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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한 번 선생님을 모시고 공부하는 날이다. 말씀을 함께 나누기 위해 하사에 마음을 내어준 꽃밭이 예쁜 집으로 하나, 둘씩 모이기 시작한다. 소중하고 기쁜 시간이다. 주인장이 마음 써 준 정성 어린 밥상을 함께 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선생님 말씀 위주로 채록하였습니다.
두드러기를 진정시키는 방법은 없어. 견뎌야지. 긁는 것도 소용없어. 속고, 모르는 것은 하늘도 봐줘. 그런데, 자기가 알면서 어기는 것은 아니야. 골고루 해봤으니 이제 두드러기가 안 올거야. 세 번. 예수님도 베드로한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 물었어. 세 번째는 “예.” 라고 대답하기 그러니까, “아시잖아요.” 그랬어.
내가 한때 오줌을 꽤 먹어봤는데, 내 후배 중에 하나가 멀쩡하게 차 몰고 갔는데, 병원에서 입원을 시켰는데, 종합 검진을 했는데, 검사 결과 나오기 전인데, 마비가 왔어. 밑에는 마비가 되고. 결과가 척추에 암이래. 온 몸에 전이가 돼서, 못 산대. 한 달 정도 살겠다고 의사가 그러더래. 30대 중반인데. 보호자가 본인에게 할 용기가 안 나는 거야. 의사한테 부탁했대. 윤 목사인데, 새벽 3시에 의사가 왔대. 이 상태로는 한 달 정도 밖에 연명할 수 없다. 그러더래. 노동 선교하는 친구인데, 노동자들이 와서 자고 먹고 술 마시고, 마누라하고 얘 하나랑 단칸방에서 사는데, 부인은 참 힘들게 살았지. 자기 딴에는 노동 운동하는 목사이니까 학생 때에도 감옥을 갔다 왔어. 그러니 그 방면에는 골수지. 그러다가 덜컥 병에 걸렸는데, 의사가 그러더래. 그 말을 듣는 순간 제일 먼저 떠오르는 생각이 내가 나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는 거야. 동시에, 나는 내 몸둥아리는 하나님 소관이구나. 내 몸이 나를 떠났구나. 그런 생각이 들면서 눈물이 쪼로록 나더래. 그 평화를 말로 표현 할 수 없대. 그 때, 그 순간에 오는 평화는 말도 표현할 수 없대. 편안함, 평화, 내가 나를 위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질 때, 나는 정말 하나님이라는 분이라는 그 사람의 수중에 완전히 들어갔다 라는 사실을 느꼈을 때, 평안했대. 아무 원망도 없고. “형님, 그 평안은요, 그냥 평안하다고 얘기할 뿐, 설명을 못 해요.” 그러더라. 그리고, 편안해졌대. 그러니, 병원에 있을 이유가 없잖아. 아버지 집으로 경기도 군포 본가로 갔어. 그리고, 죽을 날을 기다린 거야.
그런데, 그 교회에 기도를 많이 하는 여자 권사가 있대. 이 여자가 와서 기도를 하더니, “목사님, 이것은 죽을 병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목사님을 크게 들어 쓰시려고 이렇게 시련 주시는 거니까, 나하고 열심히 한 달만 하면 나을 겁니다.” 그러더래. 그러니, 듣고 싶던 말이잖아. 썩 들어 온거야. 나는 살 구 있다. 나를 죽을려고 주신 것이 아니라, 나한테 큰 은혜를 주시려고 그러시는구나. 용기와 삶의 의욕이 생긴 거야. 그러면서, 그 평화가 없어졌대. (웃음) 그 대신, 찾아온 것이 “내가 왜, 내가 왜 이런 일을 겪어야해? 꼭 이래야 하냐. 내가 뭘 잘 못 했다고.” 보통 환자들이 겪는 분노, 자기 아내에 대한 섭섭함. 자기는 마비가 됐으니 대소변 나오는 것을 몰라. 의식은 마비가 되어서 모르지만 나오잖아. 코가 살아있으니 냄새는 나고, 자기는 어쩔 수가 없고. 소리를 지르는 거야. 아내가 어떻게 24시간을 깨어있냐. 자는 게 야속한 거야. 자기 말로 지옥 같은 시절에 그 때, 나한테 연락이 닿았어.
내가 그 집으로 갔더니 그러고 있어. 한 달이 지났어. 병이 안 났어. 권사의 기도가. 그러더니, 또 그 권사가 목사님이 문제가 아니라, 사모님이 믿음이 없다고 그러더래. 그 아내는 어떻하니. 그러던 와중에 내가 간 거야. 가 보니 그러고 있어. 내가 “너 여기 더 있으면 안 되겠다. 일단 여기를 떠나라. 기도한다던 그 권사한테 빨리 떠나라.” 자기도 그러겠대. 평화도 경험했고, 지금 이것도 경험했잖아. 그러니, 가겠다고 그러더라고. 내가 한원식을 소개해줬어.
산골짜기, 박달재 거기서, 전화했더니 보내래. 깊은 산 속이야. 그 내외를 거기로 가라고 주선해줬어. 내가 어디 갔다가 오니, 엄정 우리 집에 와 있는 거야. 아들 하나 데리고, 왜 왔냐고 물으니, 차에서 한원식으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사정이 생겨서 받지 못 하겠다고. 집은 떠났는데, 가다가 돌려서 우리 집으로 온 거야. 집에 오니 아무도 없어서 빈 집에 하루 잤대. 가니까 그러고 있더라고. 그럼, 여기 있으라고 했어. 오줌을 먹는 치료를 해 봤어. 혼자 하느니 같이 하자 해서 해 봤어.
두어달 오줌을 먹어 봤지. 재미있었어. 그 친구가 집에 와서 “새벽에 온 그 평화를 얻기 위해 수련도 하고 별 짓을 다하는데, 넌 그 평화를 어떻게 잃어버렸냐. 그것부터 되찾자. 살고 죽는 것은 나중 문제고, 우선 그것부터 되찾자. 살겠다는 마음을 놔라. 내가 날 위해 아무것도 할 것이 없다는 마음을 받아들였을 때, 삶과 죽음이라는 자체를 하늘에 맡겼잖아. 살아도 좋고, 죽어도 좋다. 그런 마음일 때, 오는 거야. 살겠다는 마음이 생기면서부터 평화가 깨진 거야. 그러니, 살려주십시오. 하는 기도는 하지 말자. 살던지 죽던지 아버지 뜻대로 하십시오. 그렇게 기도하자.” 사흘 지났나? 다시 돌아왔어. 마음에 평화가 왔다고 살려달라는 말을 안 해. 맘대로 하십시오. 살아도 좋고, 죽어도 좋습니다. 평화가 돌아왔는데, 문제는 병문안 온 사람들이 또 문제야. (웃음) 또 흔들려. 사람이 자기의 욕망, 의도? 그런 것이 다 비워지는 에고의 해체, 내 에고가 해체되는 그 순간, 하나님이 들어와서 자리한다. 그 얘기인데, 왔다 갔다 해.
방문하는 사람은 나 먼저 만나고 가라. 그랬어. 내가 부탁을 해. 우리 이러고 있으니, 제발 살려달라는 말을 하지 말아 달라고 해. 살 수 있다는 말도 하지 말라고 부탁했어. 들어주는 사람도 있는데, 나보고 믿음 없다고 그래. (웃음) 선배하고 싸웠어. 선배지만 내가 달려 들었어. 살려달라고 다 살리면. (웃음)
열흘 쯤 지났을까? 아내가 “목사님, 이제 방금 결혼한 거 같아요.” 그렇게 좋대. “저 남자한테서 미안해, 고마워, 이런 말을 처음 들었어요.” 그런 얘기를 했어. 한 달 살다 갔다. 마지막 가는 날은 예산에서 집회를 했는데, 집에서 전화가 왔어. 오늘, 내일 한다고. 그래, 내가 집회 중단하고 간다. 중단하고 달려 왔지. 그 날 밤에 “그래도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한마디 하고 가.” “서로 사랑하시오.” (웃음) 그러고 갔어. 그 때 오줌 좀 먹어좠지. 오줌 먹을 때, 좋은 것이 뭐냐면, 고기먹은 그 다음 날은 오줌 먹기가 참 거북해. 탁하고 냄새나고, 채식을 정갈하게 한 날은 쥬스야. 역하지 않아. 색깔도 맑고. 그래서, 내일 아침 먹을 오줌 때문에 음식을 가려 먹어. (웃음)
이 얘기를 녹색평론에 썼어. 그러니까, 녹색평론 독자라는 사람이 전화가 왔어. “목사님 이제 그만 드세요.” “왜요?” “오줌에 특별한 성분이 있어서 특별한 경우에 보탬이 된다는 것은 인정이 됩니다. 나머지는 독입니다. 왜 먹어요? 그것이 좋은 것이라면 하나님이 계속 그것을 먹게 두지, 버리게 놔뒀겠어요?” 그날부터 안 먹었어.
저번에 산책을 갔다 왔는데, ‘아, 밤이 가니, 아침이 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 그 순간, ‘아니야, 밤이 가서 아침이 온 것이 아니야. 가는 밤이 오는 아침이야.’ 밤하고 낮은 사실 경계가 없어. 깜깜한 밤이 환하게 되는 건데, 이쪽에서 보면, 밤이 가는 거고, 이쪽에서 보면 아침이 가는 거야. 그게 그거잖아. 가는 것이 오는 거야. 그날, 전화로 알려줬는데, 많이 알려진 음악가를 배출한 피디가 죽었대. 어떻게 죽었냐니까, 평생 혼자 살았어. 결혼을 해서 아이를 하나를 낳았는데, 자기 혼자서 독신으로 살다가 갔대. 여기서 보면 간 거지만, 저기서 보면 온거잖아. (웃음) 그런 생각이 들었어. 집이라는 것은 거기서 우리가 태어나잖아. 죽을 때 그리 가고, 그렇게 생각하면 집이라는 상징이 나의 뿌리, 뿌리는 시작이면서 마침이지. 한평생이라는 것이 사람이 집을 떠나서 세상을 살아가는데,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의 과정이 아닐까.
이 책을 이만큼 읽고 있다는 자체가 평균, 긍정적인 것으로 넘어가는 그것을 200이라고 얘기하잖아. 여기 있는 사람은 200이 넘었어. 안 그러면 이것은 안 읽혀. 재미도 없어. 일단 턴을 했다는 거야. 집에서 멀리까지 갔다가 오는 길이야. 그것을 믿고 너무 조급하게 굴지 말고, 닿았다고 되는 것이 아니거든. 집에서 나가는 것은 내 힘으로 나가야 해. 자기를 확립하고, 자아를 확립하고, 자기의 꿈을 실현하고, 자기 생각대로 하는 것은 그 힘을 내가 내야 하거든. 그러니, 힘이 드는데, 돌아올 때는 그 돌아오는 힘은 내 힘이 아니야. 내가 자주 얘기하지만, 분수를 생각하면 돼. 올라갈 때는 자연의 법도를 어기는 거거든, 물은 원래 내려가게 되어있는데, 올라가잖아. 천지자연을 다른 말을 모르니, 하나님이라고 그러자. 그것에 의해 이루어지는 거라고. 별이 왜 도냐. 그 힘으로 도는 거야. 강물이 왜 흘러가. 그 힘이야. 소위 천지자연의 힘에 의해 이렇게 되는 거야. 유독 인간만이 그 힘을 거역하는 거야. 자기 발로 집에서 떠나가는 거야. 올라갈 때는 자연의 힘이 아니지. 인공적인 힘에 의해서, 전기 이런 거. 힘들어. 본인이. 돌아서서 떨어지는 건데, 그때는 자기 힘이 아니잖아. 지구가 땡기는 힘에 의해서 떨어진단 말이야. 200 넘은 사람들은 전에 습관이 남아 있어서 어렵지만, 가면 갈수록 쉬워 질거야. 더 가까이 다가올 거야. 세 번 쯤 읽으면 훨씬 더 가까워지고, 내가 걸어온 길이 잘 못가 걸어온 것이 아니구나 라는 것을 확인할 거야. 내가 실수하고 잘 못 하는 것이 하나도 잘 못된 것이 아니구나. 알게 될 거야. 내가 나한테 긍정적인 눈으로 보게 되면 세상도, 다른 사람도 그렇게 보여. 하여튼 편해질 거야. 사실, 나를 주변이 돕고 있는 거야. 세상이 긍정적으로 바뀌는 거야. 각자가 자기가 만든 세상에 살다 가. 자기가 만든 세상에서.
내가 생각한다고 말해. 그런 건 없어. 굳이 말한다면 이것은 나한테서 나오는 생각인데, 이것은 조금 비슷해. 내가 하는 생각이 아니고, 나한테서 이런 생각이 나왔어. 그게 바로 부정에서 긍정으로 넘어가는 사람의 차이야. 집을 떠나는 친구는 뭐든 자기가 해. 내가 해. 성공도 실패도 내가 하는데, 한고비를 넘긴 사람들은 나보다 더 큰 힘을 의식하게 되는 거야. 그 힘이 나를 통해서 뭐를 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게 점점 더 생각이 깊어져. 마지막에 나는 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 누군가 나를 통해서 말을 하고 생각을 하고 행동한다는 것이 확신이 와. 내가 나을 저절로 부정할라고 애쓰지 않아도 부정하는 나라는 것이 처음부터 없었어. 알게 되니까, 노자가 “내가 없는데 누가 아프냐.”
본인 그러고 있다는 것을 알면 고마운 거야. 뭔지 모르겠다라는 것이 많을 거야. 너무 알려고 머리를 쓰지 마. 내비 둬. 정말 알아야 할 거는 알게 돼. 왜냐면, 내가 주체가 아니야. 하나님이 나를 가지고 사시는 거란 말이야. 우주가 나를 통해서 자기를 실현하는 거야. 마더 테레사는 기독교 신자니까 “하나님이 나를 연필로 쓰신다.” 이렇게 표현한 거야. 뭐가 움직임이 있다는 얘기는 에너지가 있다는 얘기인데, 내가 돌리는 이 에너지가 어디서 온 거야? 이 에너지가 내가 만든 것이 아니란 말이야. 처음부터 있었고,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있을 에너지. 변함없는 에너지가, 기독교 신자들은 하나님이라고 그래. 그 힘의 작용에 의해 눈도 깜박인단 말이야. 어떤 사람이 뇌에 바이러스가 침투를 했는데, 눈 깜박이는 것도 안 되더래. 눈 깜박이는 것도 내 힘으로 안 되더래. 그 어떤 에너지가 나를 통해서 작용을 하는 거지. 이것도 에너지를 섭취하는 거야. 내 것이 아니잖아. 그 에너지의 실존을 감으로 아는 거지. 몰라. 마음 놓고, 모르는 것은 언젠가 알 때가 되면 저절로 알게 돼. 더 가질려고 애쓸 필요도 없고, 나한테 필요한 것은 다 있어. 내가 존재하는 모든 요소가 다 갖춰져 있기 때문에 여기 내가 있는 거야. 무위당 선생이 “하늘과 땅이 나인데, 무엇을 더 바라느냐.” 이런 얘기야. 앞으로 공부를 하면 할수록 내가 나인 줄로 알았던 내가 점점 희미해지고 사라지면서 그 어떤 힘이 점점 실감이 되는 거야. 그 힘에 의탁, 맡기는 거지.
풀이 나한테 얘기하는 것은 비교적 쉬워. 사람하고 하는 것은 어려워. 사람과 하게 되면, 겉모양만 보게 되면 내가 못 봐. 거기에 속지 않고. 잘 안돼. 자꾸 걸려. 이렇게 해 봐. 험상궂은 짓을 한 사람이 엄마 품에 안긴 모습을 상상해 보는 거야.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는 그 사람들이 보고 싶은 데로 보는 거거든. 나한테 별로 중요하지 않아. 우리는 그것을 굉장히 중요시해. 저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 신경 많이 쓰잖아. 나를 좋게 보면 기분 좋고, 안 좋게 보면 좀 언찮고, 다른 사람의 시선이 나한테 많이 영향을 미쳐. 우리가 마음공부가 깊어지면서 차츰차츰 자유로워지는 거야. 정말 중요한 것은 내가 나를 뭐로 노느냐가 중요한 거야. 정말 중요해. “너 누구냐?” “나 누구야.” 대답할 수 있어야 해. “난 남자야.” 그러면, 난 여자가 아니잖아. “목사야.” 하면 나는 목사 아닌 사람이 아니고. “난 사람이야.” 그러면, 내가 사람으로 사람을 보는 거라고, 자기 정체성을 바꿔나가는 거라고.
데이빗 홉킨스의 얘기는 모든 사람의 본바탕은 맑은 하늘과 같은 맑고 순수하게 보는 거야. 그것이 여러 가지 이유로 하늘에 구름낀 것처럼 나를 부정적인 생각, 느낌으로 나를 덮어서 안 보이는 거지. 맑은 천성이. 이것을 벗겨내는 거지. 이것을 벗겨내는 방법은 뭐를 하려고 하지 말고 내버려 두라는 거야. 지켜보기만 해라. 그러면, 차츰차츰 구름이 벗겨지듯이 나를 덮었던 부정적인 억압, 감정, 그릇된 부정적인 생각, 이런 것들이 날라 가면서 본인의 맑은 성품이 저절로 드러난다. 그 기점을 200으로 보는 거야. 200을 넘어가면 점점 맑아진다. 누구나 다. 가면 갈수록 노력은 안 하게 되고. 그렇대. 내가 겪어보니까 그래. 여러분은 점점 더 편하고 쉬운 길을 접어 들었다 생각하고 그것에 대해 브레이크를 걸지 마.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 사건이 나를 도와주는구나. 괜히 일어나지 않고 의미가 있는 거야. 모르는 사람들이 동시에 나한테 도움을 주는 경우도 있고, 그것을 자꾸 경험을 하다 보면 자기가 만든 세상을 살아가는 거야. 자기가 만든 세상이야. 참 보기 좋다. 늙어가는 여자들이 책도 읽고 이야기도 하고 아름답잖아. 이왕 사는 세상 예쁘게 살자. 그리고, 너그러워져. “나는 너그러운 사람이 되고 싶어.” 이렇게. 마음공부를 제대로 했는지 안 했는지 알려면, 얼마나 그 사람이 너그러워졌는지, 부드러워지는. 내가 친절하고 너그러운 사람이 되겠다는데 누가 말리니. 아직은 그런 희망을 품을 때야. 나중에는 그런 것까지도 없어지는데, 그런 바람, 자기 자신에 대한 바람은 가지고 늘 그것을 유념하면서 살면 좋겠어. 방향성 이런 거. 우리 한번 왔다 가는 건데, 또 올지 안 올지 모르겠지만. 이 생은 이게 다 잖아. “나 세상에 오기 잘했다.” 이런 얘기를 하면서 마지막 날을 맞이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
선배나 스승을 흉내 내면서 살다 보면 내가 진짜 내가 나오는 거야. 한 사람한테 너그러워졌다는 얘기는 다른 사람한테도 너그러워졌다는 얘기야.
아낌없이 정성을 보태준 미션스쿨 도반님들 감사합니다.
첫댓글 6월 18일에 선생님 모시고 공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