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천성이 인간 세상에 섞여 살기를 좋아하고 겸하여 꼬리를 진흙 가운데 끌고 다니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다만 스스로 절룩거리며 44년의 세월을 보냈는데 우연히 해인사에서 원개사(遠開士,한암)를 만나게 되었다.
그의 성행(性行)은 순직하고 학문이 고명하였다. 함께 추운 겨울을 서로 세상 만난 듯 지냈는데 오늘 서로 이별을 하게 되니 아침저녁의 연기구름과 멀고 가까운 산과 바다가 실로 보내는 회포를 뒤흔들지 않는 것이 없다. 하물며 덧없는 인생은 늙기 쉽고 좋은 인연은 다시 만나기 어려운즉 이별의 쓸쓸한 마음이야 더 어떻게 말할 수 있으랴. 옛 사람이 말하기를 “서로 알고 지내는 사람은 천하에 가득하지만 진실로 내 마음을 아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되랴” 하지 않았던가. 슬프다! 은밀스런 원개사(遠開士, 한암) 아니면 내가 누구와 지음(知音)이 되랴! 그래서 시 한 수 지어서 뒷날에 서로 잊지 말자는 부탁을 하노라.
<한국불교의 중흥조 경허선사>
捲將窮髮垂天翼
謾向搶楡且幾時
分離尙矣非難事
所慮浮生杳後期
북해에 높이 뜬 붕새 같은 포부
변변치 않은 데서 몇 해나 묻혔던가.
이별이란 예사라서 어려울 게 없지만
뜬세상 흩어지면 또 언제 보랴
한암 스님은 이와 같은 경허화상의 전별사(餞別辭)를 받아 보고 다음과 같은 시 한 수로 답을 하고 이별을 아쉬워했을 뿐 경허화상을 좇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으로 스승 경허선사와 생의 마지막 인연이 될 줄이야......
<조계종 초대 종정/ 한암선사>
霜菊雪梅纔過了
如何承待不多時
萬古光明心月在
更何浮世謾留期
서리국화 설중매는 겨우 졌는데
어찌하여 오랫동안 모실 수가 없을까요
만고에 빛나는 마음 달이 있는데
뜬세상 뒷날 기약 부질없습니다.
위의 경허의 편지글에서 한암을 원개사(遠開士)라고 부르는 것은 한암은 법호이고 법명이 중원(重遠)이기에 법명의 끝자인 원(遠)을, 개사(開士)라 함은 마음이 열린 선비라는 뜻에서 원개사(遠開士)라고 하며, 한암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뜻에서 경허가 쓰는 한암의 별칭이다.
이후 경허선사는 함경도 삼수갑산의 도하동에서 어린 학동을 가르치며 살다가 홀로 입적 하였다. 입적 후 만공이 스승의 시신을 수습하고 난 뒤에 한암을 찾아와 경허의 행장을 써달라고 부탁하기에 한암은 직계 제자는 아니지만 전법제자이기에 흔쾌히 써주었다.
한암은 경허와 이렇게 헤어진 후에 수행을 철저히 하여 당대 최고의 선사가 되었으며 또한 조계종 초대 종정에 오르게 된다.
이 글을 보면 얼마나 경허가 한암을 지극히 아끼고 마음에 두는지를 알 수 있다.
경허(1846~1912)와 한암(1876~1951)은 스승과 제자 사이로 나이 차이가 무려 30살이나 난다.
자식 벌되는 젊은이에게 지음(知音)하는 진정한 참 벗으로 대하는 경허가 놀랍고 또한 뒤 따르지 않고 자신의 길을 홀로 가는 한암이 존경스럽다.
경허선사의 입멸 후, 한암 스님은 자신의 제자들에게 경허의 파격적인 행동을 절대 배우지 말라고 신신당부 하였다. 그런 걸림 없는 행위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고 하였다. 그 만큼 한암은 경허선사를 존중하고 깊이 이해하였다. 경허와 한암은 지음(知音)을 떠나 영원히 빛나는 마음의 달로서 서로를 비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