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退溪) 선생에게 올리다
저는 벼슬을 얻을 때마다 항상 분수를 넘으므로 감히 벼슬할 수 없다는 마음을 품어 이 때문에 새로 제수하는 명에 사은숙배하지 않는 것입니다. 돌아보건대 이처럼 미천한 사람이 또한 하문(下問)을 받으니, 감사하고 영광스러움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제가 애당초 참봉(參奉) 벼슬에 사은숙배하지 않은 것은 단지 실정에 지나친 명성을 감당할 수 없어서였는데, 뜻밖에도 이로 인하여 명리(名利)를 초탈하여 물러나 있다는 명성을 더욱 불러들여 지난해에 선비를 선발할 때에도 외람되이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스스로 생각건대, 저는 병약한 몸으로 정신이 혼몽하고 학식이 없어 불초하기 이를 데 없는데 교묘하게 샛길로 벼슬을 취하여 자신의 이익으로 삼으니, 부끄러운 마음에 스스로 편안히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미 참봉을 사양하고 다시 6품의 관직을 받는다면 사사로운 소견으로 헤아려 보아도 온당치 못합니다. 그러므로 신자(臣子)의 무례한 죄를 돌아볼 겨를이 없이 한결같이 황송해하며 물러나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처신하여야 다소라도 죄와 벌을 면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한 말씀을 내려 주시어 종신토록 가슴속에 새기게 하여 주소서. 간절히 축원하는 마음을 이길 수 없습니다.
與退溪先生
渾得官每踰常分。竊懷不敢。玆用不拜新除之命矣。顧玆微末。亦蒙下詢。感幸無任。渾當初不拜參奉。只爲不敢當過情之名。而不意因此。轉招恬退之譽。前歲選士。亦被忝冒。自惟病弱昏廢。不學無狀。而巧取捷宦。以爲己利。中心忸怩。不能自安。且旣辭參奉。而又受六品。揆以私見。亦爲未安。故臣子無禮之罪。有不暇恤。而一任惶恐退縮而已。未知如此處置。可庶幾少免於罪罰否。伏乞賜以一言。俾得終身佩服。不勝懇祝之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