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다.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기를 '병고(病苦)로써 양약(良藥)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몸이라는 게 지수화풍(地水火風)의 네 가지로 이뤄졌다고 하지 않습니까? 인간의 존재는 반야심경에 나오듯 오온, 즉 색수상행식, 물질적 요소와 정신적 요소가 합쳐서 만들어진 유기적 존재입니다.
본래부터 있었던 게 아니라 어떤 인연이 닿아 이런 형상을 갖추고 나왔습니다. 인연이 다 하면 흩어지고 말아요. 그렇기 때문에 이 몸 자체가 무상한 거예요. 늘 변하는 겁니다. 고정돼 있지 않습니다. 생노병사라 말하잖아요. 저를 오랜만에 본 신도나 스님들은 '아이구, 스님두 이제 많이 늙으셨네요.' 합니다.
중도 안 늙을 재간이 있습니까? 부처님도 생노병사 하셨습니다.그게 우주의 질서예요. 그러나 영혼에는 생노병사가 없잖아요. 거죽은 생노병사가 있다지만 알맹이는 생도 없고 노도 없으며, 병도 없고 사도 없는 겁니다.
여기에선 일상적인 우리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겁니다. 몸에 어떻게 병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그게 유기체인데... 탈이 나는 게 당연한 것이지요. 하지만 병을 앓을 때 신음만 하지 말고 그 병의 의미를 터득하라는 말예요. 평소 건강했을 때 생각해 보지 못한 일들에 대해 앓을 때 생각해 보라는 겁니다.
이웃에 대한 고마움도 느껴야 하고 내가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아왔는가. 내 인생을 어떻게 살아왔는가, 내 인간관계는 어떠했는가, 직장에서 얼마나 성실하게 살아왔던가 하는 것을 자기를 성찰할 수 있는 계기로 삼으라는 겁니다. 병고 자체가 죽을 병이 아니라면 그 병을 통해서 새로운 눈을 뜨라는 겁니다. 양약을 삼으라는 말이지요.
사람의 몸은 허망한 유기체입니다. 지금 우리가 이 자리에 함께 모여 있지만 이 다음 순간 또 어떻게 될지 몰라요. 예측할 수 없는 존잽니다. 본래 그런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 몸이 늘 건강하기를 바라지 말라는 겁니다. 말인즉 건강할 때, 내게 건강이 주어졌을 때 잘 살라는 거예요. 허송세월 말라는 겁니다.
인생을 무가치한 곳에 쏟아 버리지 말라는 거예요. 육신의 병은 약으로 다스릴 수 있어요. 정신적인 병은 약으로도 다스리지 못합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얼마나 허약합니까? 옛날보다 가진 것도 많고 아는 것도 많고 여러 가지 편리한 시설 속에 살고 있는데 체력과 의지는 자꾸 떨어져요. 어떤 게 몸에 좋다고 하면 하루아침에 모두 그 쪽으로 쏠리잖아요? 이렇게 허약합니다.
농사짓고 살던 옛날, 흙에다 뿌리를 내리고 살던 시절에는 흙으로부터 많은 기운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런 흙의 교훈을 몸소 익혔기 때문에 그렇게 허약하지 않았는데 이젠 자꾸 흙으로부터 멀어지니까, 대지로부터 멀어지니까. 그렇게 허약해지는 거예요. 생각 자체가 허약해졌어요. 몸이 조금만 어떻다 하면 하루아침에 좌절하잖아요?
중생의 병은 업(業)에서 나옵니다. 업이란 뭡니까? 하루하루 익히는 생활양식이에요. 생각이라든가 먹는 음식이라든가 생활습관, 이런 것이 내 몸을 건강하게도 만들고 병들게도 합니다. 중생의 병은 업에서 나옵니다.
보살의 병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자비심에서 나옵니다. <유마경>에 보면 중생이 앓기 때문에 내가 앓는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어머니들은 자식이 아플 때 같이 앓잖아요. 이게 정상적인 경웁니다. 자식이 밤새 잠 못 자고 앓을 때 같이 앓는 거예요. 그게 어머니에요. 생명의 뿌리니까 그런 거에요. 이게 누가 시켜서 그러는 게 아닙니다.
원천적으로 자식이란 것은 모태에서 나온 가지 아닙니까? 뿌리에서 파생된 가지니까 가지가 앓을 때 뿌리가 같이 앓지 않을 수 없는 겁니다. 자식이 앓고 있는데도 한 쪽에서 쿨쿨 자고 모른 체 한다면 그건 어머니가 아니에요. 가짜에요.
중생의 병은 업에서 나오지만 보살의 병은 자비심에서 나오는 겁니다. 어머니들이 보살이지요. 그런데 이건 정상적인 경우고 세상이 막 돼가다 보니 자식이 앓든 말든 자기만 생각하고 자기만 헬스클럽 다니고 잘 먹고 지내는 이런 희한한 사람도 더러 있잖아요?
모든 게 선지식이에요. 배우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둘레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선지식입니다. 좋은 일은 좋은 일대로, 언짢으면 언짢은 대로 우리의 삶에 교훈을 주고 있어요. 좋은 일이라면 본받아야겠지만 좋은 일이 아니라면 본받을 필요가 없는 겁니다.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다.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기를 '병고(病苦)로써 양약(良藥)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다시 말하면 순경계가 아닌 역경계에서 그걸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처세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