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빛시인은 대한민국 서정시인으로 대한민국문화예술인대상을 받은 문화예술인이며, 여성부장관 지도자상과 춘우문학상대상, 신문예문학상, 무원문학상, 전북일보회장상 등을 받은 실력파 중견시인이자, 천사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또, 최근 2021년 대한민국 문화교육대상을 수상한 문화교육전도사로 활동 중이며, 2021 보령시에서 주관하는 시인의 성지 ‘시와 숲길 공원’에서 ‘아들을 위한 서시’가 선정돼 시비로 제작,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저서로는 당신은 나의 푸른 마중물, 가슴으로 만난사람은 꽃이다 등이 있으며 공동저서로는 시대사전외 수십 권이 있다. 또, 국가 상훈 인물대전 현대사의 주역들에 수록된 시인이기도 하며, 경춘전철 상천역에 가면 이시인의 시화전이 설치되어 있다.
특히 얼굴 없는 천사 마을 작은 박물관(노송동 동사무소내)에 ‘얼굴 없는 천사’ 시를 기증(이 시는 2018 노송동 동사무소 선정위원회에 선정됨)하면서 독자들의 권유로 얼굴 없는 천사상을 만들어 그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이 시인은 시를 통한 특강을 하고 있는데 요즘은 코로나19로 독자들과 만남을 이삭빛TV로 만나고 있다.
이삭빛(본명 이미영)시인은 전북이 낳은 대한민국 서정시인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전북 장수 산골 출신이다.
1972년 전라북도 장수군 천천면 하늘과 내가 만나는 청정지역, 주논개가 태어난 지역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녀의 시는 여러 권의 명시집에 수록이 되었지만 ’19전라북도 문화관광재단 시선집에서 선정된 ‘이애미 주논개’ p282라는 시를 의미 있게 생각한다고 말한다. 논개정신이 깃들어 있고 이시인이 태어난 곳이기 때문이란다.)
이시인은 1996년 전주 시문학에서 활동하던 시절, 장수문학(현 한국문인협회장수지부)회장인 고)고두영(주논개기념관 설립의 토대를 세운 주논개 역사학자)선생의 추천으로 장수문학회원으로 가입하게 되었고, 1997년 시를 발표하며 문단할동을 시작했다.
2001년 1월 정식으로 월간 문학공간으로 등단했고, 같은 해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심사위원의 추천을 통해 가입했다.
원래 본명은 따로 있다. 한국문인협회 추천시인께서 ‘동명이인이 있으니, 이시인이 빛을 못 볼 것 같다. 그러니 시명(이삭빛)을 쓰면 분명 많은 독자들께 사랑받는 시인이 될 것이다’라며 시명을 권유했다. 그때부터 만인의 시인, 이삭빛 시인으로 거듭난 셈이다.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독자들을 위로하고 독자들의 아픔과 함께한다는 뜻일 것이다. 이시인은 온몸으로 말하는 치유 시인이다. 시명에도 성경에 나오는 이삭을 생각해서 지은 이름으로 시(詩)하나에 생명이 있고, 사랑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시인은 산골 깊은 곳, 축산업을 하시던 부모 밑에서 많은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는 산골시인이라는 꼬리표를 무척 좋아한다.
이시인은 독서광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글짓기상은 한 번도 놓친 적이 없을 정도로 글쓰기와 책 읽기를 좋아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는 학교신문에 시가 발표되면서 더욱 독서와 시사랑에 빠지게 된다.
특히 이시인은 지금은 고인이 되신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녀의 아버지는 축산업을 하셨지만 음악과 시를 사랑했고, 한문으로 된 여러 권의 책을 집필하신 분으로 문학적인 재능을 물러주신 분이시다.
또, 이시인은 한참 예민한 시기에 친언니들의 일기를 모방하면서 창작력을 불태웠다고 한다. 피천득선생의 글처럼 언니들의 일기가 수많은 이야기로 친밀하게 녹아 들어있었기 때문이었단다.
현재 언니들은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이시인을 탄생시킨 위대한 자매들이다.
사실 언니와 여동생도 문학상을 받은 시인이기도 하다.
또한 이시인은 중고등학교 때, 교회를 다니는 것 외에는 학교에서 조차 선생님들의 눈을 피해 교과서 밑에 책을 펼쳐 놓고 명작들을 닥치는 대로 읽는 바보 한스로 통했다.
그 한스를 친구들은 무척 좋아했으며 보이지 않은 이시인만의 당당함과 지혜를 겸비한 심미안을 은근히 존경해왔다고 이시인의 친구들은 말하곤 한다.
그 바보 한스(이시인)의 아름다운 용기는 글과 관련된 웅변대회까지 출전하게 되며, 자기 생각을 과감하게 펼치게 된다. 그로 인해 우수한 성적으로 수상을 여러 번 받게 된다.
예를 들어 반공 웅변대회를 주제로 공산당을 하나같이 저주하는 글로 목소리를 높일 때 이시인은 이산가족을 스토리로 엮어 가슴 따뜻한 글로 모두가 소원하는 글을 써서 감동을 주기도했다.
그때부터 이시인은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웅변에 시를 넣어 자기만의 색깔로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 낸 대중적인 시인으로서의 면모를 보이기 시작했다.
입시위주의 시절이었지만 산골에서 학교 근처 소재지로 유학을 했던 그녀는 사실상 성적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아니 솔직히 말해 그녀에게 성적은 물방울하나 보다도 의미가 없었다. 너무 낙천적이었을까? 아님 정말 바보여서였을까?
오직 그녀는 학교 근처 교회를 다니며 영혼의 자유함에 빠져들었고, 또 하나는 책 읽는 것 외에는 관심이 없었다. 일명 성경이면 성경, 명작이면 명작이라는 책에 온전히 미쳐 있었다.
그렇게 독서를 한 덕분일까?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할 수 있는 에너지를 주는 그만의 색깔이 짙게 깔려 있다.
종교관이 달라던 집안의 심한 반대마저 시인에겐 글의 원천이 됐다.
그녀는 많은 경험을 했다. 사람들은 시인은 시만 써야 하고 시처럼 노래하는 이상적인 삶을 살아가야 된다고 하지만 그녀는 현장에서 치열한 삶을 살아왔다.
꽃처럼 어려운 이들과 함께 상승하고 나누며 치열한 삶을 살아 와서일까? 일반 시인에게서는 볼 수 없는 깊은 향기가 난다. 그래서 그녀를 독자들은 국민 산골시인으로 부르고 있는지 모른다.
그녀는 어둠을 끌어모아 싹을 틔우는 산골 시인임에 틀림이 없다.
모든 이의 가슴을 울리는 시인, 그녀에게선 산골 특유의 순수한 감수성으로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시를 쓰고 있다. 이시인이 산골에서 태어나서가 아니라 앞서 말한 꽃 같은 삶을 담아낸 산골 시인이니까 말이다.
그녀는 시에선 밥이 나오고 돈이 나온다고 말한다. (그 만큼 시인들의 힘든 현실을 고발한 것일까?)
그녀는 일반시인들처럼 시만 쓰는 시인이 아니여서 일까?
이미 생각의 생각을 통찰한 시인이여서 일까?
그녀는 작가 출신으로 다양한 글을 쓰는 자유기고가, 기획자, 웹작가, 인성교육가, 기자 등 더불어 문학관련 심사부터 다양한 분야의 심사위원까지 많은 일을 해왔다.
지난 해는 00미스코리아 대회 심사위원으로 초청됐다. '시인이 무슨 글이나 쓰지?' 전혀 무관한 심사위원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아니다. 요즘처럼 외모지상주의에 내면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심사위원들이 필요하다고 본다. 성형외과 의사들만 심사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다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가치로 끌어 올려놔야 한다고 이시인은 말한다.
이시인은 신학에서 목사학, 상담학을 전공해서 강도사고시를 거쳐 종교인으로 활동을 겸하다가 이제는 종교인을 내려놓고 자유 함을 추구하는 시인으로서 길을 걸어가고 있다. 다만 기독교의 정신을 끌어 안고 문화선교사로서 길을 걸어가고 있다.
종교인으로 희생하며 살아 와서 일까? 그녀는 폭넓은 시야와 창조적 혜안으로 살아가는 작가로 통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찾으며 인생 상담을 해오고 있다는 것이 그녀를 따뜻한 시인으로 살아가도록 만들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이시인은 문학정신을 뛰어넘어 대중들이 원하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글을 쓰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오로지 사랑 안에서 위로가 되는 글을 독자들께 선사하겠다는 시인은 요즘 가장 사랑받고 있는 산골시인의 색깔과 향기로 살아가는 만인의 연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