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디에 있나
서울 은평구 구파발전철역에 인접한
해발 133m의 낮은 산이다.
* 이름의 유래
한자로는 ‘이말산’(莉茉山)으로
옛 부터 표기되어 왔다.
‘이말산’(李末山)으로의 기록도 있다.
‘이말산’은
그냥 입에서 입으로 불려오다
‘莉茉山’이나 ‘李末山’으로
적혀오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안내표지판의
'이말산'이라는 명칭은
이 산에 이말(莉茉) 즉 말리(茉莉)라는
식물이 많아서 생긴 이름이다.'라는데
'이말'과 '말리'는
같은 말이라는 것도 확인할 수 없고
재스민의 한자표현인 '말리’(茉莉)는
이 산과는 관련이 없는 듯 하다.
* 이시회의 묘비에서 나타난 이말산
은평뉴타운개발시
이말산의 한자락에서 이전된
완산 이씨 묘역의
이시회(李時會) 묘비를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府君生于萬曆辛亥十一月十一日卒于顯宗甲寅十二月二十三日壽六十四葬于揚州莉茉山乾坐之原
(이시회는 만력(중국명나라 신종 때의
연호 : 1573~1619)
신해(1611년) 십일월 십일일에 태어나서
현종(재위 기간 15년 : 1659~1674년)
갑인(1674년) 십이월 이십삼일에
사망했다. 나이 육십사세였다.
양주 이말산에 동남쪽 방향으로
묘자리를 잡았다.)”
* 매장문화의 보고
이말산은 조선시대의 공동묘지였는데
무덤의 주인공은 대부분 의관과 역관 등
중인 그리고 내시와 궁녀이며
서울시의 2010년 조사기록에 의하면
분묘는 1746기, 비석 등 석물은
1488기를 찾았다 한다.
궁녀나 내시의 성격상
묘소를 돌 볼 후손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훼손된 경우가 많다.
또한 6.25전쟁으로 인한 파괴와
전란후의 궁핍한 생활속에
낮은 산에 판자촌을 짓고 살며
훼손된 사례도 있었을 것이다.
인근의 왕릉인 서오릉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보호되지만
이 곳의 내시, 궁녀의 묘소는
죽어서도 방치되어 훼손되는
영욕의 기록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는
인근 주민에게 사랑받는 산책로로
잘 관리되고 있으며
현재까지 남은 유물도
관리의 흔적을 볼 수가 있다.
* 초안산과 이말산
조선조시대에는
성저십리(城底十里)’라는게 있었다.
왕족과 도성안 사람들의 놀이터(?)인
한양도성 바깥 10리까지의 지역인데
함부로 나무도 벨 수 없었으며
그 지역엔 묘소도 쓸 수 없었다.
자연적으로
그 지역을 벗어난 곳에 묘소가 위치한다.
남쪽은 한강, 북쪽은 비교적 높은
북한산이 있어 묘지가 별로 없다.
그래서 선택된 곳이 이말산과
초안산이었을 것이다.
이말산과 초안산의 궁녀나 내시가
묘소의 방향이 임금이 계신 궁궐을
향했다하니 죽어서도 바라봐야 하는게
이내들의 숙명이었다.
* 이말산의 주요 묘소
_ 나인(무수리)에서 정1품에 오른
숙빈 최씨(영조의 친모)의 부모묘
_현종의 보모였던 상궁 옥구 임씨묘
(봉분은 없고 상석만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