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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흥은 역사를 움직이는 추동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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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준 저 | 영적성장 | 2006-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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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소개
주요 저서로는 1997년도 기독교 출판문화상을 수상한 [예배의 감격에 빠져라](규장)와 2003년도 기독교 출판문화상을 수상한 [거룩한 삶의 실천을 위한 마음지킴], 2005년도 기독교 출판문화상을 수상한 [죄와 은혜의 지배](생명의말씀사)를 비롯하여 [구원과 하나님의 계획](부흥과개혁사), [게으름], [자기 깨어짐], [하나님의 도덕적 통치], [교사 리바이벌], [자네, 정말 그 길을 가려나], [목회자의 아내가 살아야 교회가 산다], [설교자는 불꽃처럼 타올라야 한다], [돌이킴](생명의말씀사) 등 다수가 있다.
책 속에서
어느 시대든지 하나님만을 사랑하며 진정으로 깨어있는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은 있었습니다. 그리고 역사는 그들에 의해 움직여왔습니다. 18세기 미국의 영적 대각성의 지도자로 쓰임 받았던 조나단 에드워즈의 작품을 읽으면서 마음속으로 깊은 찔림을 받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물량적인 성장을 통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교회를 순수하게 함으로써 가능해지는 것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단지 인본주의적인 방식에 의해 규모가 커지고, 물량적으로 성공을 이룬 다수의 교회 안에 계시지 않으시고, 순수하게 하나님을 믿고 따르려는 소수의 사람들과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는 일평생 자신과 자신의 이웃이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모든 사람들이 행하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그 일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다면 자신은 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결심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깨어있는 소수로 살아가는 방식이며, 역사를 움직이는 하나님의 일꾼들의 삶의 방식입니다.
조국과 세계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무릎은 골방 안에 꿇었지만, 이 민족과 세계를 바라보자
그들의 죄는 나의 죄다
- 그리스도인들에게 참된 부흥에 대한 간절한 갈망이 없는 것은 교회가 역사를 위해 부름받았다는 장엄한 소명감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소명감이 없기 때문에 교회는 자신의 가난한 영적 상태를 인해 아파하지 않고 쉽게 자기만족에 빠집니다. 그리고 모든 신앙 생활이 개인의 은혜 유지 차원에 그치고, 신앙은 죄악 된 세상에서 양심을 달래고 종교적인 위안거리를 제공해 주는 수단으로 전락해 버리고 맙니다.
- 하나님 앞에 자신의 악함과 자기의 비참한 죄와 패역한 모습을 깨달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죄와 자신의 죄를 구별하지 않습니다. 너와 나의 죄가 구별되지 않습니다.
-영혼의 회복은 가난한 마음에서 시작되는데, 가난한 마음은 “하나님의 의로우시다”라는 인식 속에서 의롭지 않은 자신의 참모습을 바라보게 될 때 싹트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을 살아가면서 개인적으로나 교회적으로, 그리고 국가적으로 겪게 되는 대부분의 어려움은 하나님 앞에 바르게 살지 못한 우리의 죄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 오랫동안 영적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명백한 자신의 죄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단지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 라고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 그래서 그들은 열렬히 기도합니다. 그러나 침체에 빠진 영혼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정직하게 참회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며, 그분 앞에 서는 일입니다.
- 많은 무리를 기도의 자리로 모으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개인적으로, 교회적으로, 국가적으로 죄를 깊이 성찰하고 돌이키는 것입니다. 진지한 성찰 없이 큰 소리로 기도하는 수많은 군중보다, 진지하게 자신을 성찰하고 겸비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한 사람이 역사에 훨씬 더 기여합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은 기독교 신앙을 자신의 삶에 적용하는 일에만 익숙한 나머지 지난 시대의 교회의 역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그것을 적용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 많은 그리스도인이 바쁘고 고단한 경쟁 사회에 살면서 자신의 영적인 생활을 위한 의무를 등한시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조국 교회의 평균적인 그리스도인들은 텔레비전을 보는 시간만큼 기도하지 않고, 신문이나 잡지를 읽는 시간만큼도 성경을 읽지 않습니다.
- 최근 실시된 여론 조사에서 ‘이 나라의 미래가 누구에게 달렸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삼성 그룹에 달렸다’고 답변한 대목에서는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습니다.
- 심령에 부어지는 은혜 없이는 자기 안에 하나님 나라를 누릴 수 없고, 그렇게 되면 그는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지 않을 이 세상의 현실을 보며 아파할 수도 없으며,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실현되기를 위해 고난을 받으며 헌신할 수는 더더욱 없습니다. 또한 자신이 사는 현실과 역사에 대한 헌신이 없는 내적인 은혜의 경험은 부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 부흥을 열망하고, 자신을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앞당기는 도구로 드리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먼저 “하나님, 무엇이 잘못됐습니까? 어떻게 해야 제가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까?”라고 여쭈어 보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봉사나 자신을 내어드림이 없는 헌금 몇 푼을 가지고 하나님과의 어긋난 관계를 땜질하려 하지 말고, 진실한 태도와 부단한 노력으로 하나님의 기대에 부응하는 삶을 살고자 애써야 하는 것입니다.
- 그리스도인들은 역사 한 구석에 갇혀서 신앙의 자유를 누리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자신들뿐 아니라, 자기 시대의 교회와 세상의 거룩한 변화를 위해 부름받은 존재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베푸시는 모든 초월적인 은혜는 이러한 역사적 사명을 감당하게 하시려고 주신 것입니다.
- 사탄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형식뿐인 신앙생활을 하게 하고자 힘씁니다. 마음 드림이 없는 예배와 영혼에 진정한 변화가 없는 종교적인 의무를 행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사탄이 뛰어난 능력으로 역사한다 할지라도 우리에게서 영생을 빼앗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사탄이 역사하는 목표는 우리가 진실한 신자로 변화되어 역사에 기여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대신, 다만 교회에 다닐 뿐 사실상 불신자와 다름없이 살아가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어찌하든지 믿는 자들을 유혹해 죄 가운데로 빠지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거스르며 살게 하려는 것입니다.
- 소수를 통한 역사 ... 신자가 아무렇게나 살아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것은 끊임없는 자기 깨어짐과 분투가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늘 근신하며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구원받은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하며 역사를 움직이는 소수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간혹 ‘이렇게까지 힘들게 신앙생활을 할 필요가 있을까?’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만나곤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잠들어 있는 다수가 되는 지름길입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사는 일에 공들이는 대신, 편한 길을 따라 신앙생활하고 싶은 이유는 하나님보다 자기 행복을 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느 시대든지 하나님만을 사랑하며 진정으로 깨어 있는 삶을 사는 소수의 그리스도인은 있었습니다.
- 우리가 이 나라와 조국 교회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정말 필요한 일입니다. 우리 안에 이루어진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밖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구해야 합니다.
- 오늘날에도 타계적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이런 사람들은 오직 교회에만 적응할 뿐 직장이나 사회에는 적응을 하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빛이요, 소금이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빛은 어두운 곳에 던져짐으로써 스스로가 빛임을 드러내고, 소금은 부패한 곳에 뿌려짐으로써 스스로가 소금임을 입증합니다. 소금이 자신의 맛을 잃어버리는 것도 큰 문제지만, 소금이 부패한 곳을 외면한 채 소금 창고에만 머물러 있는 것 역시 심각한 문제입니다.
- 사실, 우리가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평가하는지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보시는가 하는 문제인 것입니다.
- 우리의 발목을 잡는 것은 언제나 죄가 아니라,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으려는 높은 마음입니다.
- 수많은 사람이 부흥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러나 그 기도의 대부분은 허공 속으로 흩어지고 맙니다. 집중된 기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기도는 그의 살아가는 모습을 전혀 반영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삶과 동떨어진 기도는 간절해질 수 없고, 간절하지 않은 기도는 하나님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기도하는 것과 동일한 삶을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삶이 담보된 기도를 드릴 때,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위에서 특별한 능력을 내려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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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L. 무디의 경험은 우리에게 이 문제에 대한 귀한 깨달음을 줍니다. 무디는 성령의 필요를 간절히 느끼고, 성령 충만을 위해
육 개월 이상 하나님 앞에 쉬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성령의 충만함을 경험할 수 없었습니다. 그가 성령의 충만한
부으심을 경험한 것은 그 기도 제목을 포기하고 “하나님, 나를 보게 해 주시옵소서. 나의 죄를 깨닫게 해 주시옵소서.”라는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을 때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