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과 서사의 아름다운 조화
시인들이 다녀간 서귀포 이곳저곳에서 들춰낸 137편의 응모작에는 아름다움과 아픔 즉 서정과 서사로 직조된 작품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붓 끝에 길이 있어 붓 끝으로 걸어왔던 /외길 끝에 만나는 벼루 같은 깊은 연못“의 「천지연체를 읽다」
그리고 ”막 자란 파도 속에는 시린 것이 저리 많아/떠났다간 돌아오는 연락선의 발자국들“ 「서귀포」,
”한밤 내 누군가가 다녀간 게 분명했다//바닥 진 동백꽃들이 발자국처럼 흥건했다“ 「위미 동백나무숲」
” 먼 바다 둥그런 섬 그 눈빛 서글퍼라/ 해 지는 성산포에서 종일 임을 기다린다“ 「서귀포 연가」
등이 심사위원의 눈길을 끌었다. 한 편 명사형 제목을 정해놓고, 그 제목을 설명하는 수준의 작품들도 적지 않았다. 거기에다 내용전달방식에 있어서 ‘나열’과 ‘전개’의 변별인식에도 아쉬움이 적지 않았다.
이미지로 쓰고 이미지로 읽어내는 것이 시인들의 공통된 필법이라 한다면,
“턱이 길어 아고리라 불리던 한 사내와/발가락이 못생겨서 아스파라가스가 된 여인이/팔레트 한 칸만 한 드난살이 셋방에서 /가끔은 물고기까지 끌어안고 뒹굴던 곳…” 한 편이 시에는 한 편의 이야기와 그를 증명하는 그림(이미지)이 스며들어 있다.
“이어도로 떠난 뱃길 발길 끊긴 서귀포에/시간의 소실점을 넘나드는 사랑은 남아/미완의 풍경화 한 점 수평선에 걸려 있다”는 이 작품에는, 시간의 소실점에서 넘나드는, 일테면 못 이룬 사랑 즉 미완의 풍경화가 있다.
그렇다, 지귀섬, 숲섬, 문섬, 새섬, 범섬, 형제섬, 가파도 마라도 사이의 짤막짤막한 수평선 너머에, 가물가물 시간의 소실점으로 상징되는 이어도에 이르기까지 어쩌면 미완의 풍경처럼 미완의 사랑이 있을 법 하다.
이어도를 시간의 소실점으로 보면서, 결코 소실되지 않을 사랑 즉 시대적 유토피아를 갈망하는 시인의 서사적 감각을 읽을 수 있다. 더구나 「미완의 풍경화」라는 제목의 ‘미완’이라는 어휘에서 우리는, ‘서귀포의 미래’라는 ‘여백’을 발견하면서, 오늘 서귀포에 눌러 사는 이들의 자부심과, 미래에 대한 막중한 책임감을 부여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알 될 것이다.
결국 예심에서 올라온 다섯 편의 작품 중에, 「미완의 풍경화」에 방점을 찍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 심사위원 두 사람은 이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응모하신 모든 시인들의 분발을 기대하면서!
심사위원 : 송인영, 고정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