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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길을 닦는 것이 바로 교육이다
―공교육과 대안교육의 새로운 방향, 에프터스콜레―
_안성균(산마을고등학교 교장, 교사대학 이사)
_작성: 2014년 12월
컨베이어벨트의 교체 또는 탈주
‘The wall’이란 앨범이 있었다. 나의 10대 시절, ‘핑크플로이드’라는 희대의 프로그레시브 록그룹이 1979년 발표한 불후의 명음반이다. 획일적 교육제도를 비판하고 자본주의 체제를 거부하는 메시지를 담았으니 당연 금지곡이어서 속칭 빽판을 숨죽이며 몰래 감상해야 했다. 1982년에 영화로 제작되었고 국내에는 17년이 지난 1999년이나 되어서야 개봉되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교실이데아’도 여기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이 영화에서 노래 ‘Another Brick in The Wall Part 2’를 배경으로 컨베이어벨트 위에서 공부하던 아이들이 표정 없이 순서대로 기계 속으로 떨어져 소시지가 되어 나오는 충격적인 장면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처럼 한국 교육의 컨베이어벨트는 바로 6-3-3-4(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대학교) 시스템이 아닐까 한다. 덴마크의 에프터스콜레는 바로, 수십 년간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군림했던 6-3-3-4라는 한국의 단선 컨베이어벨트 교육과정에 일대 파열음을 낼 만한 유력한 요소를 안고 있다. 최소한 1년의 이탈을 법적으로 보장하고 지원하는 선진지의 교육 산물은 매우 신선하지만, 덴마크에서는 1851년부터 시작되어 오롯이 16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구제이다. 행복지수 세계 1위(UN 세계행복보고서, 2013)를 가능하게 하는 덴마크 교육의 핵심으로 주목받는 이 에프터스콜레는 덴마크 전역에 2013년 현재 251개가 운영 중이고, 14~18세 청소년 중 25~30퍼센트 학생이 에프터스콜레를 거쳐 간다. 대학 진학이나 취업을 하기 전 네 4명 중 1명이 1년 이상의 유예 기간을 통해 자신의 진로와 삶을 진지하게 성찰하는 전환기를 보내는 것이다. 이 때문에 에프터스콜레는 ‘인생준비학교’, ‘인생설계학교’라고 불리기도 한다.
*에프터스콜레는 덴마크의 초등교육과정(1~10학년. 우리나라 고1까지의 과정)을 마치기 전의 14~18세 청소년들에게 1년 동안(혹은 경우에 따라 2~3년까지), 일반교육을 기본 토대로 하되 자신의 고유한 세계와 인생행로를 탐색하고 심화시키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학교이다. 특정 분야에 초점을 맞춘 교육이라는 점에서 일종의 ‘중점학교’와 비슷하다. 외국어, 음악, 미술/디자인, 연극, 영화, 스포츠, 항해, 여행, 국제교류, 종교, 프로젝트와 현장연구, 난독증 등 학습장애, 혹은 학생의 특수한 요구를 위한 학교 등 그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덴마크 정부는 에프터스콜레 재학기간을 공립학교 재학기간과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여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2014년 10월 31일부터 11월 2일까지 서울 하자센터에서 ‘삶을 위한 교사대학’ 주관으로 에프터스콜레 교사 초청 세미나를 개최하여 집중 조명한 바 있다.
에프터스콜레의 몇 가지 특징을 꼽자면 첫째, 청소년들의 삶의 발현과 전개에 집중적으로 관심을 기울인다는 점에서, 지식 전수에 연연해온 지금까지의 제도권 교육의 한계를 넘어선다. 둘째, 개성에 초점을 맞추면서 이루어지는 전인교육 혹은 통전교육이 어떤 것인지, 또 어때야 하는 것인지를 말해주기도 한다. 셋째, 기숙학교에서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능력을 배우므로 ‘생활학교’라고 할 수 있다. 넷째, 실제로 해보게 하고 경험하게 하는 것을 가장 중시하기 때문에 현장성이 강하게 드러난다. 다섯째, 자유학교가 흔히 자유주의적 경향성을 띠는 학교라는 인상을 주기 쉬운데, 에프터스콜레는 삶에 대한 계몽, 한 나라의 민족의 전통과 얼, 한 사회가 가진 공동체성, 민주시민의식 등의 배양을 기본으로 한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송순재, 에프터스콜레 교사초청세미나 자료집, 삶을 위한 교사대학, 2014, 15쪽
우리와 달리 공교육이 파행으로 치닫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프리스콜레에 다니는 아이들 15퍼센트 정도에다 에프터스콜레와 폴케회어스콜레까지 더하면 절반 가까운 청소년들이 대안교육의 세례를 받고 있는 셈이다. 1844년 최초의 시민대학이 그룬트비에 의해 세워지고, 오늘날까지 그 맥을 이어온 덴마크 대안교육의 역사는 공교육의 동반자로서 덴마크 행복교육에 이바지했다.
대안교육운동의 위기
우리나라 일반학교의 중등학제는 6-3-3의 틀을 벗어날 수 없다. 제도권 밖의 대안학교도 예외 없이 6-3-3의 학제를 고수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간혹 극소수 중고통합 과정 학교에서나 5년 과정이 운영되고 있다. 사실 5년이란 학제도 사회현실과 타협한 산물이다. 5년 학제의 속내는 마지막 1년을 대학입시를 대비한 유예기간으로 남겨놓은 측면이 있다. 교육과정 상 학교의 교육이념을 담아내는 데 5년으로도 충분하다는 합리적인 이유를 달기는 했지만, 대입을 1년 빨리 준비할 시간을 벌어줌으로써 부모와 아이의 불안심리를 희석시키는 효과와 함께, 일찌감치 사회에 진출하여 또래보다 1년 앞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는 유혹은 5년의 공동체 생활에서 고단함과 지루함에 젖어 있던 이들로서는 기쁘게 수용할 만한 학제였다. 즉 교육철학적으로 5년이 바람직해서 설정했다기보다는 5년이라는 물리적 시간에 교육과정을 꿰어맞추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어쩌면 유연하지 못했던 대안학교의 학제가 현재의 대안교육 침체, 혹은 위기를 초래하는 데 일조했는지도 모르겠다. 대안학교를 설립하고 운영했던 이들의 교육적 비전과 열정은 강산이 두 번 바뀌는 동안 아이들의 변화를 쫓는 데 뒤처졌다. 게다가 이념지향의 대안교육현장이 내뿜는 아우라는 아이들에게 대단히 무겁게 다가갔음을 인정해야 한다. 생명, 평화, 상생, 공동체, 자립, 하다못해 사랑마저도 아이들에겐 부담스럽기 그지없는 어른들의 철학이었다. 한때 사회변혁과 민주화를 위해 몸 바친 부모 세대가 주축이 되어 붐을 이루었던 대안교육의 판세는 그들의 자녀가 학령기를 넘기면서 급변하게 되었고, 결국 대안학교의 입학생 정원 미달 현상으로 드러났다. 물론 원인은 다양하게 분석할 수 있다. 대안교육 내부에서 시대와 청소년 변화를 감지하는 데 미흡했던 점과 교육의 질을 철저히 담보하지 못한 점 등도 드러내야 할 중요한 이유이다.
반면 제도권 교육의 자구노력은 당국의 전폭적인 지원까지 받으며 혁신학교 전성시대를 향하여 약진 중이다. 전체 학교 숫자로 보면 미미하기 이를 데 없지만 진보교육감의 대거 당선이라는 기적과 함께 공교육 개혁의 물꼬를 텄다는 평가를 할 수 있겠다. 대안학교에 갈 법했던 아이들과 그 부모들이 혁신학교를 선택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대안학교의 교육 경쟁력이 떨어졌다는 것이고, 흔들리는 이념과 가치를 받쳐줄 뭔가가 각별히 필요하다는 것이다.
20여 년의 역사를 지닌 현재의 한국 대안교육운동은 160여 년이 넘는 세계 대안교육운동사에 비하자면 이제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지만, 서구 어느 나라도 이루지 못한 속도로 제도권 진입에 성공한 역동의 교육사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한 세대도 지나지 않은 지금, 대안교육 진영은 위기를 맞고 있다. 이런 저런 자리에서 대안교육 위기론을 제기했으나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이가 많지 않았다. 특히 비인가 대안학교는 몇 년 전부터 위기의 뚜렷한 징후가 노정되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위에서 언급한 입학 정원 미달 사태이다. 사태란 표현을 굳이 쓰는 연유는 몇몇 학교가 아니라 다수의 비인가 대안교육 현장이 이제는 입학 정원을 채우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예외는 있다. 2014년 교육부 통계로 전국에 170개의 현장이 있고, 파악되지 않은 비인가 대안학교도 그만한 수가 존재하리라 추정된다. 그 중 엘리트 수월성 교육이나 선교, 해외 유학, 수능을 적극 대비하는 학교들은 여전히 경쟁률이 높다는 점이 우리를 울적하게 만든다.
1997년 산청간디고등학교를 필두로 삽시간에 세워진 제도권 1세대 대안교육 특성화 중고등학교가 전국에 36개 정도 운영되고 있다. 살인적 입시경쟁, 승자독식의 서열교육을 비판하고 참된 인간성의 함양이란 지향은 공통적이다. 혁신학교의 모델은 이러한 대안학교의 교육적 시도와 상상력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역시 여러 학교가 대안교육의 정체성을 두고 고민하는 한편, 일부 학교는 정원을 채우지 못해 속앓이를 하고 있다. 60조 3항에 의거 설립된 제도권 2세대 각종학교 형태의 대안학교도 전국에 24개교가 있지만, 대안적 가치에 방점을 두었거나 다문화가정 아동, 혹은 기술습득 중심으로 운영되는 대부분의 학교도 비슷한 문제에 봉착해 있다.
새로운 대안교육을 상상하고 있다면
이러한 시점에서 대안교육 진영에 몇 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우선 6-3-3이라는 컨베이어벨트에서 과감하게 뛰어내릴 용기가 필요하다. 이미 수년 전부터 정원 미달의 악재로 고군분투하는 현장들은 전폭적인 수술을 고려해야 한다. 초등 6년, 중등 3년, 혹은 중고등 통합 6년 등에 얽매이지 말자는 것이다. 아이들도 교사들도 힘들고 최근 아이들의 발달단계에 맞지 않는다고 이구동성 외치고 있는데 언제까지 간과할 것인가? 생명과 평화의 심성을 기르는 데 3년 혹은 6년이 걸린다는 고정관념도 깨보자. 평생 걸려도 될까 말까한데 그 짧은 기간에 심어놓으려는 강박을 내려놓자는 것이다. 습(習)의 과정이 요구되지만 불가식으로 단박에 깨우치는 교육 경험도 못지않게 많다. 공동체란 단어만 들어도 지긋지긋하다는 아이들에게 1년 또는 길어야 2년의 기간 동안 충실하게 전적으로 부담 없이 만날 수 있는 가벼운 교육현장을 상상해보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을 것 같다.
아이들이 중고등 과정에서 여러 곳의 배움터를 자유롭게 넘나들 수는 없을까? 물론 그 현장은 대안사회를 지향하는 철학으로 세워진 곳이고, 완성도 높은 1년의 교육과정을 개설한 곳이라야 할 것이다. 만일 대안사회가 무겁다면 보편적인 인류의 가치를 존중하는 철학이 깔려 있기만 해도 좋을 것이다. 덴마크의 경우, 그룬트비와 콜로부터 유래한 삶의 계몽, 일반교육, 민주시민이란 핵심 가치를 모든 에프터스콜레가 공유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단지 자신의 꿈과 끼를 발견하고, 개성을 살리는 수준이 아니라 학생 개개인에게 공동체 안에서 살아갈 능력을 길러줌으로써 개인적 관심사에 머무는 한계를 넘어서야 함은 기본이다. 단거리가 제격인 육상선수에게 중거리를 강요한다면 좋은 결과는커녕 일찌감치 선수생활을 접을 가능성이 높아질 뿐이다. 교육자에게는 어떤 선수이든 자기 페이스에 맞게 달리도록 도와줄 책임이 있다. 어차피 인생이라는 레이스는 마라톤이기에 더욱 그렇다.
새로 대안학교를 만들 계획이 있는 이들이라면, 단기 중점학교 시스템을 도입한 한국형 에프터스콜레를 권하고 싶다. 기존의 학교 중에 학교의 정체성과 존립을 위협할 정도로 파격적인 1~2년 과정으로 전환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기숙형 전원학교보다는 통학형 도시학교가 변화에 더 용이하겠다는 생각은 든다. 덴마크의 경우, 대부분의 에프터스콜레는 기숙사형 전원학교이다. 연대와 공동체, 통일성이라는 에프터스콜레의 필수개념을 익히며 자신의 소질을 탐색하고 인생설계를 도모하기에는 집과 익숙한 환경을 떠나 생활하는 것이 훨씬 낫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지난번 덴마크 에프터스콜레 교사 초청 세미나에서 확인한 점은 기간만 단기과정일 뿐 에프터스콜레의 교육 내용이 한국의 대안학교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인지 당시 세미나에 참석했던 교사 활동가들의 반응을 보면 대안교육 현장에서 온 분들은 낯설지 않다는 담담한 분위기였고, 공교육 현장에서 온 분들은 우리와 전연 다른 덴마크의 교육을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접목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최근에는 대안학교 설립이 고등기관까지 옮겨가는 추세로 비인가 대안대학의 설립 움직임이 두드러지고 있다. ‘삶을 위한 교사대학’도 1, 2년 과정을 염두에 둔 대안학교의 교사ㆍ활동가 양성을 위한 대학이라 할 수 있다. 굳이 덴마크식 용어를 빌면 10대 후반부터 성인들이 다니는 시민대학인 폴케회어스콜레쯤 될 듯하다. 몇 년 전 출범한 녹색대학(현 온배움터), 작년에 개교한 인드라망대학, 지구마을청년대학, 얼마 전에 깃발을 든 지식순환협동조합 대안대학의 시도들도 그러한 맥락이다. 에프터스콜레라는 개념과 다소 다르긴 해도 지향하는 바와 교육과정 편성은 유사해 보인다. 즉 다양한 형태와 과정의 한국적 모델을 만들어가면 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동서양 고전읽기와 생활 수공예, 적정기술, 에너지 전환기술 등을 중점 교육하는 생활기술 에프터스콜레를 구상하고 있다.
얼마 전부터 조용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대안교육의 새로운 장르는 ‘마을학교’이다. 우리의 서당이 그렇듯이, 에프터스콜레가 그렇듯이, 전통적으로 대안적인 교육실험은 마을에서 시작되었다. 오래되어 익숙한 유형이지만 새삼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 대안학교의 지향점으로 지역이 명시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지역과 유리된 현장이 다수이다. 지역 학부모들이 주축이 되어 설립한 도시형 초중등대안학교에 비해 전국 단위로 모집하는 기숙형 중고등학교는 더 심하다. 주민들이나 그 지역의 학부모들이 주체가 되어 설립된 학교가 아니라는 태생적 한계 때문이다. 마을사람들이 뜻을 모아 방과후학교, 계절학교, 주말학교를 운영하든지, 1년 과정의 단기중점학교를 지역특성에 맞게 적용해보는 것도 괜찮겠다. ‘마을이 학교’라는 고전적인 교육명제를 다시금 힘껏 펼쳐볼 고무적인 흐름이다.
유연하고 다양한 상상력이 필요한 때
물론, 하루아침에 6-3-3 학제를 변화시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기존의 공교육 제도 틀 안에서 가능할 항목을 열거해보겠다. 공교육 다양화 모델의 일환으로 접근해도 좋겠다.
첫째, 위탁형 대안학교 형태가 현재로서는 행정적으로 가장 적용 가변성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 둘째, 자유학기제의 확대 심화된 형태로 전격적인 전환학년제를 실시하는 방안이 있을 것이다. 셋째, 대안형 혁신학교를 신설할 수도 있을 것이다. 넷째, 파견학년제를 도입하는 것도 가능하다. 다섯째, 대안교육 특성화중고등학교 외 일반 특성화고등학교의 변용이다. 마지막으로 실현가능성이 100퍼센트인 개별 휴학이다.
제도적으로 쉽게 파고 들 수 있는 틈새는 ‘위탁형 대안학교’ 시스템이다. 기왕의 위탁형 대안학교나 각종학교로 인가 받은 현장을 중심으로 1년 과정의 중점학교를 개설하는 방안이다. 이미 운영하고 있는 교육과정에 더하여 이중으로 가기는 어려움이 클 것이다. 3년의 틀을 깨지 못한다면 자체 체질 개선을 통해 1년 완성형 프로그램을 강구하고, 3년을 로테이션하는 변통도 시도해볼 만하다. 현재처럼 재적학교 학교장의 허락을 얻어 위탁형 대안학교에 지원하면 되는 간단한 절차이기 때문이다. 가칭 ‘파견학년제’란 제도를 가미하면 훨씬 운신의 폭이 넓어질 것이다. 파견학년제는 실질적으로 일반계 고등학교 2, 3학년 과정에서 직업교육을 원하는 학생들에게 열려진 기존 경로이므로 이를 활용하면 무난하리라 예상된다.
혁신학교 모델도 다양화하여 1년 과정의 대안형 혁신학교에 위탁교육기관의 법적 위상을 부여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현재 3년 과정의 도시형 공립 대안학교도 이 위탁의 경로를 전용한다. 아니면 ‘공립형 진로탐색 대안학교’로 잡고 가도 괜찮은 모델이 나올 수 있다. 교육청이 직영을 하든, 지역사회나 민간단체 또는 기존의 대안학교에 위탁하거나 협치하는 형태를 취하며 관리와 재정을 지원하는 그림은 그럴듯하다.
대통령의 공약사항이라 정책적으로 중1 과정에서 시행되는 자유학기제는 몇 가지 한계가 있다. 우선 시험의 스트레스 없이 활동 위주의 수업을 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기는 하지만, 취지대로 학업 부담을 덜고 진로를 탐색하기에는 연령이 너무 이르다. 게다가 꿈과 끼를 찾고 연마하기에 한 학기는 너무 짧다는 약점이 있다. 애초 복안대로 좀 더 고학년에서 아일랜드식의 1년 과정 ‘전환학년제’를 밀고 나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대안교육 특성화중고등학교나 일반 특성화고등학교’는 에프터스콜레 형태의 교육과정을 실현하는 데 적격인 이념과 조건을 가진 현장이 많다. 중점에 따라 스펙트럼이 다양한 에프터스콜레의 특성을 한국 상황에 맞게 반영하여 리모델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 교육과정의 40~50퍼센트 수준의 특성화 교과영역이 운용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관행화된 일반학교의 틀을 얼마나 변용 탈피하고 구성원의 합의를 도출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휴학 제도’를 활용하는 차선책도 있으나 아직까지 한국사회에서 청소년기에 1년을 휴학한다는 부담을 떨쳐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단, 이 경우 1차적으로 본인의 선택 여부로 가능해진다는 용이함이 최대 장점이다. 사실 이 경우가 아래로부터의 경로 다양화와 속도 지연의 봇물을 터뜨릴 최선의 방책이라 본다.
우리 친구들이 1~2년쯤 정규학제의 컨베이어벨트에서 이탈하여 마음껏 배우고 싶은 곳에서 즐겁게 학습하고 돌아가는 것이 그들의 삶에 훨씬 도움이 될 것이라는 믿음도 있다. 이제는 그런 배움도 넘나들 시대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오히려 10대 청소년이 더 고루하고 보수적이란 느낌이 들 때가 많은 것은 왜일까…. 대학에 가서야 진로를 고민하며 사회에 진출하는 시기를 늦추거나, 스펙을 쌓기 위해 마지못해 휴학을 하며 선택을 유예하는 행태는 답습하지 않기를 바란다.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탐닉하면서 현 세계에 대한 지적 탐색과 총체적 판단력을 거세당하고 있는 10~20대 청소년들의 무기력한 모습은 기성세대가 뿌린 씨앗에서 발아한 것이다. 돈, 출세, 성공을 향한 무한경쟁과 스펙 쌓기를 은근히 대놓고 강요한 당사자가 우리 어른들 아닌가? 이러한 현실에 대한 염증과 도피로 말미암아 멀지 않은 미래에는 중도탈락 청소년보다 비진학 청소년인 니트족이 사회 문제화될 소지가 농후하다.
중 3에서 고 1로 넘어나가는 시기가 아니어도 무방하고, 고 3에서 대학이나 사회로 나가기 전의 시기가 아니어도 무방하다. 청소년뿐만 아니라 청년이나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1~2년 과정의 대안학교, 대안대학의 백가쟁명시대를 기대한다. ‘에프터스콜레’라는 용어를 쓰지 않더라도 그 정신과 개념을 담은 어떤 신조어라도 상관없다. 교육당국, 제도권 교육, 대안학교, 그리고 시민단체의 가려운 곳을 긁어줄 수 있는 협력 구조가 다름 아닌 에프터스콜레 형태의 자유롭고 다양한 교육기관이고, 경직된 학제의 유연성 확보야말로 얽힌 실타래를 풀 수 있는 가위손이라 생각한다.
교육은 흐르는 강물
‘교육은 흐르는 강물’과 같이 늘 새로움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비노바 바베는 말했다. 지금 이 땅에서 교육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천년의 긴 흐름으로 볼 때, 출세 지향의 과거시험 준비기관으로 전락하고 말았던 관학 중심의 제도권 교육은 어느 결엔가 향촌 지역에 뿌리를 두고 인간본성과 우주의 이치를 탐구하는 인문주의 철학에 방점을 찍은 서당과 서원교육으로 다양화ㆍ전문화되었다. 당시로서는 혁신교육적인 시도요 대안교육운동이라 할 서당과 서원교육은 성균관 및 향교라는 관 주도의 교육과 절묘하게 균형을 이루며 학문과 정치,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본연의 교육기능을 꽃피웠다. 물론 자리 잡기까지의 과정은 녹록치 않았다. 조선 말기로 가면서 서원의 적폐가 적지 않았지만 조선 땅에 진리가 집을 짓는 이상을 실현하고자 목숨을 바친 도학(道學)의 근본정신은 면면히 이어졌다. 이용후생과 경세치용의 실학(實學)이 보완되면서 생명력은 600~700여 년에 걸쳐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에 비하면 단시간 내에 서구 근대 교육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추종한 현 시대의 대한민국 교육의 자화상은 국가 주도, 국가 독점의 극심한 절름발이 교육이 아닐 수 없다.
덴마크 교육의 백미는 그 편향을 시민과 함께 균형으로 이끈 훌륭한 모범이라는 것이다. 우리도 교육당국과 시민사회 교육단체(대안교육현장)가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실험을 상호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히 진행했으면 한다. 학제 개선과 보완에 대한 논의는 지금부터 시작해도 늦지 않다. 몇 년 전 조한혜정 교수가 제안했던 ‘10-15-20 특별학년제’라는 참신한 발상도 있다. 이것은 10살에는 농산어촌유학/도시유학을, 15살 고등학교 진학 전엔 진로 탐색의 전환학년을, 20살 대입/취업 전엔 공익근무를 하는 것으로, 적극 추진함직한 매력적인 시안이다.
무중력증후군이 만연한 청소년 세대에게 진로를 모색하고 사회를 탐구하고 자활 능력을 기를 수 있는 획기적인 교육제도의 탄생이 절실하다. ‘나는 어떤 인생을 살 것이며, 다른 사람과 어떻게 함께 할 것인가’를 사유하며 요긴한 삶의 기술을 배우는 인생학교가 전국 방방곡곡에 세워진다면 우리의 교육은 또 얼마나 풍요롭고 아름다워질 것인가?
에프터스콜레 세미나 말미에, 덴마크의 레즈비 에프터스콜레(Rejsby European Efterskole)에서 온 젊은 교사 알렉스의 말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한국에서 기쁘게 발견한 것은 열정이다. 방문했던 대안학교 현장에서 확인했다. 국가 교육이든 대안학교든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사실은, 우리는 교육자라는 것이다. 그들의 성장을 위해 우리는 존재한다. 가장 좋은 교육은 현재 학생들이 원하는 것을 우리가 들어주고 그들에게 원하는 것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경쟁사회다. 어떤 아이들은 잘 들어맞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들도 많다. 학문적 능력이 없어서 교과내용을 감당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생각해봐야 한다. 그런 면에서 교육체제는 낙후되어 있다. 한국이나 덴마크나 영국이나 마찬가지다.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사고해야 한다. 5년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어떻게 알겠는가. 항상 앞서서 생각하는 교육자가 되면 좋겠다.”
변화하는 시대에서 그보다 더 급변하는 아이들에게 맞는 교육은 무엇일까? 과연 우리는 그들을 위해 어떤 준비를 하는 교육자와 부모가 될 것인가? 덴마크 에프터스콜레가 정답은 될 수 없겠지만, 공교육과 대안교육계에 유연한 교육과정과 색다른 교육기관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하고 견인할 본보기로서의 가치는 충분하다. 단, 에프터스콜레의 탈을 쓴 제 3의 사교육 기관, 입시 준비 학원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 대안학교의 이름을 빌려 상층 경쟁사회로 진입하는 입시 및 유학 대비 학교가 우후죽순 설립된 전례를 잊지 말아야 한다.
급격한 시대의 변환에다 질풍노도의 삶의 전환기에 놓인 청소년들에게 전환의 기제와 트랙을 여러 개 마련하는 배려는 과하지 않은 애정이다. 노마드란 이름의 자유로운 영혼으로 재편되고 있는 신세대가 한동안 뿌리내릴 만한, 그리고 쉴 만한 목초지가 필요한 때이다. ‘궁즉변 변즉통(窮則變 變則通)’이라 했다. 변화의 물결에 힘입어 철옹성 같은 학제와 국가 주도의 교육 풍토가 깨질 날을 기대해 본다.
무엇보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세계와 사람을 향한 열정이 있지 않은가! 귓가에 ‘교육의 목표는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을 길러내는 일이다.’라는 피아제의 읊조림이 들리는 듯하다.
“새로운 길을 닦는 것이 바로 교육이다(修道之謂敎).”_≪중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