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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가 잘 됐다고 해서 누구나 많은 CF를 찍지는 않는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가 성황리에 끝난 작품인 것은 맞지만, 이 드라마의 남녀주인공인 김수현과 전지현이 유별나게 CF를 많이 찍고 있는 건 시청률의 영향만은 아닐 것이다. 김수현과 전지현은 국내 영향력이 남다른 배우다. 아역 배우 딜레마를 거뜬히 뛰어넘은 김수현은 이후 뭘 찍어도 되는 시청률의 사나이로 성장했다. 청춘스타가 섣불리 발을 디뎠다가 대중의 참혹한 혹평 속에 고꾸라졌던 스크린 데뷔 또한 천만 관객의 주인공으로 남았다. 이후 뭘 했다 하면 기본이 천만이다. 심지어 예능 프로그램 ‘런닝맨’에 출연해서도 전 방송 대비 3퍼센트 이상의 시청률은 올려놓고 가는 고마운 게스트다.
대중의 소비 욕구를 자극하는 김수현과 전지현의 타고난 영향력 덕분에 그들은 유독 많은 CF를 선점한 것이다. 일례로 한 베이커리 전문 매장은 신메뉴 출시 2주 만에 매출 10억 원을 돌파하며 전지현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전속 모델 전지현이 양손에 올린 케이크 사진 때문에 10년간 1위를 지키고 있던 치즈 케이크의 순위가 변동된 것이다. 최근 중국에서 이 프랜차이즈의 인기가 불붙은 까닭 또한 모델 전지현 효과를 무시할 수 없다고 한다. 이 슈퍼스타들의 영향력은 국내에서만 통하는 것이 아니었다. 짝퉁 드라마가 생길 만큼 해외에서 큰 인기를 누렸던 두 사람의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그러나 이들이 백두산을 장백산(長白山 창바이산)으로 표기한 중국의 생수 회사와 계약을 맺은 이후 두 사람의 영향력은 곧 독으로 변했다.
헝다 생수가 백두산의 천지를 원산지로 두고 있는 한 이 생수통의 표기에는 ‘장백산’이 기재될 수밖에 없다. 그게 바로 현재 중국의 법이기 때문이다. 설마 김수현의 소속사는 헝다 생수의 원산지가 백두산 천지라는 것도 몰랐던 것인가? 황당하게도 중국에서 ‘백두산’이라는 표기는 검열 대상 단어다. 고로 김수현과 전지현이 어떤 브랜드의 생수를 찍었든지 간에 원산지가 백두산이라면 이는 ‘장백산’으로 표기될 수밖에 없다. 김수현, 전지현 생수 논란이 이름만의 문제가 아니듯이 중국의 장백산 집착 또한 표기만의 문제는 아니다. 장백산은 실록에도 기록된 표기다. 그러나 중국에서 장백산은 그냥 장백산이 아니다. 그들은 백두산을 ‘중국 장백산’이라 명명한다. 2000년 10월, 중국 지린성의 ‘장백산 문화 연구회’는 백두산을 중화 문화의 주요 발원지로 발표했다. 동북 각 지역에서 창궐된 장백산 문화 연구회는 중국의 역대 왕조가 만주 지역을 관활해왔기에 백두산 또한 중화 문화의 일부라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장백산 표기가 문제가 되는 것은 단순히 이름을 바꾸어서가 아니라 중국 국경을 포함한 모든 문화와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취하기 위한 동북공정 프로젝트의 일환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백두산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초석을 다지는 중이다. 물론 그 표기는 ‘장백산’이다. 덧붙이자면 중국의 장백산이 될 것이다. 우리의 백두산을 중국의 영산으로 둔갑시키고자 하는 ‘장백산 문화론’, 백두산 수맥에 꽂힌 중국 기업의 취수관. 이 서슬 퍼런 동북공정 프로젝트 속에 한국 배우 김수현과 전지현을 전속 모델로 섭외한 의도조차 의심된다고 하면 지나친 억측일까. 불투명한 대답으로 네티즌의 비난 세례를 받던 소속사는 결국, 계약 해지 요청을 했다고 전해 급한 불을 껐다. 수십억 손해를 감수했다고 한다. 소송 또한 감수하겠다는 김수현 소속사에게 극찬이 쏟아졌다. 헝다 생수 출연으로 계약한 광고비가 10억으로 알려졌으니 계약 파기에 대한 대가는 그 몇 배의 수십억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애초에 논란조차 생겨서는 안 되는 일이었기에 별안간 그들을 애국 투사로 미화하는 찬사 또한 달갑지 않다. 다만 눈앞의 10억으로 놓쳐버릴 뻔했던 명예를 되찾은 것이니 그리 비싼 벌금은 아닐 것이다.
훗날의 소유권 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초석을 다지는 중인 중국에게 김수현, 전지현의 무시무시한 영향력이 발휘되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수도꼭지처럼 틀면 나오는 김수현, 전지현을 담은 브라운관은 편성표의 마무리를 애국가로 매듭짓는다. 백두산은 애국가의 첫 소절에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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