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두 섬 이야기(요르크 슈타이너 글/요르크 뮐러 그림/김라합 옮김/사계절/2003)
2017년 4월 25일 이 명 진
대통령 선거로 온 나라가 들썩인다. 누군가는 이 사람을 뽑아야한다 하고 누군가는 저 사람을 뽑으라 한다. 지금까지 무슨 일을 저질렀던 떳떳하게 앞에 나와 우리를 위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후보를 보며 ‘혹여 저 사람이 뽑히진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어떤 후보를 뽑아야 차선이라도 되는 걸까? 이번엔 내가 선택한 사람이 될까? 고민이 많다. 이런 시점에 보게 된 요르크 뮐러 그림, 요르크 슈타이너 글의 《두 섬 이야기》. 대비되는 두 섬의 지도자(큰 섬의 왕과 작은 섬의 눈먼 할아버지)를 보며 우린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한번 생각해보자.
먼저 큰 섬의 왕을 살펴보자. 처음엔 큰 섬을 더 크고 아름답고 풍요롭게 만드려고 대신들에게 명령을 내린다. 흙이 모자라자 작은 섬에서 흙을 가져오라 명령을 내리고, 작은 섬의 눈먼 할아버지가 경고하러 왔을 땐 안하무인격으로 반말을 한다. 붉은 사금석이 물에 잠긴 걸 확인하고 사금석을 높은 곳으로 옮기라고 명령한다. 사금석 아래에서 금이 발견되자 일꾼들을 자기 머슴으로 삼고 모든 금을 차지하고도 모자라 금으로 된 궁전과 순금으로 된 자신의 동상을 세우라고 또 명령한다. 일꾼이 모자라자 작은 섬의 사람들까지 강제로 일을 시킨다. 우기에도 일을 시키려 했지만 이젠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섬사람들의 생활에는 눈 감고 자기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바빠 자신의 최후를 알지 못했다.
다음은 작은 섬의 눈먼 할아버지를 살펴보자. 무척 지혜로운 사람이어서 다툼이 있으면 중재해주고 옳고 그름을 가려주며, 재미있으면서 깊은 뜻이 담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큰 섬에서 흙을 가져가자 왕을 만나러 가서 일깨워주려 한다. 큰 섬에서 작은 섬 사람들을 일꾼으로 삼으려고 왔을 때 자기가 같이 갈 것이며 주민들을 외롭게 버려두지 않겠다고 한다. 조개껍데기 대신 흙을 품삯으로 받자는 제안도 해서 작은 섬을 다시 예전처럼 풍요롭게 만든다. 우기에 큰 섬 사람들이 왔을 때도 모두 받아준다. 주민과 같은 생각을 하고 함께 행동하는 삶을 산다.
이 두 사람이 만나는 장면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눈먼 할아버지는 돌 곁으로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손으로 돌을 더듬어서, 돌에 새겨진 알아보기 힘든 글을 큰 소리로 읽었어요.
붉은 사금석이 물에 잠기면
섬 사람들이 생명의 법을 어겼다는 뜻으로,
섬이 가라앉게 될 것이다.
그러자 왕이 버럭 화를 냈습니다. “글은 나도 읽을 줄 안다. 나는 너처럼 눈도 멀지 않았어. 게다가 나는 생명의 법에 맞는 게 뭔지 누구보다 잘 알아.”
눈먼 할아버지가 물었습니다.
“생명의 법에 맞는 게 대체 뭐요?”
왕은 더욱 화가 나서 소리쳤어요. “생명의 법에 맞는 건 질서와 부지런함이야! 너희들은 이 법을 우습게 알지만, 우리 큰 섬 사람들은 이 법을 잘 지키고 있다. 우리는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일한다! 그런데 너희들은 되는 대로 놀고먹지 않느냐. 너희는 빈둥거리며 헛된 꿈이나 꾸는 게으름뱅이들이야!”
눈먼 할아버지보다 앞을 더 못 보는 왕의 모습이다.
요르크 뮐러의 그림을 보자. 표지에 파란 조개 껍질로 궁전을 꾸민 큰 섬의 왕이 일꾼이 들어주는 가마에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 궁전 앞에 사람들이 꾸민 듯한 정원빼곤 돌로 된 모습만 보이는 큰 섬과 자연과 하나된 듯 아름다운 작은 섬의 모습이 멀리로 보인다.
두 섬의 그림이 한 폭의 수채화 같이 펼쳐진 면만 자세히 살펴보았다. 섬의 공간을 개간해 바다에도 논을, 산에도 계단식으로 밭을 만들고 담으로 구분해져 있어 누군가의 것이라는 인상을 준다. 반면 작은 섬에는 밭이 보이긴 하나 섬의 자연들과 어우러져 자연스럽다. 큰 섬 앞바다에는 물 속에 가라앉은 신전이나 도시 같은 윤곽이 비친다.
큰섬이 날개를 펼친 것처럼 바다를 논으로 만들었을 때 작은 섬은 많은 흙을 빼앗겨 점점 작아진다.
금을 캐느라 농사는 뒷전인 큰 섬엔 바위마다 구멍이 뚫려 있다. 논은 바닷물에 잠식당하고 번쩍이는 금 궁전과 왕의 금동상만 멀쩡해 보인다. 작은 섬은 흙을 다시 찾아와 예전의 푸르름을 어느 정도 되찾았다.
큰 섬은 완전히 무너져 내리고 금 궁전과 동상은 사라져버렸다. 작은 섬은 언제 비바람이 불었나싶게 평화로워 보인다. 큰 섬 위에 무지개가 떠 있는 걸 보니 희망이 남아 있나보다.
작은 섬으로 도망왔던 큰 섬 사람들이 다시 큰 섬을 예전처럼 일구려 노력해서 푸르름이 많아지고 서로 닮은 모습을 보인다.
왼쪽 페이지에는 큰 섬 이야기를, 오른쪽 페이지에는 작은 섬 이야기를 들려준다. 큰 섬에는 부자와 가난뱅이, 주인과 머슴의 계급이 나눠져 있으며 입는 옷 색깔마저 정해져 있다. 다 먹을 수 있을까 싶은 과일, 채소, 새, 물고기 같은 것들이 놓여있고 주인인 듯한 사람이 조개껍질을 세고 있다. 현대 사회의 어딘가를 옮겨 놓은 듯 하다. 작은 섬은 먹을 양만큼의 물고기를 잡고 비슷한 옷을 입었으며 원시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큰 섬은 돌로 집을 만들어 어딘가 각이 잡히고 바뀌기 쉽지 않음을, 작은 섬은 흙으로 집을 만들어 유연하고 자연스러움을 보인다. 그림만으로도 너무 많은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바다에 논을 개간해놓고 금을 캐느라 돌보지 못했더니 우기에 다 침수를 당한 논을 보며 무분별한 개발이 끼치는 영향을, 또한 금을 캐느라 바위에 온통 구멍을 뚫어놓아 무너져버리는 것은 자연파괴에 대한 경고를 보여준다. 요즘 도시에 싱크홀을 보는 듯하다.
얼마전 필리핀 원시 부족 두마가트족에 대한 방송을 봤다. 작은 것에도 즐거워하고 감사할 줄 알며 자연에서 먹을 만큼의 음식을 얻고 부족민이 모두 같이 나누었다. 점점 사라져가는 원시부족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많이 가졌지만 더 가지지 못해 불만이고 현재보다는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사는 우리와 비교해보니 무엇이 진정 바른 삶인가 의문이 생겼다. 물론 불평과 불만이 있어서 새로운 것, 더 편한 것이 만들어지고 사회는 더 발전한다. 하지만 몸은 편해졌으나 즐겁게 살기는 힘든 사회가 점점 되어간다.
《두 섬 이야기》는 두 사람이 함께 작업한 《난 곰인채로 있고 싶은데...》나 《토끼들의 섬》과 같이 현대사회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평화로워 보이는 작은 섬과 대비해 현대 사회 같은 큰 섬의 이야기를 보며 잘못 생각한다면 작은 섬이 공산주의 같지 않은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공산주의도 지도자는 배부르지만 작은 섬은 모두 함께 나눔을 실천한다. 원래 공산주의가 추구하는 이상향은 작은 섬이 아닐까. 현 사회에서 작은 섬의 생활을 따라하긴 힘들겠지만 즐겁게 사는 것을 추구하는 요새 풍속(욜로 YOLO : 현재를 즐기려는 사람이 증가하면서 생겨난 단어, 한번 사는 인생 마음껏 즐겨라)이 어쩌면 작은 섬을 본받은 것인가 싶다. 즐겁게 사는 것과 나중을 생각하지 않고 오늘만 즐겁게 사는 것은 무슨 차이일까? 나도 모르겠다.
어쨌든 우리는 5월9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다. 앞으로의 5년 뿐만 아니라 더 밝은 미래를 위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큰 섬의 왕을 한번 더 뽑을 것인가, 아니면 작은 섬의 눈먼 할아버지를 조금이라도 닮은 사람을 뽑을 것인가. 앞으로 뽑힌 분은 책임감이 있고 어두운 과거를 조금씩 청산해 나가려는 국민을 위하는 분이었음 한다. 옛날 말에 ‘뽑아놓으니 그 놈이 그 놈이더라’가 안되길 바라며 희망을 한번 가져 본다.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에 대하여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은 덴마크의 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에서 2년마다 마동문학 저자와 삽화가에게 수여하는 상으로 일명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린다. 다른 상들과는 달리, 상금은 없지만 덴마크 여왕이 직접 증서와 메달을 수여한다.
이름은 덴마크의 아동문학가인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이름에서 따왔다.
아직까지 한국인 수상자는 없으며 2016년에는 이수지 작가가 삽화가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지만 아쉽게 수상자가 되지는 못하였다.(나무위키에서 발췌)
요르크 뮐러는 1994년 삽화가 부문에서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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