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몽대기(仙夢臺記)
예천(醴泉)에서 동쪽으로 10여 리(里) 되는 곳에 가면 한 냇가에 닿는다. 그 시내는 넘실대며 구불구불 이어져 흐르는데, 깊은 곳은 매우 푸르고 낮은 곳은 맑은 파란색이었다. 시냇가는 모두 깨끗한 모래와 흰 돌로 되어 있었으며, 바람에 흩어지는 노을의 아름다운 모습이 사람의 눈에 비쳐 들어온다. 시냇물을 따라 몇 리쯤 되는 곳에 이르면, 높은 절벽이 깎아세운 듯이 서 있는데, 다시 그 벼랑을 따라 올라가면 한 정자를 볼 수 있으며 그 정자에는 ‘선몽대(仙夢臺)’라는 방(榜)이 붙어 있다.
선몽대의 좌우에는 우거진 수풀과 긴 대나무가 있는데, 시냇물에 비치는 햇빛과 돌의 색이 숲 그늘에 가리어 보일락 말락 하니, 참으로 이색적인 풍경이었다. 대개 태백산(太白山) 남쪽에서 시내와 산의 경치가 뛰어난 곳은 오로지 내성(柰城)ㆍ영천(榮川)ㆍ예천(醴泉)이 최고인데, 선몽대는 유독 그 기괴한 모양 때문에 여러 군에 이름이 났다.
하루는 아버지를 따라 약포(藥圃) 정 상국(鄭相國 명종(明宗) 때의 문신인 정탁(鄭琢))의 유상(遺像)을 배알(拜謁)하고, 길을 바꾸어 이 누대에 올랐다. 배회(徘徊)하며 바라보다가 이윽고 벽 위에 여러 시가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 중의 하나는 관찰사(觀察使)를 지내신 나의 선대 할아버지께서 일찍이 지으신 것이었다. 시판(詩板)이 깨어져 글자는 갈라지고 한쪽 구석이 떨어져 나가기도 했으나, 자구(字句)는 빠진 것이 없었다.
아버지께서 손으로 먼지를 털어내고 나에게 읽으라 하고서 말씀하시기를, “공(公)이 일찍이 영남(嶺南)에 관찰사로 내려왔을 때 이 누대에 오르신 것이다. 공이 지금부터 2백여 년 전에 사셨던 분인데 나와 네가 또 이 누대에 올라와서 즐기니, 어찌 기이한 일이 아니겠느냐.” 하셨다. 그리고는 나에게 명하여 그 시판의 시를 옮겨 본떠서 공장(工匠)에게 번각(翻刻)하고 다시 단청(丹靑)을 입혀 걸어놓게 하시고, 이윽고 나를 불러 기(記)를 쓰라고 하셨다.
출전: 한국고전번역원
仙夢臺記
醴泉之東十餘里。得一川焉。泓渟而演漾。紆餘而邐迆。深者深靑。淺者淨綠。川邊皆明沙白石。風煙妍媚。照映人目。沿流至數里。有峭壁削立。緣厓而上。得一榭焉。牓之曰仙夢之臺。臺左右皆茂林脩竹。溪光石色。隱約蔽虧。洵異境也。蓋自太白山而南。溪山之勝。唯奈城榮川醴泉爲最。而仙夢特以奇瓌名數郡。一日從家大人行。旣祗謁于藥圃鄭相國之遺像。轉而至是臺。徘徊瞻眺。旣而見壁上諸詩。其一卽吾祖觀察公所嘗題也。板壞 宇裂。偏旁或觖。而字句無闕。家君手拂塵煤。令余讀之。曰公嘗奉使嶺南。登此臺矣。公之距今且二百有餘年。吾與若又登臨爲樂。豈不奇哉。命余移摸。付工翻刻。易其繪采而懸之。旣而召余而記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