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성장통:어른이 되는 과정
나는 아버지의 목사라는 직업 때문에 어려서부터 전학을 많이 다녔다. 태어난 도시는 여수이지만 인천, 광양에서 더 오래
살았었고 광주에서도 1년정도 살았었다. 어렸을땐 전학다니는 것이 얼마나 싫었는지 부모님께 가지 않으면 안 되냐고 엄청 때를 썼던 기억도 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것을 시도해보는 것은 정말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아픈 경험이든 행복한 경험이든 말이다. 이 글은 내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고 내 인생이라는 영상의 다시보기이다.
부모님께서 말씀해주시길 내가 2살이였나 3살때 까지였나 여수에 살았었다고 하셨다. 2~살때 기억을 누가 가지고 있겠는가
부모님께서 이 말씀을 해주시기 전까지 나는 내 고향이 인천인줄 알고 있었다. 그리고 3살 즈음인가 우리 가족은 인천으로 가게
되었다고 하셨다. 초등학생때 기억도 잘 나지 않는 내가 인천에서의 기억은 아직 잘 간직하고 있는걸 보니 어렸을때 나는 인천이 꽤나 좋았었나 보다. 인천에서 만나 친해진 친구들은 모두 부모님이 목사님이셨다. 공통점도 많고 착하고 재밌는 친구들이라 되게 빨리 친해졌던 것 같은 기억이 희미하게 있다. 이 친구들을 만난게 되게 나에겐 행운이 아니였나 싶다. 이 친구들에게서 배려와
친구를 대하는법을 배웠었던 것 같다. 아마 이때였나 내 인성의 큰 틀이 잡혔던 것 같다. 내가 인천에서 광주로 전학을 갈때 내
나이는 8살이였다. 그때는 목사라는 직업이 무엇인지 잘 이해하고 있지도 못했고 대충 어떤 일을 하는지 정도만 알고 있었을때라
전학을 가게 된다라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때 너무 슬펐었다. 아마 친구들을 다신 못 보면 어쩌지 하는 생각때문이였던 것 같다.
이땐 생각도 되게 단순했다. 그냥 다시는 이 친구들과 못 논다는 생각에 펑펑 울었었던 것 같다. 사실 이때가 좀 그립기도 하다. 이 때만큼 내가 순수했던 때가 있었을까 싶기도 하다. 그렇게 그냥 허무하게 광주로 전학을 갔다. 광주에 가서는 친구들에게 정을 주지
않았었던 것 같다.전학이 너무 충격적이였나 어차피 또 다른 곳으로 가게 될거라는 어린 생각에 잘 대해주는 친구들에게도 모질게 굴었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후회할 짓을 어렸을때 나는 참 잘도 했던거 같다. 사실 이 때의 기억 때문인지
친구들에게 화를 잘 내지 않는 내 성격이 생긴 것 같다. 아무튼 친구들에게 모질게 대한 것 때문인지 광주에서의 1년은 기억이 거의 없다. 뭐 대충 학예회에서 크레용팝의 빠빠빠를 췄다는 정도? 밖에 없는거 같다. 그렇게 그냥 아무생각 없이 광양으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광주에서 친구들에게 정을 주지 않았던 것이 무색하게 광양친구들에게는 정말 잘 대해주고 빨리 친해지고 많이 놀러다녔었던거 같다. 내 인생 통틀어서 사고도 제일 많이 치고 다치기도 많이 다친 4년이였다. 맨날 축구하고 처음으로 축구 대회도 나가보고
불장난하고 경비아저씨께 혼나고 여기저기 놀러다니고 그러고 다치고 집에 들어오고 부모님께 혼나고 그랬었는데 나는 그냥
그때가 그 순간이 너무 너무 행복했다. 이 때의 경험들이 내 가치관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 지금의 장난꾸러기 같은 내가 될 수 있게 해줬던 것 같다. 그렇게 전학이라는 건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13살이 되었을때 구례로 전학을 간다는 부모님의 말씀에 정말 너무 화가났었다. 머리 좀 컸다고 자기 화났다고 부모님께 대들고 슬퍼 죽겠으면서 꼴에 남자라고 울지 않으려고 노력도 했었다. 정말 행복한 4년을 보낸만큼 너무도 가기가 싫었다. 구례 친구들에겐 미안하지만 그때 나는 구례가 엄청난 깡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말 너무 너무 싫었다. 사실 이땐 좀 지쳤던 것 같다. 그래서 그냥 체념하고 받아들였다. 이 때였나 철이 들기 시작했던거 같다. 뭐 철이 들었다 해도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겉으로 강해보이는 법? 같은거였다고 생각한다. 구례에 가서 처음 1년은 정말 이 시골이 미친듯이 싫었다. 집이랑 읍이랑 멀어서 마음대로 놀러 나가지도 못하고 벌레도 많고 우리 마을에 내 또래 애들은 없고 교회에는 어르신 분들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 1년간 좋은 점도 있었다. 예의가 무엇인지 배우고 웃어른을 공경하고 모시는 법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렇게 점점 구례에 적응해가며 내가 시골을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새벽에 일어나면 보이는 산과 강 그리고 새가 지저귀는 소리까지 정말 저절로 마음이 평안해지는 기분이 너무도 좋았다. 중학교 3년도 굉장히 재미있었다. 남중이라 그런지 정말 편하고 재미있는 친구들도 많고 선생님들도 너무 좋고 가장 좋았던 것은 내가 좋아하는 축구를 다른 친구들도 좋아한다는게 너무 행복했던 것 같다. 이때 까지만 해도 나는 그저 노는거 좋아하는 평범한 중학생이였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며 성격이나 행동,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고등학교는 마치 하나의 작은 사회인거 같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같은 중학교를 나온 친구들 이외의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법, 용기내서 자신의 주장을 말하는 법,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다양한 방법들을 배운 것 같고
많은 일들을 경험한 것 같다. 화가나는 일들도 있었고 슬픈 일들도 많이 있었다. 고등학교는 정말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고 형식상 어른이 되기 전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곳인 것 같다. 이제는 고등학교 3학년 이지만 나는 아직 모르는게 많고 배워야 할 것이 많이 남아있다고 생각한다. 글을 다 쓰고 나니까 글 안에 다 쓰진 못 했지만 되게 많은 경험을 했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직은 어려서 인생에 대해 잘 모르고 경험에 대해 잘 해석도 안 되지만 이런 다양하고 많은 경험들과 이렇게 글을 써본 경험도 나중에 생각하고 되새기며 이땐 이랬었지 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해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한다.
나는 경험이라는 것을 매우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그 안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그 것을 바탕으로 성장할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경험에는 아픈 것도 있다. 이 경험은 인내하고 수용하여 그 안에서 배움을 찾아내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이런 배움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끝끝내 어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어떤 사람은 배움을 찾아내지 못해 어른이 되지 못 하는 경우가 있고 또 어떤 사람은 배움을 잘 찾아내 나이에 맞지 않는 어른스러움을 갖게 된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나는 어떨지 몰라도 내가 생각하는 나는 아직 많은 경험을 하지 못하였고 어른이 되기에 준비가 덜 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배움을 성장통이라 생각하고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반드시 겪어야할 마음의 아픔이자 인내해야할 고통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어른이 되기에 아직 멀었고 내게 남은 배움이 아직 많이 남았지만 지금껏 잘 버티고 배워온 것 처럼 미래의 나는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멋진 어른이 되어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첫댓글 흐르는 눈물을 막지 못해 화장실로 도망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