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여름 개봉한 <다이 하드>(Die Hard)는 그야말로 깜짝 놀랄 성공작이었다. 그 시작은 미약했으나 끝은 그야말로 창대했다는 전언이 빈말이 아님을 증명했다는 말이다. 사실 이 성공작이 완성되기까지 제작과정은 재난에 가까웠다. <다이 하드>에 대한 관객들의 기립과 갈채가 있기 전 영화는 완전한 실패작이 될 거라는 우려와 혹평에 시달려야만 했다. 영화의 초기 예고편은 정말 형편없는 대접을 받았고, 이어진 시사회는 주연인 브루스 윌리스(Bruce Willis)가 불참한 상황에서 치러졌다.
주연으로 나온 브루스 윌리스는 당시 사실 무명의 잠재적 스타에 불과했다. 윌리스는 서부영화의 전형적 인물됨을 겸비한 영리한 수다쟁이 경관 존 맥클레인을 연기했다. 영화제작사 '20세기 폭스'에 실제 준하는 초고층빌딩을 접수해 거금을 탈취하려는 매우 의기양양하고 지적인 독일인 도적떼들의 강력한 화력에 맞서 악전고투를 벌여야만 하는 영웅적 주인공을 맡은 그는 진정 일당백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는 활약을 펼친다.
<다이 하드>는 한편 일반적인 기대치를 전도하는 플롯상의 묘미로 인해 그 이상의 호소력을 발휘하는 영화다. 야수적인 초인적 영웅을 주인공으로 한 액션영화들은 많지만, 여기서 주인공은 평범한 경찰에 불과하며 아내와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사력을 다하는 인물일 뿐이다. 익살과 재치가 남들보다 뛰어난 경관은 보통 사람들처럼 겁먹고 압도당하고 다치기도 하면서 본연의 임무를 다하고, 마침내는 매우 잘 조직된 범죄자집단들의 맹공을 극복해낸다. 또한 여기서 악당들은 “테러범”에 대한 일반적 정의와 달리 세련되고 지적인 면모를 보인다. 되레 그들의 입장을 응원하게 되는 일탈의 재미를 영화팬들에게 안겨준다는 주객전도의 전복적 매력 또한 특별한 의미가 있다 할 것이다.
제작사는 그럼에도 <다이 하드>의 흥행에 대해 불 확신했다. 끈질기게 살아남는 주인공을 상징하는 영화제목과 달리, 이 영화가 곧 사망선고를 받고 말거라고 내다봤다. 그러한 자신감의 결여는 최종편집을 위한 사운드트랙을 다루는데도 문제의 여지를 남겼다. 제작자 조엘 실버(Joel Silver)는 작곡가 마이클 케이먼(Michael Kamen)과 이전 <리썰 웨폰>(Lethal Weapon) 프랜차이즈 시리즈에서 성공적인 합작을 한 바 있다.
관객들을 신나게 만드는 케이먼의 새로운 사운드는 곧 영화와 텔레비전은 물론 당시 대중음악의 별들과 밴드들에게 높게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그의 음악은 이 영화의 마지막 제작단계인 최종편집과정에서 상당량 도살당하는 불운을 겪어야만 했다. 케이먼의 스코어는 조각내 잘리고 완전히 재배치되었다.
작품의 일부는 최종적으로 사용되지도 못했고, 존 스콧(John Scott)의 <맨 온 파이어>(Man on Fire, 1987)와 제임스 호너(James Horner)의 <에일리언 2>(Aliens, 1986)에서 발췌한 큐들이 그의 임무를 대체했다. 대용된 음악들 또한 원래 영화의 문맥상에 난도질된 채로 삽입되기는 마찬가지였다는 후문. 스코어를 완전히 사용하는 대신 감독과 편집자는 큐로 쓰인 케이먼의 곡들의 일부를 취해 단지 각 장면들에 맞게 반복적으로 선회하도록 재조정했다. 원래 작곡가가 의도한 바와 달리 영화전개의 전후관계 속에서 전체적인 응집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거다.
스코어는 영화의 맥락에서 별도로 분리해 들으면 상상력이 현저히 감소될 수밖에 없음을 감안, 최종편집에서 이를 특별히 재편성한 이유도 거기에서 근거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스코어자체의 독특한 분위기는 베토벤(Beethoven)의 '환희의 송가'(Ode to joy)의 활용에 의해 거의 완벽하게 잠식당한다. '환희의 송가'는 치밀하면서도 유머와 교양을 겸비한 한스 그루버(Hans Gruber)와 그의 심복들, 악당들을 묘사한다. '환희의 송가'를 이런 식으로 적용한 것은 감독 존 맥티어넌(John McTiernan)의 착상이었으며, 케이먼은 'Singing in the rain', 'Winter wonderland' 그리고 'Let it snow'의 멜로디를 결합해 감독의 아이디어에 호응했다. 'Let it snow'는 성탄절분위기를 위한 영화의 엔딩 가창곡으로도 사용돼 관객들에게 안도와 쾌감을 준다.
케이먼은 유명한 이 세 노래의 멜로디를 큐로서 쓴 다수의 곡들에 훌륭하게 결합해냈다. 이 결합적 멜로디는 독일의 범죄자들이 빌딩을 접수하기 위해 잠행하는 장면들에서부터 즉시 시동을 건다. 처음 4화음 악상만으로 진정 뇌리에 각인될만하지만 'And if he alters it?'에서 현악으로 반주되어 들리는 비극적 6화음 테마는 실로 독창적이다. 케이먼은 이 테마를 영화의 2/3지점까지 보류하고, 맥클레인을 위한 악상일거라고 관객들이 결부 짓게 만든다. 하지만 이 적용은 실제 악당들의 불법침입을 묘사한 것에 더 가깝다. 재미있는 것은 2007년 뒤늦게 프랜차이즈의 또 다른 속편으로 개봉한 <다이 하드 4.0>(Live Free or Die Hard, 2007)에서 이 악상을 마르코 벨트라미(Marco Beltrami)가 최상으로 확대했다는 거다.
이외에 케이먼의 스코어는 서부와 동양의 모방적인 음조를 내는 어쿠스틱 기타반주의 반복적 패턴과 연말 성탄절 연휴의 분위기를 재미있고 가볍게 묘사한 징글벨 소리로 분명히 나타난다. 서부의 리프는 영화의 초반에 톰과 제리 식의 쫓고 쫓기는 게임플레이에 다량 투입되고 카우보이 타입인 맥클레인의 인물됨을 반영한 성취감을 준다. 'The fight'나 'Tony and John fight'에서 들리는 퍼커션 주도의 굉장히 폭발적인 액션사운드는 스코어의 여분 속으로 수차례 추적해 들어간다. 이는 곧 육박전의 실질적인 모티프로 스코어에 작용한다.
스코어를 구성하는 나머지 곡들은 불안한 기조의 최저음부 앙상블로 불쑥 나타나고, 현을 뜯는 연주, 희미한 징글벨 리듬으로 긴 연속장면을 반주한다. 주제적인 악상이 부재한 화음진행은 때로 'Going after john again'과 같은 큐에서 아주 흥미로운 음형으로 다소 강한 인상을 주지만, 그렇지 않으면 특색이 없긴 마찬가지다. 맥클레인이 킬러들을 피해 경찰에게 연락하려고 할 때 스코어는 동일하게 저음계의 진행을 따른다. 테러범들이 먼저 빌딩의 주도권을 획득할 때도 그렇다. 현을 튕겨 비음과 같은 소리를 내는 전기기타, 저음 현을 뜯어서 내는 현악반주의 혼합은 이 장면들에서 나카토미 플라자에 여전히 감도는 미결의 긴장된 분위기를 적절히 대변한다. 또한 생명을 위협당하는 인질들의 악몽 같은 상황을 시사한다.
이 기법들은 플라자와 내부에서 숨바꼭질놀이를 벌이는 선과 악의 대결적 분위기를 어느 정도 충분히 전이하지만, 가장 난폭한 장면들과 이야기가 전개됨에 따라 더 큰 규모로 연속되는 액션장면들에서 최종적으로 본격화된다. 'Under the table'과 'Gruber's departure'가 투영된 연속장면에서 케이먼은 리듬적으로 연발하는 금관악기를 통해 버나드 허먼(Bernard Herrmann)의 영역을 탐구했고, 이는 결국 이 음악이 쓰인 장면들에서 절정의 감탄을 자아내는데 성공적으로 작동한다. 금관악기에 의한 특징적 분위기는 그루버가 빌딩에서 떨어지는 장면을 아주 느리게 전개하는 동안 매우 강렬한 인상을 준다. 엄청나면서도 조화로운 이 사운드의 위력은 실로 쉽게 인식될만한 하이라이트로 스코어의 나머지부분들과 달리 매우 이질적으로 들린다. 영화의 두 주요 폭발장면, 빌딩의 꼭대기와 지상으로 헬기와 장갑차를 동원해 침투하려는 특수기동대 스왓(SWAT)팀의 반격시도를 위해 케이먼은 가차 없이 밀어붙이는 스네어 리듬을 제공했다. 'The battle'은 또 다른 위협적인 악절을 가졌다.
<다이 하드>의 스코어는 영화의 맥락상에서 최상의 기능적 효과를 발휘하도록 재배치되었음을 어느 정도 인정할만하다. 효력이나 영향력을 막론하고 큐로 쓰인 곡들에서 길게 이어지는 긴장감은 대단히 포괄적이다. 최후의 요점을 염두에 둔 케이먼의 음악은 무능력한 경찰과 FBI에 겹겹이 포위당한 플라자를 상대로 자체수사를 실시한다. 영화의 클라이맥스 동안 플라자의 금고는 테러범들에 의해 열리고, 악당들의 환희에 찬 심정을 'Ode to joy'로 웅변한다. 다만 이러한 음악적 설정이 원래 케이먼이 영화를 위해 녹음한 실제 음악과는 다르다는 걸 인지할 필요가 있다.
결과적으로 <다이 하드>의 화면에 적용된 영화음악은 기본을 유지하는 정도에 그쳤다. 때론 단순한 효과음향으로 작용할 때도 빈번하다. 주인공 맥클레인의 독자적 개성을 위한 웨스턴스타일의 독창적 음악도 절제된 감이 짙다. 최후에는 구원이라는 동기의 요소를 줄 뿐만 아니라 분할돼 파상공세를 펼치는 사운드적용으로 다수의 영화 또는 음악팬들에게 <다이 하드>의 음악은 매우 강력하고 역동적이며 매력적인 관현악적 액션 서스펜스뮤직으로 기억될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히 혼재한다. 맥클레인을 위한 테마로 분명히 규정되고 발전되는 음악을 지향한 작곡가의 의도는 최종편집과정에서 재편성되어 녹음되었고, 기능성에 충실하게 사용되는 통에 무력화되고 말았다. 베토벤의 'Ode to joy'(환희의 송가)는 테러리스트를 위한 찬가로 변질됐으며, 맥클레인을 위한 음악적 감동은 생래적으로 부차적인 기호품이 되는데 그쳐야만 했다.
-수록곡-
1. The Nakatomi Plaza 나카토미 플라자
2. Gruber's Arrival 그루버의 도착
3. John's Escape/You Want Money? 존의 탈출/돈을 원해?
4. The Tower 타워
5. The Roof 지붕
6. The Fight 싸움
7. He Won't Be Joining Us 그는 우리와 같이 하지 않았어
8. And If He Alters It? 그리고 그가 이걸 바꾸면?
9. Going after John Again 존을 다시 뒤쫓다
10. Have a Few Laughs 좀 웃어봐
11. Welcome to the Party 파티에오신걸 환영합니다
12. TV Station/His Bag is Missing 텔레비전방송국/그의 가방이 사라졌어
13. Assault on the Tower 타워를 맹공하다
14. John is Found Out 존 발각되다
15. Attention Police 경찰을 주목
16. Bill Clay 빌 클레이
17. I Had an Accident 불의의 변을 당했어
18. Ode to Joy 환희의 송가
19. The Battle 전투
20. Gruber's Departure 그루버의 이륙/출발
21. Let It Snow! Let It Snow! Let It Snow!* 눈 내리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