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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문의(論語問疑)
학이(學而)
위인지본(爲仁之本)
이 인자(仁者)는 아마도 포사(包四)의 인(仁)을 전언(專言)한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제(弟)는 마땅히 의(義)에 속할 것이니 어찌 인(仁)이 되겠는가?
충신위전습지본(忠信爲傳習之本)
남을 위(爲)하여 꾀하고 붕우(朋友)로 더불어 사귀는 것은 전(傳)하고 습(習)함에 비(比)하면 아마 조금 경(輕)하며 또 이후의 일이므로 근본이라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제자입즉효(弟子入則孝)
제자(弟子)는 소자(小子)라는 칭(稱)과 같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만일 제(弟)가 되고 자(子)가 되면 ‘근이신(謹而信 삼가고 믿음)’ 이하가 어찌 전혀 자(子)된 자에 속하는 것이랴?
현현역색장(賢賢易色章)
요씨(饒氏)가 이르기를, “현현(賢賢)을 먼저 놓는 것은 선을 좋아하는 정성이 있어야 아래 세 가지 일을 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아마도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니, 반드시 자세히 설명을 해 줄 필요가 없다. 만약 이같이 말한다면 상장(上章)에 부자(夫子)가 친인(親仁)과 학문(學文)을 말한 것이 어째서 효제근신(孝悌謹信)의 뒤에 있는가?
십세가지장(十世可知章)
자장(子張)의 물음은 십세(十世) 후의 치란흥망(治亂興亡)을 가리킨 것 같은데, 공자(孔子)는 다만 예(禮)의 손익(損益)으로써 답(答)을 했으니 무슨 까닭인가, 또, ‘백세가지(百世可知)’라 하였으니, 그러면 진ㆍ한(秦漢) 이후 지금까지 수천여 년에 그 혹 손(損)하고 혹 익(益)할 것을 부자(夫子) 또한 이미 그 아무 세대에는 이렇고, 아무 때에는 저렇다고 미리 알았던 것인가?
술이(述而)
성여인오기감장(聖與仁吾豈敢章) 아래 조씨(晁氏) 주(註) 운운
과연 이 말 같다면 이는 공자가 속으로, 실은 인성에 자처(自處)하고 거짓 사양함이 아니며, 또 거짓 사양하는 가운데 또 미사(微辭)를 하여 스스로 인성(仁聖)에 거(居)함이니, 성인의 마음이 어찌 이같이 간사하겠는가? 이른바 ‘성(聖)과 인(仁)으로 하여금 허기(虛器)가 되게 하여 사람이 마침내 이르지 못할 것으로 만든다.’ 함은 더욱 의심스럽다. 이 같으면 성인의 마음에 곧 스스로 생각하기를, ‘나의 덕(德)이 이미 지극하여 사람이 이에서 더할 수 없으리니 내가 거(居)하지 않고 누가 능히 거하리요’ 함이니, 어찌 그럴 수 있으랴?
태백(泰伯)
실로 처음 상(商)을 멸하려고 했다는 뜻이 의심스럽다. 이때를 당하여 상도(商道)가 비록 쇠했더라도 오히려 현군(賢君)이 있어 대대로 일어났으니, 주(周)가 비록 강대하고 창(昌)이 비록 성덕(聖德)이 있다 하더라도 주(紂)의 악(惡)이 이렇게 심하지 않았더라면 왕업(王業)이 결코 일어나지 못하였을 것이다. 고공(古公)이 어찌 미리 주(紂)가 있을 줄 알고 이 뜻을 두었으랴. 또 적자(嫡子)를 세움은 만세(萬世)의 상도(常道)요 현자(賢子)를 세움은 일시의 권도(權道)이다. 이제 태백(泰伯)의 덕(德)이 왕계(王季)에 못지 않고 상도(商道)가 비록 쇠했다 하나, 그 반드시 망(亡)하리라고 볼 수는 없는데 이에 ‘왕업(王業)을 일으킬 자는 창(昌)에게 있다.’고 하여, 태백(泰伯)을 버리고 왕계(王季)를 세우니 과연 무슨 뜻인가? 만일 ‘천명(天命)의 당연’이라 한다면 대저 이른바 천명이란 것이 인사(人事)의 자연(自然)한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태백(泰伯)의 마땅히 서야 하는데, 경(經)을 지키고 권(權)을 모르는 것과 문왕(文王)의 성덕(聖德)으로 계(季)에 나고 장(長)으로 나지 않았다는 것을 보면, 천명(天命)이 주(周)의 왕업을 일으키려고 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지 않은가?
고공(古公)이 병들어 죽게 되니, 계력(季歷)으로 하여금 나라를 태백(泰伯)에게 사양케 하다.
이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만일 태백이 적자(嫡子)로서 마땅히 세워야 할 것을 이런 허식(虛飾)의 양국(讓國)을 꾸며 사람의 말을 해명하려고 한다면 이는 중인(中人) 이하도 부끄러워할 바이다. 만일 실로 폐적(廢嫡)할 뜻이 없었다고 한다면 어찌하여 나라를 전(傳)하여 창(昌)에게 미치게 해서 상(商)을 멸하고자 하였으며, 태백과 중옹(仲雍)이 그런 눈치를 채고 형만(荊蠻)에 도망하여 이적(夷狄)이 되어도 이를 금(禁)하지 않았는가? 알 수 없는 일이 다.
군자독어친장(君子篤於親章) 주(註)에, 장자왈(張子曰) 운운
이른바 선후(先後)란 말이 위 일절(一節)에 대하여 잘 어울리지 아니하여 어느 것이 선이 되고 어느 것이 후가 되어야 할 것인지 알 수 없다. 이는 대개 사덕(四德)을 행(行)하고 절문(節文)이 없으면 반드시 사자(四者)의 폐(弊)가 있으므로 사람으로 하여금 이 덕(德)을 가지면서 반드시 이를 조절케 하고저 함이요, 처음부터 이를 먼저하고 저를 뒤에 한다는 뜻은 없었다. 어찌 이장(二章)을 통합(統合)하여 무리하게 끌어대려고 한 뜻이겠는가?
소귀호도장(所貴乎道章) 주(註)에 정자왈동용모(程子曰動容貌) 운운
‘행동이 예(禮)에 맞는다 [周旋中禮]’ 함은 동(動)을 말함이고, ‘망녕되게 하지 않는다[不妄]’ 함은 정(正)을 말함이다. ‘정이 중(中)으로 말미암아 나온다[正由中出]’ 함은 출(出)을 말함인가? 다만 동(動) 자는 말할 수 있겠으나, 출(出) 자는 매우 통치 않는다. 사(邪)가 중으로 말미암아 출함은 출이 아닌가?
수기위정정지본(修己爲政政之本)
군자(君子)는 어찌 위(位)로써 말하는 것일까? 이에서 무엇 때문에 정치(政治)하는 데까지 언급하겠는가?
이능문장(以能問章) 주(註)에 불필득위재기 실위재인(不必得爲在己失爲在人)
‘범(犯)하고 계교(計較)치 않는다[犯而不校]’ 함은 맹자(孟子)의 횡역(橫逆)의 뜻과 같은 것이 아닌가 한다. 어찌 득실(得失)을 알 수 없다 해서 그러할 수 있는가?
탁고장(托孤章) 주(註)에 ‘절조가 이같아야 가히 군자라 하겠다.’
요씨(饒氏)의 설(說)도 근리(近理)하다. 그러나 주자(朱子)의 ‘덕(德)이 있고, 재(才)가 없으면 용(用)이 되지 못하니, 어찌 족히 군자가 되겠는가?’라 한 말과 같지 않으니 의심스럽다.
입어례장(立於禮章) 주(註)에 ‘가히 사람의 기부(肌膚)의 모임과 근해의 묶음을 든든히 한다[可以固人肌膚之會筋骸之束].’
사람이 능히 예(禮)를 행하면 살[肌膚]과 힘줄[筋骸]이 절로 튼튼해진다. 그러나 이것은 혈기(血氣)와 체발(體髮)의 견강(堅强)함에 지나지 않을 뿐이니, 음식을 조절하고 약(藥)을 먹고 생(生)을 양(養)하고 기(氣)를 도(導)하는 것도 또한 능할 수 있다. 예의 공효(功效)가 어찌 이에만 그치는 것이겠는가?
도가 있으면 나타나고 도가 없으면 숨는다[有道卽見無道卽隱].
공맹(孔孟)의 시대는 어지럽지 않은 것이 아닌데, 철환(轍環)하고 역빙(歷騁)하여 그 숨는 것을 볼 수 없으니, 성현(聖賢)으로서 당세의 책임이 있는 자는 반드시 그렇지 않은 것이 아니겠는가?
불재기위장(不在其位章)에 ‘군대부(君大夫)가 물으면 고함은 있다[君大夫問而告卽有].’
이천(伊川)은 사마공(司馬公) 급사중(給事中)의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아마 대답 못할 것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또 임하(林下)에 있는 몸으로서는 소명(召命)에 응치 않았으면 비록 물어도 대할 수 없을 것이다.
위령공(衛靈公)
지덕자선장(知德者鮮章) 주에 ‘의심컨대, 모두 일시(一時)의 말이다[疑皆一時之言].’
‘많이 배워 기억한다.’가 상하(上下)의 문의(文義)에 서로 잘 맞지 않는 것 같다.
계씨(季氏)
방군지처장(邦君之妻章)에 채씨(蔡氏)의 말로서 위령공편말(衛靈公篇末)에 부견(附見)된 것 운운
이것은 위령공편말이 아니라 계씨편말(季氏篇末)이니 잘 살피지 못한 것 같다. 또 남자(南子)로 인하여 발(發)하였다 함은 천착인 듯하다.
양화(陽貨)
욕견공자장(欲見孔子章)
양화(陽貨)는 역신(逆臣)이다. 공자(孔子)는 그 주는 것을 받지 않아도 된다. 저는 계씨(季氏)의 가신(家臣)으로 대부(大夫)를 참칭(僣稱)하는 것인데 반드시 대부(大夫)의 예(禮)로써 대(待)하여 찾아가 절할 필요가 무엇인가?
양씨왈양웅(揚氏曰揚雄) 운운
양씨(揚氏)의 말이 물론 바르다. 그러나 웅(雄)의 설(說)도 너그럽게 보면 이(理)에 해롭지 않다. 대개 남자(南子)는 음란(淫亂)하고 양호(陽虎)는 악역(惡逆)인즉, 마땅히 보지 못할 것을 보고 마땅히 공경하지 않을 것을 공경하는 것이니, 그 몸을 굴(詘)했다 하지 않겠는가? 몸이 굴했더라도 도가 굴해야 하는 것이면 도(道)가 이에 펴지는 것이고, 그 몸도 참으로 굴함이 아니다. 도가 펴지는 이상 몸이 굴하고 펴지고 함은 논할 바가 아니다. 호씨(胡氏)의 이른바 ‘몸과 도는 두 가지 물’이란 말은 지나친 듯하다.
공산필힐(公山佛肹)은 양화(陽貨)와 다름이 없는데 부자(夫子)가 가려고 하다가 안 갔으니 무슨 까닭인가?
오기위동주호(吾其爲東周乎)
공산(公山)이 비록 부자를 써 준다 해도 그는 계씨(季氏)의 가신(家臣)인데, 어떻게 동주(東周)의 치(治)를 일으킨다는 것인가? 어찌 반읍(叛邑)에 의거하여 왕업(王業)을 일으킬 자가 있겠는가?
자장문인장(子張問仁章)
공자(孔子)는 일찍이 말하기를, ‘먼저 어려움을 하고 뒤에 얻는다.’고 하였는데, 이 장(章)과 귀인무원(歸仁無怨) 같은 것에 있어서 반드시 그 효(效)를 말함은 어찌된 일인가?
유비욕견장(孺悲欲見章)의 소주(小註)에 장명자(將命者)로 하여금 듣게 한다는 남헌(南軒)의 말.
이것은 아마도 유비(孺悲)로 하여금 듣게 한다는 말일 것이다. 만일 ‘심부름 온 사람[將命者]’이라면 어찌 그 노래를 기다린 후에 그 병이 아님을 알겠는가?
미자(微子)
아반간장(亞飯干章)의 소주(小註) 제씨(齊氏) 주(註)에 ‘공자(孔子)가 악(樂)을 바로잡고 그 일(一)을 버림.’
공자는 그때 위(位)에 있지 않았으니, 조정의 예(禮)를 어찌 버리겠는가? ‘그 옛적의 참람(僣濫)함을 보인 것이다 …… ’는 더욱 천착한 말이다. 이것은 아마도 노(魯)가 사반(四飯)의 예(禮)를 참용(僣用)하였는데, 일반(一飯)을 말하지 않은 것은 일반의 관(官)은 피난(避亂)한 일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성인(聖人)의 공화(功化)가 크다지만 어찌 한 사람도 화(化)하지 못하는 자가 없다 할 수 있겠는가?
자장(子張)
선전후권장(先傳後倦章)의 주(註)에 ‘요차변시철상철하지도(了此便是徹上徹下之道)
요자(了字)는 상구(上句)에 붙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호씨(胡氏)가 이르기를, ‘요차(了此) …… ’하였는데, 이같이 하면 요(了) 자는 요당(了當)의 뜻이 되는 것인데, 무슨 일을 요당한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불가분본말위양단사(不可分本末爲兩端事)
본말(本末)을 나눠 양단(兩段)으로 하면 안 된다 했는데 이(理)로 말하면 그렇다. 그러나 일[事]은 근본이 있고 끝이 있으니 두 끝[兩端]이 아니고 무엇인가?
태백(泰伯)
광이불직(狂而不直)
소주(小註)에 ‘광견(狂狷)의 광(狂)’이라 해 놓고, 무지(無知)ㆍ무능(無能)을 예로 들었으니, 광망(狂妄)의 광이라고 보아야 마땅할 것이다.
자한(子罕)
절사장(絶四章)에 ‘의(意)는 사의(私意)이다.’
사의(私意)라 함은 뜻을 두고 한다는 말이요, 악념(惡念)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만일 악념이라 한다면 성인(聖人)의 악념이 없음을 어찌 말을 기다려 알 것인가?
자위반노장(自衛反魯章)
이미 그 위(位)에 있지 않으니, 조묘(朝廟)의 악(樂)을 어떻게 바로잡겠는가? 사지(師摯)가 공자(孔子)에게 배워서 공자의 뜻을 이룬다는 것인가? 아송(雅頌)이 처소(處所)를 얻었다 함은 이 시(詩)를 산(刪)한 일이다. 악(樂)이 바로잡힘과 같은 일이 된다는 말인가?
미견호덕장(未見好德章)에 ‘공자(孔子)가 위(衛)에 거(居)하다.’
부인(夫人)과 더불어 동거(同車)함을 보면 이에 앞서 영공(靈公)의 부덕(不德)함을 알 수 있는데, 어째서 기미를 보아 행동을 하지 못하고 차승(次乘)의 욕(辱)을 자취(自取)했으며, 또 절량(絶糧)의 행(行)이 어째서 동거(同車)의 추행(醜行)에 있지 않고 문진(問陣) 때에 있었는가?
향당(鄕黨)
입공문장(入公門章)에, ‘위(位)는 군(君)의 허위(虛位)이다.’
상장(上章)의 ‘군이 조(朝)를 보지 않은 때[君未視朝]’라 함은 하문(下文)에, ‘군재(君在)’란 군이 있다는 말로써 알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다만 ‘옷자락을 거둬들고 당(堂)에 오른다[攝齊升堂]’를 말했을 뿐이요, 따로 임금이 있음을 말하지 않았고, 또, 간간은은(侃侃誾誾)과 발여확여(勃如躩如)는 기상(氣像)이 같지 않다. 그러면 여기에 반드시 허위(虛位)라 함은 웬일인가? 만일 ‘과(過)라 하니 허(虛)임을 알겠다.’ 한다면 더욱 알 수 없다. 비록 군이 자리에 있다 하더라도 어찌 지나가는 때가 없을 것인가?
조씨(晁氏)가 이르기를, ‘사빈집규(使擯執圭) …… ’
풍ㆍ요(馮饒) 양씨 설(說)의 매우 명백하고 조씨의 설은 극히 미안하다. 그런데 집주(集註)에 어째서 채입(採入)하였는지 알 수 없다.
소주(小註)에, ‘독거(獨居) …… ’
홀로 거(居)하는 데 어찌 말이 있겠는가?
군사식장(君賜食章)의 소주(小註)에 ‘부자이고(夫子已孤) …… ’
예(禮)에 맛보고 절하여 감사하는 법이니 비록 친(親)이 있더라도 먼저 맛보아야 할 것이다.
구분장(廐焚章)의 소주(小註) 형ㆍ오(邢吳)의 양설(兩說)이 ‘가구(家廐)이고 국구(國廐)가 아니다. …… ’
기자(記者)의 뜻은 다만 성인(聖人)이 사람을 귀히 여기고 축(畜)을 천하게 여기는 생각만을 중요시하여 마굿간[廐]이 탓다고 말하고, 그것이 가사(家私)의 것인지 나라의 것인지 말하지 않았다. 후인들이 반드시 사가의 것이냐 나라의 것이냐 하고 말함은 이미 지리(支離)에 섭(涉)한다. 또 형씨(邢氏)의 이른바 ‘퇴조(退朝)함으로써 알았다.’ 함은 이것으로써 나라의 구(廐)임을 증명하면 가하나 사가의 구(廐)임을 증명하면 잘못이다. 오씨(吳氏)의 이른바 ‘노마(路馬) …… ’도 또한 미안(未安)하다.
거불안장(居不安章) 소주(小註)에 ‘봉제사 견빈객 용모위의(奉祭祀見賓客容貌威儀) …… ’
이것은 용(容) 자(字)의 뜻을 잘못 알았다. 풍씨(馮氏)가 용의(容儀)에 일삼음이 하나도 없다는 말이 옳은 것 같다.
선진(先進)
문사귀신장(問事鬼神章)의 주(註)에 ‘유명(幽明)과 시종(始終)이 본래 두 이치가 없다.’
사람 섬김에 성경(誠敬)을 다하면 반드시 귀신 섬김에 성경(誠敬)을 다하게 되고, 기(氣)가 뫃여 삶을 알면 기가 흩어져 죽음을 알게 되나니, 이것이 두 이치가 없다는 뜻이다.
소주(小註)에 보씨(輔氏)가 ‘일(一)이요 이(二)라 …… ’
온당(穩當)치 못한 것 같다. 기(氣)가 이(二)이고 이(理)가 일(一)인 것은 물(物)이 모두 그러하니, 어찌 반드시 사생과 인귀(人鬼)에 있어서만 그러하랴? 사인(事人)과 사귀(事鬼)가 비록 이(二)이나 성경(誠敬)은 일(一)이며, 사(死)와 생(生)이 비록 이(二)이나 기(氣)의 취산(聚散)함은 일(一)이다.
자로강강(子路剛强)하여 그 사(死)를 얻지 못할 이(理)가 있다.
‘행행(行行)’은 살벌(殺伐)의 기(氣)가 있으니, 역시 그 기상(氣象)으로써 말한 것 같다.
소주(小註)에 요씨(饒氏)가 이르기를, ‘낙(樂) 자는 마침내 말하기 어렵다. …… ’
이것은 온당치 못한 것 같다. 행행(行行)이 비록 중화(中和)는 부족(不足)하나, 강용(剛勇)한 기가 늠연(凜然)하여 범(犯)할 수 없는 것이 있으니, 이것이 즐거울 만한 일이 아닌가? 주자(朱子)가 운운(云云)했다는 것도 반드시 그렇지 않을 것이다.
안연(顔淵)
문인장(問仁章)의 소주(小註)에 각헌 채씨(覺軒蔡氏)가 말한 ‘성성지야위 철인지동귀(聖性之也謂哲人比同歸) …… ’
이 말은 의심스럽다. 철인(哲人)이 과연(果然) 성(性)대로 성지(性之)하는 성(聖)이라면 어찌 성(誠)대로 하는 공부(工夫)가 있겠는가? 또 그 뜻이 철인 지사(哲人志士)가 비록 극념(克念)하고 전긍(戰兢)하는 차별은 있으나 그 성공(成功)에 미쳐서는 일치(一致)이 동귀(同歸)한다는 것인데, 이는 비단 문리(文理)가 간회(艱晦)할 뿐 아니라, 동잠(動箴)의 뜻에 전혀 긴요치 않다. 내 생각에는 철인지사(哲人志士)가 비록 대소(大小)와 생숙(生熟)의 차별은 있으나 요는 모두 이 안ㆍ증(顔曾) 이하의 사람이니, 이른바 ‘성현(聖賢)과 같이 돌아간다.’ 함은 사람이 능히 조차(造次)라도 극념(克念)하고 전긍(戰兢)하여 자지(自持)를 하면 습(習)이 성(性)과 같이 이루어지며 성현(聖賢)과 같이 된다는 뜻이라고 본다.
중궁(仲弓)이 계씨(季氏)의 재(宰)가 되다.
계씨는 국적(國賊)이다. 부자(夫子)가 어찌하여 그 벼슬의 부당함을 책(責)하지 않고 위정(爲政)의 도(道)만을 일러 주었는가? 이 같으면 후세에 권귀(權貴)에 의탁하여 진취(進取)를 모도하는 자가 비록 그 고(固)ㆍ필(必)의 과오를 면치 못해도 타인(他人)은 뭇 사람이 사람에게 바라는 도리로써 반드시 그를 심책(深責)할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닌가?
자로(子路)
어언 무소구이이의(於言毋所苟而已矣)
말이 구차함이 없으면 이름에 있어서도 구차함이 없음을 알 수 있고, 행(行)에 있어서도 구차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명(名)과 행에 미치지 않고 다만 ‘말이 구차함이 없다.’고만 말했던 것이다.
자적위장(子適衛章)의 주(註)에, ‘삼사(三事)로써 부치다.’
서(庶)와 부(富)와 교(敎)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헌문(憲問)
현자피세장(賢者辟世章) 소주(小註)의, “호운봉(胡雲峰) 말에 ‘천하(天下)가 크고 방국(邦國)이 작다 …… ’”
이는 정자(程子)의 뜻을 잘못 안 것 같다.
왈금지성인(曰今之成人) 운운
호씨(胡氏)의 설(說)이 나은 것 같다. 만일 부자(夫子)의 말이라면 이는 한갓 그 이미 능한 것으로써 번거로이 일러줌이니, 어찌 나아가 날로 새롭게 하는 소이가 되겠는가? 그렇지 않으면 이는 지금 사람들이 소성(小成)에 만족해함을 탄(歎)하여 자로(子路)를 격려해 주는 것인가?
신문ㆍ하궤(晨門荷蕢)의 무리가 비록 성인(聖人)의 마음을 모르나 그 출처(出處)는 ‘나라가 무도(無道)한 때엔 숨는다.’는 뜻에 합한다. 성인(聖人)에 미치지 못하는 자는 마땅히 신문(晨門)과 하궤(荷蕢)를 배워야 할 것이 아닌가?
성중 지유인의예지(性中只有仁義禮智)
그윽이 생각건대, 성은 물(物)의 법칙이요, 중리(衆理)의 총명(摠名)이다. 그 중에서 나누어 말하면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이름이 있게 된 것이니, 이 4자(字)로써 만선(萬善)이 족(足)하다. 그러면 성중(性中)에 어찌 일찍이 효제(孝弟)가 없겠는가? 진실로 효제가 없다면 무릇 사람의 만선(萬善)이 모두 성분(性分)의 것이 아니다. 이제 가령 만선(萬善)으로써 각각 만선에 돌린다면 이른바 인의예지란 것은 거의 눈금[星] 없는 저울에 가깝지 않겠는가?
‘교언 영색(巧言令色)이 인(仁)함이 적다 …… ’
‘상(上)을 범(犯)하는 자 적다.’ 함은 이미 상장(上章)의 어법(語法)이 있었은즉 여기에서 유독 그것을 성인의 박절(迫切)하지 않은 말로 돌리는 것은 온당치 못한 것 같다. 대저 성인(聖人)의 말이란 모두 박절하지 않은 것이나 이런 사(邪)와 정(正)의 큰 분별에 있어서는 이같이 늘어지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 사욕교(詞欲巧)니, 영의(令儀)니, 영색(令色)이니 하는 고래의 문자(文字)가 절로 근거할 것이 있는데, 그것을 반드시 치우치게 ‘꾸며서 사람을 기쁘게 한다.’는 뜻으로만 해석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교언 영색(巧言令色)의 인(仁) 아님을 알면 인을 알리라.
꾸며서 사람을 기쁘게 한다면 이는 인욕(人欲)을 따르고 근본을 잊어버리는 것이니, 그 인이 아님을 알기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인은 진실로 알기 쉬운 것이 아니다. 정자(程子)의 뜻이 과연 어디에 있는가?
충신(忠信)이 전습(傳習)의 본(本)이 된다.
여기 충신이라 한 것은 다만 ‘사람을 위하여 도모함’과 붕우와 더불어 사귐에 대하여 말한 것인즉, 전습의 본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또 증자(曾子)의 뜻은 다만 이 세 가지로써 인도(人道)의 급무(急務)를 삼았을 뿐이니, 그 중에서 본말을 분석하는 것은 증자의 본의가 아닐 것이다.
경(敬)은 주일무적(主一無適)을 이름이다.
그윽이 생각건대, 주일무적은 그것으로써 경의 뜻을 다하지 못하고, 배우기에 의거할 데가 없다. 또 엄공인외(嚴恭寅畏)로써 먼저 하지 않고 한갓 주일무적에만 일삼으면 탐간착응(耽看錯應)의 병폐에 가깝지 않겠는가? 내 생각에는 능히 경(敬)하는 자는 주일무적할 수 있지만, 주일무적은 족(足)히 써 경(敬)을 말할 수 없다.
위정(爲政)에 미급(未及)하다 운운
절용(節用)하고 사민(使民)함이 위정이 아니고 무엇인가?
오자(五者)가 반복(反復)하여 서로 인(因)함 운운
오자(五者)에서 그 한 가지를 폐(廢)해도 정(政)하는 소이(所以)가 아니다. 만일 반복(反復)하여 서로 인하면 마침내 그 확연(確然)히 바꿀 수 없음을 보지 못하게 되고 차제(次第)와 완급(緩急)이 일을 따라 달라지는 것인데, 반드시 이같이 얼키고 감기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 일을 익히지 않으므로 위태(危殆)하고 편안치 않다.
학(學)은 본디 지행(知行)을 겸(兼)하여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일을 익히지 않았다고 하면 여기 이른바 학은 전혀 행(行)으로써 말하는 것인가? 행하고 마음에 구하지 않으면 무지(無知)하게, 망작(妄作)하게 되는 것이니 그 허물이 혼망(昏罔)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생각하고 그 일을 익히지 않으면 이루는 바가 없을 뿐이고, 악(惡)이 될 것까지는 이르지 않을 터인데, 위태하다고 하니, 지나치지 않은가? 망의(妄意)컨대, 이 학(學) 자는 박학(博學)의 학(學)으로 풀이함이 매우 평순(平順)할 것 같다. 그런데 집주(集註)에는 꼭 이렇게 풀이하니 어찌된 일인가?
십세가지(十世可知) 운운
자장(子張)의 뜻은 앞질러 알자는 데 있는데, 부자(夫子)는 이왕(已往)에 인하여 미래를 추지(推知)하는 것을 가르쳤다. 예(禮)의 손익(損益)이란 그 큰 것을 말한 것이다. 모든 일이 그렇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면 진한(秦漢) 이후의 치란존망(治亂存亡)이 진실로 성인(聖人)의 예지(預知)한 바인가? 그렇지 않으면 백세를 가히 알겠다는 것이 과연 무슨 일인가? 강상(綱常)의 마땅히 인할 것이나 제도의 마땅히 혁(革)할 것 같은 것은 앞서 아는 소이가 아니니 성인을 기다릴 것이 없는 것이다. 자장(子張)의 발문(發問)하는 뜻에 실로 합당한 것이 못된다.
체(禘)가 관(灌)으로부터 이왕 운운
노(魯)나라의 제(祭)가 예(禮) 아니므로 부자(夫子)의 보고저 하는 바가 아니니, 관(灌)한 뒤를 기다릴 것이 없는 것이다. 이른바 ‘성의(誠意)가 해태(懈怠)하면 실례(失禮) 중에 또 실례가 된다.’ 함은 아마 따라서 하는 말 같다. 만일 성의(誠意)가 해태해진 것이라 한다면 무릇 제(祭)가 다 그러한 것이니 어찌 홀로 체(禘)에 있을 뿐이겠는가? 하물며 한갓 그 해태함을 탄(歎)하여 보려고 하지 않는다면 ‘왕(王)이 아니면 체(禘)하지 않는다.’는 뜻이 어두워지지 않겠는가? 또 성의(誠意)의 해태함은 철조(輟俎)할 때에 혹 그럴 수 있는 것이다. 관은 제(祭)가 시작할 때이니, 관하고 나서 해태해졌으면 관하기 전에는 성의의 볼만 한 것이 있었던가?
내가 예를 다해 임금 섬기는 것을 소인은 이것을 첨(諂)이라 한다 운운
이런 말투는 매우 격(激)한 어조(語調)이다. 이렇게 하지 않는다고 반드시 도(道)가 크고 덕(德)이 넓은 것이 아니지만, 아마 성인(聖人)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하지 않을까? 또 윗사람에게 절하는 예(禮)가 일반(一般) 사람들과 다르게 되면 첨(諂)이라고 하는 것은 시속의 통견(通見)이니, 곧 소인이라 책(責)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대개 성인의 말이란 본래 그 천리(天理)의 바름을 다하는 것이지만 이런 것은 일반 사람이나 다름이 없으니, 반드시 자잘하게 찬양을 가할 것 없이 대범하게 대체만을 말할 것이다.
애이불상(哀而不傷)
‘자며 깨며 이리 뒤치고 저리 뒤침[寤寐反側]’을 근심이라 하면 가하나 슬픔[哀]이라 하면 너무 지나치지 않는가? 또 숙녀(淑女)를 구하여 얻지 못해서 지나치게 슬퍼하여 애상(哀傷)함에까지 이르는 것은 심병(心病) 든 사람이 아니면 이럴 수 없는데, 무엇으로 성정(性情)의 정(正)을 볼 수 있단 말인가?
군자(君子)로써 자천(子賤)에게 허(許)하다 운운
이는 상장(上章)에 연결(連結)시켜 말한 것이 아니다. 대개 군자도 또한 층절(層節)이 있는 것이니, 자천이 군자라고 해서 어찌 곧 불기(不器)에 이른다 할 것인가?
옹야 가사남면(雍也可使南面)
인군(人君)의 풍도(風度)가 있다고 해서는 말이 상식에 벗어난다. 백성을 다스리고 정치(政治)에 종사한다고 하면 남면(南面)이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가(可)하나 간(簡)하다 운운
생각건대, 부자(夫子)가 간(簡)이라 한 것은 공경이 없고 한갓, 간하기만 한다는 것이니, 책망하는 말이요, 찬허(贊許)하는 것이 아니다. 즉 중궁(仲弓)의 이른바 ‘너무 간하다.’ 한 것이 이것이다. 중궁은 부자의 말에 나아가 그 뜻을 발명한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가(可)가 겨우 가하다는 뜻이 됨은 당일 어법(語法)의 상례(常例)인데, 중궁의 명(明)으로써 어찌 부자의 뜻을 깨닫지 못했으랴?
백우유질(伯牛有疾)
백우(伯牛)의 집에서 군례(君禮)로써 공자(孔子)를 존대했던 것이 무슨 증거가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여기 이른바 ‘유(牗)’가 어찌 북유(北牗) 아니라고 단정할 수 있겠는가? 백우(伯牛)가 아직 죽지 않았은즉, 마땅히 그 집으로 하여금 공자를 참례(僣禮)로 대하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부이가구장(富而可求章) 주(註)의 ‘유명(有命)’ 및 양씨(楊氏) 이른 ‘재천(在天) …… ’
군자가 부귀(富貴)를 구하지 않는 것은 의(義)에 불가하기 때문이다. 어찌 명(命)이 있고, 천(天)에 있다 해서 구하지 않는 것일까? 진실로 이같다면 부(富)를 구하는 마음이 일찍 없는 것이 아니오 다만 천(天)과 명(命)에 거리끼어 감히 구하지 못했을 뿐이다. 군자(君子)의 용심(用心)이 진실로 이 같을까? 하물며 재리(財利)와 식화(殖貨)는 당로(當路)를 반원(攀援)하면 부귀를 구하는 자가 얻지 못하지도 않으니, 이른바 명이나 천이란 것도 본래 정분(定分)이 있는 것이 아니고 집편(執鞭)은 천역(賤役)이라 한갓 굴욕(屈辱)을 취하는 것인 줄을 잘 알고 있는 터인즉 이 말은 무슨 뜻이 있어서 한 것 같다. 가구(可求)와 불가구(不可求)는 오직 의(義)에서 결정되는 것이지, 명(命)과 천에 돌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재제문소삼월불지육미(在齊聞韶三月不知肉味)에 대해 정자(程子)가 이르기를, ‘삼월(三月)은 혹시 음자(音字)의 오(誤)이니 마땅히 소음(韶音)을 듣고 육미(肉味)를 알지 못했다.’로 고칠 것
삼월(三月)은 천도(天道)가 소변(小變)하는 기간이니, 이렇게 오래도록 맛을 잊었다 할 수 없다. 혹 《좌전(左傳)》에 이른바 ‘삼시(三豕)는 기해(己亥)의 잘못이라’ 함과 같은 것이 아닌가?
조이불망(釣而不網) 운운
진실로 촘촘한 그물[數罟]을 쓰지 않으면 물을 막고[絶流] 고기잡이 하여도 물(物)을 모두 취하지는 못하리라. 물을 죽이기는 한 가지인데 주살로 사냥할 때 자는 놈을 쏘는 것이 그 불의(不意)를 습격함에 무엇이 해(害)되는가?
태백지덕(泰伯至德) 운운
태왕(太王)과 태백(泰伯)의 일은 세대(世代)가 이미 멀어서 자세히 알 수 없으나, 그러나 집주(集註)로써 고찰(考察)하면 세 가지 의심되는 것이 있다. 대저 시(詩)에 이른바 ‘실로 이 상(商)을 꺾었다.’는 것은 대개 ‘주덕(周德)이 비로소 성(盛)하여 실로 흥왕(興王)의 점(漸)이 된다 함을 말함인데, 지금 태왕이 상(商)을 꺾을 뜻이 있기 때문에 …… ’라고 하면 이는 발호(跋扈)할 마음을 가진 것이니, 이것이 의심스러운 한 가지요, 태백이 이같은 덕(德)이 있고 중옹(仲雍)과 왕계(王季)의 현(賢)으로써 돕고 문왕(文王)의 성(聖)으로써 계승(繼承)하여 공실(公室)을 좌우하였으니 그러면 주(周)의 덕(德)이 성하지 않은 것이 아닌데, 태왕이 반드시 장자를 버리고 계자를 세우려고 하여 마침내 두 사람으로 하여금 형세를 보고 도망하여 단발문신(斷髮文身)하게 하여 부자가 이산(離散)하고 형제가 서로 보전치 못하여 인생의 혹화(酷禍)와 윤리(倫理)의 극변(極變)을 당하게 하였으니, 고인(古人)의 한 불의(不義)를 행(行)하고 한 불고(不辜)를 죽이는 일은 천하를 얻어도 하지 않는다 함이 어찌 이같으랴? 이것이 그 의심스러운 두 가지요, 태왕 때 주덕의 성한 소이는 제후(諸侯)의 법도(法度)를 삼가 지키고 그 가국을 잘 다스림에 불과할 뿐이었을 터인데, 태백이 좇지 않았다는 것은 무슨 일이며 계력(季歷)이 좇았다는 것은 또한 무슨 일이며, 부자(夫子)가 태백을 일컬어, ‘천하로써 양보했다.’ 함은 또 무슨 까닭인가? 그때를 당하여 주(紂)가 아직 왕위(王位)에 들어서지 않았고, 선왕(先王)의 여열(餘烈)이 아직 없어지지 않았으니, 번신(藩臣)된 자가 진실로 개유(覬覦)의 마음이 있었다면 이는 병(兵)을 일컫고 솥무게를 묻는 계책(計策)이니 태왕이 어찌 이런 일을 했겠는가? 이것이 의심스러운 세 가지이다. 대개 주(周)가 상(商)을 대체(代替)함은 주로 인심(人心)이 돌아가서 할 수 없이 받은 것이라 함은 맹자(孟子)가 자세히 설명한 바가 있다. 만일 《좌전(左傳)》과 《사기(史記)》의 말로써 실증(實證)한다면 태왕(太王) 이래로 경영(經營)하고 췌마(揣摩)한 것이 이미 일조일석(一朝一夕)의 일이 아니니, 어찌 성탕(成湯)과 미(美)를 나란히 하고 당우(唐虞)의 선양(禪讓)과 같이 볼 수 있겠는가?
삼분천하유기이(三分天下有其二) 운운
주(紂)가 비록 포학(暴虐)하나 아직도 제위(帝位)에 있어 제후(諸侯)를 조회(朝會) 받는데 상(商)을 반(畔)하고 주(周)에 돌아오면 반신(叛臣)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문왕으로서는 반드시 군신의 대의(大義)로 깨우쳐 주어 반자(畔者)들로 하여금 충심을 다하고 두 마음을 먹지 못하도록 해야 할 것이요, 마침내 듣지 않으면 성죄(聲罪)하고 토벌(討伐)하여 단연코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어찌 그들의 조근(朝覲)과 송옥(訟獄)을 받아 방자히 자기의 것으로 삼아서 되겠는가? 또 조근과 송옥(訟獄)이 주(紂)에 돌아가지 않는데, 주(紂)의 강려(强戾)함으로써 어찌 봉지(封地)의 경계(境界)가 날로 줄어드는데 안연(晏然)히 앉아 문왕의 거느리고 섬김을 감수하겠는가? 이는 사세가 반드시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자절사(子絶四) 운운
사의(私意)가 없는 것을 가지고 어찌 족히 성인(聖人)을 말하리오. 또 멀지 않아 돌아옴은 안씨(顔氏)의 이미 능한 바니, 필(必)과 고(固)로 아(我)를 내세우는 일이 부자(夫子)로서 걱정될 것이 무엇인가? 아마 성인(聖人)을 알았다고 칭허(稱許)할 수 없을 것이리다. 또 이 네 가지는 심술(心術)의 미(微)이고 사람이 미처 알지 못하는 바이니, ‘상시(詳視)하고 묵묵(黙黙)히 알라’고 하는 것도 말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누공(屢空)
빈구(貧窶)에 마음을 동(動)치 않음은 계차(季次)ㆍ원헌(原憲)의 이미 능한 바니, 어찌 족히 안자(顔子)를 위하여 일컫겠는가? 궐오(闕誤)에 돌림이 도리어 편안할 것이다.
자공(子貢)의 화식(貨殖)이 후인(後人)의 풍재(豊財)와 같지 않다 운운
자공의 화식을 소시(少時)의 일이라 한다면 심히 마땅하나, 후인의 풍재와 다르다 하면 그렇게까지 은휘(隱諱)해 줄 필요는 없지 아니한가?
삼자(三子)가 나라를 얻어 다스리고자 하므로 부자(夫子)가 취하지 않았다 운운
부자(夫子)의 물음을 발(發)함이 너를 앎에 있었으니, 삼자의 대답이 어찌 이같지 않겠는가? 부자가 증석(曾晳)에게 답한 것은 그 능(能)을 허(許)하고 그 재(才)를 취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또 부자의 뜻이 늙은이를 편안히 하고 젊은이를 품어 주는 데 있다면 나라를 얻어 다스리고자 하는 것이 해될 것이 무엇인가? 다만 그 재덕(才德)이 이에 그치고 족히 박시제중(博施濟衆)의 화를 말할 만한 것이 못 되므로 위연(喟然)한 허여(許與)가 없었다.
욕호기(浴乎沂) 운운
기수(沂水)에 목욕(沐浴)하는 일은 물론 즐거운 일이요 또 군자(君子)가 때로 있는 바이다. 그러나 평생의 뜻을 들어 이에 있을 뿐이라 하면 점(點)의 광(狂)이 또한 너무 심하다. 부자의 허여(許與)함이 과연 무엇을 취하였는가? 공자의 뜻은 늙은이를 편안히 하고 젊은이를 품어 주고 붕우(朋友)를 믿게 함에 있으니, 이는 모두 실사(實事)이고 곧 요순(堯舜)의 기상(氣象)이다. 지금 점(點)이 구세(救世)할 마음이 없고 무실(務實)할 뜻이 적고 사물(事物)을 유기(遺棄)하고 마음을 풍영(風詠)의 즐거움에 노닌즉 광자(狂者)의 뜻만 크고 일에 소홀한 것이 이 까닭이다. 부자께서는 마땅히 재억(裁抑)을 통가(痛加)해야 할 것인데, 도리어 탄식하고 깊이 허(許)함은 어찌 된 일인가? 또 이로 인하여 혹은 ‘이르되, 흉차(胸次)가 천지(天地)와 더불어 같이 흐른다.’ 하고 혹은 이르되 ‘요순(堯舜)의 기상(氣像)이라’고 하면서 도리어 삼자(三子)를 사위(事爲)에 급급한다고 나무라니, 더욱 알 수 없는 일이다.
합철(盍徹) 운운
유자(有子)의 대답한 뜻은 좋았다. 그러나 애공(哀公)의 우원(迂遠)하다고 한 것은 까닭이 없지 않다. 애공의 용부족(用不足)은 종욕(縱慾)하고 치방(侈放)하여 용도(用度)가 절제 없기 때문인데, 먼저 그 본(本)을 탐구(探究)하여 병근(病根)을 벽파(劈破)하지 않고 철법(徹法)을 하라고 권(勸)하니, 비용(費用)이 나올 상도(常道)가 없고 사치(奢侈)하고 참람(僣濫)한 정(政)은 여전하니, 군(君)이 누가 부족한 것에 찬동하겠는가? 이 어찌 족히 애공(哀公)의 혹(惑)을 풀 수 있겠는가?
계강자(季康子) 운운
무릇 군(君)이 묻는데 모두 ‘공자대왈(孔子對曰)’이라 일컬은 것은 상례(常例)가 진실로 그러려니와 강자(康子)의 물음에도 또한 이 예(例)를 쓴 것은 부당하지 않은가? 당시(當時) 삼가(三家)의 참람(僣濫)을 이에서 알 수 있고, 기자(記者)가 견문(見聞)에 관습(慣習)이 되어 구차히 위존(僞尊)을 가해 주니 자못 춘추(春秋)의 필법(筆法)과 다르다.
진실로 그대가 불욕(不欲)하면 운운
‘그대가 탐욕하지 않으면 …… ’ 하는 것은 성인의 사기(辭氣)가 이같이 박절하지는 않았으리라고 생각한다.
중궁(仲弓)이 계씨(季氏)의 재(宰)가 되다 운운
계씨(季氏)는 노(魯)의 참적(僣賊)이다. 중궁(仲弓)이나 자로(子路)의 현(賢)과 용(勇)으로써 복사(服事)하는데 감심(甘心)하여 그 녹(祿)을 먹는 것이 불의(不義)임을 모르니 실로 알 수 없는 일이로다. 또 벼슬하고 벼슬 그만두고 함은 선비의 대절(大節)이니, 참적(僣賊)에게 복사(服事)함이 그 소소한 일이 아님은 명백하다. 부자로서 마땅히 엄사(嚴辭)로 배척(排斥)해야 할 터인데, 도리어 그 정술(政術)을 의논해 정(定)하고 개탄(慨嘆)하는 뜻은 조금도 보이지 않으니, 중인(衆人)으로써 두 사람을 바랐다면 이자(二子)의 어짐이 중인(衆人)이라 할 수는 없고, 부자가 본래 애중히 여기는 사람인즉 한 마디 회책(誨責)해 주시면 어찌 석연히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또 설령 금(禁)치 못한다고 해도 그 문정(問政)에 답하는 것이 마치 조성(助成)해 주려는 것 같으니, 이자(二子)를 대(待)하는 소이(所以)가 너무 박(薄)하지 않은가?
정명(正名) 운운
‘자(子)를 기다려 정(政)을 한다.’는 것은 장차 공자에게 정(政)으로써 맡기려 함이다. 이미 그 정(政)에 종사하면 그 신(臣)이 된 것이다. 공자의 이른바 정명(正名)은 종정(從政)한 뒤에 있을 일인즉 몸을 무부(無父)의 군(君)에 맡김이 이미 심척(尋尺)의 왕(枉)일 뿐 아니요,폐립(廢立)의 마음을 품고서 신사(臣事)한다면 이는 이심(二心)이요, 이미 신(臣)이 되고 이ㆍ곽(伊霍)의 일을 행하려고 한다면 귀척의 경(卿)이 아니니, 빈주(賓主)의 세(勢)가 그럴상 싶지 않다. 그러면 호씨(胡氏)의 이른바, ‘천왕(天王)에게 고하고 방백(方伯)에게 청한다.’ 함이 어떻게 옳은지 알 수 없다.
선이막지위(善而莫之違) 운운
말이 비록 착하나 그것이 나에게 거슬리지 않으니, 좋다고 한다면 반드시 상방(喪邦)의 점(漸)이 되지 않는다 할 수 없다. 이것은 당우(唐虞)의 우불(吁咈)로서도 알 수 있는 것인데, ‘또한 좋지 않은가’라고 한 것은 아마 군(君)에게 고하는 소이가 아닌 것 같다.
정(正)하고 휼(譎)치 않다 운운
이 장의 문법(文法)이 제환(齊桓)과 진문(晉文)을 대거(對擧)하고 호언(互言)하기를 군자(君子) 소인(小人)의 분(分)과 같이 하였으니, 기자(記者)의 뜻을 숨길 수는 없을 듯하다. 집주(集註)에 ‘피선어차(彼善於此)’란 것은 부득이해서 그 설(說)에 맞추어 한 말 같다. 다같이 가인(假仁)이고 다같이 불정(不正)이다. 혹 저가 이보다 나은 것이 있다 하더라도 반드시 그은(隱)을 들춰내어 사람에게 가르쳐 줄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하물며 분개(分開)ㆍ호대(互對)하여 판연(判然)히 음양(陰陽)ㆍ흑백(黑白)의 분(分)과 같이 하였는데, 혹 패자(覇者)의 구실이 되지나 않겠는가?
이택(利澤)이 사람에 미쳐 인자(仁者)의 공(功)이 있음 운운
자공(子貢)이 관중(管仲)을 인(仁)치 못하다 함은 그 사람을 말한 것이요, 그 공을 말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부자가 공으로써 답하였으니 동문서답(東問西答)이 아닌가? 또 공(功)으로써 말하면 역복(力服)과 심복(心服)의 구별이 천양(天壤)의 차(差) 뿐이 아니다. 비록 이택(利澤)이 사람에게 미쳤다 하더라도 어찌 인자(仁者)의 공이 되겠는가?
환공 형야(桓公兄也) 운운
환공(桓公)이 형이란 것이 증거가 없고, 장자(莊子)에는 ‘환공(桓公)ㆍ소백(小白)이 형(兄)을 죽이고 수(嫂)를 맞아들이고, 관중(管仲)이 신(臣)이 되었다.’ 하니, 반드시 의거한 바가 있을 것이다. 또 기왕 적자(嫡子)가 아니면 다 같이 서자(庶子)이니, 쟁국(爭國)의 불의를 어찌 반드시 자규(子糾)에게만 돌려 마땅히 죽을 것으로써 단정(斷定)하는가? 또 관중의 불사(不死)로써 옳다고 하면, 소홀(召忽)의 죽음은 곧 ‘개울물의 신의(信義) 지킴’이니 추키고 누름이 너무 편파함은 더욱 알 수 없는 일이다.
좌씨(左氏)가 공자(孔子)의 말을 기록(記錄)하다 운운
좌씨의 이 기록은 아마 까닭이 있을 것이다. 이때를 당하여 위로 천자(天子)에게 고하려고 해도 천자는 호령할 위세를 가지지 못했고, 아래로 방백(方伯)에게 고하려 해도 방백이 환ㆍ문(桓文)의 패권(覇權)을 가지지 못하였으니, 그 세(勢)가 먼저 발(發)하지 않을 수 없다. 기왕 먼저 발하려면 병력(兵力)의 중과(衆寡) 어찌 헤아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의(義)가 나오지 못하는 법이다. 만약 제(齊)를 이기는 것은 공자에 있어서 여사(餘事)라 한다면, 싸워 이기지 못하고 천하를 바로잡고 주실(周室)을 부흥(復興)시킬 수 있겠는가. 시역(弑逆)을 마땅히 토벌(討伐)해야 할 것만 알고 내 나라가 먼저 망할 것을 생각지 않는다면 ‘일에 다다라 두려워하고 꾀를 잘하여 일을 이루라’ 한 부자(夫子)의 뜻이 과연 어디에 있는가?
하궤(荷蕢) 운운
하궤(荷蕢)란 자는 공자는 몰라보아도 출처(出處)의 의(義)는 안다. 그 말을 보면 세(世)에 뜻이 없는 것이 아니라 다만 무도(無道)하면 숨는다는 것이니, 하조(荷篠)와 접여(接輿)처럼 물(物)을 끊고 세상을 도망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 이는 행장(行藏)의 정법(正法)이라, 성인이 그 세상을 피해 살면서도 원망함이 없는 소이(所以)도 이와 다름이 없는 것인데, 세상(世上)을 잊어버린다고 배척하니, 너무 지나치지 않은가? 또 이런 출처(出處)가 진실로 어려운 바가 없다면 ‘인불지이불온(人不知而不慍)’ 이 어째서 군자(君子)가 되며, ‘불견지이불회(不見知而不悔)’가 어째서 오직 성자(聖者)만이 능히 한다고 하겠는가?
질몰세이명불칭언(疾沒世而名不稱焉)
이것은 양씨(楊氏)의 말이 있기는 하나 아무래도 타당치 못한 것 같다. 군자가 선(善)을 하는 것은 내가 마땅히 할 것을 하는 것뿐이오, 신후(身後)의 이름 같은 것은 본래 마음에 두어서 안 되는 것이다. 사람은 은덕(隱德)을 스스로 닦고 불행하게 궁산(窮山)과 절해(絶海)의 사이에 용감히 사는 자가 있는데, 만일 이 때문에 구차하게 살고 욕이나 면하는 것으로써 장차 유위(有爲)하려고 한다면 성인의 가르침이 세교(世敎)에 해를 끼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유교무류(有敎無類)
이 문구(文句)는 위아래에 궐문(闕文)이 있는 것 같으니, 억지로 풀이할 것이 없다. 또 요순(堯舜) 때에도 사흉(四匈)이 있었고, 소자(邵子)도 ‘양(陽)이 육분(六分)이고 음(陰)이 사분(四分)’이란 말이 있으니, 악한 유(類)는 끝까지 없앨 수는 없다. ‘박시제중(博施濟衆)’이란 요순도 오히려 어렵다[病] 하였은즉 성인이 이런 당치 않는 큰소리를 했을 리가 없는 것이다.
사왈욕지(舍曰欲之)
여기 ‘욕지(欲之)’는 일반적으로 말하는 것인 듯한데 집주(集註)에, ‘그 이(利)를 탐(貪)함’이라 하였으니 의심스럽다.
삼우삼낙(三友三樂)
집주(集註)에, ‘양장(兩章)의 손익(損益)으로 정히 상반한다.’ 하였으나, 모두 그 확연히 문합(吻合)함을 볼 수 없다. 또 부자(夫子)의 뜻은 다만 이 삼사(三事)를 열거(列擧)하여 사람의 손익을 보여 주려는 것뿐이요, 세세하게 대대(對待)시키려는 데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은거이구기지(隱居而求其志)
‘구지(求志)’의 뜻은 미상(未詳)하다.
공산필힐(公山佛肸) 운운
부자(夫子)는 일찍이 이르기를,
“사(詐)를 미리 염려하지 말 것이며, 불신을 억측하지 말라. 역시 먼저 깨달은 자가 현자일 것인저”
라 하였다. 대저 공산(公山)과 필힐(佛肸)이 읍(邑)을 거(據)하여 주(主)를 반(叛)하였으니, 그 족히 더불어 일할 수 없는 것은 이미 명백하다. 이제 그 부름에 인하여 갈려고 하니, 이 또한 선각(先覺)이 되겠는가? 만일 그 반드시 고칠 수 없음을 알고 마침내 가지 않았다면 더욱 안 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무릇 사람이 처음 하고저 하다가 마침내 하지 않는 것은 다 이(理)가 밝지 못함이 있고, 의(義)가 정(精)하지 못함이 있어서 반드시 살펴처(處)함을 기다린 후에야 그 가부(可否)를 결(決)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인(聖人)의 ‘지기명결(知幾明決)’로써 무슨 심처(審處)를 기다릴 필요가 있겠는가? 공산(公山)과 필힐(佛肸)의 악(惡)이 선후(先後)에 증감(增減)이 있을 리 없는데, 부자(夫子)의 거취(去就)가 시종(始終)의 같지 않음이 있음은 어쩐 일인가?
오기위동주호(吾其爲東周乎)
이 말을 보면 제후(諸侯)에게 권하여 왕도를 행하게 함은 진작 있었던 것이오, 맹자(孟子) 때까지 기다릴 것이 없었다. 그러면 춘추(春秋)의 존주(尊周)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 또 천하에 비록 같이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없지 않다 하지만 반신(叛臣)으로써 주도(周道)를 일으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닐까 한다.
전후문체 대불상사(前後文體大不相似)
몇 장(章)의 문체가 같지 않은 것이 있음은 사실이나, 계씨(季氏) 일편(一篇)의 이런 문체는 퍽 많이 있다. 집주(集註)의 뜻이 공산 필힐(公山佛肹)의 일이 의심스럽다 해서 이 말을 인용함이 아닌가?
연사십이견악(年四十而見惡)
부자(夫子)는 일찍이 이르기를,
“향인(鄕人)의 선(善)한 자가 좋아하고 불선(不善)한 자가 미워한다.”고 하였으니, 사람이 미움을 당함이 무엇이 걱정인가? 진실로 미움을 받지 않으려면 은연(誾然)히 세상(世上)에 아첨하며 사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소씨(蘇氏)의 말도, 할 수 없이 위한 바 있어서[有爲] 말함이라고 돌려 놓았던 것이다. 성인의 위한 바 있는 말이 혹 있을 수도 있으나, 그러나 성인의 말이란 역시 혼연(渾然)하여 자취 없고 범응곡당(泛應曲當)한 것인데, 어찌 이런 일편(一偏)의 말로서 향원(鄕愿)의 구실이 되게 할 수 있겠는가?
거지이존종사(去之以存宗祀)
미자(微子)가 떠나간 것은 말이 쓰이지 않고 의(義)가 합하지 않은 까닭이다. 예물을 닦아 주(周) 왕가에 손님으로 삼았으니, 주(周)에 있어서는 후(厚)한 대접이나 은(殷)에 있어서는 혹독하게 영체(零替)해진 것으로서 거의 존재가 없어진 거나 다름이 없다. 미자의 계략이 어찌 이에 있었겠는가? 또 무경(武庚)이 있었은즉 미자가 어찌 미리 그 윤상(淪喪)이 뒤따르고 봉전(封典)이 자기에게 미칠줄 알았겠는가? 사씨(史氏)가 마침내 송(宋)에 봉했다고 해서 드디어 제기(祭器)를 가지고 군문(軍門)에 나아갔다는 말을 만든 것이다. 대저 주(紂)가 망하지 않았으면 종국(宗國)의 중기(重器)를 미자가 마음대로 꺼낼 수 없는 것이고, 주가 이미 죽었으면 궁실(宮室)과 전적(典籍)은 스스로 전수(典守)가 있어서 잘 지켜 두었다가 주(周)의 명(命)을 기다릴 것이요, 미자(微子)가 독단으로 가지고 가서 손댈 것이 못된다. 또 살을 들어내고 낯을 얽고 무릎을 꿇고 띠[茅]를 잡는 것은 항신(降臣)의 걸인(乞憐)함이니, 사씨의 말이 믿을 수 없는 것이 이와 같다. 이제 ‘제기(祭器)를 가지고 …… ’라 하여, 드디어 미자의 떠나감을 ‘장차 써 종사(宗祀)를 보전하기 위한 것이다.’고 하니,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양광이수욕(佯狂而受辱)
이것도 사씨의 실전(失傳)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노(奴)가 되었으면 편안히 받을 뿐인데, 머리를 풀고 그 몸을 헐어 미친 짓으로 그 행(行)을 무너뜨리니 의(義)가 자폐(自廢)에 있으면 과(過)한 것이요, 계(計)가 피화(避禍)에 있으면 구차한 짓이다. 기자가 어찌 이런 일을 하였겠는가?
제인(齊人)이 여악(女樂)을 귀(歸)하다. 운운
환자(桓子)의 악(樂)을 받고 조회를 보지 않음이 정공(定公)의 과실이 아니다. 군상(君上)의 예모(禮貌)가 쇠하지 않았으면 환자의 태오(怠傲)로 어찌 그 거취(去就)를 결할 수 있겠는가? 부자(夫子)가 이미 사구(司寇)가 되어 상사(相事)를 섭행(攝行)하였으니, 계씨(季氏)가 죄(罪) 있으면 이를 들어 바로 잡으면 되는 것이요, 강(强)하여 제(制)치 못하겠으면 은인(隱忍)하고 기다려도 되는 것이다. 또 태오하여 예(禮)를 못 지킨 것은 계씨에 있어서 사소한 죄로써 크게 문제될 것도 없는데 부자의 행(行)이 이같이 너무 급거(急遽)하니 그 의(義)가 어디 있는가? 부자(夫子)가 정(政)을 하는 데는 먼저 정명(正名)을 한다고 하였는데, 지금 이 행지(行止)는 오직 계씨의 향배(向背)에 관계된 것이요, 군상(君上)의 뜻에는 관여(關與)됨이 없은즉 이는 정공이 한갓 허기(虛器)를 안고 의구(依舊)한 기생(寄生)의 임금 노릇을 하는 것이니, 그 정명의 실(實)이 어디에 있는가?
도(道)의 불행(不行)은 이미 알았다.
성인의 지성으로써 자기의 궁통(窮通) 대절(大節)을 미리 알았으면 천하의 치란(治亂) 대세도 마땅히 심통(心通)ㆍ묵식(黙識)했을 터이니, 이같으면 도가 행해지지 못할 것을 알았을 것은 사실이다. 이미 알았으면 황황(皇皇)히 폐백[質]을 싣고 천하를 철환(轍環)하였으며, 주공(周公)을 꿈꾸지 않음이 어찌 기쇠(旣衰)한 뒤에 있으며, ‘귀여(歸歟)의 탄(歎)’을 재진(在陳)의 때까지 기다려 발할 것이 무엇인가?
중옹(仲雍)이 오(吳)에 거(居)하여 단발(斷髮)하고 문신(文身)하다 운운
자식은 아비에게 대장(大杖)은 받지 않나니, 신생(申生)과 백기(伯奇)가 효(孝)를 상(傷)했다는 소이(所以)는 그 부(父)의 허물을 이루었다 해서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중옹(仲雍)이 기왕 태왕(太王)의 전상(翦商)의 뜻을 좇지 않았으면 어째서 이제(夷齊)의 고마(叩馬)의 간(諫)을 하지 않았으며, 또 간하여도 듣지 않으면 도망할 것이 없고, 명(命)을 기다리면 되는 것인데, 형(形)을 헐고 몸을 욕(辱)되게 하니 융적(戎狄)의 속(俗)을 감수(甘受)하고 태왕(太王)으로 하여금 군신(君臣) 부자(父子) 사이에 모두 그 도(道)를 잃게 하였으니, 어찌 ‘폐중권(廢中權)'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대개 후세(後世)의 화이(華夷) 혁명의 즈음에 포의(布衣) 초택(草澤)의 사(士)로 혹 치발(薙髮)을 원치 않아 죽기까지 변하지 않는 자가 있었으니, 용(勇)을 상(傷)했다고 책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면 이(夷)의 변할 수 없음과 형(刑)의 훼(毁)할 수 없음이 어찌 살신(殺身)하기보다 더 심함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중옹(仲雍)의 불행(不幸)은 천재(千載)의 하에서도 오히려 상심(傷心)되는 바이다. 태왕(太王)의 때에 천하의 난(亂)이 도탄에까지 이르지 않았고, 이자(二子)의 현(賢)이 오히려 족히 가도(家道)를 다스릴 수 있는데 그로 하여금 도찬(逃竄) 윤함(淪陷)하여 이 지경에 이르게 하고, 조금도 돌보지 않았으니, 사람의 도리[人理]의 참독(慘毒)함이 자못 길보(吉甫)와 진 헌공(晋獻公)으로서도 차마 하지 못할 바인데 성인(聖人)의 논(論)이 태왕을 그르다 않고 중옹에게 ‘중권(中權)하다.’ 허여(許與)하였으니 무슨 까닭인가?
성인아경지조(聖人俄頃之助) 운운
‘영인(伶人)이 하(河)를 넘고 바다를 도(蹈)했다.’ 함은 시세(時勢)가 더욱 쇠(衰)함을 기술(記述)한 것이니, 현자(賢者)는 결신(潔身)할 소이(所以)를 알 뿐이다. 장자(張子)는 이것을 성인(聖人)의 공화(功化)에 돌리니 부회(附會)에 가까웁다. 중궁, 자로(仲弓ㆍ子路)의 무리가 성문(聖門)에 친히 배우고도 오히려 삼환(三桓)의 문(門)에 종사(從事)함을 면치 못하였는데 어찌 잠깐 사이의 정악(正樂)으로써 영인(伶人)의 관감(觀感)함이 이같이 깊을 것인가?
대고위악역(大故謂惡逆)
악역(惡逆)이 아니면, 고구(故舊)를 끊어버릴 의(義)가 없음을 알 수 있다.
學而
爲仁之本。○此仁字。恐是專言包四之仁。不然則弟當屬義。豈爲仁乎。
忠信爲傳習之本。○爲人謀與朋友交。比之傳習。恐是差輕。且是以後事。恐不當謂之本。
弟子入則孝。○弟子。恐是如小子之稱。若謂爲弟爲子。則謹而信以下。豈專屬於爲子者乎。
賢賢易色章。○饒氏曰。賢賢居先者。以好善有誠。方能行下三事也。此恐是偶然耳。不必曲爲之說。若如此說。則上章夫子之言親仁學文。何在於孝悌謹信之後耶。
十世可知章。○子張之問。恐是指十世之後治亂興亡。而孔子只以禮之損益答之。何也。且旣曰百世可知。則秦漢以後至于今數千餘年。其或損或益者。夫子亦已逆知其某代如此某時如彼耶。
述而
聖與仁吾豈敢章章下晁氏註云云。○果斯言也。是孔子內實自居於仁聖而非爲虛讓。且如虛讓之中。又爲微辭而自居於仁聖矣。聖人之心。豈 若是之回互乎。所謂使聖與仁爲虛器而人終莫至云者。尤可疑。若是則聖人之心。便自以爲吾德已至而人不能加焉。吾而不居。孰能居之矣。豈可乎。
泰伯
實始翦商之意。可疑。當是之時。商道雖衰。尙有賢君代作。周雖强大。昌雖聖德。紂之惡不如是之甚。則王業决不當興矣。古公豈逆知其有紂而有此志乎。且立嫡。萬世之經也。立賢。一時之權也。必也嫡子不德。不可以承宗社之托。然後始乃不得已而行一時之權也。今泰伯之德。不下於王季。商道雖衰。未見其必亡。乃曰興王業者其在昌乎。舍泰伯而立王季。果何義歟。若曰天命之當然云爾。則夫所謂天命者。豈非人事之自然者而已乎。泰伯之當立而守經而不知權。文王之聖德而生於季而不生於長。安知非天命之不欲周之興王業乎。古公病將卒。令季歷讓國於泰伯。○此亦不可曉。若以泰伯之嫡子當立而爲此虛讓。以解人言。則中人以下之所羞爲之者也。若以爲實無廢嫡之志。則何爲而欲傳國及昌以翦商。使泰伯仲雍望風知指。逃荊蠻而爲夷狄而不之禁也。是未可知也。君子篤於親章註張子曰云云。○所謂先後於上一節。恐甚不當。未知何者當先。何者當後。此盖言行四德而無節文。則必有四者之弊。故欲人之有是德而必以節也。初無先此而後彼之義。豈意在於統二章而有此牽合之病耶。
所貴乎道章註程子曰動容貌云云。○周旋中禮。言動不妄。言正。正由中出。言出歟。但動字。猶可說出字。甚不通邪。由中出。獨非出乎。修己爲政政之本。○君子豈以位言之耶。此何說及爲政也。以能問章註不必得爲在己失爲在人。○犯而不校。恐是孟子橫逆之義。豈以得失之未可知而然耶。托孤章註節操如是。可謂君子。○饒氏說亦近之。而與朱子有德而無才
則不能爲用。何足爲君子之說。不同。可疑。立於禮章註可以固人肌膚之會筋骸之束。○人能行禮。則肌膚筋骸自當固矣。然此不過血氣體髮之堅强而已。節食服藥養生導氣者。亦能之。禮之功效。豈止於斯而已乎。有道則見。無道則隱。○孔孟之時。非不亂矣。轍環歷聘而不見其隱。豈聖賢之有當世責者不必然耶。不在其位章君大夫問而告則有。○伊川不答司馬公給事中之問。則恐亦有不可對者。且身在林下。不應召命。則雖問。亦恐不可對。
衛靈公
知德者鮮章註疑皆一時之言。○多學而識之。於上下文義。恐不相類。
季氏
邦君之妻章蔡氏語附見於衛靈公篇末云云。○此乃季氏篇末。恐失照檢。且因南子而發者。恐鑿。
陽貨
欲見孔子章。○陽貨乃逆臣也。孔子雖不受其饋。可也。彼乃季氏家臣而僭稱大夫。則何必待之以大夫之禮而往拜之乎。
揚氏曰揚雄云云。○揚氏說固正而雄說活看。亦不害理。盖南子淫亂而陽虎惡逆。則見所不當見而敬所不當敬矣。其身不可謂詘乎。身雖詘矣而道合當詘。則道斯伸而其身亦非眞詘矣。旣曰道伸。則身之詘伸。非所論也。胡氏所謂身道二物之說。恐過。
公山佛肹。與陽貨無異。而夫子之或欲往而或不往者。何也。吾其爲東周乎。○公山雖用夫子。乃季氏家臣。則何以興東周之治乎。豈有據叛邑而興王業者乎。子張問仁章。○孔子嘗言先難後獲。則如此章及歸仁無怨之屬。必言其效。何也。孺悲欲見章小註南軒語使將命者問之。○此恐使孺悲聞之。若將命者 則豈待其歌而後知其非疾乎。
微子
亞飯干章小註齊氏註孔子正樂而去其一。○孔子時不在位。則朝廷之禮。何以去之耶。見其昔之僭云者。尤鑿。此恐是魯僭用四飯之禮而不言一飯者。一飯之官。無去亂之事故耳。聖人功化雖大。亦豈无一人不能化者耶。
子張
先傳後倦章註了此便是徹上徹下之道。○了字。恐當屬上句。而胡氏曰了此云云。如是則了字。當爲了當之義。未知爲了當何事耶。不可分本末爲兩端事。○不可分本末爲兩段。理則可。事則有本有末。非兩端而何。
泰伯
狂而不直。○小註以爲狂狷之狂而例之以無知無能。則恐當爲狂妄之 狂。
子罕
絶四章意私意也。○私意。恐是有意爲之者也。非惡念之謂也。若謂惡念。則聖人之無惡念。豈待於言而知之乎。
自衛返魯章。○旣不在其位。則朝廟之樂。何以正之耶。豈師摯學於孔子而成孔子之志乎。雅頌得所。是刪詩之事。與樂正爲一事耶。未見好德章孔子居衛。○觀與夫人同車則前此而靈公之不德。可知。何不見幾而作。以取次乘之辱。且絶糧之行。何不在同車之醜而在於問陣乎。
鄕黨
入公門章位君之虛位。○上章之君未視朝。則以下文言君在而知之也。此只言攝齊升堂而不別言君在。且侃侃誾誾與勃如躩如。氣像不侔。然則此必謂之虛位。何也。若曰言過則虛可知矣云。則尤未詳。雖君在。豈無過去時乎。晁氏曰使擯執圭云云。○馮饒兩說。甚明白。晁說極未安。未知集註何以採入耶。小註獨居云云。○獨居豈有言乎。君賜食章小註夫子已孤云云。○禮。嘗而拜賜則雖有親。恐當先嘗。廐焚章小註邢吳兩說家廐非國廐云云。○記者之意。只見聖人貴人賤畜之意。故只言廐焚而不言家國矣。後人之必以爲家爲國者。已涉支離矣。且邢氏所謂以退朝知之云者。以此爲國廐之證則可。爲家廐之證則誤矣。吳氏所謂路馬云云。恐亦未安。居不容章小註奉祭祀見賓客之容貌威儀云云。○此恐失容字之義。馮氏無一事於容儀云者。恐得之。
先進
問事鬼神章註幽明始終初無二理。○盡誠敬於事人。則必盡誠敬於事鬼。知氣聚而生。則知氣散而死。此無二理之義。
小註輔氏一而二云云。○恐未安。氣二而理一者。物皆然矣。何必於死生人鬼乎。事人與事鬼。雖二。而誠敬則一。死與生雖二。而氣之聚散則一也。子路剛强。有不得其死之理。○行行有殺伐之氣。恐亦以其氣象而言。小註饒氏曰樂字終難說云云。○此恐未安。行行雖不足於中和。而剛勇之氣。凜然有不可犯。則非可樂乎。朱子云云。亦恐未必然。
顔淵
問仁章小註覺軒蔡氏曰聖性之也。謂哲人止同歸云云。○此說恐可疑。哲人果是性之之聖。則豈有誠之之工乎。且其意以爲哲人志士。雖爲克念戰兢之別。而及其成功則同歸於一致矣。此非但文理艱晦。於動箴之義。全不緊要矣。愚意則哲人志士。雖有大小生熟之別。要皆是顔曾以下人。所謂聖賢同歸者。人能造次克念而戰兢自持。則習與性成。與聖賢而同歸矣。仲弓爲季氏宰。○季氏國賊也。夫子胡不責其不當仕而只告以爲政之道耶。如是則後世之托身權貴以圖進取者。雖其不免於固必之過。而在他人。以衆人望人之道。不必深責之耶。
子路
於言毋所苟而已矣。○言毋所苟。則名之無所苟可知而行亦可以不苟。故不及名行而只言言無所苟。子適衛章註寄以三事。○謂之庶富敎者。恐是。
憲問
賢者辟世章小註胡雲峰語天下爲大邦國爲小云云。○此恐失程子之意。曰今之成人云云。○胡氏說恐長。若是夫子之說。則是徒以其已能者而瀆告焉。豈所以進之日新耶。不然則是歎今人之安於小成而以擎子路耶。晨門荷蕢之徒。雖不知聖人心。而其出處則合於邦無道隱之義。人之不及聖人者。只當學晨門荷蕢耶。性中只有仁義禮智云云。○窃意性者。物之則而衆理之摠名。就其中分而言之。有仁義禮智之名。卽此四字而萬善足焉。則性中曷嘗無孝弟乎。苟無孝弟。凡人之萬善。皆非性分。今且以萬善各還萬善。所謂仁義禮智。不幾近於無星之秤乎。
巧言令色鮮矣仁云云。○犯上者鮮。旣有上章語法。則於此而獨歸之聖人不迫之辭。恐未安。夫聖人之辭。儘不迫切。此等邪正之大分。恐不當若是緩也。且詞欲巧。令儀令色。古來文字。自有可據。恐不必偏歸之致飾悅人之類。
知巧言令色之非仁則知仁。○致飾悅人則徇人欲而忘本。實其非仁。不難知矣。然仁固未易知也。程子之意。果安在耶。
忠信爲傳習之本。○此言忠信。只就爲人謀與朋友而言。則恐不足爲傳
習之本。且曾子之意。只以三者爲人道之急務而已。就其中分析本末。恐非曾子本意。
敬者主一無適之謂。○窃意主一無適。恐不足以盡敬之義。而學之無可依據。且不先之以嚴恭寅畏而徒事乎主一無適。則不幾於耽看錯應之歸乎。妄意能敬者固主一無適。而主一無適。不足以言敬也。
未及爲政云云。○節用使民。非爲政而何。
五者反復相因云云。○五者廢其一。非所以爲政也。若反復相因。則終未見其確然不可易。次第緩急。隨事異施。恐不必若是繳繞。
不習其事。故危而不安。○學固有兼知行而言者。謂之不習其事。則此所謂學。卽專以行言耶。行而不求諸心。無知妄作。其過也恐不止於昏罔。思而不習其事。則無所成而已。諒不至於爲惡。謂之危殆。不亦過乎。妄意此學字。解以博學之學。恐甚平順。而集註之必如是釋之。何也。
十世可知云云。○子張之意。在於前知。而夫子敎以因往而推來。禮之損
益。言其大也。凡事莫不然也。然則秦漢以後治亂存亡。固聖人之所預知耶。不然則百世可知者。果何事耶。若綱常之當因。制度之當革。非所以前知而亦無待於聖人矣。於子張發問之意。實無所當也。
禘自旣灌而往云云。○魯祭非禮。非夫子之所欲觀。宜不待於旣灌之後。所謂誠意懈怠。失禮之中又失禮焉者。恐近於從而爲之說。若爲誠意之懈。則凡祭皆然。何獨於禘也。况徒歎其懈怠不欲觀。則不王不禘之義。不幾於晦乎。且誠意之懈容。不免於輟俎之際。灌者。祭之始也。旣灌而已懈。則旣灌之前。豈有誠意之可觀者耶。
我事君盡禮。小人以爲諂云云。○此等辭氣。極其噴薄。不爲此。未必爲道大德宏。恐不足以擬議於聖人。且拜上之禮。未免於違衆。則謂之諂者。時俗之通見。不必遽責之以小人。盖聖人之言。固其極天理之正。而此等無甚異於人者。恐不必曲加贊揚。卽疏節而語大體也。
哀而不傷。○寤寐反側。謂之憂則可。謂之哀。無乃太過乎。且求淑女而不
得。過哀而至於傷。苟非病心之人。宜不至此。何以見其性情之正耶。
以君子許子賤云云。○此恐不必連上章說。盖君子亦應有層節。子賤之爲君子。豈遽至於不器耶。
雍也可使南面。○有人君之度。語恐不倫。臨民從政。不可謂之南面耶。
可也簡云云。○妄意夫子所謂簡。無敬而徒簡。斥之也。非許之也。卽仲弓所謂太簡也。仲弓卽述夫子之言而發明其意也。不然則可之爲僅可。當日語法之常。以仲弓之明。寧未喩夫子之意耶。
伯牛有疾云云。○伯牛家。以君禮尊孔子。有何所考耶。不然則此所謂牖。安知非北牖耶。伯牛姑不死。則宜不令其家待孔子以僭禮也。
富而可求章註有命及楊氏曰在天云云。○君子之不求富貴。義不可也。豈以其有命與在天耶。苟如是。求富之心。未嘗亡也。特拘於天與命而不敢爲耳。君子之用心。固如是乎。况財利殖貨。攀援當路。求富貴者。未嘗不得。則所謂命與天者。固無定分。而執鞭賤役。决知其不徒取辱。則此似是
有意而發也。可求與不可求。惟决於義。恐不必歸之於命與天也。
在齊聞韶。三月不知肉味。程子曰。三月。或是音字之誤。似當聞韶音不知肉味。○三月。是天道小變之期。不當如是久而忘味。無或左傳云三豕爲己亥誤耶。
釣而不網云云。○苟不用數罟。則絶流而漁。未必盡物取之也。殺物一也。戈而射宿。何害其出其不意也。
泰伯至德云云。○太王泰伯事。世已遠矣。不可得而詳矣。然以集註考之。有三可疑。夫詩所謂實是翦商者。盖周德始盛。實爲興王之漸云爾。今云太王因有翦商之志。則是跋扈之將心也。此其可疑者一也。泰伯有如此之德。輔之以仲雍王季之賢。繼之以文王之聖。以左右公室。則周之德。不患不盛。太王之必欲舍長立季。終使二人望風逃竄。毁形辱身。父子離散。兄弟不相保。人生之酷禍。倫理之極變。古人之行一不義殺一不辜而得天下不爲者。豈若是哉。此其可疑者二也。太王之時。周德之所以盛。宜不
過謹守侯度。善治其家國而已。泰伯之不從者何事。季歷之從之者亦何事。夫子之稱泰伯以讓天下。亦何故也。當其時。紂未及立而先王之餘烈未艾。爲藩臣者苟有覬覦之心。是稱兵問鼎之計也。太王豈爲是哉。此其可疑者三也。盖周之代商。天與人歸。不得已而受之。孟子之所發揮者備矣。若實以左馬之說。則太王以來經營揣摩。已非一朝一夕之故矣。安得幷美於成湯而一視於唐虞之禪讓乎。
三分天下有其二云云。○紂雖暴矣。尙莅帝位而朝諸侯。則畔商而歸周。不能不謂之叛臣。文王必曉以君臣大義。使之盡心無貳。終不聽則聲罪致討。斷不可已也。何可替受其朝覲訟獄而肆然爲己有哉。且朝覲訟獄。不歸於紂。以紂之强戾。豈可晏然於封疆之日蹙而甘心於文王之率而事之耶。此事勢之必不然也。
子絶四云云。○無私意。豈足以語聖人。且不遠復。顔氏之所已能。必固而成於我。何足爲夫子慮哉。恐不足以許之以知聖人也。且四者。心術之微
而人所不及知者。詳視默識。亦恐說不去也。
屢空。○不動心於貧窶。季次原憲之所已能。何足爲顔子稱哉。恐不如歸之闕誤之爲安也。
子貢之貨殖。非若後人之豐財云云。○子貢之貨殖。謂之少時事則甚當。謂異於後人之豐財。則恐不必曲爲之諱也。
三子欲得國而治之。故夫子不取云云。○夫子之發問。在於知爾。則三子之對。安得不如此也。觀夫子答曾晳。未嘗不許其能而取其才也。且夫子之志。在於安老而懷少。則欲得國而治之。顧何傷乎。特其才德之止於斯而不足以語博施濟衆之化。則所以無喟然之與也。
浴乎沂云云。○浴沂之事。固樂矣。亦君子之所時有也。雖然。擧平生之志而在於此而已。則點也之狂。亦太甚矣。夫子之與之。果奚取焉。孔子之志。在於老者安之。少者懷之。朋友信之。皆是實事。便是堯舜氣象。今點也無救世之心。少務實之意。遺棄事物而遊心乎風詠之樂。則狂者之所以志
大而略於事也。宜夫子之痛加裁抑而反歎息而深許之。何也。且因此而或謂之胸次與天地同流。或謂之與夫子之志同。或謂之堯舜氣象。而反斥三子以規矩於事爲。則尤所未曉。
盍徹云云。○有子之對。意則善矣。雖然。無或乎哀公之以爲迂也。哀公之用不足也。以縱慾侈放。用度無節也。苟不先探其本劈破病根而遽勸以徹。則費出無經而奢濫之政自如矣。君孰與不足者。何足以解哀公之惑哉。季康子云云。○凡君問皆稱孔子對曰者。例固然矣。康子之問。亦用此例。無乃不稱乎。當時三家之僭。卽此可見。而記者之習於聞見。苟加僞尊。殊異乎春秋之筆矣。苟子不欲云云。○子不貪欲者。聖人辭氣。恐不當若是迫切也。仲弓爲季氏宰云云。○季氏。魯之僭賊也。以仲弓子路之賢且勇而甘心服事。不知食其食之爲不義也。實未可曉。且仕止。士之大節也。服事僭賊。 其非薄物細故也明矣。宜夫子之嚴辭而斥之。反爲之商確其政術。慨惜之意。畧不槩見。謂之以衆人望人。則二子之賢。宜非衆人而固夫子之所愛重者。一言誨責。豈不能釋然受敎乎。且縱不能禁之。答其問政。若將以助成之。所以待二子者無乃太薄乎。正名云云。○待子爲政者。將任孔子以政也。旣從其政則爲其臣矣。孔子所謂正名。宜在從政之後。則委身於無父之君。已不啻尋尺之枉矣。懷廢立之心而姑且臣事。則是二心也。旣爲之臣而欲行伊霍之事。則非貴戚之卿而賓主之勢不侔矣。然則胡氏所謂告于天王。請于方伯者。未知如之何而可也。善而莫之違云云。○言雖善也。樂其莫予違。則未必不爲喪邦之漸。唐虞之吁咈可見。謂之不亦善者。恐非所以告君也。正而不譎云云。○此章文法。對擧互言。若君子小人之分。記者之意。恐不可誣也。集註彼善於此者。恐是不得已而逶迤其說也。均是假仁也。均是不正也。容或有彼善於此者。恐不必發其隱而垂敎於人矣。况分開互對。判然若陰陽黑白之分而或不免爲覇者之口實乎。利澤及人。有仁者之功云云。○子貢之言管仲之未仁者。言其人也。非言其功也。夫子答之以功。不幾於問東答西乎。且以功言之。力服心服之別。不啻天壤。雖有利澤之及人。安得爲仁者之功乎。桓公兄也云云。○桓公之爲兄。旣無左驗。而莊子云桓公小白殺兄入嫂而管仲爲臣。此必有所據矣。且旣非嫡子。則均是庶也。爭國之不義。何必偏歸之子糾而斷之以當死耶。且以管仲之不死爲是。則召忽之死。卽是溝瀆之諒也。扶抑之太偏。尤所未曉。左氏記孔子之言云云。○左氏此記。恐有說焉。當此之時。欲上告天子而天子無發號之威。欲下告方伯而方伯無桓文之覇。其勢不得不先發也。旣將先發。兵力之衆寡。何可不量哉。力之所不及。義之所不出也。若曰勝齊孔子之餘事云。則戰而不勝。亦可以正天下而復興周室乎。惟知弑逆之當討而不恤吾國之先亡。則臨事而懼。好謀而成。夫子愼戰之意。果安在哉。荷蕢云云。○荷蕢者雖不識孔子。却知出處之義。觀其言。非無意於世者。只是無道則隱也。非若荷篠,接輿之絶物而逃世。則實爲行藏之正法。聖人所以遯世而無悶。未嘗不如是也。斥之以果於忘世。無乃太過乎。且此等出處。苟無所難。人不知而不慍。何以爲君子。不見知而不悔。何以謂唯聖者能之乎。疾沒世而名不稱焉。○此雖有楊氏之說。終恐未安。君子之爲善。爲吾所當爲而已。身後之名。本不當經於心也。人固有隱德自修。不幸立慬於窮山絶海之間者。若以此而偸生苟免。欲將以有爲也云爾。則聖人之訓。不幾於貽害世敎乎。有敎無類。○此句上下。疑有闕文。恐不必强解。且堯舜之際。亦有四匈。邵子亦有陽六分陰四分之語。惡之類。宜無終絶之理。博施濟衆。堯舜猶以爲病。則聖人恐不應爲此無當之大言也。舍曰欲之。○此云欲之。恐是泛言。集註言貪其利者。可疑。三友三樂。○集註。以兩章損益。爲正相反。而俱未見其確然吻合。且夫子之意。只是歷擧三事以示人之損益而已。恐不在於曲爲對待也。隱居而求其志。○求志之義。未詳。公山佛肹云云。○夫子嘗曰。不逆詐不億不信。抑亦先覺者是賢乎。夫公山佛肹據邑叛主。其不足與有爲。固已明矣。今因其召而欲往。是亦爲先覺乎。若曰知其必不能改而終不往。則尤恐未安。凡人之始欲爲而終不爲者。皆理有未明而義有未精。必待審處而後决其可否耳。聖人之知幾明决。何審處之可待乎。公山佛肹之惡。宜無增减於先後。而夫子之去就。乃有始終之不同。何也。吾其爲東周乎。○觀此言。則勸諸侯行王道。固不待孟子之時矣。惡在乎春秋尊周之義耶。且天下雖無不可有爲之人。以叛臣而興周道。恐是必 無之理也。前後文體。大不相似。○數章文體。固有不似。而季氏一篇。此等文體不啻多矣。集註之意。無乃爲公山佛肹之事爲可疑而引此說耶。年四十而見惡。○夫子嘗曰。鄕人之善者好之。不善者惡之。見惡於人。庸何傷乎。苟不欲見惡。闇然媚於世而已。是以蘇氏之說。不得已而歸之有爲而言。聖人有爲之言。容或有之。亦其渾而無迹。泛應曲當。豈有此等一偏之言。爲鄕原之口實乎。去之以存宗祀。○微子之去。以言不用而義不合也。修其禮物作賓王家。在周則崇報之厚矣。在殷則零替之酷矣。其異於不在焉者幾希。微子之計。豈在是哉。且有武庚在焉。則微子豈逆知其繼以淪喪而封典之及於己也。史氏以終封於宋而遂有持祭器造軍門之說。夫紂未亡則宗國重器。非微子之所當擅出。紂已死。則宮室典籍。自有典守。宜其謹藏之。以俟周命。非微子之所當獨持而籍手者也。且肉袒面縛。膝行把茅。降臣之乞憐也。史氏之不足信如是。今乃以持祭器云云而遂謂微子之去將以存宗祀。恐未安。佯狂而受辱。○此恐亦史氏之失傳。旣爲之奴。則安以受之而已。被髮以毁其體。顚妄而壞其行。義在自廢則過矣。計在避禍則苟矣。箕子豈爲是哉。齊人歸女樂云云。○桓子之受樂不朝。非定公之過也。君上之禮貌不衰。則桓子之怠傲。何足以决其去就哉。夫子旣爲司冦而攝行相事。則季氏有罪。擧而正之。可也。强不可制則隱忍而待之。亦可矣。且怠傲棄禮。在季氏爲竊鉤之罪。宜不足恤也。夫子之行。若是太遽。其義安在。夫子爲政。必先正名。而今此行止。惟係季氏之向背而無與於君上之意。則是定公之徒擁虛器。依舊是寄生之君。惡在其正名也。道之不行已知之。○以聖人之至誠前知。於己之窮通大節。天下之治亂大勢。宜有所心通而默識。如是則道之不行。固其知之。旣已知之。則皇皇載質。轍環天下。周公之不夢。何在於旣衰之後。歸歟之發歎。何待於在陳之時耶。仲雍居吳。斷髮文身云云。○子之於父。大杖不受。申生伯奇之所以傷孝。豈非以成其父之過耶。仲雍旣不從翦商。何不爲夷齊叩馬之諫。且諫不聽。則無所逃而俟命可也。毁形辱身。甘爲戎狄之俗。使太王君臣父子之間。俱失其道。何以謂之廢中權耶。盖後世華夷革命之際。布衣草澤之士或有不肯薙髮至死不變者。則宜不責以傷勇矣。然則夷之不可變。形之不可毁。豈非有甚於殺身乎。仲雍之不幸。千載之下。猶足傷心。太王之時。天下之亂。不至於塗炭。二子之賢。猶足以克家。而使之逃竄淪陷。至於此極而曾不少顧。人理之慘毒。殆吉甫晉獻之所不忍爲。而聖人之論。不以太王爲非而許仲雍以中權。何也。聖人俄頃之助云云。○伶人之逾河滔海。記時勢之益衰而賢者知所以潔身而已。張子必歸之聖人之功化。則恐近附會。如仲弓子路之徒。親炙聖門而猶不免從仕於三桓之門。豈以俄頃之正樂而伶人之觀感。若是之深乎。大故謂惡逆。○非惡逆則故舊無相絶之義。可見。
[주1] 포사(包四) : 네 가지를 포괄(包括)한다는 뜻이니, 네 가지란 ‘인의예지(仁義禮智)’를 말한다.
[주2] 보씨(輔氏) : 이름은 광(廣). 자는 한경(漢卿), 주자(朱子)의 문인(門人)이다.
[주3] 행행(行行) : 논어(論語)의 원문(原文)에 ‘자로행행여야(子路行行如也)’라 하고, 주(註)에 행행(行行)은 강(剛)하고 굳센 모양이라 했다.
[주4] 요씨(饒氏) : 이름은 노(魯). 자는 중원(仲元). 호는 쌍봉(雙峰)이다.
[주5] 각헌 채씨(覺軒蔡氏) : 이름은 모(模), 자는 중각(仲覺), 호는 각헌(覺軒)이다.
[주6] 호운봉(胡雲峰) : 이름은 병문(炳文), 자는 중호(仲虎), 호는 운봉, 사서통(四書通)을 지었음.
[주7] 관(灌) : 제사(祭祀) 때 술을 땅에 부어 강신(降神)함을 이름이다.
[주8] 철조(輟俎) : 변두(籩豆)를 걷음. 곧 제사를 마침.
[주9] 소음(韶音) : 소(韶)는 순(舜)의 음악(音樂). 서경(書經)에 ‘소소구성 봉황내의(簫韶九成, 鳳凰來儀)’ 라 했다.
[주10] 태왕(太王) : 주 문왕(周文王)의 조부. 호는 고공(古公)이고 이름은 단보(亶父).
[주11] 태백(泰伯) : 태왕(太王)의 맏아들. 아우 계력(季歷)의 아들 창(昌)에게 나라를 사양하기 위하여 피(避)하여 형만(荊蠻)에 가서 나라를 세우고 구오(句吳)라 했다고 전해온다.
[주12] 중옹(仲雍) : 태왕(太王)의 차자. 태백(泰伯)과 같이 형만(荊蠻)에 가서 단발 문신(斷髮文身)하고 살았다.
[주13] 계력(季歷) : 태왕(太王)의 제 삼자. 태백의 아우임.
[주14] 췌마(揣摩) : 나의 마음을 미루어 남의 마음을 추측하는 것.
[주15] 이ㆍ곽(伊霍) : 은(殷)의 이윤(伊尹)은 태갑(太甲)을 동궁(桐宮)에 내처 나쁜 버릇을 고치게 했고, 전한(前漢)의 곽광(霍光)은 창읍왕 하(昌邑王賀)를 폐(廢)하고 효 선제(孝宣帝)를 맞아 세웠다.
[주16] 우불(吁咈) : 서경에서 요순이 신하의 말을 듣고 찬동하는 뜻으로 우(吁)라 하고 거부라는 뜻으로 불(咈)이라 했다.
[주17] 정(正)하고 휼(譎)치 않다 : 논어(論語)에 ‘晋文公 譎而不正 齊桓公 正而不譎’라 했다.
[주18] 관중(管仲) : 제 환공(齊桓公)의 현상(賢相)이니, 이름은 이오(夷吾). 환공(桓公)을 도와 패업(覇業)을 이루었다. 호(號)를 중부(仲父)라 했다.
[주19] 자규(子糾) : 춘추(春秋) 때 제 양공(齊襄公)의 아들. 노(魯)에 출분(出奔)했다가 환공(桓公)과 왕위(王位)를 다투었으나 노(魯)에게 죽음을 당했다.
[주20] 소홀(召忽) : 제 대부(齊大夫)로서 자규(子糾)와 같이 노(魯)에 출분(出奔)했다가 죽었음.
[주21] 하조(荷篠)와 접여(接輿) : 두 사람은 다 공자 당시의 은자로 논어의 미자편에 보임.
[주22] 사흉(四匈) : 공공(共工), 환도(驩兜), 삼묘(三苗), 곤(鯀)을 말함.
[주23] 공산(公山)과 필힐(佛肸) : 공산 불요(公山弗擾)와 필힐(佛肸)은 춘추 시대 사람인데 남의 재신으로서 반역한 자들이다. 논어와 양화장에 보임.
[주24] 미자(微子) : 은(殷)의 충신. 주(紂)의 서형(庶兄)으로 주의 무도(無道)함을 보고 관직을 떠나 종사(宗祀)를 보존(保存)했다.
[주25] 무경(武庚) : 은 주(殷紂)의 아들. 무왕이 은을 정벌한 다음 은후(殷侯)로 봉(封)했더니, 성왕(成王) 때 관숙(管叔), 채숙(蔡叔)과 반(叛)하자 성왕이 주공(周公)을 시켜서 토벌(討伐)했다.
[주26] 길보(吉甫) : 주 선왕(周宣王) 때 현상(賢相)인데, 그는 폐첩(嬖妾)의 말을 듣고 아들 백 기(伯奇)를 죽였으며, 진 헌공(晉獻公)은 여희(驪姬)의 참소로 인하여 태자 신생(申生)을 죽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