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마실의 원두를 바꾸었다.
원두를 바꾸는 것은 일종의 모험과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나와 같은 초보 커피가게 주인으로서는.
원두를 바꾼 뒤 손님들의 반응을 물었다.
쓰다, 진하다, 탄 맛이 난다는 대답이 많다.
음, 이것을 어떤 반응으로 이해해야 할까.
지난 한달간 사용했던 원두는 맛이 괜찮다는 평을 받았기 때문에 여간 신경 쓰이지 않는다.
일단 쓰다는 평은 당연하다.
왜냐하면 지난 원두가 씨티급이었다면, 이번 원두는 프렌치급이기 때문이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커피 콩을 더 구웠기 때문에 쓴 맛이 더 나오게 된 것이다.
쓴 맛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쓴 맛이 강하다고 해서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탄 맛이 난다고 하면 문제다.
여기서 로스팅(콩굽기, 이것을 한자말로 배전이라고 한다. 강배전, 약배전, 중배전 등. 일반인들은 당최 뭔 말인지 이해하기 힘들겠지만)의 단계에 대해서 이해하고 넘어가자.
생두를 원두로 바꾸는 로스팅에는 8단계가 있다.
이거 외우는데 시간 걸린다. 아니 외우는데 시간 걸리지는 않는데 로스팅에 관심 없으면 자꾸 까먹는다.
시간 되는 사람은 외우고, 싫으면 외우지 않아도 된다. 다만 그런 단계가 있구나하고 알면 되지 뭐.
자, 1단계 !!! "라이트" 라이트니까 가장 가볍게 구운 상태로 이해하면 되겠다. 라이트급으로 커피를 우려내는 사람은 없고 그저 테스트용으로 쓰일 뿐이다. 아니면 커피가게 장식용^^
2단계는 "시나몬"이다. 시나몬은 실론계피나무인데 향신료로 쓴다. 카푸치노 마실 때 우유거품 위에 뿌리는 가루도 시나몬 가루다. (시나몬 가루를 뿌리는 이유는 우유의 비릿함을 없애주기 위해서란다.) 로스팅이 강하게 될 수록 신맛이 줄어들고 쓴 맛이 강하게 나타나게 되는데, 시나몬 단계는 신맛이 강하다. (신맛, 이걸 또 한자로는 산미라 그런다.)
3단계는 "미디엄". 시나몬 단계에 비해 향이 더 나고 쓴 맛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단계다. 아메리칸 로스트라고도 하는데, 아메리칸 커피는 쓴맛보다는 신맛이 위주다. 뭐, 우리나라에서 마시는 아메리카노는 에스프레소에 물탄 것이긴 하지만...
4단계는 "하이" 1차 팝핑이 이루어지는 단계로, 신맛과 쓴맛이 조화를 이루기 시작한다. (응, 그런데 팝핑이 뭔 소리지. 팝콘은 다 아실텐데, 옥수수를 뻥튀기 즉 팝핑한 것이다. 팝핑은 그런 의미다. 커피콩을 로스팅할 때는 2차에 걸친 팝핑이 있다.)
5단계는 "시티" .2차 팝핑이 이루어지기 전의 단계로 신맛도 남아 있지만 깊고 그윽한 쓴 맛을 느낄 수 있다. 참 어려운 표현이다. 표준적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저먼(german) 로스트라고도 한다.
6단계는 "풀시티". 2차 팝핑 단계로 신만이 적고 쓴맛이 강하다. 원두의 색갈은 짙은 갈색으로 변하며 에스프레소커피용의 표준이다.
7단계는 "프렌치". 에스프레스 용으로 사용되며 쓴맛이 강하다. 원두 표면에 오일 성분이 많이 보인다.
마지막 8단계는 "이탈리안". 아주 진한 에스프레스 용으로 사용되며 쓴맛이 매우 강하다. 원두에 따라서는 타는 냄새가 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이름이 붙을 걸 보면 확실히 이탈리아는 강한 걸 좋아하는가 보다.
다시 한번 순서대로 나열하면,
생두(green bean) - 라이트 - 시나몬 - 미디엄 - 하이 - 시티 - 풀시티 - 프렌치 - 이탈리안
다 외우셨나^^
원래 이야기로 돌아와서, 새롭게 받는 원두의 로스팅 정도가 프렌치나 거의 이탈리아급에 가까운 듯하여 한 단계 낮추어 로스팅해달라고 주문하였다.
비록 커피값을 비싸게 받지는 않을지라도 원샷(에스프레소를 내릴 때 나오는 한잔)을 다 쓰고 있기에 사람들의 입에 너무 강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반 샷을 쓰면 어떠냐고 말하는 분이 계시기도 하지만, 특별히 그렇게 해달라고 주문하지 않으면 한샷을 다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새로 로스팅된 커피가 왔는데 아직 맛을 보지 못했다. 기존에 쓰던 원두가 남아 있어서.
곧 개봉할텐데 궁금하신 분들은 같이 맛을 감상해보면 어떠실까.
첫댓글 아하 그렇구나. 나도 탄맛 난다고 했는데. 근데 생각해보니 탄맛은 맛이 아니라 냄샌가?... 첨엔 달라진 맛에 갸우뚱했는데 두 잔 마시고 나니 바로 익숙해졌어요. 또 가보면 새로운 맛이 기다리고 있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