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청전" (5) 심봉사의 젖 동냥. 심청전
심봉사가 부인을 매장하고 공산야월(空山夜月)에 혼자두고 허위허위 제 집에 돌아오니,
부엌은 적막하고 방은 텅 비었는데 향은 그저 피어 있었다.
휑 하고 덩그런 빈 방안에 우두커니 혼자 앉아 슬픔에 젖어 있을때, 이웃집 귀덕 어미가
사람 없는 동안에 아기를 데려다 돌보아 주다가 돌아와, 아기를 안겨주고 가는지라.
심봉사 아기를 받아 품에 안고 지리산 갈까마귀 게발 물어 던지 듯이 홀로 우둑커니 앉쟜으려니,
슬픔이 창전한데 품안에 어린 아이가 죄어쳐 우는 것이었다.
심봉사 아기 울음에 더욱,슬픔에 북바쳐 ,한참을 "꺼이꺼이" 구슬피 울다가..
품안에 어린것을 어르며 달래는데,
"아가 아가 우지 마라. 너의 모친 먼 데 갔다. 너도 너의 모친 잃고 슬픔에 겨워 아비처럼 우느냐.
우지 마라 우지 마라, 네 팔자가 얼마나 기구하면 칠일만에 어미 잃고 강보에 싸여 고생하냐."
"우지 마라 우지 마라 해당화 범나비야 꽃이 진다 서러마라. 명년 삼월 돌아오면 그 꽃 다시 피느니라.
그런데도 우리 부인 가신데는 천 만리 구만리라 한번 가면 못 오신다. 그 어진 심덕 착한 행실을
잊고 살길이 전혀 없다." "꺼이꺼이" ..
"해가 져도 부인 생각, 비소리에도 부인 생각, 짝 잃은 외기러기 명사 벽해 바라보고 뚜루룩 낄꾹
소리하며 북천으로 향 하는 양, 내 마음은 더욱 섦다. 너도 또한 임 잃고 ,임 찾아 가는 길이더냐.
너와 나와 비교하면 두 팔자가 똑 같구나." "꺼이꺼이 꺼이꺼이" ..심봉사 목이 쉬도록 밤새 울었다.
이러구려니 밤을 지샐적에 아기가 기진해 맥을 푸니 ,심봉사 어둔 눈이 더욱 침침하고 쾡 하여져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그러던중 동창이 밝아지며, 우물가에 물깃는 두레박 소리가 귀에 얼른
들리므로 날이 샌 줄 짐작하고 , 방문을 활짝 열고 강보에 싸인 아기를 급히 안고 우둥퉁 밖에 나가,
"우물에 오신 부인이 뉘신지 모르지만 , 칠일 만에 어미 잃고 젖 못 먹어 죽게 된 이 아이, 젖 좀 먹여
주십시오." 통 사정을 하는고라 ..
"나는 나이가 늙어 젖이 없지마는 젖 있는 여인네가 이 동네에 많으니, 아기를 안고 찾아가서
젖 좀 먹여달라 사정하면 누구라서 괄시 하리오 ? " ..
심봉사 그 말을 듣고 , 품속에는 아기를 안고, 한 손에는 지팡이를 짚고, 더듬더듬 동네로 가서
아이가 있는 집을 물어물어 찾아가, 집안으로 들어서며 애걸복걸 빌었다.
"댁이 뉘신지 모르지만 사뢸 말씀이 있습니다."
그 집 부인 밥을 하다 말고 , 물 젖은 손을 앞치마에 헹구며 나오면서 하는 말이,
"그 댁 지내시는 것은 동리가 모두 아는 일 이지만, 대체 어찌 고생하시면서 이렇게 오시었소?"
심봉사 눈물 지으며 목이 메어 하는 말이,
"현철한 우리 아내 인심으로 생각하나, 앞 못 보는 나를 본들 어미 없는 어린것을 불쌍이 여기셔서
댁에 귀한 아기가 먹고 남은 젖이 있거들랑 이 애 젖 좀 먹여 주소."
심봉사 어린 아기를 강보에 싸서 ,동네방네 안고 다니며 이렇듯 애걸하니 젖 있는 여인네가 목석 인들
안 먹이겠는가 , 도척인들 괄시하겠나. 칠월 유화철에 지심매고 쉬는 아낙, "이 애 젖 좀 먹여 주오."
시냇가에 빨래하다 쉬는 여자, 이 애 젖 좀 먹여주오. 근방의 부인네가 심봉사의 근본을 아는지라,
한없이 불쌍히 여겨 아기를 받아 젖을 먹여 봉사에게 주며 하는 말이,
"여보시오 봉사님, 어렵게 알지 말고 내일도, 모래도 안고 오시오.이 애를 설마 굶기겠습니까."
심봉사 그 말을 듣고 감격하여 이르되 "어질고 후덕하신 부인네, 이렇듯 귀한 젖을 나눠 주시니
우리 동네 부인 댁들 세상에 드뭅니다. 빌고 축원컨데 여러 부인님들 수복 강령 하십시오."
심봉사 백배로 치하하고 아기를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와,아기 배를 만져 보며 혼잣말로 좋아했다.
"허허 내 딸 배부르다. 일년 삼백 육십일 오늘날 만 같아라.이것이 다 누구의 덕이냐. 동리 부인들의
덕이다. 어서어서 너도 자라 너의 모친 빼 닮아, 현철하고 효행있어 동네 인심을 갚아야 할것 이다.
아가야,청이야 , 어려서 고생하면 부귀다남 (富貴多男) 한다고 책에 써 있었느니라." ...
심봉사 아기 놓고 혼잣말로 어르고 조르고 마냥 걱정과 기쁨을 함께 하면서 세월을 보내는데,
아이가 조금커서 요 덮고 잠을 자는 사이사이,아기 혼자 노는 사이사이, 동냥을 나가는데 ..
마포 전대 두 동을 한 동은 어깨에 엇메고 한동은 지팡이에 둘러 짚고 , 구붓하고 더듬더듬
이 집 저 집 다니면서 사철 없이 동냥하여 한편에 쌀을 넣고 다른 편에 벼를 얻어, 주는 대로
저축을 하였다.
작성자 소주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