짤즈컴머굿에 도착하니 비는 그쳐 있었다. 짤쯔캄머굿은 오스트리아에서도 손꼽히는 관광지라고 한다. 수도인 빈에서 잘츠부르크 사이에 있는 해발 500~800m의 구릉지에 자리하고 있는데 이 일대는 해발고도 2,000m 이상의 산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고, 무려 76개에 이르는 호수가 어우러져 있는 곳이어서 그 아름다운 경치를 배경으로 하여 일찍부터 유명 관광·휴양지로 발달했다고 한다.


짤즈컴머굿은 할슈타인보다 조금 큰 마을로 역시 호수를 품고 있는 마을이다. 마을 입구가 참으로 멋스럽게 꾸며져 있어 마치 아주 멋진 정원 같았다. 정원 뒤로 성당이 있었는데 성당 마당은 마을 공동묘지로 사용되는 모양이었다. 마을 한 가운데 묘지라니. 우리 같으면 그게 가당키나 한 일일까?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묘지에 묻힌 이들이 누구인가.


바로 엊그제까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할아버지이고 할머니며, 아버지와 어머니가 아닌가? 평소에 그 분들은 자식들이며 손주들을 사랑하셨으므로 그 분들의 온기를 가까이에서 느끼려고 하는 일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일요일이면 모두가 한 자리에 모이는 동네 성당 안에 묘지를 만듦으로써 서로가 저승과 이승으로 갈려 있기는 하지만 교감할 수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성당 묘지야 말로 이곳 사람들의 사랑이 가득 담긴 장소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볼프강 호수 입구에 조성해 놓은 정원은 그야말로 자연적이지 않은 것이 없었다. 곧게 자란 나무들 사이로 사람들을 기다리는 나무 벤치가 고작인데도 주변과 잘 어울렸다. 늦은 가을이라 나뭇잎이 주변을 뒹굴고 있으며 그 앞으로 호수가 조금의 일렁임도 없이 고요 속에 잠겨 있었다. 전망대에서 보는 호수 맞은편의 산허리에는 구름이 가득했고 그 위로 만년설이 은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물과 산과 구름과 흰 눈과 하늘이 교묘하게 섞여 있어 눈을 떼기 어려웠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산에는 눈이 가득한데도 호수 주변은 온통 푸르름이 가득했다. 나뭇가지는 잎을 떨어뜨리고 있는데 땅에는 푸른색의 풀들이 자라는 장면을 눈앞에 보고도 믿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지금까지 이와 비슷한 장면을 본 것이라고는 10월말 경 때 이르게 눈이 갑자기 내리는 바람에 아직 녹색이 채 걷히기도 전의 들풀들이 제 빛을 모두 지우지도 못하고 푸른색을 띤 채로 얼어 죽은 것이 전부였다. 이곳 마을 역시 동화의 나라 같았다. 주변의 나무와 집들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기도 했다. 나무 옆에 집을 지은 건지 집 옆에 나무를 심은 건지가 구분되지 않을 정도였다.


마을 골목길은 참으로 조용했고 또 깨끗했다. 집집이 모두 제 나름의 멋스러움을 지니고 있었다. 늘 똑 같은 모양의 아파트에 갇혀 사는 내 삶이 얼마나 거친 것이었나를 깨닫게도 되었다. 부러우면 지는 것이다. 요즈음 젊은이들이 하는 말이다. 정말 그렇다. 이 멋진 정경을 눈에 가득 담은 것이야 마음대로 일 것이나 부러워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어느 집은 테라스에 화사한 꽃 화분을 한 줄로 내어놓았다. 거실에 앉아서 보려는 것일까 아니면 지나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꽃길을 선물하는 것일까 궁금했다. 어떻든 이 길을 지나는 길손들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아름다운 배려라 생각하기로 했다. 마을 안쪽에서도 호수 너머의 산위 만년설이 보였다. 마을은 집집이 그 만년설을 머리에 이고 산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 아마도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여름 한철 더위가 저만치 물러날 것만 같았다.


우리는 마을에서 간단한 점심을 하고 호수로 나와 유람선에 올랐다. 얼마나 한국 사람들이 많이 다녀갔는지 유람선의 여자 직원이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하며 우리를 반갑게 맞았다. 유람선은 부부가 운영을 하는 모양이었다. 남편임직한 사람은 유람선을 운행하고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이한 그 사람은 부인 인듯했다. 부인은 선채에서 관광객을 돕고 있었다. 간단하게 커피나 음료를 팔기도 하고 유람선이 특별한 곳을 지날 때는 그 주변의 사진을 보여주며 설명을 해주기도 했다.
유람선을 타로 호수 한가운데로 나가자 호수 주변이 또 다른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졌다. 그런 멋진 풍경을 아고서도 호숫가 마을은 뭐 대다한 일이라고 호들갑을 떠느냐는 듯 짐짓 시치미를 떼고 있는 듯하다.


호숫가를 바라보다 문득 흥미로운 생각이 들었다. 우리네 호수가 또는 강가가 문득 떠오른 것이다. 경춘가도가 그렇고, 양수리가 그렇고, 물왕저수지가 그렇고, 전국의 이름 모를 강가며 호숫가, 심지어 시원함이 가득한 계곡이 또한 그렇다. 그런 곳은 전국 어디 한 곳 빠짐없이 매운탕집이 즐비하다. 매운탕 집 앞에는 너른 평상이 이곳저곳 나무 밑에 자리하고 있기 마련이다. 어디 그뿐인가 그 옆으로는 술집이며 노래방이 있고, 그 귀퉁이 어디쯤 경관이 좋은 곳에 화려한 네온이 번뜩이는 모텔이 있기 마련이다. 당연하게도 이 넓은 호수에 물고기가 얼마나 많을 것인가 말이다. 그런 풍경에 익숙한 내게는 이곳 호수가 생경하게 다가왔다. 그렇다면 이곳 사람들은 매운탕이나 그와 비슷한 음식은 없을까? 그저 호수를 바라보며 분위기 좋게 보이는 서 있는 몇몇 레스토랑이 보일 뿐이었다. 매운탕이 이곳 어디쯤 있다면 아마도 우리나라 관광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런 어찌


보면 참으로 얄팍하고 어리석을 생각일 것이다. 이곳 사람들은 호수의 오염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 성숙함이 부럽다. 조용한 마을인지라 왁자한 시끄러움에 거부반응을 보일 것은 당연해 보인다. 우리는 왜 이런 고즈넉한 곳이 없을까? 유원지면 어딜 가던지 늘 왁자하고, 온갖 잡동사니가 뒹굴고 고성이 들끓는다. 시원한 계곡은 허가의 범위를 벗어난 상행위가 이루어지는 것은 보통이다.



유람선으로 호수 한가운데를 천천히 오르다보니 멀리 호수가로 설경이 마치 동양화처럼 펼쳐지고 있었다. 산이 먼 탓에 거뭇했고, 그 위로 순백의 눈이 가득 담겨 있었다. 황홀경이 따로 없었다. 눈길 닿는대로 스마트폰 카메라 셔터를 이리저리 눌러댔다. 한참을 사진으로 담아 돌려보니 사진은 오통 흑과 백의 두 가지 색과 적당한 여백으로 가득했다. 그 단조로움에 신비가 가득했다. 동양화의 여백의 미를 잔뜩 느낄 수 있어서 마치 어설픈 동양화가 되 것 같은 착각에 잠시 빠지기도 했다.



유람선 앞쪽으로는 설사 풍경이 가득하고 호숫가로는 듬성듬성 그림 같은 집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고 고즈넉하게 서 있었다. 콧노래가 절로 나올 지경이었다. 한참 넋을 잃고 자연의 위대함에 넋을 놓고 있는데 유람선의 그 부인이 사진첩을 들고 와서는 주변 절벽을 가리켰다. 코끼리 바위와 독수리 바위라고 했던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어느 것 하나 볼 수 없었다. 하필이면 그 때 어린 시절 즐겨 읽었던 ‘벌거숭이 임금님’ 생각이 나서 피식 웃었다. 사람들 눈에는 임금님이 벌거숭이 인데도 근사한 옷차림을 칭송했다. 나만 안 보이나? 꼬마가 고개를 갸우뚱 거린다.



임금님은 분명 벌거벗었는데 이상하다. 세상은 늘 그렇게 이상하게 돌아가는 곳이다. 이상이 정상이고 때로 정상이 이상인 것이 세상이다. 누구의 눈으로 보는가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안 보이는데 정말 그런 것이 있다는 것이냐고 물을 필요도 없다. 그저 제 감상이며 생각대로 살면 되는 것이다. 그런 생각들이 표현될 때 다른 사람들에게 일말의 피해를 주지 않으면 상관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그걸 굳이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세상에 강요가 빠지는 곳이 없지만 특히 더한 곳이 학교라는 생각이다. 아이들은 불쌍하게도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끊임없이 강요당하며 성장해 간다.



그걸 사람들은 사회 규범이라는 말로 포장했다. 다른 사람도 다 그렇게 했으니 너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 궁금증이나 불만에 대한 설명이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조금씩 창의성을 상실해 간다. 그런데도 우리는 교육을 통해 창의성을 신장한다는 순진한(어쩌면 위선적인) 믿음 속에서 아이들을 학교라는 폐쇄적인 울타리 안으로 밀어 넣는다. 예전엔 너희들보다 더 했지. 부모가 아이들에게 하는 말이다. 마치 아이들을 고문이라도 하는 것 같지 않은가. 유람선이 절벽을 모두 지날 때까지 나는 코끼리며 독수리 형상을 보지 못했다. 차라리 그걸 찾는 시간에 멋진 주변 풍경이나 더 볼걸 그랬나 보다.



설산은 신비 그 자체였다. 오래 전 만년설을 밟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몽블랑의 기슭이 생각난다. 만년설 아래로 드리워진 구름이 만년설을 더욱 신비롭게 하고 있다. 잔잔한 호수는 만년설을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임을 품고 있듯이 그렇게 조용히 품고 있었다. 안타까운 건 그 멋진 동화 같은 마을에 움직이는 것이라는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유람선이 아니었으면 유령의 호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강원도 해안길인 해파랑 길을 걷던 생각이 났다. 그때도 늘 아무도 없는 텅빈 마을을 혼자 걸었었다. 그 멋진 바닷가 풍경을 혼자 실컷 즐기며 걸었다.


어찌 보면 호사일 수도 있을 것이나 또 어찌 보면 적막함마저 도는 마을이 그저 한적한 마을쯤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안타까움이 들기도 했었다. 지금 보면 텅빈 마을은 강원도 해안 마을뿐만이 아니었다. 이렇게 그림같이 아름다운 마을이 텅 비다니. 부부가 사랑을 거부하지 않는다면 양육은 어디나 고통으로 다가오는 모양이다. 유람선에서 바라보는 호숫가는 참으로 아기자기 했다. 여전히 만년설이 햇살에 부서지며 호수 속에 찬란한 은백의 순결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억겁의 시간이 함께 부서져 내렸다.

유람선이 마침내 선착장에 도착하자 호수 입구에서 또 한 차례 스마트폰의 셔터를 눌러댔다. 멀리 설산이 멋진 사진처럼 바라다 보였다. 실컷 눈 호사를 하고 일행은 짤즈부르크로 내달았다. 또 어떤 풍경을 마주할지 기대를 잔뜩 하고서 말이다. 차창 밖으로는 보이는 들판은 온톤 녹색이었다. 조금 전까지 보았던 설산은 어디론가 가버리고 더 이상 없었다. 그런데 이즈음부터 우리의 친절한 가이드는 지칠 줄 모르는 이야기로 우리를 성가시게 했다. 그때부터 조용한 힐링 여행이라는 내 기대는 산산조각이 났다. 아마도 그는 오스트리아의 역사를 오스트리아 역사 선생님보다 더 잘 아는 듯 했다. 하는 수 없이 멋진 차창 밖 풍경 감상은 포기하고 피곤을 풀 겸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눈꺼풀이 저절로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해 내려앉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