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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평수를 가늠할 수 없는 불 꺼진 복도에서 길을 잃었으니, 원인도 목적도 알 수 없이 절망과 공포에 빠져 몽롱하게 앉아있다. 언젠가 그녀가 나를 휘감는 까닭 모를 우수는 내가 정신 병동에서 삶을 끝낼 징조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에 대한 나의 답변은 침묵, 부정의 침묵이었다. 어디선가 들리는 조심스러운 세 번의 두드림. 불 꺼진 복도의 바닥에 자리한 문. 문을 열고 싶은 참을 수 없는 충동이 나를 덮쳤다. 순간의 망설임. 마침내 결단을 내린다. 다가가서 문을 열어젖힌다. 그와 동시에 나의 분신이…두 방울의 피처럼 나와 똑 닮은 나의 분신이 나를 그저 응시하고 있었다.
이 자는 무엇인가… 공포에 질려 얼어붙어있으니, 어느샌가 그는 그녀의 모습으로 바뀌어있었다. 아아! 저 미소! 얼마 만의 재회인가! 그러나 그녀를 본 기쁨도 잠시 그 미소는 나에게 알 수 없는 혐오와 경멸감을 주었고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에도 어딘가 경멸 어린 동정이 보였다.(나의 착각이 아니라 분명하다).
“너는 내가 너 때문에 결국 정신이 나가 버려 스스로를 파멸시킬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 그렇지? 너는 분명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거야! “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는걸요“ 그녀가 말했다.
”말은 안 했지만 그렇게 생각했지! 확신할 수 있어 하지만 그렇지 않아! 나는 뛰어내리거나 목을 매달거나 어쨌든 죽지 않을 거라고.“
그녀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지만 어째서인지 나는 조소를 보내고 있다고, 그렇게 믿었다.
”아아 어째서일까? 내가 비열한 인간이기 때문일까? 그게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나는 겁쟁이가 아니야. 그저 삶에 대한 갈망 때문인 거야! ”
곧바로 후회할 걸 알지만, 결단력 있는 냉철한 인간이라도 된 거 마냥 문을 닫아버렸다.
“도대체가 나는..아… 빛에서, 절망에서 왜, 왜 나는 너를 한밤으로 떠나보냈을까?“
그녀의 모습을 기대하며 다시 문을 열어젖히자 영락없는 악령의 모습이 나를 반겼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심연 같은 뱃속에서 길을 잃었으니, 내 운명은 어디로 향하는 걸까?
마치 내가 이곳에 없는 듯이, 내가 그림자이거나 말 없는 피조물인 듯이. 악령의 뱃속(나의 추측이다)에 있는 그녀와 정체 모를 남자들, 나의 분신은 나를 철저히 무시한 채 술을 마시며 카드게임을 벌이고 있었다. 패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담뱃불을 붙이고 담배연기를 내뱉는 그녀의 정열적인 눈빛은 정말이지…
내 여자가 되어서는 안 될 여인, 어쩌면 이 악령의 기이한 지형으로 인해 아무리 해도 닿을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쨌든 모두가 나를 무시한 채 술을 마시며 즐겁게 웃고 떠드니. 실제로, 심지어 나마저도 여기 있는 나는 내 그림자이고, 내 진짜 몸은 멀리 있는듯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우리 모두가 갇혀있는 이 세계, 악령의 공간에 대한 영원한 굴복, 그래, 우리는 아마 수억 년이 지나도록 이렇게 앉아있을 터, 특히 나는 비통과 격정에 사로잡혀 내내 그녀에 관한 모든 것을 상기시킬 것이다.
왜 나는 이토록 불행한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당신은 도대체…”
그녀가 조소를 띄며 말한다. 하지만 내 양심은 깨끗하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갑자기 미친 듯이 피우고 싶어진 담배를 물어 태우니, 이 공간을 가득 채우던 그녀와 정체 모를 인간들, 술로 가득 찬 테이블은 사라지고 나의 분신만이 남았다. 나의 분신이지만 거울을 보았을 때 보이는 그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그는 멜랑꼴리한 타입의 인간이었다. 그의 미소조차 침울해서 바라보기만 해도 넌더리가 났다. 어느새 나의 분신은 그녀로 바뀌었다.
”이젠 뭐가 뭔지… 애초에 분신이라는 게 말이나 되는 건가? 전부 나의 환영이야. 분신이라는 존재를 인정해버리고 평범한 사람처럼 대하고 인식하는 순간 나는 내가 미치광이라는 걸 인정해 버리는 거야!“
그때 나지막이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
“저번에도 말했지…너를 휘감고 있는 까닭 모를 우수, 그것 때문에 너를 사랑하지 않았어. 하지만 이제는…“
그녀가 나를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 속삭임, 달콤한 냄새, 뜨거운 숨소리…. 시간이 흘러갔다
”지금 내 옆에 있는 건 누구지?“
도스토옙스키를 간판으로 내건 나의 분신은 불에 타 재가 되고 있었다.
“인간이라면 비명을 지르겠지, 넌 내 환영이야. 아 .. 젠장! 너라니! 너가아니라고, 저건 사람이 아니야! 제발!“
애초에 악령에게 먹혔다는 게 말이나 되는 걸까? 그 끝없는 복도에 걸어들어간 기억 따위 없다. 나의 분신과 그녀를 마주한 문 또한 복도 바닥에 위치하였다. 그런 구조가 가능한가?
“처음부터 환영이었던 거야 그런데 어째서 깨어나지 않는 거지….”
“이 절망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건 나야.. 비록 허무가 모든 걸 삼켰지만, 기적 따윈 없지만 그래도…”
“넌 또 누구야?”
또다시 찾아온 정적. 오직 밤이 지나가기를, 낮의 도래를 재촉하며 후두두 떨어지는 가벼운 빗소리뿐.
<2>
온몸이 땀에 젖은 채, 지끈거리는 두통을 느끼며 침대에서 일어나는 이 이야기의 주인공, 그의 이름은 세르게이 베르호벤스키이다.
세료자는 새벽 4시 40분 이른 새벽에 좋지 않은 몸 상태로 기상했는데 전날 밤을 물론이거니 자신이 방금 꾼 꿈의 순간적인 이미지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정말 엄청나게 긴 꿈을 꾼 거 같은데 시간은 취침 이후 1시간 밖에 지나지 않았으니, 그래도 다음날 일정이 없어 다시 잠에 편하게 들 수 있음에 안심하였다.
1월 20일, 비 맞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어도 들고 있는 우산을 잠시 접고 눈과 비를 즐길 수 있는, 어린아이는 물론 대학생들도 호기심에 혀를 내밀어볼 딱 그런 수준의 진눈깨비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내렸다.
세료자는 오후 3시쯤 일어나 여유롭게 씻고는 그에게 단 한 벌 있는 외투, 구멍이 세 개 정도 뚫려있는 해진 갈색 코트와 모자, 그리고 은색 담뱃갑을 챙겨 외출했다. 분명 며칠 전 발목까지 쌓일 정도로 눈이 펑펑 내릴 때는 시끄럽게 나와 놀던 어린아이들은 이제 이런 진눈깨비는 시시한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비와 눈 결정이 섞인 시원한 촉감을 느끼며 빈속에 담배를 태워 문다. 고요한 정적과 차가운 공기 속에서 그를 휘감는 온갖 상념과 까닭 모를 우수는 담배연기와 함께 그를 잠시나마 떠나갔다. 사실 오늘 세르게이 베르호벤스키에겐 누구와의 식사 약속도, 자신이 작성하고 있는 소설의 출판 관련 만남도, 그 어떤 특별한 목적이 있어 외출한 것은 아니다. 그저 그 좁디좁은 집에 처박혀 이주째 진전이 없는 원고를 붙들고 있으면 하루는 하루대로 날리고 그 자신의 정신마저 피폐해질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목적 없는 즐거운 유랑을 선택한 것이다. 우선 소설 집필의 진전을 위하여, 세료자가 존경하는 대문호의 유령을 만나기 위해 센나야 광장으로 향한다.
아— 아마도 저 곳… 라스콜니코프가 키스한 그 땅 위에는 지금 관광객들이 책자를 들고 두리번대고 있다.
센나야광장을 가로질러 곧바로 코쿠시킨다리로 향한다. 운하의 잔잔한 물결에 빗물은 과격하게 키스하고 눈 결정은 서서히 다가가 그의 분신을 만들어내고는 곧바로 소멸한다. 세료자는 그 순간 기시감을 느낀다.
세료자는 주로 현실의 인물들보다는 죽은 사람들과, 혹은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과 교류하고 심지어 그들과 매우 친하다. 그는 그와 비슷한 부류의 인간을 몇 주 전에 도서관에서 발견하였는데 도서관에 들어설 때면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항상 눈에 밟혀 그를 곤란하게 하곤 한다. 그녀를 의식한 뒤로는 항상 그녀의 고정석에서 두 테이블 떨어진 자리에 앉아 그녀가 무슨 책을 읽는지, 어제의 그녀와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외적으로나 그냥 느껴지는 분위기적으로나) 살펴보는데, 이것이 마치 과제처럼 세료자에게는 일상적인 루틴이 되어버렸다. 물론 이런 자신의 모습을 깨닫고는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지만 수치심과 자신을 향한 경멸감에 얼굴이 붉게 변하곤 했다.
여러분도 진작에 눈치챘겠지만 세르게이 베르호벤스키는 이 수수께끼의 여성에게 적잖은 호감을 느끼는 중이다. 그녀는 항상 오후 5시쯤이면 어딘가로 나가 2시간 뒤 도서관으로 복귀하는데, 그녀가 나갈 때면 세료자 그도 따라나가 말을 붙여볼까 하는 고민을 항상 한다. 그러나 한 번도 행동으로 옮긴 적은 없다. 그가 그녀를 처음 보자마자 반한 것은 아니다. 그녀가 고골과 도스토옙스키, 솔제니친의 도서를 탐독하는 그 모습을 보고는 세료자는 운명의 상대를 만났다!라는 착각에 빠져 그녀를 처음 본 날 밤을 지새웠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 이야기에 집중해 보자.
오후 5시 22분, 그녀는 어김없이 읽고 있던 책을 덮고는 가방을 챙겨 도서관을 나섰다.
세르게이 베르호벤스키는 그 순간 알 수 없는 용기가 생겨 바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을 누른다.. 담뱃갑을 탁탁 치는 그녀, 어색한 공기에 숨이 막힌다! (나는 이때, 그녀를 따라 나온 걸 후회했다)
그녀는 밖으로 나가 담배를 꺼내며 허공을 응시했다. 아마도.. 아마도 떠다니는 글자들을 배열하고 정리했을 것이다. 그녀라면 틀림없다.
나도 담배를 꺼내 피웠다.
“혹시 라이터 좀 빌려주실 수 있을까요“
예상치 못하게 그녀가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왔다.(아까 엘리베이터에서의 후회는 이 순간 눈 녹듯 사라졌다.)
”기꺼이“
“기꺼이라니… 따분한 분인 줄 알았는데 이면이 있군요”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세르게이 베르호벤스키라고합니다.“
나는 악수를 청했다
“알리사 레뱌트키나입니다.”
그녀가 손을 잡기 위해 담배를 다른 손으로 옮기며 말했다.
“세료자, 저는 당신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재밌네요, 당신은 제가 도서관에 오는 여러 이유 중 하나입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특히 제 또래에 책에 그런 열정을 가진 사람은 정말 찾기 힘들거든요. 대학에 다니시나요?”
그녀가 담배를 한대 더 물고 내가 불을 붙이기를 기다리며 말했다.
“대충 얼굴로 맞춰본 건데 대학생 맞으시죠?”
“네, 대학생입니다”
“저도 에스페베게우에서 공부중이에요.”
대략 2분간 우리는 아무 말 없이 그저 빗소리와 눈으로 뒤덮인 경치를 즐겼다.
말해두지만 나는 손목시계가 원소로 분해될 그 엉겁의 시간 동안 여자와 접점이 없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그녀에게만큼은 알 수 없는 용기가 솟구쳐생겨났다.
“혹시 저녁에 시간 괜찮으신가요?“
”괜찮긴 한데, 9시까진 가봐야 해요.“
그녀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손목시계를 확인하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계속 도서관에 계실 건가요?“
”아니요, 친구와 미술관에 갑니다. 오늘은 무료 개방 일이니까요.. 혹시 종이 있나요?”
“아.. 펜은 있는데 종이가…”
나는 곧 그녀에게 펜과 손바닥을 내밀었다.
손바닥을 간질이는 펜촉의 유영과 영원할 시간의 정적은 얼마나 시끄러웠는지!
“전화하세요!”
그녀는 택시를 타고 떠났고 나는 어째서인지 또다시 찾아온, 도무지 근원을 알 수 없는 우수에 잠겨 한참을 서있었다.
<3>
나의 고등학교 시절은 정말이지 끔찍했다.
허구한 날 자신이 이룬 것도 아닌 아버지의 재력을 자랑하고
자기는 절대 사귀지 못할 여자에 대한 험담을 일삼는 한심한 새끼들과 보내야만 하는 시간은 정말이지...
나는 내가 벌레보다 못한 끔찍한 인간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들과 함께하다 보면 그래도 [살아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물론 이도 잠시, 나는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고, 이기적이며 항상 남을 밀어내지만 외로워 사랑을 갈구하는 나 자신의 기이하고 역겨운 성격 때문에 죽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절대 자살할 위인은 못 된다. 나는 죽을 용기는 없지만 자살을 갈구하는 그런 보잘것없는 놈으로 평생을 살아왔다.
어쨌든 그녀와는 저녁 6시 도서관 근처 카페에서 만나기로 약속하였다. 그녀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1시간 정도 일찍 도착할 생각으로 나는 4시 30분쯤 짐을 챙겨 도서관을 나왔다.
약속 장소로 가는 길에 있는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려 잠시 앉아 사람들을 구경했다.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내가 어떤 경치를 보았는지는 당신이 늘 보는 그것과 동일했을 것이다.
어쨌든 그곳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연미복을 입었지만, 외모는 매우 더러운, 어딘가 이질감이 느껴져 표정을 찡그리게 만드는 한 남성이 담배 한 대를 요구하였다. 기꺼이.
그와는 처음 만난 사람들이 늘 하는 그런 지루한 대화들을 잠시 나누다가 그가 대답이 없어 보니, 그 희한한 작자는 쓰고 있던 챙 있는 모자를 벗어 얼굴을 가린 뒤 벤치에 누워 잠에 든 것처럼 보였다. 이 인간이 눈가리개로 쓰고있는 저 모자챙에는 도끼가 그려진 어떤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나는 그 기인의 낮잠을 방해하지 않고 조용히 떠났다.
그리 크지 않은 강을 이어주는 작은 다리가 있다. 종종 지나가는 차들의 바람과 엔진의 힘찬 소리를 들으며 상념에 잠기곤 하는 곳이다. 오늘은 진눈깨비 덕에 잔잔한 물결 위로 빗물은 과격하게 키스하고 눈 결정은 서서히 다가가 그의 분신을 만들어 내고는 곧바로 소멸한다. 드레스덴의 그날을 연상시키는군... 뭐, 그런 거지! 구겨진 담뱃갑을 꺼내 한 개비 꺼내 피워문다. 그때 물결 위로 보이는 어떤 거대하고 장엄한 무언가. 미국의 B-2의 날개인가? ㄴ독일의 슈투카의 날개인가? 곧바로 하늘을 올려다보니 매 한 마리가 내 머리 위를 지나갔다. 저 멀리 날아가는 매를 응시하니 경외심이 들 정도였다. 잠깐, 이건 누구의 기억이지?
깜짝 놀라며 잠에서 깨어났다. 옆에는 아까 그 남자가 곯아떨어져 있고 하늘은 어둡다. 젠장 잠들고 말았군! 시계를 확인하니 6시 정각이었다. 나는 옷 단추를 채우고 곧바로 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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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정빈 작가님의 제1화 잘 읽었습니다. 프롤로그와 아무래도 이어지지 않는 1화의 내용입니다. 문체도 프롤로그의 간결체와 다른 만연체이고, 사건의 진술도 프롤로그의 직관적인 인물의 언행을 따라가는 것이 아닌 자동기술법에 가까운 의식의 흐름 수업을 쓰고 있어 독자들이 받는 거리감의 충격이 큽니다. 물론 모든 1화가 프롤로그와 자연스럽게 이어져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조금 더 완충 지대를 설정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정빈 작가님의 문체는 특정 독자들을 대상으로 한 순수 문학에 가깝고 시후 작가님의 문체는 다수를 만족시키는 대중 문학에 가깝습니다.
보통 내면 의식을 모호하고 길게 진술할 때 외부적 세계의 진술은 분명하고 간결하게 씁니다. 그래야 독자들이 작가의 생각의 호흡을 따라갈 여유를 가질 수 있습니다. 자동차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을 달리 보기 위해서는 심안을 크게 떠야 하는 것이지 색안경만 낀다고 세상이 바뀌지는 않습니다. 즉 개성적이고 참신한 표현을 많이 쓰기 위해 일부러 생소한 표현을 쓸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다고 사물의 본질이 바뀌지 않으니까요. 포장지를 바꿔도 새우깡은 새우깡이지 생새우가 되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저 역시 작가의 꿈을 꾸며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남들과 다른 나만의 표현을 찾기 위해 무척 골몰했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표현은 정말 찾기도 만들기도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이것에 주목하다보니 소설의 뼈대가 사건의 시작과 전개, 끝이라는 것을 망각하게 되더라고요. 표현은 포장지에 가깝습니다. 표현이 아무리 새로워도 내용이 평범하면 속 빈 강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글을 쓸때마다 느끼는 문제가 가독성인데 이 가독성의 문제도 간단한 표현을 사용한다면 해결될까요?
@홍정빈 정빈 군의 문제 아닌 문제는 지식과 욕심의 과잉입니다. 여기저기에 역사적, 사회적 상징 등이 파편처럼 흩어져 있어요. 정빈 군만큼의 지적 수준을 가진 사람이라면 소화가 가능하나 대부분 소화 불량에 걸릴 만큼 많습니다. 그러니 한 장면이나 한 꼭지의 기술에서는 포인트가 되는 것 하나만 중점적으로 기술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모아이 과잉된 글 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는데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문제점들 생각해보면서 더 써볼게요!
평범하게 쓰는 것은 사실 지극히 어려운 방법입니다. 완숙한 경지가 아니라면 흉내내기조차 힘들죠. 세상을 관조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러야 가능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 수준에 이르기 위해서는 이런저런 시도도 해보고 착오도 겪어야만 합니다. 제가 정빈 작가님의 작품에 대해서 드리고 싶은 말씀은 조금만 더 간결하고 단순하게 표현해 보시라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 저기에 좋은 표현들도 많이 보입니다. 많은 독서와 작문의 흔적이라 생각합니다. 그점은 대단히 우수합니다. 다만 더 작가의 시선을 독자들에게 맞출 필요는 있어 보입니다. 그리고 성석제 작가님의 소설집을 추천합니다. 정말 맛깔나게 소설을 쓸 줄 아는 작가입니다. 물론 작가가 굳이 독자의 기호에 맞출 필요가 있느냐고 할 수도 있으나 독자의 피드백(그것이 물질적일 때 더 강한 힘이 있는) 없이 작가는 생존할 수 없으니까요. 저는 도스토예프스키, 투르게네프, 비르질 게오르규 같은 작가님들과 비슷한 문체를 사랑합니다만 시대는 변했고 독자들은 더 성급히 변했기에 작가가 홀로 설 자리는 그리 넓지 않게 되어 버렸습니다. 슬픈 일이죠.
앞에서 시후 작가님의 작품이 전지적 독자 시점의 향이 얼핏 느껴진다고도 했는데 이왕 제1화가 이렇게 러시아풍으로 도색되었다고 한다면 <메트로 2033>이나 2034 풍으로 전개해 가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일단 프롤로그에서 여주인공이 언급되었는데 아, 주인공이 아닐 수도 있겠습니다, 1화의 세르게이 베르호벤스키가 주인공이라면(남자인 듯하죠?) 프롤로그 마지막의 '닌자'가 세르게이가 되는 걸로 전개를 이어나갈 수도 있겠네요. 아무튼 이 다음 작가분이 꽤나 고심하셔야 할 부분인 듯합니다.
아포칼립스 세계관 말씀하시는거죠? 메트로 저는 게임으로 해봤는데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니 뭔가 새롭네요 ㅎㅎ
@홍정빈 핵전쟁 이후 모스크바 지하철 내부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방사능 피폭 돌연변이 괴물들과 사투를 벌이며 싸워나가는 이야기였을 겁니다.
@모아이 저는 게임은 안 해 봤는데 소설 두 권을 매우 흥미롭게 읽었어요.. 밤 샐 정도로.
@모아이 찾아보니까 소설원작 게임이네요… 저도 읽어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