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이 넘게 돌아가며 맛을 보았다, 하리오 드립으로. 찾아 온 사람들과 맛을 평가하고 또 맛있다고 하는 것은 나누어주기도 했다.
엊그제 문득 이 카페가 생각나 좀 더 체계적으로 접근하기로 했다.
1. 인텔리겐치아와 스텀프타운
커핑을 하려고 갈아 놓은 원두를 보니 그 볶음 정도에 큰 차이가 있다.
인텔리겐치아는 연하게 볶았다. 애그트론을 추정하면 페루는 72, 컬럼비아는 65정도로 추정된다. 모두 1차 크랙이 일어나고 오래 두지 않았다. Develop이 충분치 않은 남미의 커피에서 어떤 맛이 날까 궁금했다.
스텀프타운은 상대적으로 꽤 진행이 되었다. 애그트론을 추정하면 홀러 마운틴은 58, 인헤르토 버본은 54 정도다(대충, 눈짐작으로). 인텔리겐치아가 1차 크랙의 초기에, 또는 1차 크랙이 끝날 때 중단했다면 스텀프타운은 1차 크랙이 끝나고도 진행시켜 2차 크랙이 시작하기 좀 전까지 둔 것이다. 스텀프타운의 로스팅 포인트는 흔히 말하는 스위트 스폿에 가깝다. 맛의 추측이 가능하다.
페루의 신맛이 궁금했는데 뜻 밖에 강하지 않고 부드러웠다. 단맛과 어우러지고 깨끗해서 우아했다. 시들시들하게 마른 후지 사과의 느낌이었다. 컬림비아는 좋은 컬럼비아의 특징을 갖추고 있었다. 네 원두 중 신맛이 가장 강했다. 신맛이 강해 그 맛을 필터링 하지 않으면 즐기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단맛이 좋고 깨끗했다.
스텀프타운의 블렌드인 홀러마운틴은 신맛이 제일 적었다. 은은하게 숨어있어 언뜻 지나가면 신맛이 없는 줄 착각할 수도 있는 수준이었다. 하리오 드립을 했을때보다 신맛이 약하게 느껴졌다. 향긋함이 있어 에티오피아 산 생두를 함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블렌드임에도 불구하고 고소한 맛이나 쓴 맛을 느끼지 못햇다.
인헤르토 버본을 맛 보며 '역시 인헤르토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산미가 꽤 있다, 컬럼비아에 비해서는 한결 적지만. 그러나 그 산미가 부드럽다. 그런 산미가 단맛과 조화를 이루고, 그를 방해하는, 다른 맛이 없어 온전하게 그 조화를, 그 깨끗함을 즐길 수 있다. 버본을 그 정도로 볶았을 때 나오는 쓴맛을 예상했으나 뜻밖에 쓴맛은 아주 약했다.
후배가 가져온 인텔리겐치아는 모두 'In Season' 이란 딱지가 붙어 있었다. 추정컨대 메뉴에 고정돤 것이 아니고 그때그때 판매하는 상품으로 추정된다. 제대로 비교하려면 대들보와 대들보(apple to apple)를 비교해야 하는데 형편이 그렇게 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스텀프타운의 대표적 커피는 'hair bender'로 4년전에 포틀랜드에서 맛을 보았다. 신맛이 꽤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인텔리켄치아나 스텀프타운은 제3의 물결이라는 스페샬티 트렌드를 이끈, 커피역사에 길이 남을 사람들이다. 그러니 어줍잖은 실력으로 그 들을 평가하려는 뜻은 없다. 단지 그들이 제공하는 몇몇 커피의 맛을 기억하고자 글을 쓴다.
2. 버치, 나인스 스트리트
버치는 '버치 블렌드'로, 그리고 'Medium Roast'로 표기되어 있다. 커핑을 위해 갈아 보니 7종의 원두 중에서 가장 진행이 많이 되어 있다. 그러나 볶은 지 50일 가까이 됨에도 원두에 오일이 묻어나지 않는 것을 보니 2차 크랙 이전에 중단한 것은 틀림없다. 나인스 스트리트는 모두 연하게 볶았다. 인텔리겐치아의 컬럼비아 수준이다. 두 원두간에 차이가 거의 없다.
맛을 본다. 버치에 놀란다. 아주 달다. 자몽의 맛이 느껴진다. 여러가지 맛이 복합되어 있어 중후하다. 스텀프타운의 홀러 마운틴과 같은 컨셉의 포지셔닝을 느끼지만 홀러가 화사한 봄의 느낌이라면 버치는 차분히 가라 앉는 늦가을의 느낌이다. 신맛과 쓴맛이 어우러져 참으로 좋은 커피라는 생각이 든다.
나인스 스트리트는 실망이었다. 페루는 시트릭게열의 강한 신맛 뿐이었다. 처음 입에 넣었을 때는 꽤 강한 곡물의 느낌까지 일어나 '이럴수가?'하며 충격을 받았다. 인텔리겐치아의 페루와 비교하며 커핑을 했는데 비교할만한 수준이 되지 않았다. 블렌드로 보이는 알파벳 시티 또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약하게 볶았으나 신맛은 강하지 않았다. 그러나 단맛도 충분히 develop되지 않아 그저 밋밋했다.
3. 그래서.
후배의 선물을 맛보며 뉴욕의 사람들이 신맛이 나는 커피를 즐기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스모키한 커피, 탄맛이 나는 커피, 씁쓸한 커피를 즐기던 사람들이 이제 쓴 맛이 거의 없는, 신맛이 다소 있는 커피를 즐기게 된 것이다. '커피의 발전을 이끌고 있는 사람들 답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