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 성채 쌓아 가을의 정취 더하는 산국
국립국어원 표준 국어대사전에서 ‘들국화’를 검색해 보자. 펼쳐진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식물』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 높이는 60~90cm이고 흰색의 잔털이 있으며, 잎은 어긋난다. 9~10월에 노란 꽃이 두상(頭狀) 화서로 핀다. 꽃은 약용하거나 식용하고 애순은 식용한다. 산과 들에 나는데 한국, 일본 등지에 분포한다. =산국.”
이 내용을 보면 ‘들국화’라는 고유종이 엄연히 존재하고, 이는 ‘산국’을 지칭하는 듯하다. 하지만, 산림청 국가표준식물목록이나 환경부 국가생물종목록, 국가생물다양성 정보공유체계 사이트 등을 다 찾아봐도 ‘들국화’라는 식물은 없다. 국가기관의 자료가 이처럼 다를 때는 식물 또는 생물종을 관장하는 기관의 자료를 받아들이는 게 옳다.
실상 많은 사람이 입에 올리는 ‘들국화’는 고유한 식물을 지칭하는 게 아니라, 가을철 들에서 꽃이 피는 국화과 식물을 총칭하는 일반명사로 봐야 한다. 참고로 국립수목원에서 운영하는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의 식물분류체계에 따르면, 쌍자엽식물강>초롱꽃목>국화과 안에는 100여 개가 넘는 屬이 나뉘며 각각의 속 내에 수많은 개별 종이 분류돼 있다.
이 가운데 소위 ‘들국화’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는 건 노란색 꽃이 피는 산국과 감국, 흰색 또는 연분홍색 꽃이 피는 참취와 구절초, 보라색 계열의 꽃이 피는 쑥부쟁이 종류와 개미취, 벌개미취 등등 가을에 꽃이 피는 국화과 식물종들이다. 따라서 표준 국어대사전의 ‘들국화’ 기술 내용은 “가을철 들에서 꽃이 피는 국화과 식물을 총칭하는 말” 정도로 바뀌어야 옳다.
요즘 전국의 산과 들에서 축제가 한창이다. 앞서 장황하게 말한 바와 같이 ‘들국화’라는 일반명사로 뭉뚱그려 불리는 가을꽃의 성대한 향연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중 하나인 샛노란 산국꽃이 곳곳의 들판과 산자락과 도로변에서 황금빛 성채를 쌓으며 가을의 정취를 더하고 있다.
산국은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풀로 높이 1~1.5m가량 자라며 잎은 대개 5갈래가 갈라진다. 9~10월 가지와 원줄기 끝에서 지름 1.5cm가량의 노란색 꽃이 여러 송이씩 핀다. 노란색 혀꽃부리가 바깥을 빙 두르고 안쪽에 진짜 꽃인 대롱꽃부리가 달리며 꽃에서 달콤한 향기가 난다. 이름은 산에 피는 국화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것이리라.
같은 집안에 ‘감국’이라는 식물이 있어 혼동하기 쉬운데 감국꽃은 지름이 2.5cm로 훨씬 크며 성글게 달려 구분된다. 꽃 크기를 동전으로 비교한다면 산국꽃은 50원 주화, 감국꽃은 500원 주화 크기로 그 차이가 확연하다. 꽃 색깔도 산국은 진노랑이나 감국은 연한 노란색을 띠며 산국보다 조금 늦게 핀다. 산국과 감국꽃은 차로 이용하거나 약용하며 감기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졌다. 산국꽃은 약간 쓴맛이 도는 반면, 달 甘 자가 붙은 데서 짐작할 수 있듯 감국꽃은 단맛이 난다.
머잖아 가을꽃도 지고 나면 올해 풀꽃의 한해살이는 끝나게 된다. 이들 풀꽃의 줄기는 대부분 사그라지겠지만, 여러해살이풀들은 겨우내 뿌리에 양분을 축적했다가 내년 봄 새로운 줄기를 밀어 올려 생을 이어갈 것이다. 사람이나 식물이나 한 해를 살아내는 건 결코 녹록지 않다. 기후 변화 여파에도 불구하고 올해 꿋꿋하게 제 삶을 살아낸 식물들에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
출처 : 음성신문 https://www.u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71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