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천록 서문〔朝天錄敍〕
[육가교(陸可敎)]
금황제(今皇帝 명 신종)께서는 신령한 덕이 성대하여, 문명지사가 천하에 두루 퍼지고 미개하고 더러운 자들 모두 광명한 거동궤서동문(車同軌書同文)의 교화에 분발하려고 생각하니 참으로 아름답고 성대하다.
조선은 본래 은나라 기자(箕子)의 나라로, 주(周)나라의 이른바 삼각(三恪)의 빈객이다. 홍범(洪範)을 성인에게서 전해 주어 영원한 황극(皇極)의 시조가 된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가 지은 맥수가(麥秀歌)는 문인과 예인들이 고개를 숙이고 발을 동동 구르게 만든다.
그 뒤를 따라 대대로 혼란한 시기를 거치며 여러 나라가 번갈아 일어나기도 하였으나, 낙랑(樂浪)과 왕검(王儉)의 옛터에는 문학하는 선비들이 그래도 선대 사람들의 유풍(遺風)을 지니고 있다.
빛나고 창성한 우리 황조에 이르러 문명(文命)이 사방에 미쳐서, 비록 얼굴이 돌아가고 가슴에 구멍 난 오랑캐라 하더라도 오히려 건너 건너로 교화를 접하는데 하물며 성인의 유풍을 가장 가까이에서 들은 조선은 어떠하겠는가.
기축년(1589, 선조22)에 조선의 대부 윤자고(尹子固)가 왕명을 받들고 천자를 알현하러 왔다. 이 일을 계기로 출발해서부터 황성에 이르는 동안 지은 시 몇 편을 모아 ‘조천록(朝天錄)’이라고 제목을 지었다. 내가 관사(館使) 도본청(屠本淸) 군을 통해 받아 살펴보니, 그의 문채와 바탕이 깎고 다듬는 것을 일삼지 않았다. 그 시가 표일(飄逸)하고 침울하여 천뢰(天籟)에서 나는 소리와 같아서 검수(劍首)를 한번 분 것 같은 잗단 세상의 소리와는 현격히 달랐다. 이 어찌 천조의 교화가 멀리까지 미친 것이 아니겠으며, 또 그가 본래 지니고 있던 빼어난 재주로 이룬 것이 아니겠는가.
옛날 유여(由余)가 융족(戎族)으로서 목공(穆公)을 보좌하여 패자로 만들었고,초나라에 재주가 있는 자가 있으면 진(晉)나라에서 실로 그를 등용하였으니, 인재는 땅을 가려 태어난 적이 없다. 저 오(吳)나라의 공자 계찰(季札)이 옛 제왕의 아악(雅樂)을 비교한 일이 역사에 실려 있으니 또한 아름답고도 조리 있지 아니한가. 제(齊)나라, 진나라, 노(魯)나라, 위(衛)나라 등 여러 명망 있는 나라의 어진 이들이 모두 즐겁게 그와 교유하였고, 우리 공자(孔子)께서 “오나라의 공자 계찰이 내빙하였다.”라고 쓰셨으니 특별하게 여기신 것이다. 자고씨 같은 사람도 공자 계찰과 같은 사람이 아니겠는가. 내가 요행히 역사를 기록한다면 감히 “조선의 사신 자고씨가 경사(京師)에 조회를 왔다.”라고 말 할 것이니, 단지 그의 문장을 훌륭하게 여겨서만은 아니다.
황명(皇明) 만력(萬曆) 17년(1589, 선조22) 12월 초하루에 사진사제(賜進士第) 봉훈대부(奉訓大夫) 우춘방우유덕(右春坊右諭德) 겸(兼) 한림원시강(翰林院侍講) 장사경국사(掌司經局事) 찬수옥첩경연강관(纂修玉牒經筵講官) 규일(葵日) 육가교(陸可敎)는 찬한다.
朝天錄敍
今皇帝濯靈茂德。冠帶衣履遍天下。闇吻奧渫。咸思奮耀於光明。同文同軌之化。休哉晟矣。朝鮮。固殷父師國。周所謂三恪之賓也。毋論洪範授聖。爲萬祀皇極祖。即麥秀一歌。則文人藝士所爲頫首而竭蹶。從之者世植昏德。遞興遞建。而樂浪王險之墟。文學薦紳之士。猶有先民遺風焉。迨我熙昌。文命四訖。雖回面洞胸之酋。猶然重譯觀化。而矧玆聞聖人之風最近者乎。歲己丑。朝鮮大夫尹子固氏者奉其王命。獻見天子。因彙其發軔以至輦下。所爲詩文若干首。題之曰朝天錄。予得從館使屠君本淸。受而覽之。大都其文質任自然。不事剞劂。其詩遒逸沈鬱。類發之天籟。而與世之吹一吷於劍首者懸殊。此豈非天朝之化遠。而亦其故有出類之具致然耶。昔由余以戎輔穆公。伯惟楚有才。晉寔用之。才未嘗擇地生也。彼吳公子季者。比次古帝王雅樂。照映簡策。不亦洋洋纚纚哉。以齊晉魯衛諸望國大良。皆樂與遊。而吾尼父且筆之曰吳公子季札來聘。蓋異之也。若子固氏者。其亦公子札之流匹歟。 不佞 幸珥筆太史。敢亦曰朝鮮之使子固氏者朝於京師。固不獨異其文焉已也。皇明萬曆十七年十二月初吉。賜進士第。奉訓大夫。右春坊右諭德兼翰林院侍講掌司經局事纂修玉牒經筵講官。葵日陸可敎撰。
[주1] 거동궤서동문(車同軌書同文) : 천하가 같은 형태의 수레와 같은 문자를 사용한다는 말로, 중국의 모든 지역이 제도와 문물이 통일된 하나의 통일 제국임을 나타낸다. 이 말은 《중용장구(中庸章句)》 제28장에서 나온다.
[주2] 삼각(三恪)의 빈객 : 주나라가 천하를 통일한 후 우(虞)ㆍ하(夏)ㆍ은(殷) 세 나라의 자손을 모두 제후에 봉해서 조상의 제사를 받들게 하고, 공경을 나타내기 위해 이를 ‘삼각(三恪)’이라고 하였다. 《春秋左氏傳 襄公25年》
[주3] 천뢰(天籟)에서 나는 소리 : 본래 바람 소리, 새 소리, 흐르는 물소리 등 대자연의 소리를 나타내는 말로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에 나온다. 여기서는 윤근수의 시(詩)가 원숙하고 자연스러움을 칭찬해 말한 것이다.
[주4] 검수(劍首)를 …… 소리 : 검수는 검자루 끝에 달린 고리 장식을 말하는데, 《장자》 〈칙양(則陽)〉에 “피리를 불면 그래도 큰 소리가 나지만 검수를 불면 삑 하고 작은 소리가 날 뿐이다.〔夫吹筦也, 猶有嗃也, 吹劍首者, 吷而已矣.〕”라고 하였다. 시가 별 볼 일 없고 대단치 않음을 빗댄 것이다.
[주5] 유여(由余)가 …… 만들었고 : 유여는 본래 진(晉)나라 사람이었으나 서융(西戎)으로 망명하였다. 융왕(戎王)의 후대를 받고 진(秦)나라에 사신으로 나와서 진 목공(秦穆公)의 정치를 혹평하였는데, 진 목공이 그가 현인임을 알고는 객례(客禮)로 깍듯이 대우하며 진나라에 머물게 하여 마침내 진 목공을 도와서 서융의 패자(霸者)가 되게 하였다. 《史記 卷5 秦本紀》
[주6] 초나라에 …… 등용하였으니 :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양공(襄公) 26년에, 성자(聲子)가 진(晉)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화평(和平)에 관한 일을 통고하고 돌아오는 길에 楚나라에 갔다. 영윤(令尹) 자목(子木)이 그와 이야기할 때 진나라의 사정을 묻고, 또 “진나라 대부와 초나라 대부 중에 어느 쪽이 더 현능한가?”라고 묻자, 성자가 “진나라의 경(卿)은 초나라의 경만 못하지만 그 대부들은 현능하여 모두 경이 될 만한 재목입니다. 비유하자면 좋은 나무와 피혁이 초나라에서 간 것과 같으니, 초나라에 비록 재목이 있으나 진나라가 실로 그 재목을 쓰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주7] 저 …… 있으니 : 오(吳)나라 공자 계찰(季札)이 예악(禮樂)에 밝아 노나라에 사신 와서 주나라 음악을 듣고 열국(列國)의 치란(治亂)과 흥망성쇠를 알았는데, 《춘추》에 ‘오자(吳子)가 찰(札)을 보내어 와서 빙문(聘問)하였다.〔吳子使札來聘〕’라고 기록하였다. 《春秋左氏傳 襄公29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