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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7한국수필/수필DJ②/김규련의 강마을
아직도 가끔은 꿈이 그립다
최원현
오늘 아침 출근길에 문조(文鳥) 한 마리가 죽어서 길섶에 버려져 있는 것을 보았다. 무서리가 내린 강변에 어린 물새 한 마리가 죽어 쓰러진 것을 보고 치마폭에 싸다가 양지에 묻어 주던 소녀가 생각난다. 이듬해 봄에는 그 무덤을 찾아가 풀꽃을 뿌려 주던 그 천사의 동심이 오늘 황량한 내 가슴에 강물로 출렁인다.
강마을 아이들은 강변의 물소리를 익히며 자란다. 강물 소리에도 계절이 깃들여 봄이 오고 가을이 간다.
강물에도 생명이 있다. 추운 겨울 얼음이 겹으로 강 위에 깔려도 강심 어딘가에는 숨구멍이 있다. 이 생명의 구멍으로 강물은 맑은 하늘의 정기를 호흡하며 겨울내 쉬지 않고 흐른다. 겨울의 강물 소리는 마음으로 듣는다. 차가운 강바람이 소창(素窓)을 칠 때 떨리는 문풍지에서 문득 오열(嗚咽)처럼 흐르는 강물 소리를 듣는다.
우수(雨水)가 지난 어느 날 새벽, 찡 하고 나룻터 빙판에 금 가는 소리가 나면 비로소 강마을의 한 해는 시작되는 것이다. 강이 풀리면 금조개 빛깔의 겨울 강물이 청자빛으로 변해 가고, 잠에서 깨난 물고기들은 꼬리를 쳐 본다. 강마을의 봄은 강물의 빛깔과 물소리에서 오는 것일까. 막 껍질을 깨고 난 병아리의 삐약거리는 소리가 강변에서 번져 나오면 산과 들은 곧장 강물빛깔을 닮아 간다. 강마을 아이들은 감동과 사랑으로 이 신비로운 질서에 동화(同化)하면서 기다림과 설레임으로 봄을 맞는다.
[붓 가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평민사. 1979.6.25. 초판)에서 김규련의 <강마을> 중
요즘아이들에겐 꿈이 없다고 걱정들을 한다. 그럴지도 모른다. 요즘 아이들은 꿈을 꿀 여유도 없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학원으로 또 학원으로 시간에 쫒기며 제대로 식탁에 앉아 밥 먹을 틈도 없는 아이들에게 편안한 잠이 어디 있으며 그러니 꿈을 꿀 수나 있겠는가. 하니 장래에 대한 꿈은커녕 하룻밤 편안한 잠속 꿈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런데 어른들이 말하는 꿈이란 뭘까. 아이들에게 네 꿈이 무어냐고 물으면 우리 어릴 적엔 대통령이니 장군이니 과학자니 하여 이구동성으로 위인전식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고 했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은 머뭇거린다. 구체적인 무엇, 진정 실현 가능한 그 무엇을 말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나도 꿈을 들먹일 때가 있곤 한다. 환갑을 지나도3-40년을 거뜬히 사는 현대인들에게 꿈은 아이들만의 것이 아닐 수 있다. 그래선지 이 나이가 되었음에도 문득 어린 날로 돌아가고 싶어질 때가 있다. 지금이 싫어서도 어린 날이 무작정 그리워져서도 아니다. 다시 꿈을 가져봤으면 싶어서다. 한 번 더 처음부터 새로 시작할 수 있다면 조금은 더 나은 삶을 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또 하나 내가 서운해 했고 속상해 했던 것들이 아무것도 아니었다고도 말해주고 싶다. 그때는 뭐가 그리도 억울하고 속상했는지 모른다. 지나고 나니 그 또한 그리움이 되고 아름다움이 되는 걸 그땐 몰랐었다. 살아가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는 것처럼 꿈도 이루어지건 이루어지지 않건 꿈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수필 공부를 다시 시작하던 1980년대 중반 가끔씩 청계천 헌 책방 나들이를 했다. 마음에 드는 책을 얻건 못 얻건 그렇게 몇 시간이고 헌 책들과 함께하다보면 내 몸에서도 책 냄새가 나는 것이 느껴졌는데 난 그게 좋았다. 특별히 어떤 책을 사야겠다는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헌책방을 돌다보면‘나 여기 있어요’ 하고 내 눈을 붙들어줄 책이 있을 것만 같고 그런 만남을 기대해 보던 것이었다. 어떤 날엔 마음에 드는 한 권의 책을 발견한 순간 내 손이 더 먼저 책으로 가있던 때도 있었다.
지금 이 책도 1985년쯤에 그렇게 청계천 헌 책방에서 만났다. 그날도 별 생각 없이 책방을 돌고 있었다. 그런데 한 책방의 문을 여는 순간 탑처럼 쌓여있는 책의 맨 밑바닥에서 힘겹게 고개를 내밀고 있는 빛바랜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나 좀 살려 주세요’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난 쌓여있는 책을 둘로 나눠 옆으로 옮기고 나머지를 들어 내 발등에 올리고는 맨 밑에 있던 그 책을 어렵게 빼냈다. 《붓 가는대로 마음 가는 대로》, 그 제목 때문이었던 것 같다. 책의 상태는 별로 좋지 않았다. 먼지를 털어내고 책장을 펼쳤다. 목차도 누렇게 변해 있었다. 김소운, 한흑구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조심스레 값을 물으니 천원만 달라고 했다. 천원만? 책의 판권을 여니 1979년판이고 정가는 1,500원이었다. 이런 책을 정가에 가깝게 받으려 하다니, 속으로만 생각하며 책의 표지를 확인하는데 책 뒷표지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평민사가 꾸민 수필 모음’이란 제목 밑에‘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이후 2년 만에 참다운 수필이 없다고 투덜대는 당신에게 수필의 풋풋한 향기를 드리기 위하여, 저희 평민사 문학부가 저희들의 정성을 다해 꾸며낸 우리 시대의 가장 아름다운 수필모음이 바로 이 책, 붓가는대로마음가는대로 입니다.‘ 순간 내 마음 한 곳에서 ’빨리 사!‘하는 재촉이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1977년에 나온《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박완서)를 재미있게 감동적으로 읽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더 이상 지체 않고 책값을 치르고 집으로 가져왔었다. 그런데 삼십년도 넘은 오늘 새삼스럽게 이 책이 내 눈을 끌었다.
붓 가는대로 마음 가는 대로, 수필의 정의처럼 통해 오던 말이다. 하지만‘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은 왠지 마음 편하게 아무렇게나 써도 될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하는데‘마음 가는대로 쓰는 글’이 붙으니 더 자유로워질 것 같지만 조금은 더 부담스러워 지는 것 같다. 붓 가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쓴다는 것은 어떻게 쓰는 것일까. 이 책에 실린 수필들을 읽어보면 어떻게 수필을 써야 할지 감이 잡힐까. 인위적이지 않게 생각나는 것을 그대로 써보라는 것이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이 책은 1979년 6월 25일 초판본이다. 김소운 한흑구 김태길 김시헌 김규련 진웅기 김열규 이경희 박연구 정진권 정목일 등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수필이 실려 있다. 김소운 김시헌 김규련 진웅기 이경희 박연구 정목일 등은 5편씩, 김소운 한흑구 김태길 김열규 등은 4편씩, 정진권 선생은 6편을 실어서 모두 57편이 실려 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김소운의 <특급품> <외투> 등을 비롯 김열규의 <어느 바다의 소년기>, 이경희의 <현이의 연극>, 정진권의 <짜장면> 등 이미 교과서에서 읽었던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헌데 책을 펼치다가 바로 얼마 전 타계하신 김규련 선생님 이름 앞에서 눈이 멈춰졌다. <까치밥> <강마을> <칠 안 저고리> <산골 버스> <봉선화> 등이 실려 있었다. 나는 김규련 선생의 <강마을>을 참 좋아한다.
<강마을>에는 우리의 어린 날 동화들이 마구 소리하고 뒹굴고 끌어안으며 저마다의 냄새와 색깔로 즐거움을 토해냈다. 요즘 아이들은 감히 상상도 못할 정서와 서정이다.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펴며 꿈을 꾸게 하던 날들, 비록 고픈 배를 누르면서 쏟아지는 햇볕을 먹을 것이라도 되는 양 호흡하며 새까맣게 그은 몸을 강물 속으로 던지면 강물은 기다렸다는 듯 그 몸을 날름 받아 삼켰다. 그렇게 한바탕 물속에서 놀다보면 입술이 파래지고 온몸이 떨려온다. 그러면 신호라도 한 듯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들 물에서 뛰쳐나와 강가 모래밭에 벌러덩 들어 누웠다. 그리고 눈을 뜰 수도 없을 만큼 부시게 쏟아지는 햇빛을 온몸으로 받아 안았다. 차가와졌던 몸속으로 따스한 햇볕이 쏙쏙 파고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조금 지나 몸이 녹으려 하면 누군가 모래를 뿌리거나 발을 부딪쳐 장난을 걸게 되고 그때부턴 또 다른 우리들만의 즐거운 전쟁이 벌어졌다. <강마을>에선 그런 저마다의 어릴 적 추억이 향수처럼 배어난다.
김규련 선생의 호는 소목(素木)이다. 평생을 교육자로 사신 분이다. 1950년 경북 군위중학교를 시작으로 40년을 교직에 몸담았던 그는 경북 교육연수원장과 포항고등학교 교장을 끝으로 교직에서 은퇴했다. 경북 오지의 교육장 재임 기간에 많은 작품을 썼는데 그는 1968년 수필문학에 수필 <강마을>을 발표하면서 수필가가 되었다. 경북 영양교육장 시절에 발표했던 수필 <거룩한 본능>은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려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왔다. 그러나 나는 그보다도 일찍 발표된 이 <강마을>이 더 좋다. 어린 날의 동심을 자연스럽게 불러내면서 전체에 흐르는 시적 감성이 좋게 느껴져서이다. 그런데 선생님이 지난 6월 10일 신장질환으로 투병 중 세상을 떠나셨다. 1년에 한 번쯤 대구의 수필문학 행사가 있어 내려가면 한참씩 손을 꼬옥 잡아 주셨는데 그리고 그 잡은 손으로 백마다 말보다 더 많은 말씀을 해 주셨는데 이제 그리 할 수 없다. 그러나 사람은 가도 작품은 남아 이렇게 작품 속에서 선생님을 만나고 느낀다.
수필을 읽다보니‘기나긴 봄날을 함께 놀아줄 동무’라는 표현이 나온다. 요즘은 봄도 가을도 사라진지 오래인데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 그때엔 내가 겪었던 봄도 분명 그리 길었었다. 그땐 왜 그리 봄이 길었을까. 봄은 신 겨울을 이겨낸 만물이 새롭게 살아나는 계절이다. 죽은 것 같았는데 살아나는 생명체들, 그 긴 겨울을 이겨낸 장함이 느껴지는 만큼 우리네 삶의 아픔도 슬픔도 봄이면 다 회복된다는 희망이 은연중 나누어지고 있었다. 그만큼 그 시절 우리네의 삶은 가장 힘들 때였다. 넉넉지 않은 가을 추수 후 긴 겨울을 보내고 나면 봄인데 보리 추수기가 되기까지는 웬만한 집에선 먹을 게 다 동이 났다. 그래서 보릿고개를 못 넘기고 굶어죽는 사람도 생기던 때다. 봄이 되어 파릇파릇 싹이 돋아나기 시작하면 바구니를 들고 들로 나갔다. 먹을 게 없으니 들에서 나는 것들을 닥치는 대로 캐어다 나물밥을 해 먹었고 그도 없으면 굶어야만 했던 시절이다. 그런 때에 동무라도 있으면 말 걸고 장난도 치고 서로 의지가 되어 시간이라도 보낼 수 있으련만 그런 동무마저 없다면‘기나긴 봄날을 함께 놀아줄 동무’가 참으로 그립고 또 그리웠을 것이다.
<강마을>에는 자연과 사람이 하나로 살아가는 모습이 그림처럼 그려져 있다. 무서리가 내리자 첫 추위를 못 이긴 어린 물새 한 마리가 강변에 얼어 죽어있었다. 한 소녀가 그걸 본다. 소녀는 죽은 물새를 지나치지 못하고 치마폭에 싸더니 햇볕이 잘 드는 곳으로 가 작은 무덤을 만들어 묻어준다. 그리고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자 소녀는 풀꽃을 꺾어 어린 물새의 그 무덤을 찾아가 뿌려준다. 그 소녀의 모습과 마음이 작가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데 아침 출근길에 길섶에 버려져 있는 죽은 문조 한 마리를 본다. 그런데 작가는 그 문조를 소녀처럼 묻어주진 않은 것 같다.‘황량한 내 가슴에 강물로 출렁인다’는 표현으로 봐서 그걸 묻어줄 마음도 여유도 이미 상실한 상태인 것 같다. 가슴에는 강물로 출렁여도 죽어버린 문조를 묻어주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세상사를 겪어버린 작가다. 그래도 그 소녀의 마음이 아직까지 남아있는 것이 작가가 되게 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신을 포함한 현대인의 모습이 이렇지 않느냐고 항의라도 하는 것 같다. 해서 강마을의 추억이 그립다. 아니 그 때의 마음이 그립다. 가르쳐주지 않아도 강변의 물소리를 익히며 자라던 아이들은 강물소리만으로도 봄인지 가을인지를 구분했다. 얼어버린 겨울 강에도 숨구멍이 있어서 이 생명의 구멍으로 강물은 숨을 쉬었으며 얼음 밑에서 겨울 내내 쉬지 않고 흘러갔다. 그리고 우수가 지난 어느 날 그것도 아무도 보지 않는 새벽에‘찡’하고 금이 가는 것을 신호로 강이 풀렸다.
이런 자연의 순리와 질서 속에서 강물 빛깔이 달라지는 것을 보고 그 속에서 감동과 사랑으로 이런 신비스런 질서에 동화하면서 봄을 맞았다. <강마을>을 읽고 있으면 그냥 마음이 청량해 진다.‘나는 어린 시절을 강마을에서 자랐다’는 작가의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이 눈에 보인다. ‘사랑도 미움도 서러움과 희열도 어쩔 수 없이 흘러간다는 강물의 슬기’를 어찌 사무치게 느끼지 않을 수 있는가.
그냥 편안하게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한 편의 수필이 가슴으로 흘러가게 한다. 문장은 시(詩처)럼 운율이 흐르고 이야기는 동화(童話)가 되어 어린 날로 돌아가게 한다.
오랜만에 아주 편안한 마음이 된다. 그런 옛날의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고 아쉬워 하지만 이렇게 문학은 잃어버린 것들 까지도 새롭게 일으키고 회복시키는 놀라운 힘이 있다. 그래서 문학이다.
<강마을>을 읽으며 아직도 그런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꿈이 남아있음을 깨닫는다. 그런 꿈이 그립다. 그리고 꿈을 갖고 싶다. 아니 살려내고 싶다. 그래서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가끔은 그런 꿈도 그리운 것 같다. 꿈은 이루어지지 못 하는 게 더 많다. 그렇기에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하지만 어린 날의 꿈은 한 평생 삶을 살아가는 힘이 되어준다. 꿈 자체만으로도 행복해 질 수 있다. 그러나 현대인에게 꿈은 무얼까. 너무나 현실주의적인 우리의 가슴 속에 소목 선생의 <강마을>을 담아보게 하고 싶다. 나이가 들어도 늙지 않고 늘 어린 가슴이게 하는 어린 날의 꿈이 있어 사람들은 그리움도 느끼며 사는 것이 아닐까. 거기에‘붓 가는대로 마음 가는대로’글을 쓰고 삶도 그리 산다면 그보다 더 행복한 일이 어디 있으랴. 수필이 그런 꿈으로 인도해 주지 않는가.
여름의 강마을은 조물주의 장난이 허락된 방종(放縱)의 도시라 할까. 목이 타는 한 발로 모랫벌을 사막으로 만드는가 하면, 큰 홍수가 나서 한 마을을 자취도 없이 쓸어 가기도 한다. 그러나 하동(河童)들은 그런대로 마냥 즐겁다. 열사(熱砂)의 강변에서 가뭄을 잊고 마음껏 물에서 노는 것은 즐겁다. 동화 속의 왕국을 모래성으로 쌓아 올려, 공상의 날개를 펼쳐 보는 것은 더욱 즐겁다. 홍수가 나면 산마루에 올라, 함성과 군마와 쇠북소리를 내며 밀어닥치는 바다 같은 흙탕물의 장관(壯觀)에 넋을 잃는다. 날씨가 고르면 강마을은 밤낮이 없는 이방인의 거리로 변한다. 낯 설은 풍습이 강마을 아이들의 눈을 난시로 만들어 놓는다. 철이 바뀌면 이방인들은 훌쩍 떠나가 버려도 그들이 버려둔 풍습의 유산은 동심의 한 모서리에 갈등 같은 묘한 멍을 오래 남겨둔다.
추억의 멍, 그 아름답고 슬픈 추억의 흔적을 사람들은 꿈이라고 말하는 게 아닐까. 이 나이의 나처럼 말이다.
최원현
수필가·문학평론가. 한국수필창작문예원장. 강남문인협회 회장. 사)한국수필가협회 사무처장. 사)한국문인협회·사)국제펜한국본부 이사. 한국수필문학상·동포문학상대상·현대수필문학상·구름카페문학상·현석김병규수필문학상·월간문학상 수상, 수필집《날마다 좋은 날》《오렌지색 모자를 쓴 도시》등 13권. 중학교 교과서《국어1》《도덕2》및 여러 교재에 수필 작품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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