 독립군을 괴멸시켰던 조선인 일본 관동군까지도 끌어안았소.” (302쪽)
이처럼 『여수의 눈물』은 여순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고발문학으로만 씌어진 것은 아닌 것이다. 그것은 주인공 서병수와 게리쿠퍼와의 만남을 통해 잘 드러난다. 이 소설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게리쿠퍼와의 만남은 소설 속 끔찍한 사건의 전말과 몸서리치는 인물들의 상황에서 잠시나마 거리를 두고 빠져 나오게 만든다. 소설의 분위기를 환기하면서 작중 화자인 서병수의 상처를 보듬어 주고 상처로부터 분리되어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게리쿠퍼는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어서 모든 것을 진단하고 객관화시킬 수 있는 위치에서, 사건의 소용돌이를 벗어나고 사건에 대한 편견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게리쿠퍼가 그랬던 것처럼, 결국에는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정의를 구현하라는 계시처럼 다가왔다가 사라지는 것이다.
김미수 | 201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장편소설 『소설 직지』 『재이』 『아빠 살고 싶다』, 단편집 『모래인간』. 직지소설문학상 대상, 북한인권문학상 대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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