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꺼비바위. 청계산의 전설을 낳았다는 두꺼비바위 좌측으로 돌아간다.
▲청계산의 전설:전설에 따르면 푸른용이 산허리를 뚫고 나와 흰구름을 헤치며 하늘로 올라갔다하여 일명 “청룡산(靑龍山)”이라 부른다고도 한다.-의왕
시사-
▲우측으로는 과천 서울대공원 철조망을 우측에 끼고 걸어간다.
▲절고개: ‘청계사 뒤쪽에 있는 고개’라 해서 붙여진 지명인 모양이다. 청계사는 청계산 남쪽 태봉 자락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용주사의 말사로, 경기문화재자료 제6호로 지정되었다.《봉은본말지》에 통일신라 때 창건되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1284년(고려 충렬왕 10) 평양부원군인 조인규 (趙仁規)가 사재를 들여 중창하였고, 가문의 원찰로서 후손들이 약500년간 중창을 거듭하였고 조선의 연산군 때 도성 안의 사찰을 폐하 고 관청을 세우자 불교 쪽에서 선종의 본산으로 정해졌고 고려 말부터 조선 초까지 (李穡) 이색, (卞季良)변계량 등 당대 문인들이 즐겨 찾으며 절을 주제로 시를 지었으며 칩거했다. 경내에 신라의 석등과 부도 조각 일부가 남아 있으며, 극락보전과 종각, 삼성각, 산신각, 수 각 등 3동의 요사를 비롯해 10채의 건물이 있으며 근대 선불교의 중흥조인 경허 스님이 입 산출가하고 수행했으며, 이후 1955년 월산, 월덕, 탄성, 월탄 스님, 종상 스님 등 금오 스님 을 모시면서 가람을 수호하고 주석하신 유서 깊은 고찰이다. 경허 스님의 출가지로 경허선사의 선맥을 이은 만공, 보월, 금오, 월산 선사의 체취가 경내 곳곳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지맥은 이곳에서 접고 좌측 청계사로 탈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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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사:대한불교조계종 2교구 본사인 용주사(龍珠寺)의 말사이다. 신라시대에 창건되었으며, 대찰의 모습을 갖춘 것은 1284년(충렬왕 10) 시중 조인규(趙仁規)가 막대한 사재를 투입하여 중창하고 그의 원찰로 삼은 뒤부터이다. 그때부터 이 절에는 100명이 넘는 수도승이 상주하였다. 자손들이 여기에 그의 사당을 짓고, 전장과 노비를 두어 대대로 제사를 지냈다. 1407년(태종 7) 조정에서는 이 절을 자복사(資福寺)로 지정하고 천태종에 소속시켰으며, 1431년(세종 13) 조인규 영당을 중건하였고, 연산군이 도성 내의 사찰에 대한 폐쇄령을 내렸을 때 이 절은 봉은사(奉恩寺)를 대신하여 선종본찰(禪宗本刹)의 기능을 행하는 정법호지도량(正法護持道場)이 되었다. 광해군 때는 이 절의 소속 전장과 노비를 모두 관에 소속시켰고, 1689년(숙종 15) 3월 화재로 모든 건물이 불탔을 때 성희(性熙)가 중건하였다. 1761년(영조 37) 정조가 동궁으로 있을 때 이 절에 원당을 설치한 뒤 밤나무 3,000주를 심고 원감(園監)을 두었으며, 1798년(정조 22) 조무의(趙武毅)의 시주로 중창하였다. 1876년(고종 13) 3월 26일 실화로 수십 칸의 건물이 소실되자 4년 후인 1879년에 음곡(陰谷)이 중건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종교 탄압정책으로 겨우 명맥만을 유지하여 이어 오다가 1955년 비구니 아연(娥演)이 주지로 취임한 뒤 중창을 시작하였고, 월덕(月德) · 탄성(呑星) · 월탄(月誕) 등이 그 뜻을 이어 당우를 회복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극락보전을 비롯하여 삼성각(三聖閣) · 산신각 · 종각 · 수각(水閣) · 봉향각(奉香閣) · 대방(大房) 등이 있다. 이 중 극락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익공양식으로 처마는 이중이고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사인비구(思印比丘)가 제작한 동종이 2000년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청계사 소장 목판이 1988년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신중도가 2012년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절 입구에는 2014년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청계사사적기비(淸溪寺事蹟記碑)와 2014년 경기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청계사조정숙공사당기비(淸溪寺趙貞肅公祠堂記碑)가 있고, 사찰 주위의 계곡이 좋다. 정면 2층 누각을 지나면 정면에 아미타불이 주불이신 아미타 삼존불을 모신 극락보전이 있다. 극락보전은 주심포 건물과 다포식 건물의 중간 단계라 할 수 있는 익공식 건물이라 특이하다. 정면 3칸, 측면 2칸 건물로 처마는 이중이고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다포식 건물처럼 화려하지는 않으나 단아한 모습에 깜짝놀랐다. 익공식 주 법당이 있는 절을 처음 보는 것 같다. 극락보전을 바라보고 왼쪽에는 영산전이 있고 오른쪽에는 지장전이 있다. 극락보전과 지장전 사이 뒤편에 삼성각이 있다. 지장전 오른쪽에는 거대한 와불이 모셔져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신 대웅전은 보이지 않는다. 와불을 모셨기 떄문이리라. 지장전 앞에는 2000년에 보물로 지정된 동종이 있다. 이 동종은 사인 비구(思印比丘)가 제작한 것이라는 안내문이 있다. 승려 사인(思印)이 1701년에 제자들과 함께 만든 종이라고 한다. 종의 허리에는 중국에서 영향을 받은 듯한 2줄의 굵은 횡선이 둘러져 있고, 그 아래로 명문이 남아 있어 만든 사람과 제작 시기를 알 수 있다. 18세기의 종의 형태를 잘 보여주는 것으로 사인비구가 한국 전통형 뿐아니라 이처럼 중국종 양식을 따른 작품도 제작했음을 보여주는 자료이다.(출처: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 청계사 동종) 청계사에서는 최근 2000년 10월에는 극락보전에 봉안된 아미타삼존불 가운데 관음보살상의 왼쪽 눈썹 주변에 우담바라 꽃이 피어 세간에 큰 화제가 되었다. 이 우담바라는 높이 1cm의 작은 크기로 모두 21송이가 피었으며, 극락보전에 삼존불 왼쪽에 사진이 걸려있다. 청계사 홈페이지 사찰 소개란에 있는 사진을 여기에 옮겨 올린다.
▲청계산 공영주차장에서 10번 버스를 타고 인덕원역1번 출구에서 하차하여 4호선 전철-금정역-수원역 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