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진으로 가니 마당쉼터가 있고 기막힌 조망이 열린다.
▲원주시는 한반도의 중심부이자 강원도의 남서부로서 반도의 백두대간에 남북으로 길게 뻗은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서남쪽에 자리잡고 있어 영서지방에 속하고 동쪽은 영월군과 횡성군이서쪽은 경기도 여주시와 양평군이 남쪽은 충청북도 충주시와 제천시와 북쪽은 횡성군과 접하며 동서 길이는 41.9 Km에 남북 길이는 41.1 Km에 이르고 면적은 868.27 Km2로 강원도 면적의 5.1%에 해당한다. 행정구역은 1읍rhk 8면 alc 16동으로 이루어져 있고 지형은 태백산맥에서 갈라진 차령산맥이 시의 남동부 지역으로 뻗어 내리며 치악산의 주봉우리인 비로봉(1288m)을 중심으로 남대봉(1182m)과 삼봉(1073m) 및 향로봉(1043m) 등이 높고 험준한 산지를 이룬다.반면에 북서부 지역은 비교적 완경사를 이루며 덕고산(528m)과 수래봉(513m) 및 관모산(362m) 등이 남서로 내달아 원주분지와 산록완사면 및 낮은 구릉지대가 펼쳐지고 원주분지 중앙부에 봉산산괴가 북동쪽에서 뻗어 분지를 동서로 양분하며 봉산산록과 원주천 좌안의 범람원에 시가지가 형성되었다.하천은 치악산의 남대봉과 백운산에서 발원한 원주천이 원주 시가지를 남에서 북서쪽으로 관류하다가 호저면 옥산리에서 섬강으로 흘러들고 섬강은 부론면 흥호리에서 남한강에 합류한다. 섬강 유역에는 문막평야를 비롯하여 넓고 기름진 충적평야들이 형성되었고 지방하천은 서곡천과 일리천및 삼산천, 황둔천, 운계천, 흥양천, 법천천, 주포천, 하수남천, 원 심천 등 19개소가 있으며 총 연장은 265.24 Km에 이른다. 기후는 내륙에 위치하여 기온의 연교차가 크고 여름에는 푄(골짜기에서 불어내리는 고온 건조한 국지풍)의 영향으로 가뭄이 심하고 시를 상징하는 꽃은 장미, 나무는 은행나무, 새는 꿩이며 시청 소재지는 무실동이다.
▲등로에서 바라본 원주시 신림면(神林面): 북쪽으로 영월군 수주면(水周面)과 횡성군 안흥면(安興面), 서쪽으로 판부면(板富面), 남쪽으로 충청북도 제천시 백운면 (白雲面)과 봉양읍, 동쪽으로 영월군 주천면(酒泉面) 등에 접한다. 본래 원주군 지역으로서 금창리(金倉里)에 큰 굴이 있으므로 구을파면(仇乙破面)이라 불리다가 가리파면(加里坡面)으로 바뀌었으며, 1917년 신림리의 이름을 따서 신림면으로 개칭하였다. 치악산 (雉岳山)과 백운산(白雲山) 사이에 있어 총면적의 77.7% 이상이 산지이므로 경지는 극히 적으며 용암천(龍岩川) 유역에서 약간의 벼농사가 이루어질 뿐이고, 옥수수를 비롯하여 양배추·마늘·들깨 등의 밭농사가 중심을 이룬다. 그 밖에 석회석·플로마이트·쇄석 등의 광산이 있고, 엿·후춧가루 등의 식품공장도 있어 소득이 높다. 철도는 중앙선의 신림역이 있고, 도로는 원주∼제천 간 국도와 신림∼주천 간 지방도가 있어 교통은 편리한 편이다. 용암리(龍岩里)에 도내에서 세번째로 오래된 천주교회와 가나안 농군학교 가 있다. 문화재로는 상원사(上院寺), 상원사지 석탑 및 광배(강원유형문화재 25), 원주 용소막성당(原州龍召幕聖堂: 강원유형문화재 106), 상원사 대웅전(강원문화재자료 18), 원성 용암리(龍岩里) 석탑, 황둔리(黃屯里) 석탑 등이 있으며 이 밖에 원성 성남리(城南里)의 성황림(천연기념물 93)이 있다.
▲아카시아 군락지이며
▲매봉교 '19번국도 동물이동통로'를 건넌다.
▲동물이동통 통과 후 끝 지점에서 우측3시 방향 녹색철망 울티리 따라 간다.
▲우측으로 가며, 19번국도를 내려다본다.
▲내가 오는 줄 알고 등로의 풀을 다 제거해 놓아 걷기 편하게 만들어 놨다.
▲등로에서 바라본 원주시 판부면(板富面)의 모습: 강원도 원주시의 동남부에 위치한 면으로 금대천과 서곡천이 관내를 흐르며 원래 이곳의 지명은 단구동에 있었다고 하는 너다리의 뜻을 따서 판제면(板梯面)이라 하였다. 『1872년지방지도』와 『해동지도』에 판제면이 표시되어 있다.『여지도서』에는 판제면은 일리 이리 분이리 삼리의 4개 리를 관할하고 있다는 내용과 각 리의 위치와 호구수, 인구수가 수록되어 있고 1914년에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부흥사면의 5개 리를 병합하면서 판제면과 부흥사면의 이름을 따서 판부면이라 하였다. 부흥사면이라는 지명은 『신구대조』에 기록되어 있으며, 그것에 의하면 부흥사면(富興寺面)은 일리·분일리·이리·삼리·사리·오리의 5개 리를 관할하고 있다. 1955년 단구리와 행구리가, 1973년에 관설리와 반곡리가 원주시에 편입되었으며, 1983년 원주시 관설동 일부를 병합하였다. 1995년 도농통합으로 원주시에 통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관설동의 지명의 유래는 조선시대 중기의 성리학자인 허후의 호에서 온 것이라 전해지는데 허후의 호는 관설(觀雪)이었으며 그는 남인의 영수인 미수(眉叟) 허목과 사촌지간이었다. 그의 학문과 도덕을 흠모하여 문막에 살면서 강원감영에 근무하던 효자 황무진이 수시로 문안을 드리며 학문에 대한 토론을 했으며 친분이 두터웠다고 한다. 후일 허관설이 살던 곳이라 하여 관설의 글자를 따와서 관설동이라 했다고 하고 또 다른 설로는 관설의 원래 이름은 벌판의 논이었으며 원래는 들의 이름이었다가 자연부락 이름이 되었고 다시 동이름이 되었 다. 허후가 이 지명 볼눈을 호로 삼아 한자어로 관설이라고 하였고 이것이 관설동이라는 이름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안벌눈과 밧벌눈이 있어 유래를 명확히 밝혀주고 있는 관설동은 원주 시청에서 동남방으로 4 Km 떨어져 있으며 원주와 제천간 5번 국도의 관문이고 원주시 단구동, 반곡동, 무실동과 판부면 금대리 및 신촌리와 연접해 있다.
▲우측으로 조망이 트이고 태양열전지판도 보이고 우측으로는 원주시 관설동 방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