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 어느날 방태산에서
오늘의 코스를 반대로
한바퀴 휘 돌아들었다.
오르 내릴땐 미끄럼때문에 조심조심
능선과 정상에선 매서운 바람과 가스로
주린 배도 바위한켠에 숨어 간신히 해결
그 때에 비하면 오늘은 천국행이다.
부드러운 오솔길에
산길내내 지천으로 깔린 야생화에
시원스레 흐르는 계곡에
비교적 탁 트인 시야와 전망에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한결 짙어진 녹음의 숲에서
계속해서 머물고 싶을 따름이었다.
지난번엔 편안한 임도길 고집하다 놓친
별 대접 못 받는 구룡덕봉도 만나고
능선에선 막 피어나려는 철쭉꽃을 보고
좋은날 덕분에 한참이나 주봉에 머무르고
여러 야생화중에도 얼레지를 가슴에 남긴
(난, 별무관심이나 다른 회원들은
취계열의 봄나물에 관심많은)
그런 산행으로 기억될 날이다.
요사이 한결 떨어져버린
몸상태의 점검으로
일정한 속도지만
쉼을 최소화해서
급한 오르막을, 능선을,
다시 급한 내리막을 감당한다.
힘들지만 버티어내주는 몸에 감사하다.
산행후의 한사발 막걸리 한잔이 그립지만
당분간은 최소화해서 참기로 한다.
이겨야 할, 감당해야 할 대상도 아닌데
습관처럼 앞에 채워진 잔을 마구 들이키는
만용을 부릴 일은 아니다.
몸과 정신에 알맞는 정도를 감당하자.
오늘은 그냥 종이컵 한잔으로 끝내자.
* 얼레지
산행내내 본 얼레지는 이런 꽃이라네!
'바람난 여인', '질투'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다.
씨에서 싹이 터
꽃이 되기까지 7년이 걸린다 한다.
얼레지의 꽃잎은 6장,
수술도 6개,
햇빛에 여섯 꽃잎을
말아 올린다.
곽성숙시인의 얼레지
-꽃말은 '바람난 여인'
너도 한 때는 여염집 규수였느니
일편단심, 깊은 우물 같은 마음에
담 너머의 뭇 사내들을
쳐다보지도 안했으리
말아쥐는 한복자락마다 찬바람 일어
누군들 말도 걸지 못했으리
어느 봄 햇살이 들치니
여섯 폭 치마를 똘똘 말아 올린
너의 행색 좀 보라지
우듬지에 야무지게 어여머리 얹고
치마폭은 숲에서 부는 바람에
속정까지 환히 날리는구나
다 보인다
다 보았다
담장 넘어 기웃대는
이웃 사내들
어디 그래 보라지
언감생심,
겨울 가고 나 땅속으로 숨어들면
누구도 만질 엄두 못할테니
여섯 폭 치마에 햇빛 걷히면
가차없이 마음 닫는
한겨울에도 바람난 나를 좀 보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