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영점(Zero Point)의 각성
2화: 멈춰버린 왼쪽 무릎, 현대 의학이 놓친 오류 코드
대학 병원의 진료실은 늘 서늘했다.
마치 가동을 멈춘 원자로의 냉각수 풀(pool)처럼, 감정이 배제된 흰색 가운과 무미건조한 모니터 불빛만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서기주 환자분. MRI 영상 상으로는 큰 이상이 없습니다. 연골이 조금 닳긴 했지만, 이 정도 통증을 유발할 만한 구조적 결함은 보이지 않네요. 일단 진통소염제를 처방해 드릴 테니 무리하지 마시고 경과를 보시죠."
의사의 마우스 클릭 소리가 경쾌하게 울렸다. 내 왼쪽 무릎을 찍은 흑백의 정밀 스캔 사진이 모니터 위로 휙휙 지나갔다. 수십 만 원을 들여 찍은 그 최첨단의 단층 촬영 영상은, 내 몸의 '형태'를 완벽하게 분해해서 보여주고 있었지만, 정작 '흐름'은 전혀 읽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원장님,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무릎 안쪽에서부터 전류가 끊기는 듯한 마비감이 옵니다. 단순히 뼈나 인대의 문제가 아니라, 신호 전달 체계 자체에 버그가 걸린 것 같은 느낌입니다."
내 말에 의사는 안경을 치켜올리며 옅은 한숨을 쉬었다.
"환자분, 인체는 기계가 아닙니다. 때로는 스트레스나 원인 모를 신경통이 비특이적인 통증을 유발하기도 합니다. 약 드시고 푹 쉬세요."
진료실을 빠져나오며 나는 실소를 머금었다.
'인체는 기계가 아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인체는 단순한 톱니바퀴의 조합이 아닐 뿐, 수십조 개의 세포가 유기적으로 신호를 주고받는 우주에서 가장 정교하고 복잡한 양자 컴퓨팅 시스템이다.
절뚝이는 다리를 이끌고 병원 로비 의자에 주저앉았다. 왼쪽 무릎은 여전히 묵직한 돌덩이를 매단 듯 감각이 둔탁했다.
나는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요즘 나의 유일한 일과는 이 작은 화면을 들여다보며, 독수리 타법으로 쉴 새 없이 자판을 두드려 내 몸의 상태와 가설들을 텍스트로 기록하는 것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그저 답답하게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중년 사내에 불과하겠지만, 나는 지금 나만의 치유 시스템을 구축하는 거대한 매뉴얼 북을 집필하는 중이었다.
톡, 톡, 톡.
검지손가락 하나로 느릿하지만 정확하게 글자를 입력해 나갔다.
[현대 의학의 오류: 에러가 발생한 '출력단(무릎)'만 수리하려 든다. 정작 오류 코드를 발생시키는 '입력단(에너지의 근원)'은 무시한 채.]
군 상황실에서 작전 지도를 그릴 때, 특정 보급로가 끊기면 그 지역의 부대만 고립되는 것이 아니라 전체 전선의 균형이 무너진다. 원전의 노심 분석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말단의 밸브에 문제가 생겼다고 밸브만 교체하는 삼류 엔지니어는 없다. 진짜 원인은 중앙 제어실의 잘못된 신호 하달이거나, 보이지 않는 배관 어딘가에 쌓인 찌꺼기(슬러지) 때문일 확률이 높았다.
내 왼쪽 무릎을 망가뜨린 진짜 원인은 무릎에 있지 않다.
어딘가에서 에너지가 심각하게 정체되어, 병증의 뇌관 역할을 하는 '불발탄(TNTs)'이 내 몸속 기운의 통로를 꽉 막고 있는 것이다.
"MRI 같은 하드웨어 스캐너로는 소프트웨어의 엉킨 코드를 찾아낼 수 없지."
나는 병원 문을 나서며 진통제 처방전이 담긴 봉투를 쓰레기통에 미련 없이 던져 넣었다.
더 이상 남이 만든 불완전한 진단 프로그램에 내 몸을 맡길 생각은 없었다. 평생을 기계와 데이터의 숨겨진 패턴을 찾아내는 데 바쳤던 엔지니어의 자존심이, 나 스스로 인체라는 거대한 미지의 회로도를 해킹해 보라고 속삭이고 있었다.
이제, 내 몸속에 숨겨진 TNTs를 찾아내어 직접 기폭(起爆)시킬 시간이다.
🎨 삽화 프롬프트 (Midjourney / DALL-E 등 AI 이미지 생성기용)
[Prompt]
A highly detailed, cinematic web novel illustration. The scene is split or blending two concepts. On the left side, a cold, modern hospital setting with a doctor's monitor showing a black-and-white MRI scan of a human knee. On the right side, a middle-aged, intellectual man is looking at the same knee, but through his eyes, the knee and leg are overlaid with a futuristic, glowing golden and cyan hologram of intricate circuitry and energy nodes (meridians). The man is holding a smartphone in his hand, typing with his index finger. The contrast between the cold clinical medical environment and the warm, glowing, high-tech energy diagram of the body should be striking. Masterpiece, 8k resolution, photorealistic, dramatic lighting, subtle cyber-medical aesthet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