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벌나게
최 원 현 / 수필가
nulsaem@hanmail.net
내 고향은 전라남도 나주다. 태어나긴 동란 중 외가가 있는 나주에서였지만 호적상 내 고향은 무안이고 내 가족들의 삶터는 목포였다. 그러나 나는 나주에서 중학교까지 졸업했고 그래서 15.6년을 전라도에서 살았다. 그곳에서 내가 쓰던 말은 정감 넘치는 남도의 전형적 사투리다. 그 중에서도 ‘허벌나게’는 왠지 가장 인상 깊게 기억되는 한 마디다.
‘허벌나게’는 예쁜 말은 아니다. 무지무지하게, 엄청나게, 혹은 대규모(大規模) 또는 신속(迅速)의 뜻으로도 사용되는 전라도 토박이 사투리다.
‘허벌나게’란 말 속엔 없는 것도 있게 하고 안 될 것도 되게 하는 이상한 힘이 있는 것 같다. ‘허벌나게 비가 왔다’는 동이로 물을 붓듯 엄청나게 많은 양의 큰 비가 내렸다는 말이고, ‘허벌나게 다쳤다’고 하면 만신창의로 크게 많이 다쳤다는 뜻이다. ‘허벌나게 달려갔다’고 하면 눈썹이 휘날릴 만큼 빨리 달려갔다는 말이고, ‘허벌나게 벌었다’고 하면 자루에 쓸어 담듯 돈을 많이 벌었다는 뜻이다. 허벌나게란 말 속에선 그래선지 ‘밉지 않은 뻥‘도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부담이 가지 않는 넉넉함과 여유로움도 느껴진다. 조직적으로 꽉 찬 느낌보다 좀 느슨하고 살짝 넘치는 느낌, 꼭 남도 사람들의 인정, 넉넉한 인심 만큼이다. 급하지 않게 얼마큼 해찰이라도 하는 불성실인 듯해도 왠지 무시 못 할 거대한 힘을 느끼게 하는 말이 ’허벌나게‘인 것 같다.
’허벌나게 인심도 좋소이‘ ’아따 허벌나게 맛있소‘ ’오메 허벌나게 좋당게‘ 허벌나게는 그렇게 수더분한 뚝배기 같이 만들고 그러면서 인정은 고봉으로 넘치게 하는 전라도 말다운 말이다. “참마시로 허벌나게 반갑소이“
2009.10/문학의집/전라도 사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