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다지 재미는 없지만 한 번 시작한 거 계속 갑니다.)
목요일 점심 식사로 공식 일정을 마치고 곧바로 비공식 일정으로 일본 3대 명천 중의 하나라는 게로 온천에 갔습니다. 숙소는 일본 료칸 순위 4위에 현 아키히토 천황도 다녀갔다는 료칸. 1박2일 동안 다다미 방에서 유카타에 하오리 걸치고 타비까지 신고 기모노 입은 종업원의 서비스를 만끽하며, 노천탕, 히노키 탕 등 여러 욕탕을 섭렵하고 저녁엔 히다규까지 먹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게로엔 온 기념으로 게로게로 우는(우리나라 개구리는 '개굴개굴' 우는데 일본 개구리는 게로게로' 웁니다) 개구리 향로를 하나 사고 나고야로 이동. 가는 중간에 간장에 조린 장어 간과 자연산 장어 한 마리가 통째로 들어간 덮밥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일행들은 나고야 시 사카에 역 앞에 내려달라는 코이카에게 친절을 베푼답시고 후시미 역과 사카에 역 중간에 있는, 어딘지도 모르는 뒷골목에 내려주곤 나고야 센트레아 공항으로 가버렸습니다.
드디어 코이카만의 자유시간! 공항에서 챙겨놓은 지도를 꺼내서 미리 예약해둔 호텔로 찾아 갔습니다. 이 무렵 1박 24만엔 하는 나고야 캐슬 호텔 빼고 나고야 시내의 호텔이 거의 만실이라 예약하는 데 조금 애를 먹었답니다. 나중에 현지인에게 물어보니 단풍놀이 다니는 사람들 때문에 그렇다고 하네요.
애초의 계획은 숙소에 짐을 갖다 두고 곧바로 샤치호코가 번쩍이는 나고야 성으로 가서 노을을 즐길 생각이었습니다만, 가는 길목에서 엄청나게 큰 헌책방을 발견하곤 빨려들 듯이 들어갔습니다. 역시 책 구경은 좋습니다. 바구니에 정신없이 담다가 겨우 정신을 차려서 나왔더니 옆 건물엔 마루젠 서점이, 길 건너엔 츠타야 서점이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잠깐만 하고 마루젠에 들어갔다가 나왔더니 벌써 주위가 어둑어둑해져서 나고야 성에서 노을을 즐기겠다는 야심찬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결국 일찍 쉬고 다음 날 아침 일찍 미에 현에 있는 이세 신궁에 가기로 정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생각보다 늦게 일어났지만 나고야 역까지 걸어가기로 했습니다. 나고야 역 앞에는 나고야 시에서 제일 크고 전통 있는 야나기바시 수산물 도매시장이 있습니다. 일부러 길을 살짝 돌아 시장으로 들어가니 방사능 어쩌고 해도 가게마다 생기가 넘칩니다. 요일 특가 상품을 파는 가게엔 줄이 기다랗게 늘어서 있습니다. 목청 좋은 주인의 호객 소리에 한정판매, 요일 특가에 약한 코이카의 마음이 흔들립니다. 그러나 꿋꿋하게 눈으로만 구경하고 나고야 역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제일 크고 전통 있는 야나기바시 수산시장이란 게 도대체 어떻게 생겼는데?”라고 물으셔도 사진이 없습니다. 이렇게 여행기를 쓸 줄 알았다면 다음엔 일부러라도 카메라를 챙겨야겠습니다.
나고야 역에서 이세 신궁으로 가려면 긴테츠선을 타야 합니다. 굳이 특급열차를 탈 이유가 없어서 급행열차를 탔는데, 졸다가 엉뚱한 데서 내리는 바람에 다음 차 타고 갈 수도 있지요. 하하하. 열차가 이세 시에 도착하니 승객 중 2/3 이상이 내렸습니다. 이세 신궁으로 가려면 JR 출구로 나가야 하는데 친절하게 안내판마다 한국어 안내문이 있습니다.
관광안내소에서 지도 한 장 받아들고 횡단보도를 건너 직선거리 200m 앞에 있는 외궁으로 향했습니다. 외궁 가는 길 양쪽에 늘어선 식당과 상점 중에 아웃도어 용품 매장에 전시된 니트 소재 코트가 눈에 들어와 살짝 들어갔습니다. 입점된 대여섯 가지 상표는 분명 한국에도 있는 상표인데도 한국에서 못 본 디자인뿐입니다. 점원이 지금 입고 있는 겉옷에 내피로도 입을 수 있다고 전시된 옷을 얼른 벗겨오더니 잘 어울린다며, 올 가을 신상품에 제 치수로 딱 한 장 남았다고 덧붙입니다. 그 말을 듣고 신궁 가기도 전에 지름신이 강림했다고 하니 점원이 깔깔 웃었습니다.
그렇게 새 옷을 사들고 도착한 곳은 이세 신궁의 외궁이었습니다. 이세 신궁은 내궁과 외궁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내궁에는 일본 건국신화에서 ‘천조대신’이라고 부르는 일본 천황의 시조인 아마테라스오미카미를, 외궁에는 곡물신이자 아마테라스오미카미의 의식주를 책임지는 토요케노오미카미를 모시고 있습니다. 지금은 내, 외궁으로 나뉘어져 있지만 원래는 하나의 신궁입니다. 이세 신궁은 일본인들이 '오이세상', '다이진구사마'라고 부르는, 일본인의 마음의 고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마침 올해가 이세 신궁의 식년천궁이었습니다. 이세 신궁은 1200여 년 전 지토 천황 때부터 20년마다 본궁과 부속건물을 허물고 옆에 똑같이 새로 지어 신체를 옮겨 모십니다. 이유는 같은 신전이라도 일본의 건물은 유럽의 석조 건축과 달리 목조 건축인 데다가 기후가 습해서 건물을 오래 유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은 이세 신궁을 20년마다 새로 지음으로써 건물의 연속성을 유지하고 (그만큼) 일본이 영원무궁하길 기원하는 것입니다. 건물의 기한이 20년인 것에 대해서는 쌀의 보존기간이 최대 20년이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먼저 식년천궁이 끝난 토요케노오미카미가 모셔진 외궁 본전은 흰 가림막으로 가려져 있습니다.지난 10월 신체를 올기는 행사가 끝나 당분간은 옛 본전과 새 본전을 나란히 볼 수 있습니다. 본전 앞 아름드리 나무는 얼마나 큰 지 어른 네다섯이 안아야 할 정도입니다. 나무에 손을 얹고 기원하는 사람들을 따라 코이카도 가만히 손을 대 보았습니다. 오랜 세월 사람들의 기원을 들어온 나무라 그런지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경내에 단체 관람객은 물론 개인 참배자까지 와글와글합니다. 조그만 별전들도 줄서서 참배하는데 경비 아저씨 말론 앞으로 20분을 기다려야 한다고 합니다. 신도를 믿지는 않지만 남들 하는 데로 일단 줄을 서서 보았습니다. 별전과 본전의 갈림길에는 금줄을 친 바위가 있습니다. 바위엔 긴 홈이 파여 있는데 사람들이 홈 안에 동전을 던져 넣는데 워낙 사방에서 던지다 보니 공중에서 부딪혀 엉뚱한 방향으로 떨어지는 동전도 있습니다. 왜 동전을 던지는 지는 미처 물어보지 못했습니다.
이세 신궁의 내궁으로 갈 차례입니다. 걸어가렸더니 1시간은 걸린다고 버스를 타고 가라고 합니다. 버스 타는 곳에도 줄이 한 40미터는 되었습니다. 제가 탄 버스는 내궁 직행이었습니다. 차에 오르자 빈 자리가 안 보였는데 어떤 예쁜 아가씨가 손짓으로 빈 자리가 있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사람은 일단 착하게 생기고 봐야... 어허, 형님들 손에 힘빼시지요.
내궁 앞에서 내리니 아까 이세시 역이나 외궁의 참배객 수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어마어마한 인파입니다. 중국 건국절오전 베이징 이화원에서 만난 인해보다는 적었습니다. 두 개의 도리이를 지나자마자 속세의 번잡함을 떨쳐낸 녹색의 세계가 펼쳐졌습니다. 본전 가는 길 오른편엔 이스즈가와가 흐릅니다. 황금빛 감도는 강변에 맑은 물을 보니 발길이 저절로 향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모두들 본전 참배 전에 여기서 손을 씻는 정화의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코이카 역시 물에 손을 담갔더니 새끼손가락 한 마디만한 물고기들이 도망가지도 않습니다. 장난치고 싶은 마음에 잡으려고 들었더니 그제야 도망칩니다. 사람이 바글바글한 데도 물이 어찌나 맑은지 움켜쥔 물을 그대로 마시고 말았습니다.
다시 본전을 향해가는 길에는 아름드리 나무들이 무성합니다. 나뭇잎 사이를 뚫고 들어오는 햇살 아래에는 고사리를 비롯한 음지식물이 무성합니다. 참배길 역시 사람들이 잔뜩 다니는 데도 오히려 청정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본전 앞에는 참배 방향을 정해 놓았는데 왼쪽으로 가면 새 본전만 보고 바로 가구라전으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코이카는 방향 선택을 잘 해서 아직 허물지 않은 옛 본전까지 한바퀴 둘러 보았습니다.
하늘에서 본 내궁의 본전. 아래가 새 본전이고 위가 옛 본전입니다. 올해 식년천궁을 했기 때문에 지금은 아래가 옛 본전입니다. (출처: 이세 신궁 홈페이지)
예전 식년천궁 행렬도(출처: 이세 신궁 홈페이지)
참배길을 따라 나오면 오른쪽에 가구라전이 보입니다. 단체 봉납이 있는지 참배대기실마다 빈 자리가 없습니다. 가구라 전 앞을 지나가는데 마침 가구라전이 열리더니 무녀 뒤를 따라 짙은 색 정장을 입은 남자와 여자들 수십명이 줄지어 들어갔습니다. 덕분에 내부를 살짝 들여다 볼 수 있었습니다.
하염없이 남들 뒤통수만 쳐다보기도 머쓱해서 옆으로 발길을 옮기니 마침 상설 무대에서 가구라 공연을 하고 있었습니다 가구라는 신악으로 신에게 바치는 무악입니다. 무대 뒤쪽에 복장을 갖춰 입은 남자들이 일여덟명 앉아서 음을 맞추고 여자 한 명이 앞으로 나와 발을 굴러가며 절도 있게 부채를 펼쳐 춤을 춥니다. 동작이 정제되고 정형화되어 있었습니다. 한 곡이 끝나고 다음엔 여자 1명이 부는 피리 연주에 따라 남자 1명이 춤을 춥니다. 남자의 춤은 여자와 비슷하면서도 살짝 달랐습니다.
관람을 마치고 매점에 갔더니 무녀들이 신주를 팔고 있었습니다. 한 병에 천 엔하는 신주를 참배객들이 몇 병씩 사가니 상자에서 꺼내서 비닐봉투에 담고 다시 종이가방에 담아서 내느라 정신이 없어서 구석에 박힌 도록 코너는 쳐다도 안봅니다. 오 분을 서서 기다렸다가 간신히 몇 권을 살 수 있었습니다.
몸과 마음이 정화된 기분으로 내궁을 빠져나와서는 이세 신궁 참배의 대미, 오하라이마치와 오카게요코쵸를 향했습니다. 이곳은 예로부터 신궁 참배객들에게 식사와 기념품을 팔던 상점가입니다. 먼저 간장소스에 비벼먹는 이세 우동 한 그릇을 먹고 상점 입구를 기웃거렸습니다. 그 자리에서 찻잎를 덖어 파는 찻집이며 말린 해산물 가게를 비롯해서 각종 장아찌와 우동, 소바면 등을 팔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상점가에서 군것질거리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경단, 아이스크림, 꼬치구이, 전병, 고로케와 각종 음료수들. 코이카 역시 홀린 듯이 보는 대로 한 가지씩 다 사먹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바로바로 만들어주니 맛있기도 했지만 얼마나 많이 먹었는지 뒤늦게 발견한 마츠자카규 꼬치도 못 먹을 정도였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