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춘 송 선생의 계사 同春宋先生啓辭
무신년(1668, 현종9) 12월 5일 소대(召對) 때에 좌참찬(左參贊) 송준길(宋浚吉)이 아뢰기를,
“외방(外方)의 서원에 참으로 폐단이 있긴 하지만 그중 걸출한 명신들에 대해서는 해당 부서에서 일체 방계(防啓)해서는 안 됩니다. 신이 듣기로 담양(潭陽)의 류희춘(柳希春)은 선조 때의 명신이므로 그 고을의 선비들이 서원을 세우고 상소하여 사액을 청했으나 해당 부서에서 방계하였습니다. 서관(西關)은 다른 도(道)와 다른데 정주(定州)의 선비들이 작고한 상신(相臣) 김상용(金尙容)과 김상헌(金尙憲)을 위해 또한 서원을 세우고 사액을 청했으나 끝내 윤허를 받지 못했습니다. 광주(廣州)의 선비들은 작고한 상신 문효공(文孝公) 포저(浦渚) 조익(趙翼)의 서원을 세우고 사액을 청했으나 또한 시행되지 않았습니다. 이 세 곳은 한결같이 막아서 선비들의 마음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하니, 주상께서 이르기를,
“매우 번거롭고 잡다하기 때문에 윤허하지 않았소. 경의 말이 이와 같으니 이 세 곳은 사액하는 것이 옳을 것이오.”
하였다. 숭정(崇禎) 25년 기유년(1669, 현종10) 10월 모일에 사액하여 ‘의암서원(義巖書院)’이라고 불렀다.
同春宋先生啓辭
戊申十二月初五日召對時。左參贊宋浚吉啓曰。外方書院。固有其弊。而其中表表名臣。則該曹不當一切防啓。以臣所聞潭陽柳希春。宣廟朝名臣。本州士人。爲建書院。上疏請額。該曹防啓。西關異於他道。而定州士人。爲故相臣金尙容,金尙憲。亦建書院請額。而終不得請。廣州士人。爲故相臣文孝公趙翼號蒲渚書院請額。而又不施行。此三處不可一例防塞。以沮士心。上曰。殊涉煩多。故不許矣。卿言如此。此三處賜額。可也。
崇禎紀元後二十五年 己酉 十月日。宣賜額號曰義巖書院。
[주1] 소대(召對) : 임금의 부름을 받고 나아가 정사(政事)에 관한 의견을 올리는 일을 이르던 말, 또는 임금이 경연청(經筵廳)의 참찬관(參贊官) 이하의 신하를 불러서 몸소 글을 강론하는 일을 이르던 말이다.
[주2] 방계(防啓) : 다른 관서나 다른 사람이 어떤 일에 대하여 임금에게 아뢰었을 때나, 임금이 어떤 일에 대하여 신하에게 의견을 물었을 때, 또는 임금이 시킨 일에 대하여 그렇게 하지 말도록 아뢰는 것. 곧 남의 의견을 막고 자신의 의견만 임금에게 아룀.
[주3] 서관(西關) : 황해도와 평안도를 통틀어 이르는 말. 서도(西道)라고도 함.
[주4] 포저(浦渚) : 대본에는 ‘포저(蒲渚)’로 되어 있으나, 조익의 호는 존재(存齋) 또는 ‘포저(浦渚)’라고 쓰므로 이에 근거하여 바로잡았다.
[주5] 경의 …… 것이오 : 《현종개수실록》 9년 12월 5일 기사에, “작고한 유신 문절공(文節公) 유희춘(柳希春)을 위해 담양(潭陽)에 세운 서원, 문원공(文元公) 김장생(金長生)을 위해 안성(安城)에 세운 서원, 작고한 상신 문충공(文忠公) 김상용(金尙容)과 문정공(文定公) 김상헌(金尙憲) 등을 위해 정주 (定州)에 세운 서원에 모두 사액하라 명하고, 작고한 상신 조익(趙翼)을 위해 광주(廣州)에 세운 사우(祠宇)에도 사액을 허락하였는데, 모두 좌참찬 송준길의 청 때문이었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