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의정을 사직하는 상소辭右議政疏〕
3월 6일○2월 25일 이조 판서에서 상신에 제수되었다. 이날 상소하여 사직하였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삼가 아룁니다. 국가에서 관직 제도를 성대하게 갖추어 등급이 더욱 치밀해졌는데, 백관(百官)은 육판서(六判書)로 귀결되고, 육판서를 거쳐 한 자리에 의해 총괄됩니다. 그 한 자리에는 오직 적임자를 쓰되 인원을 구비할 필요는 없으며, 그 종류가 점점 줄어들수록 그 책임져야 할 범위는 자연히 넓어집니다. 그러므로 덕이 부족하고 재주가 모자란 자는 차지할 수 없고 인망(人望)이 별로 없고 자질이 부족한 사람은 감히 끼일 수가 없으니, 이는 참으로 분수에 넘치는 일을 맡았다가 그르칠까 봐 근심스럽고, 나라를 위태롭게 하고 신세를 망치는 화가 닥치기 때문입니다. 소신은 덕과 재주가 본래 한 가지 일도 칭할 만한 것이 없으니, 인망이나 자질이나 어찌 몇 년간 쌓인 것이 있겠습니까. 다만 헛된 명성을 훔쳐 얻어 특별한 은혜를 욕되게 하여 여러 번 화요직(華要職)을 맡았으니 완전히 꿈을 꾼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데 다시 정승에 제수되었으니, 이 무슨 거조란 말입니까. 참으로 이른바 정오(鄭五)가 재상이 되었으니, 천하의 일을 알 만하다고 한 것입니다. 제수하는 문서가 한번 내리자 신은 처음에는 의심하였고, 중간에는 놀랐고, 끝내는 괴이하여 웃었습니다. 우려할 겨를도 없다가 당황스러운 마음이 겨우 진정되자 그제야 두려운 마음이 생겨났습니다.
삼가 생각건대 중서(中書 의정부)에서 복상(卜相)할 때 여러 사람의 뜻을 묻지 않고, 성상께서 낙점할 때 누가 정승의 직책을 맡을 수 있는지 묻지 않으셨으니, 어찌 모두가 바라보는 부서가 도리어 욕이 모이는 곳이 되게 할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두 대감을 아무 이유 없이 번갈아 면직한 것도 이미 물정(物情)에 어긋나는데 저 같은 자가 분수에 넘치게 차서를 뛰어넘어 높은 지위를 차지하니, 더욱 여론을 놀라게 할 일입니다. 지금 천지에서 발생하는 이변(異變)이 사서(史書)에서 끊이지 않고, 세속의 더러움과 변경(邊境)의 근심이 계속해서 역보(驛報)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위로는 임금이 의지할 수 있도록 모시고 아래로는 백성의 기대에 부응해야 하는 직책을 그 누가 담당할 수 있겠습니까. 또한 책임이 지극하다 하겠습니다. 신이 중형을 받는 것은 전혀 돌아볼 것도 없거니와 혹 나라가 망하기라도 하면 전혀 어찌해 볼 수가 없게 되니, 이것이 신이 엎드려 일어나지 않고 오래도록 어찌할 바를 모르는 이유입니다.
돌아보건대 신이 임금을 섬기는 것은 자식이 아버지를 받드는 것과 같으니, 오직 동서남북 어디든 따르는 것이 바로 천지와 고금의 변치 않는 도리입니다. 신은 미천한 데서 우뚝 일어나 성상의 은혜를 곡진히 입었으니, 급히 달려가 사은하고 바로 간절한 심정을 아뢰어야 참으로 마땅합니다. 그런데도 부끄럽고 위축되어 서성이며 가만히 있으면서 밤낮으로 애를 태우다 하는 일 없이 열흘이나 보냈으니, 상정(常情)으로 헤아려 볼 때 실로 큰 의리에 어긋납니다. 그러나 신하로서의 분의(分義)로 보면 또한 반드시 진퇴를 신중히 해야 합니다. 가령 은명(恩命)에 사은하고자 반열에 나아간 뒤 제수받고는 곧바로 사직하거나 사직해 놓고 다시 제수받는다면 이는 의리에 부합하지 않으니, 사정상 더욱 쓰이기 어려울 것입니다.
또 어찌 감히 취해서는 안 될 명성을 가져다 걸맞지도 않은 몸에 더하겠습니까. 신이 비록 지극히 어리석지만 스스로를 매우 잘 알고 있습니다. 차라리 명을 어기는 죄를 지을지언정 차마 요행으로 벼슬길에 나아가는 죄에 빠질 수는 없습니다. 참으로 바로 봉장(封章)을 올려 불쌍히 여겨 살펴 주시기를 바라는 것만 한 것이 없으니, 조정과 사방의 사람들이 불초한 자가 하루라도 그 자리를 훔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하고 장차 하루아침에 관복을 뺏기는 것을 보게 하는 것이 옳습니다.
아, 높은 하늘과 두터운 땅처럼 베풀어 주시는 은혜를 어찌 잔약하고 보잘것없는 제가 피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공조(公朝)에서 벼슬과 상을 내리는 일의 엄중함과 개인적인 의리의 편안함이 서로 상충하는 부분이 있어 어떤 것이 옳은지를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신의 미천함을 헤아리지 않고 우러러 천둥 같은 위엄을 저촉합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특별히 마음을 돌려 속히 명을 거두고, 이 시대의 선비를 널리 구하여 그들과 천위(天位)를 함께하신다면 어리석은 신이 몽매하여 분의를 저버리는 재앙을 면할 뿐만 아니라 실로 성조(聖朝)에서도 명기(名器)를 함부로 쓴다는 누를 입는 일도 없을 것이니, 나라에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신은 하늘을 우러르고 성상을 바라보며 두려운 마음으로 대죄(待罪)하는 지극한 심정을 가눌 수 없습니다. 삼가 죽음을 무릅쓰고 아룁니다.
辭右議政疏 三月初六日○二月二十五日。由吏判拜相。至是日上疏辭。不允。
伏以國家建官旣盛。列級愈密。自百而歸之六。由六而總之一。一惟其人。人不必備。厥類漸約。爲責自廣。是故。德歉才蹇者不得處。望輕資淺者不敢仄。良以負乘折覆之憂至。而危國亡身之禍及也。小臣之德之才。素無一事可稱。以望以資。焉有數年之蓄。但爲盜取虛名。辱誤殊恩。累躐華要。一似夢寐。乃復經授丞揆。此是何等擧措。眞所謂鄭五作宰相。天下事可知者也。自除目一下。臣始而疑。中而驚。卒自怪笑。不遑憂慮。惝怳才定。悸惕方生。竊念中書卜擬。匪詢僉諧。聖筆點過。莫申疇若。豈容使具瞻之府。乃反爲聚罵之地乎。況二台無故迭免。已乖物情。孤蹤 非分超據。彌駭輿聽。今天變地異。不絶史書。俗汚邊虞。相繼驛報。其如上承主倚。下係民望。爲誰尸之。亦旣極矣。臣其刑剭。萬不足卹。邦或傾敗。一無可爲。此臣所以伏而不興。久而無措者也。顧以臣事君。猶子奉父。惟東西南北是從。乃天地古今之經。若臣崛起賤迹。曲荷聖造。正宜急趨謝恩。輒仍祈懇。而乃悚恧縮首。盤桓斂足。思焦晝夜。坐涉旬日。若揆以常情。實戾於大義。然而臣子之分。亦必進退惟謹。苟欲拜命。是已就列。受而旋辭。辭而復受。蓋其義旣無所適。則恐其情益難爲用。又安敢獵非有之名。加不稱之躬哉。臣雖至愚。自知甚明。無寧伏違慢之辜。不忍陷僥冒之辟。誠不若直貢封章。冀蒙矜察。使朝廷四方。有以知不肖者不得一日而竊其位。將見終朝而褫其服。可也。嗚呼。惟隆天厚地之所施。豈孱軀幺命之可避。徒以公朝爵賞之重。私心義理之安。交有所妨。未見或可。所以不量螻蟻之微。仰觸雷霆之威。伏願殿下特回睿鑑。亟寢成命。旁求時彦。與共天位。則不惟愚臣免昧犯分義之殃。實亦聖朝無輕用名器之累。國家幸甚。臣不勝瞻天望聖危懼俟罪之至。謹昧死以聞。
[주1] 정오(鄭五)가 …… 것 : 걸맞지 않은 지위에 오른 것을 걱정하는 말이다. 당(唐)나라 정계(鄭綮)가 말을 생략하고 압축해서 쓰는 헐후체(歇後體) 시를 곧잘 지어 당시의 일을 풍자하곤 하였는데, 환관이 그의 시를 소종(昭宗) 앞에서 암송하자 소종은 가슴속에 품은 뜻을 다 발휘하지 못해서일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정계에게 관직을 제수하였다. 이에 종척(宗戚)들이 와서 경축하니, 정계가 머리를 긁으며 말하기를 “헐후시를 쓴 정오가 재상이 되다니 일이 어찌 돌아가는지 알 만하다.”라고 하였다. 《舊唐書 鄭綮列傳》 정오는 정계 자신을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