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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혜와 계시의 영(엡1:17-23)
엡1:17절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곧 영광의 아버지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의 의미는 육체가 되심으로 사람이 되신 그분은 하나님의 창조와 관계가 있으시다. 그러므로 창조주 하나님은 그분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육체가 되신 것은 창조주 하나님을 하나님의 피조물인 사람 안으로 이끄신 것이었다.
그분은 하나님께서 육체가 되신 사람이시다. 또한 “영광의 아버지,”에서 "아버지"라는 호칭은 거듭남을 암시한다. 그리고 영광이란 표현된 하나님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영광의 아버지는 그분의 많은 아들들을 거듭나게 하시어 그들을 통하여 표현되신 하나님을 말한다. 우리는 이미 거듭났고 장래에는 영광스럽게 될 것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표현할 것이다.
“여러분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시어”의 말씀에서 지혜는 우리 영 안에 있으며 하나님의 비밀을 알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계시는 하나님의 영에 속한 것이며, 하나님께서 휘장을 여시어 우리에게 이상을 보여 주시기 위한 것이다.
계시란 앞으로 하나님이 어떻게 하실 것인가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이루어 놓으신 것을 우리에게 드러내 보여 주시려고 눈을 열어 주시는 것이다.
많은 믿는 이들이 미래의 어느 날에 그들의 삶 속에서 겪는 인생의 나약함이나 실패에서 구원받기를 기대한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을 열어 주시기만 하면 그들은 이러한 나약함이나 실패가 십자가 위에서 이미 다 처리되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미 다 처리하셨음을, 그것을 이미 이루어 놓으심에 감사와 찬양을 드리자.
다시 말하면, 죄사함과 구속과 성령을 주심이 이미 다 완성된 사실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말씀은 우리가 이미 모든 것을 가지고 있으며, 계시 외에는 부족한 것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다. 이 사실이 실재적으로 적용된다면 모든 것이 잘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왜 여전히 그러한 나약함을 안고 살아가는가? 그것은 우리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왜 우리는 여전히 무력한가? 그것은 우리가 이미 모든 것을 가지고 있음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주 예수님은 이 세상에 계실 때 그러한 능력을 가지셨지만, 왜 우리는 계속해서 능력을 가지지 못하는가? 그것은 우리가 알지 못함이 그 이유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바로 계시(啓示)이다.
만일 우리에게 그것을 소유하게 된다면 모든 일이 회복될 것이다. 계시는 단순히 교리나 성경을 암송한다고 거기서 말하는 능력을 체험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알게 되는 어느 날 비로소 우리는 진정으로 변화될 것이다.
사도 바울은 “영광의 아버지께서 여러분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시어 여러분이 그분을 온전히 알게 해 주시고”라고 기도했다. 성령과 함께하지 않는 가르침이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우리의 눈을 열어 보게 하시는 이는 성령이시다. 그분이 우리의 눈을 열어 주실 때 우리는 즉시 ‘오! 주 예수님! 이 일이 이루어짐을 감사합니다’ 하고 열광할 것이며, 당신은 변화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눈이 열림은 우리가 얼마나 교회를 오랫동안 다녔다거나, 교회에 열심이라든가, 성경을 많이 독서한다거나, 교회 내 계급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혹독한 다루심을 받은 자들, 곧 고난 중에 그분을 인격적으로 체험하고 만난 자들에게 주어지는 은혜이다.
하나님은 그들을 말씀의 전달자, 곧 사역자로 쓰신다. 이처럼 그분을 “앎”만이 참이며, 그 참(진리)만이 그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변화시킨다. 더 큰 능력을 기대하지 말고 단지 이미 주신 능력이 얼마나 큰가를 알아야 한다. 지혜는 우리로 하여금 이해하게 하고, 계시(啓示)는 알게 한다.
지혜는 어떤 사실을 분명하게 하고, 계시는 그 사실을 우리에게 가져다 준다. “지혜와 계시의 영”은 틀림없이 하나님의 영이 내주하시는 우리의 거듭난 영이다. 그러므로 계시는 우리가 교회의 지체가 되게 하고 하나님의 손에 유익한 그릇이 되게 한다. 사실 교회는 물질적인 부분이 거의 90%를 차지한다고 할 것이다.
그리스도가 아닌 것은 물질적이며 우상숭배이며 망상이다. 이 물질적인 교회의 허물을 벗겨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화시키는 진정한 사역이 오늘날의 교회에 필요할 뿐이다. 이것이 오늘날 그분의 뜻이며 교회의 회복이다. 오늘날 형제자매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이것 외는 아무것도 구할 필요가 없다.
‘오 주님! 우리에게 모든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옵소서. 오 하나님! 우리는 알기를 원합니다. 나로 하여금 깨닫게 하옵소서.’ 우리 또한 바울처럼 영 안에서 기도해야만 한다. 사도 바울의 기도는 참으로 하늘에 닫는다.
“18 여러분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시어” 지금까지 감겨있던 영적인 것을 볼 수 있도록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시어 우리의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시고, 나아가 “그분의 부르심으로 여러분이 지니게 된 소망이 어떠한 것인지, 성도들 가운데 있는 그분의 유업(상속)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 여러분이 알게 되기를 빕니다.”
여기서 “그분의 부르심으로 여러분이 지니게 된 소망이 어떠한 것인지”는 오역이다. 이 부분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신 그 소망이 무엇이며”라고 번역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그 소망은 엡1:4절에 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사랑 안에서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셨습니다.”
우리를 부르신 그분의 소망은 그분의 아들들을 얻는데 있다.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과 소망이 아들과 관계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이 아들들을 그분의 기업이라고 부르신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우리로 하여금 그분을 닮게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하여 적극적인 면에서는 거룩하게 하시고 소극적인 면에서는 흠이 없게 하시는 것이다.
이 쓸모없고 문제투성이의 나를! 오 주 예수님! “성도들 사이에서 받게 될 그분의 유업(상속)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 여러분이 알게 되기를 빕니다.” 이 부분의 번역도 문제가 된다. “성도들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상속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로 바뀌어야 한다. 성도들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유업(상속)의 영광은 무엇인가?
여기의 뜻은 하나님이 상속을 성도들에게 준다는 뜻이 아니라 성도들이 바로 하나님의 상속(기업)이요 하나님의 재산이라는 뜻이다. 성도들 자신이 바로 하나님의 상속(=기업=유업)이라는 말이다. 그 상속, 곧 성도 자신이 영광스럽고 그 영광의 풍성이 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상속인 성도 자신이 계속적인 하나님의 생명의 공급을 받음으로 변화됨으로써 하나님을 풍성하게 표현하도록 해 달라고 기도한다. 19절에서 “또한 믿는 우리들을 향하여 강한 권능으로 운행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지극히 크다는 것을 알게 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을 향하여 강한 권능으로 운행하는 하나님의 능력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발휘하셨던 그분의 강한 권능의 운행과 일치한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능력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발휘하셨던 능력과 똑같다. 그리스도는 머리이시고 우리는 몸이다. 몸은 머리이신 그리스도 안에 발휘되는 능력에 참여한다.
그리스도에게 있는 능력이 바로 그분을 믿는 사람에게 있는 능력의 크심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밖에서 더 많은 능력을 우리에게 옮겨 부어 주시기를 구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 안에서 더 많은 것을 발견하고 볼 수 있도록 하나님께 간구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눈을 열어 주사 날이 갈수록 이미 얻은 것으로 인해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다.
19절도 “믿는 우리들을 향하여 강한 권능으로 운행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지극히 크다는 것을 알게 해 주시고”라고 번역함이 옳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들을 향하여 강한 권능으로 운행하는 하나님의 능력”은 어떤 능력인가?” 그 내용이 20-22절에 있으며 우리는 이 능력을 알고 체험해야 한다.
첫째는,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 능력을 발휘하시어, 그리스도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시고,” 이 능력은 죽음과 무덤과 죽은 사람이 갇혀있는 음부를 정복했다. 하나님의 부활 능력 때문에 죽음과 음부는 그리스도를 붙잡아 둘 수 없었다(행2:24). 사망에 이르지 않고, 매이지 않을 수 있고, 마귀의 능력으로도 이길 수 없고, 지옥의 능력으로도 삼킬 수 없는 ‘부활의 능력’이 우리 안에 있다.
둘째는, “하늘에 올리시어 하늘들의 영역 안에서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히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발휘하신 능력은 그리스도를 모든 것 위에, 곧 하늘들의 영역 안에서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히신 것이다(엡1:21). 곧 지극히 크신 하나님의 능력은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했던 만큼 교회 안에서도 역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지극히 큰 능력을, 곧 우리 안의 능력과 그리스도 안의 능력이 하나이고 똑같은 능력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면, 우리 역시 이것을 알기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승천하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큰 능력으로 말미암아 우주 안의 모든 통치, 권세, 능력, 지배와 권위보다 훨씬 위에 앉으셨다. 이 그리스도는 이 시대뿐만 아니라 오는 시대에서도 모든 이름보다 훨씬 더 뛰어나게 되셨다.
셋째는,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아래 굴복시키시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발휘하신 능력은 만물을 그분의 발 아래 복종시키신 것이다.
넷째는, “만물 위에 계신 그분을 교회에 머리로 주셨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모든 면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그리스도로 충만해 있다.” 그리스도께서 만물 위에 머리의 권위가 되신 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게 주신 은사이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교회에 선물로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께 만물 위에 머리 되심을 선물로(은사로) 주셨다는 것이다. 이 큰 선물이 만물 위의 머리 되심이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하여금 만물의 머리가 되게 하심은 교회를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는 이미 다 이루셨기 때문에, 더 이상 우리에게 무엇을 줄 필요가 없으시다. 이 능력이 지금 우리 안에 넣어져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와 이길 수 없는 시험이 없다.
교회라는 용어는 헬라어로 엑클레시아이며 ‘부름받아 나온 회중’을 의미한다. 이것은 교회가 세상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나온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것을 가리킨다. 이와 같이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믿는 이로 이루어진다. 여기서 “교회에게” 주심은 일종의 전달을 암시하고 있다.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도달하시고 획득하신 것은 무엇이든지 그분의 몸인 교회에게 전달된다. 교회는 그분께서 도달하신 모든 것, 곧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것, 초월하여 하늘 우편에 앉으신 것, 만물을 그분의 발 아래 복종시키신 것, 만물 위에 머리의 권위가 되신 것을 그리스도와 함께 누린다.
우리는 이러한 계속적인 전달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풍성하게 누리게 되고, 그리스도의 몸이요, 그분의 충만이요, 앞에서 언급한 하나님의 축복의 결과인 합당한 교회생활을 하게 된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몸은 조직체가 아니라 머리이신 분의 표현과 활동을 위해 거듭난 모든 믿는 이들로 이루어진 유기체이다.
그리스도의 몸은 그리스도의 충만이다. 그리스도의 충만은 그리스도의 풍성을 누리는 데서 나온다. 엡3:8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측량할 수 없는 풍성을 이방인들에게 복음으로 전하게 하시고”라고 말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측량할 수 없는 풍성을 누림으로써 우리는 그분의 충만이 되어 그분을 표현한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가? 물론 믿는다! 나는 하나님을 참으로 아는가? 이것은 확신할 수 없다. 나는 내 믿음을 견지하기 위하여 많은 이유와 교리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나의 믿음을 돕기 위해 어떠한 이유도 필요 없고, 나의 믿음을 보호하기 위해 어떠한 외적인 증거도 필요가 없다.
그것은 교리를 잘 이해하는 데서 오지 않고, 당신 속에서 아는 것이다. 앎은 계시에서부터 온다. 당신이 아무리 많은 교리를 들었다 해도 계시가 없다면, 당신에게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볼 수가 없을 것이다. 당신이 아무리 교회 생활을 오랫동안 해 왔다고 하더라도, 계시가 없다면, 참으로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실로 이것은 중대한 문제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감정에 의해 교회생활을 한다. 어떠한 희노애락의 감정에 상관하지 않고, 나는 내 안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안다. 오직 이러한 사람만이 요동치지 않고 견고히 설 수 있고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다. 참으로 그분을 안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참으로 우리 속에서 알 수 있도록 하나님께 “지혜와 계시의 영”을 간절히 구해야 한다. 앎은 믿는 이의 기초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여! 그러므로 우리를 교리에서 구원하시고, 무언가를 참으로 볼 수 있도록, 우리의 눈이 열리도록, 하나님께 “지혜와 계시의 영”을 구하자.
할렐루야! 아멘!
첫댓글 지혜와 계시의 영을 열어주심을 감사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