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반당한 사회주의: 쏘련 붕괴의 배후(1)
로저 키란(Roger Keeran)과 토마스 케니(Thomas Kenny)
번역: 편집부
[차례]
서문
1. 서론
2. 쏘련 정치에서의 두 가지 경향
3. 제2차 경제
4. 약속과 예언, 1985-86
5. 전환점, 1987-88
6. 위기와 붕괴
7. 결론과 암시
8. 끝 맺음말 – 쏘련 붕괴의 설명들에 대한 비판
후주
제 2판 서문
≪배반당한 사회주의(Socialism Betrayed)≫는 2004년 국제 출판사(International Publishers)에서 처음 출판되었으며, 이에 대해 국제 출판사 이사 베티 스미스(Betty Smith)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초판이 매진된 것은 주로 호평과 홍보 덕분이었다. 미국에서는 ≪인민주간세계(People’s Weekly World)≫의 평론가인 마크 앨름버그(Mark Almberg), 영국에서는 ≪샛별(Morning Star)≫, 아일랜드에서는 ≪사회주의자의 목소리(Socialist Voice)≫, 캐나다에서는 ≪인민의 목소리(People’s Voice)≫와 ≪불꽃(The Spark)≫,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수호자(The Guardian)≫ 및 ≪호주 맑스주의 평론(Australian Marxist Review)≫, 독일에서는 ≪맑스주의자 신문(Marxistische Blätter)≫ 덕분이다. 우리는 이 잡지들의 편집자들과 평론가들에게 감사드린다. 비록 미국에서 평론가들이 이 책을 거의 무시했지만, ≪정치평론(Political Affairs)≫, ≪과학 및 사회(Science & Society)≫와 ≪자연, 사회 그리고 사상(Nature, Society and Thought)≫에서는 혹평을 받았다. 혹평을 받는 것이 무시당하는 것보다는 좋다. 때문에 우리는 이 평론가들에게도 역시 감사드린다.
2004년 이후, ≪배반당한 사회주의≫는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다. 우리는 두 번째 영문판을 출판하는 기회에 해외에서 다양한 도움을 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이리나 말렌꼬(Irina Malenko)와 블라고베스짜 돈체바(Blagovesta Doncheva)는 훌륭한 친구이며 이 책에 대한 열렬하고도 지칠 줄 모르는 지지자이다. 이들의 노력으로 불가리아어와 러시아어로 출판되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감사를 드린다. 러시아어로 번역한 이반 이바노프 박사(Dr. Ivan Ivanov)와 이를 출판한 알고리틈 출판사(Algoritm Press)에도 역시 감사를 드린다. 이 책의 페르시아어 판은 무함마드 메리아(Mohammad Mehryar)와 페리돈 다라프쉬(Feridon Darafshi) 덕분에 출판되었다. 이들은 이 책을 미국에서 이란으로 가져와서 이란의 자유를 위해 영웅적으로 투쟁하는 무함마드 알리 아뮤이(Mohammad Ali Amooii(간혹 Amoui))에게 소개하였다. 무함마드 알리 아뮤이는 이 책을 좋아하여 스스로 번역하였다. 우리는 세 사람 모두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그리스에서는 에레니 벨로우(Eleni Bellou)가 편집하는 그리스 공산당(KKE) 저널인 ≪코메프(KOMEP)≫에 이 책의 일부가 실렸다. 그녀와 동료인 키릴로스 파파스타브로(Kyrillos Papastavrou), 바실리스 옵시모(Vasilis Opsimou), 바비스 안고라키스(Babis Angourakis)와 니코스 세라타키스(Nikos Seratakis)는 저자들이 2007년 12월 쏘련 몰락의 원인에 관한 아테네 국제회의에 참석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회의에서 이 책은 ≪정점(Vertices)≫의 편집자인 프란시스코 벨로(Francisco Melo)를 포함하여 다른 편집자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그와 마리아 안투네스(Maria Antunes)를 포함한 동료들은 포르투갈에서 번역과 출판을 담당하였고, O Socialismo Traido(배반당한 사회주의)라는 제목으로 2쇄를 마쳤다. 터키에서는 아이테크 알판(Aytek Alpan)이 출판에 착수하였다. 프랑스에서는 알리 알레그(Henri Alleg)와 엠마뉴엘 땅(Emmanuel Tang)이 비슷한 역할을 했으며, 그들이 제안하여 애머리끄 몽빌(Aymeric Monville)이 이끄는 델가 출판사(Editions Delga)에서 출판할 예정이다. 감사를 전하면서, 이들의 적지않은 노력이 물질적 이득이 아니라 이 책이 가치가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읽어야만 한다는 믿음에서 비록되었음을 지적하고 싶다.
≪배반당한 사회주의(Socialism Betrayed)≫의 제2판 발행은 도그우드 사회주의 교육재단(Dogwood Foundation for Socialist Education)의 아낌없는 지원 덕분이다. 교육재단과 폴 비애르나손(Paul Bjarnason)이사가 우리 저작에 보여준 신뢰에 대해 감사를 드리고 싶다.
서문
헝가리 봉기에 관한 1957년 글의 서문에서, 허버트 압세커(Herbert Aptheker)는 “시간적으로는 너무 최근이고, 공간적으로는 너무 먼” 사건에 대한 평가는 위험한 시도라고 하였다. 그러나 어쨌든 “그 격변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했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고 말했다. 이 서문에서, 우리는 똑 같은 위험과 동기를 말해야겠다. 쏘련의 격변은 시간적으로 최근이고, 공간적으로 멀다. 뿐만 아니라, 저자들의 일상적인 연구 영역을 벗어나는 일이다. 우리 중 한 사람은 미국사가이고 또 한 사람은 노동경제학자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이해하려고 했고, 합리적인 판단과 다소간 근원적 통찰에 도달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이 압세커가 말한 “철저한 시험이라는 심판(the ordeal)1)
이 책은 수많은 동지들의 아낌없는 조력으로 이루어졌다. 초고를 읽고, 오류를 수정하고, 출처를 생각해 내고, 아이디어를 추가하고, 알맞은 평가를 하고, 종잡을 수 없는 말에 이의를 제기하고, 쓸데없는 말을 잘라내 주었다. 초고를 모두 읽고 편집상의 실재적인 변화를 제안한 바만 아자드(Bahman Azad)와 노만 마르코비츠(Norman Markowitz), 마이클 파렌티(Michael Parenti), 안토니 코플란(Anthony Coughlan), 베티 스미스(Betty Smith)에게 특별히 감사를 표한다. 초고의 전부나 일부를 읽고 아이디어를 제공하거나 격려를 해준 사람들에게도 감사하고 싶다: 제럴드 혼(Gerald Horne)과 프랭크 골드스미스(Frank Goldsmith), 에르윈 마르퀴트(Erwin Marquit), 샘 웹(Sam Webb), 엘레나 모라(Elena Mora), 마크 로젠즈위그(Mark Rosenzweig), 제럴드 메이어(Gerald Meyer), 조 심스(Joe Sims), 리 들러긴(Lee Dlugin), 팻 바릴레(Pat Barile), 대니 루빈(Danny Rubin), 필 보노스키(Phil Bonosky), 빌 데이비스(Bill Davis), 에벨리나 알라콘(Evelina Alarcon), 팀 윌러(Tim Wheeler), 스콧 마샬(Scott Marshall), 노엘 라비노비츠(Noel Rabinowitz), 폴 미쉴러(Paul Mishler), 자비스 타이너(Jarvis Tyner), 에스더 모로즈(Esther Moroze), 마릴린 베첼(Marilyn Bechtell), 제럴드 에릭슨(Gerald Erickson), 콘스탄스 폴(Constance Pohl), 재키 디살보(Jackie DiSalvo), 리차드(Richard), 브라위 나자리안(Brawee Najarian), 짐 밀러(Jim Miller).
학술조사를 도와준 맑스주의 연구 참고자료센터의 마크 로젠츠베이그(Mark Rosenzweig) 사서와 재키 라발레(Jackie LaValle) 사서, 그리고 수많은 책들과 기사들을 골라주었던 에일린 재미슨(Eileen Jamison)사서에게 감사를 드린다. 2차 경제에 관한 자료들을 찾는 것을 도와준 그레고리 그로스먼(Gregory Grossman)에게도 감사의 빚을 지고 있다. 로저 키란(Roger Keeran)이 초기 조사와 저술을 하는 동안 안식년을 마련해준 뉴욕 주립 대학교 엠파이어 주립 칼리지(SUNY Empire State College)에도 감사를 드린다. 로저가 텍사스대학교(University of Texas)에서 연구를 하는 동안 도움을 준 캐써린 키란(Catherine Keeran)과 숙소를 제공하고 회합을 주선해준 앨리스(Alice)와 존 워드(John Ward)에게도 감사하고 싶다. 표지와 다른 작업들에 관해 조언한 데이비드 그랜빌(David Granville), 데릭 코츠(Derek Kotz), 이안 데닝(Ian Denning), 찰스 켈러(Charles Keller)와 기술적으로 도운 존 퀸(John Quinn)에게도 감사를 드린다. 동지애를 보여준 마이클(Michael)과 메리 도노반(Mary Donovan), 빌 타운(Bill Towne) 그리고 현대정치 플랜너 세미나(Flannery’s Seminar in Contemporary Politics)의 크리스티나 해씽어(Christina Hassinger)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마지막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이 계획을 검토한 아내인 캐롤(Carol)과 매리(Mary)에게 감사하고 싶다. 게다가 캐롤과 매리는 주말을 잃어버린 나날들, 낡은 주제가 지닌 중요성에 대한 강박적 집착, 책이 흩어진 부엌 탁자, 종이 뭉치들, 워드 프로세스 앞에서의 끝도 없는 혼란한 시간 등을 감내했다
마크 트웨인(Mark Twain)은 “의견대립이 말을 달리게 한다.”라고 말했다. 정치도 만들어 낸다고 덧붙이려 했을지도 모른다. 정치에 관심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쏘련의 몰락은 단호하고 다양한 견해를 불러 일으켰다. 사회주의 국가를 방문하거나 소비에트 시민과 이야기 하거나 사회주의에 관한 책을 읽은 사람은 누구나 잘못된 것을 증명하는 일화이거나 설명하는 이론을 획득한 듯 보였다. 이 초고를 읽은 많은 사람은 자신만의 견고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고 우리와 공통된 부분이 거의 없었다. 따라서 이 책의 견해와 마찬가지로 오류도 오로지 저자들만의 책임이다.
서론
쏘련의 마지막 권력 투쟁 이야기를 커다란 역사적 힘과 경향의 저항할 수 없는 전개라는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은 최선이 아니다. 반대로, 그것은 현대 역사에 있어 다각적인 측면에서 호기심을 야기하는 최고의 이야기이다. 안토니 다고스티노(Anthony D’Agostino), 역사학자.2)
두려움과 경악, 의혹 속에서 세계는 쏘련의 붕괴를 목격했다. 쏘비에뜨 체계와 이전의 초강대국, 공산주의 신념체계, 지배 정당을 휩쓸고 갔다. 알렉산더 달린(Alexander Dallin). 역사학자.3)
쏘련의 존재는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과 같이 확실했다. 쏘련의 존재는 정말로 힘든 시험들을 이기고 생존했던 너무나도 견고하고 강력한 국가였기 때문이다. 피델 까스뜨로(Fidel Castro).4)
이 책은 쏘련의 붕괴와 21세기에 의미하는 바에 관해 쓴 책이다. 붕괴의 규모로 인해 우파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일으켰다. 우파에게 붕괴는 냉전이 끝나고 자본주의가 승리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역사의 종말”을 의미했다. 이제부터 자본주의는 경제적 정치적 진화의 가장 높은 형태, 즉 최고점이다. 쏘비에뜨 기획에 호의적인 사람들은 이러한 우익의 승리주의에 대부분 공감하지 않는다. 이들에게는 소비에트 붕괴가 중대한 함의를 갖긴 하지만 계급투쟁과 자본권력에 맞선 피억압 인민들의 투쟁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는 세계를 이해하는데 마르크스주의는 여전히 유효하다. 노동자와 노동조합, 소수자, 민족 해방, 평화, 환경, 인권의 편에 선 사람들의 가치와 책무를 약하게 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사회주의에서 발생했던 일은 맑시즘에 대한 이론적 도전이며 반(反)자본주의 투쟁과 사회주의의 미래 전망에 대한 실천적 도전이다.
자본주의적 착취와 불평등, 탐욕, 빈곤, 무지, 불의가 없는 더 좋은 세상이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들은 쏘련의 붕괴로 패배감에 사로잡혀 동요하였다. 쏘련 사회주의는 우리가 나중에 토론할 많은 문제점이 있으며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사회주의 체제도 아니다. 그러나 쏘련 사회주의는 맑스가 정의했던 사회주의의 본질을 구현했다. 부르주아 소유와 “자유 시장”, 자본주의 국가를 전복하고 집단 소유와 계획 경제, 노동자 국가로 대체했다. 게다가, 쏘련 사회주의는 모든 시민, 특히 공장과 농장의 노동자를 위해 평등과 안전, 의료, 주택, 교육, 고용, 문화의 영역에서 유래가 없는 수준을 달성했다
쏘련의 업적에 대한 간략한 재검토는 잃어버린 것에 대한 강조다. 쏘련은 낡은 질서의 착취 계급들을 제거했을 뿐만 아니라 인플레이션과 실업, 인종차별, 민족차별을 끝장냈고 빈곤을 없앴으며 재산과 수입, 교육, 기회의 불평등을 없애버렸다. 국가는 미국의 단지 12%에 불과했던 산업 생산에서 출발해서 50년 만에 미국 산업 생산의 80%와 농업 생산의 85%에 이르는데 까지 나아갔다. 비록 쏘련의 1인당 소비가 미국의 1인당 소비보다 낮았다고 할지라도, 그 국가의 모든 인민들을 위해 그렇게 짧은 기간 동안 매우 빠르게 생활수준과 소비가 증가했던 사회는 이전에 없었다. 고용은 보장되었다. 무상 교육은 유치원부터 2차 교육기관(일반학교, 기술과 직업학교)을 거쳐 대학과 방과 후 학교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이 이용 가능했다. 무상 교육뿐만 아니라, 2차 교육기관 이상의 교육을 받는 학생들은 생계 장학금을 받았다. 무상 의료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존재했으며 1인당 의사 수가 미국보다 대략 2배 많았다. 다치거나 질병을 가진 노동자들은 고용 보장과 질병 수당을 받았다. 1970년대 중반, 노동자들은 평균 21.2일(한 달의 휴가)을 했고 요양소, 휴양지와 아이들의 캠프는 무상이거나 보조금이 주어졌다. 국가는 모든 가격을 통제했고 기초적인 음식과 주택의 비용에는 보조금을 주었다. 집세는 가계 예산의 단지 2~3% 만을 차지했다; 물과 공공요금은 단지 4~5% 정도를 차지했다. 소득에 의해 차별화된 주택은 존재하지 않았다. 몇몇 이웃 사람들이 높은 직위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어디에서나 공장 관리인들과 간호사들, 교수들, 청소원들은 함께 평등하게 살았다.5)
정부는 생활수준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써 문화와 지성의 성장을 포함시켰다. 국가의 보조금으로 책과 정기간행물, 문화 행사는 최소 가격을 유지했다. 그 결과 노동자들은 대개 서재를 소유했고 평균적인 가족은 네 개의 정기간행물을 구독했다. 유네스코(UNESCO)는 쏘련 시민이 전 세계 어떤 인민들보다 더 많은 책을 읽고 더 많은 영화를 본다고 보고했다. 매년 박물관을 방문하는 인민들의 수는 전 인구의 거의 절반에 다다랐고 극장과 콘서트, 다른 공연의 관람자는 전 인구의 수를 넘어섰다. 정부는 교양을 진작하고 가장 낙후된 지역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 협력했고 쏘련을 구성하고 있었던 백 개의 민족 집단들보다도 더 많은 문화적인 표현들을 장려하기 위해 협력했다. 예를 들어, 끼르기즈스딴(Kirghizia)에서는 1917년에는 500명 중 한 명만이 글을 읽고 쓸 수 있었지만, 50년 후에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글을 읽고 쓸 수 있었다.6)
1983년 미국의 사회학자 앨버트 지만스키는 쏘련의 소득분배와 생활수준에 대한 다양한 서구의 연구들을 재조사했다. 그는 쏘련에서 가장 높은 임금을 받은 사람들이 뛰어난 예술가, 작가, 교수, 장관, 과학자들이라는 것을 발견했는데, 그 사람들은 한 달에 1,200 루블에서 1,500 루블까지의 높은 소득을 벌었다. 지도적인 정부의 관리들은 대략 600 루블을 벌었다; 기업의 관리자들은 190 루블에서 400 루블을 벌었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한 달에 대략 150 루블을 벌었다. 결과적으로, 가장 높은 소득을 버는 사람들의 소득은 평균적인 노동자들의 임금보다 단지 10배 정도 많았던 반면에 미국에서는 가장 높은 소득을 버는 회사의 사장들은 노동자들의 임금보다 115배가 더 많았다. 특별 사무실과 국영 자동차 회사와 같은 고위 공직이 가졌던 특권은 거의 없거나 제한되었고 연속성이 보장되지 않았다. 더 큰 평등주의를 위해 4년 주기(forty-year trend)로 교체되었다. (미국에서는 반대의 경향이 발생했고 미국에서는 1990년대 말에 회사 사장들은 평균적인 노동자들의 임금보다 480배를 더 많이 벌고 있었다.) 임금과 소득을 수평화하기 위한 경향이 문제들을 발생시켰음에도 불구하고(나중에 토론), 쏘련에서 생활수준의 전체적인 평등은 인류 역사에서 선례가 없는 위업을 보여주었다. 평등은 가치 이상의 사치품과 가치 이하의 필수품의 비용을 고정했던 가격 정책에 의해 더욱 더 진전되었다. 평등은 역시 “사회적 임금”, 다시 말해서 자유롭거나 보조금을 받는 사회적 이익의 꾸준한 증가에 의해 더욱 더 진전되었다. 이미 언급되었던 내용들뿐만 아니라 많은 혜택들이 포함되었고 출산 휴가, 값싼 탁아소와 후한 연금이 지급되었다. 지만스키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쏘련의 사회구조가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의 이상에 어울리지 않았을 수도 있으나, 쏘련의 사회구조는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의 사회구조와 질적으로 달랐을 뿐만 아니라 더 평등했다.”7)
쏘련의 붕괴에서 상실한 것을 평가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이 사건이 얼마나 충격적인가 하는 것은 부분적으로 그 사건의 원인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달려있다. 1990년대 초의 거대한 반공산주의 축전에서 승리한 우파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고들을 수백만 인민들의 의식에 주입했다: 계획경제체제로서의 쏘련 사회주의는 작동되지 않았고 풍요로움을 가져다주지 않았다. 그것은 우연적인 것이었고, 폭력에 의해 탄생되어 강압정치에 의해 유지된 실험이며, 인간의 본성에 반하고 민주주의와는 양립할 수 없는 탈선이기 때문이다. 노동계급이 지배하는 사회는 환상이기에 쏘련는 종말을 고했다; 자본주의 이후의 다른 체제는 없다.
좌파에 속한 일부 사람, 일반적으로 사회민주주의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은 비록 우파에 속한 사람들만큼 극단적이진 않더라도 유사한 결론을 내린다. 쏘련 사회주의가 몇 가지 근본적이고 고칠 수 없는 방법에서 결함이 있고 그 결함은 근원적으로 민주주의가 결여되고 경제가 과도하게 중앙 집중화된 “체제”라고 믿었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미래를 위한 사회주의는 이제 끝장났다고 말하지는 않지만 쏘련의 붕괴로 맑스-레닌주의는 권위를 상실했고 미래 사회주의는 쏘련의 형태와는 완전히 다른 기초 위에서 건설돼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그들에게 고르바쵸프의 개혁은 잘못된 것이 아니라 단지 너무 늦은 것이었다.
진정,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주장들이 진실이라면, 맑스-레닌주의 이론과 사회주의, 반자본주의 투쟁의 미래는 맑스주의자들이 1985년 이전에 예상했던 것과는 아주 판이하게 다를 것이다. 붕괴를 주도한 쏘비에뜨 지도자들이 맑스-레닌주의 이론 때문에 실패 했다면, 맑스주의 이론은 대부분 틀렸고 포기해야만 한다. 사회주의를 건설하기 위한 과거의 노력 속에서 미래를 위한 교훈을 찾지도 못할 것이다. 세계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역사가 그들의 편이 아니고 단편적이고 부분적인 개혁에 안주해야 함을 깨달아야 한다. 분명히 이것이 승리한 우파가 모든 사람들이 받아들이기를 원하는 교훈이다.
우리는 쏘비에뜨 붕괴가 의미하는 엄중함에 자극받아 연구에 착수했다. 승리한 우파에 대해 회의적이지만 그들이 이끄는 곳이 어디든 사실이면 따를 각오가 되어 있었다. 우리는 이전의 사회주의 당파가 노동계급의 거대한 패배를 분석해야만 했던데 주의를 기울였다. ≪프랑스 내전≫에서, 맑스는 1871년 빠리 꼬뮌의 패배를 분석했다. 20년 후 프리드리히 엥엘스는 꼬뮌에 관한 맑스 저작의 서문에서 맑스의 분석을 발전시켰다.8)9)
왜 쏘련이 붕괴했는지에 관한 너무나도 중요한 질문 속에서, 다른 질문들이 떠올랐다; 뻬레스뜨로이까(perestroika)가 시작되었을 때 쏘련 사회의 국가는 어떤 국가였던가? 1985년 소련은 과연 위기에 직면했는가? 고르바쵸프의 뻬레스뜨로이까가 역점을 두고 다루고자 했던 문제는 어떤 문제였는가? 고르바쵸프가 택한 개혁 방향에 대한 실행 가능한 대안이 있었는가? 자본주의로 이끄는 개혁에 어떤 세력이 찬성 하고 어떤 세력이 반대 했는가? 일단 고르바쵸프의 개혁이 국가적 경제 재앙과 국가적 분열을 양산하기 시작했을 때, 왜 고르바쵸프는 방향을 바꾸지 않았는가? 혹은 왜 쏘련 공산당의 다른 지도자들은 고르바쵸프를 대신하지 않았는가? 왜 쏘비에뜨 사회주의는 그렇게 연약해 보이는가? 왜 지도자들은 민족 분리주의를 과소평가했는가? 왜 노동계급은 명백하게 사회주의를 방어하는 일을 거의 하지 않았는가? 왜 중국, 북한, 베트남과 꾸바에서 사회주의一적어도 어떤 형태로든一는 생존하는가? 반면에 왜 사회주의가 표면적으로 더 뿌리 깊고 발전한 쏘련은 지속하는데 실패했는가? 쏘비에뜨의 붕괴는 불가피했는가?
이 마지막 질문이 중추적이다. 사회주의의 미래는 쏘련에서 발생한 일이 피할 수 있었느냐 혹은 피할 수 없었느냐에 달려있다. 확실히 우파가 떠들어 대는 불가피성과는 다른 설명을 생각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사고실험을 해보자. 쏘련붕괴가 미국의 핵 공격에 의한 정부의 파괴와 도시 및 산업의 황폐화 때문이라고 가정해보자. 일부 사람은 여전히 냉전은 끝났고 자본주의가 승리했다고 결론내릴 수는 있지만, 이것으로 맑스가 틀렸다는 것을 증명했다거나 고유한 기획으로서의 사회주의가 실행 불가능하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다른 예로, 일부는 쏘련이 “체제의 약점” 보다는 “인간의 실수” 때문에 망쳤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무능한 지도자들과 형편없는 의사 결정으로 인해 본래 건전한 체제가 파멸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앞의 가정에서 맑스주의 이론과 사회주의의 생존능력은 흠결 없이 유지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이 생각은 설명이나 설명의 단초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설명을 피하기 위한 변명일 뿐이다. 한 지인(acquaintance)이, “쏘련 공산주의자들은 망쳤지만, 우리는 더 잘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생각이 타당하려면 다음과 같은 중요한 질문에 답할 필요가 있다; 지도자들을 무능하게 만들고 결정들을 서툴게 만들었던 것은 무엇인가? 왜 체제는 그러한 지도자들을 양산했고 어떻게 그들이 형편없는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었는가? 선택한 방도 중에 실행 가능한 것은 있었는가?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하는가?
쏘련 붕괴의 불가피성에 대한 의문 제기는 위험한 일이다. 영국 역사학자, E. H. 카는 어떤 역사적 사건의 불가피성에 대한 의심은 “역사는 그렇게 되었을지도 모른다는(the might-have beens)” 억측의 실내 (퀴즈)게임(parlor game)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역사학자의 일은 일어난 일을 설명하는 것이지 “입맛에 맞는 그렇게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들을 되는대로 상상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카는 어떤 방침이 다른 방침보다 우선 선택된 이유를 설명하는 한편, 역사학자가 “이용 가능한 대안 방침”에 대해 충분히 논의할 수 있다고 인정했다.10)11)
반(反)사실적 추측은 과거와 유사한 미래의 환경에서 어떻게 다르게 행동할지를 이치에 맞게 제안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사용하기로 한 결정에 대한 역사학자들의 논쟁은 교육받은 사람들이 이 사건을 이해하는 방식을 변화시켰고 미래에 유사한 결정이 내려질 가능성을 줄여주었다. 결국, 역사가 오락거리 그 이상이라면, 과거의 실수를 피하는 것에 관해 우리는 역사를 통해 무엇인가를 배워야만 하고 배울 수 있다.
쏘련 붕괴에 대한 해석은 미래에 대한 싸움을 내포한다. 여러 해석은 21세기에 근로인민이 더 좋은 체제로 자본주의를 대체하기 위해 다시 한 번 “천상을 기습할” 것인지를 결정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근로인민이 노동계급 지배와 집단 소유, 계획 경제가 실패할 수밖에 없고, 오직 “시장 경제”만이 작동하며, 동유럽과 쏘련의 수백만 인민이 사회주의를 이루려고 노력했으나 번영과 자유를 위해 자본주의로 회귀했다고 믿는다면 위험을 감수하고 희생을 무릅쓰지는 않을 것이다. 세계화에 반대하는 급진적인 운동이 성장하고 노동운동이 부활함에 따라, 1990년대의 오랜 경제 호황이 후퇴하고 자본주의의 지속적 죄악一실업과 인종차별주의, 불평등, 환경 파괴, 전쟁一이 더욱 더 심해짐에 따라, 필연적으로 자본주의의 미래에 대해 의문이 표면으로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사회주의를 불가능한 것으로 간주한다면, 청년운동과 노동운동은 협소한 경제적 요구들, 도덕적인 저항, 무정부주의나 허무주의를 넘어서 전진하지 못할 것이다. 사회주의의 지분율은 더 높이 올라가지 못할 것이다.
쏘련이 패배한 의미가 서서히 이해됨에 따라, 쏘련에 관한 공평무사한 담론의 기회는 증가한다. 확실히, 평화롭고 번영하는 냉전 이후 세계에 관한 많은 초기 생각들은 씁쓸한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양극 세계는 미국의 경제력과 군사력에 의해 지배되는 단극 세계로 대체되었다. 지배 이데올로기로서의 반공주의는 세계화주의로 변했다. 세계화주의는 소수의 초국적인 기업들에 의한 세계지배, 정보 기술의 확산, 가장 낮은 비용과 가장 높은 이윤을 찾는 상품과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 등이 막을 수 없는 힘을 대표한다고 주장한다. 약소국가, 민족 독립 운동, 노동 운동, 환경 보호 등 다른 모든 이해는 세계화에 길을 내주어야한다고 주장한다. 자본주의에 대한 실행 가능한 대안인 쏘련이 없어지자, 사회 복지, 복지 국가, 공공 영역, 케인즈주의, “제3의 길” 등을 공격했다. 모든 국가들에서 진보적이고 사회민주적인 정당들은 대담해진 신자유주의 우파의 압박 하에 비틀거렸다. 1991년 이후로, 전 세계의 가난과 불평등은 급속히 증대했다.
또 다른 환상이 무너지면서, 냉전 후 평화 배당금12)
같은 원리로 구쏘련에서 깡패 자본주의에 의해 행해진 비참한 인간의 희생으로 승리주의적 해석은 상처를 입었다. 10년 전 극찬되었던 러시아의 “민주적 변화”와 “활기찬 시장 경제”로의 재탄생은 서글픈 농담거리가 되어버렸다. 1998년 유엔의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구쏘련과 동유럽 국가들에서 1990년대 전 세계에서 그러한 반전(反轉)을 겪은 지역은 없었다.” 가난 속에 살고 있는 인민들은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 스칸디나비아 전체를 합친 인구보다도 많은 숫자인 1억 5천만 이상이 증가했다. 국가의 수입은 전 세계 어디에서도 목격된 가장 사나운 인플레이션에 몇 번 직면하여 “급격하게” 감소했다.13)
≪실패한 십자군(Failed Crusade)≫에서, 역사가 스티븐 F. 코헨(Stephen F. Cohen)은 훨씬 더 나아갔다. 1998년경에 깡패들과 외국인들에 의해 지배된 쏘련 경제는 1990년 초의 규모에 비해 겨우 절반 정도가 되었다. 고기와 낙농을 위한 소, 돼지는 1/4로 줄었다; 임금은 절반 이하로 줄었다. 발진티푸스와 장티푸스, 콜레라, 다른 질병들은 유행병 비율에 도달했다. 수백만 명의 아이들은 영양실조에 고통 받았다. 남자들의 평균 수명은 60세까지 줄어들었는데, 그 수준은 19세기 말 수준이었다. 코헨의 말에 의하면, “국가의 경제적 사회적 붕괴는 너무나도 커서 20세기의 유래가 없는 반근대화의 결과를 초래했다.”14)
이전보다 많은 사람이 쏘련의 경험을 이해하는데 관심을 갖고 분석에 대한 원자료들도 이전보다 더 많이 이용할 수 있다. 뻬레스뜨로이까와 붕괴에 관한 첫 번째 출판은 고르바쵸프 도당들과 반공산주의 노병들의 저작에 의해 지배되었다. 이것들에는 고르바쵸프, 보리스 옐친과 그들의 지지자들의 회고록, 쏘련 주재 미 대사, 잭 매틀록(Jack Matlock)의 회고록, 로이 메드베제프(Roy Medvedev)와 안드레이 사하로프(Andrei Sakharov)와 같은 종종 신뢰할 수 없는 쏘련의 반체제 인사들의 평론, 데이비드 렘닉(David Remnick)과 데이비드 프라이스-존스(David Pryce-Jones)와 같은 서구 저널리스트들의 보고서, 마틴 말리아(Martin Malia)와 리차드 파이프스(Richard Pipes)와 같은 쏘련 역사학자들의 저작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그 이후로, 두 번째 출판의 물결이 나타났다. 이러한 출판에는 제2의 지도자들의 더 확대된 회고록이 포함되었는데, 예고르 리가쵸프(Yegor Ligachev), 군인들과 학자들도 포함되었다. 그것에는 역시 고르바쵸프 시대의 특별한 정세들에 관한 많은 전공 논문들이 포함되었는데, 글라스노스트, 민족주의, 협동조합, 경제정책, 국가 재산의 사유화, 아프리카 의회에 대한 쏘련의 정책,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쏘련의 정책 들이 포함되었다. 모스끄바에 주재했던 미국 공산주의자 저널리스트, 마이크 다비도우(Mike Davidow)는 ≪뻬레스뜨로이까: 부흥과 몰락(Perestroika: Its Rise and Fall)≫을 출판했다: 그리고 맑스주의 경제학자, 바만 아자드(Bahman Azad)는 ≪영웅적 투쟁, 쓰라린 패배: 사회주의국가 쏘련을 해체시킨 요인들(Heroic Struggle Bitter Defeat: Factors Contributing to the Dismantling of the Socialist State in the Soviet Union)≫을 출판했다. 역시 다양한 공산당들, 피델 까스뜨로, 조 슬로보(Joe Slovo), 한스 하인즈 홀츠(Hans Heinz Holz)와 같은 지도자들과 이론가들, 그리고 러시아 공산당은 뻬레스뜨로이까와 붕괴에 관한 성명들을 출판했다. 우리는 우리의 조사에서 이 모든 것들에 관해 다루었다.
말할 필요도 없이 70일 만에 끝난 빠리 꼬뮌의 패배보다 70년 이상 지속되다 끝난 쏘련의 몰락이 사회주의자들에게 더 큰 충격을 주었다. 은 꼬뮌에 관해 다음과 같은 말로 마무리하였다.: “최근, 사회 민주주의 속물들은 다시 한번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말에 대한 건전한 공포에 휩싸여 있다. 선하고 훌륭한 신사 여러분, 당신들은 이 독재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고 싶으신가? 빠리 꼬뮌을 보라. 그것이 바로 프롤레타리아 독재이다.” 이와 같은 공공연한 도전으로 우리의 분석을 끝낼 수 없을지 모른다. 그래도 쏘련의 업적을 인정하는 것, 쏘련에 대해 적대적이었던 외부 세력의 규모와 결말을 추정하는 것, 쏘련 사회주의 내부에서의 경쟁적인 정치 견해들을 평가하는 것과 정책들에 관한 판단을 위험을 무릅쓰고 해보는 것은 가능하다. 그리고 이 책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을 들여 완전한 분석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미래의 좌파 사람들은 과거의 포로가 아니라고 확신하는 사회주의를 위해 투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 그들은 꼬뮌에 관한 다음과 같은 맑스의 말을 역시 쏘련에 대해서도 메아리치게 할 수 있다. “그들은 새로운 사회의 영광스러운 선구자로서 영원히 찬양될 것이다.”15)
다음에 이어지는 내용에서, 우리는 쏘련의 붕괴가 1986년 이후 미하일 고르바쵸프가 추구했던 정책 때문에 붕괴했다고 주장할 것이다. 이 정책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도 아니고, 현존하는 문제들을 다룰 수 있는 유일한 정책도 아니었다. 이 정책은 어떻게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할 것인지에 대한 맑스주의 자체만큼 오래된 공산주의 운동 내부의 논쟁에 근원을 두고 있다. 1985년 전후 고르바쵸프 정책의 계보를 설명하기 위해, 우리는 2장에서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쏘련의 논쟁에서 두 개의 주요한 경향이나 추세에 대해 논의 할 것이다. 어떤 주어진 시기에 속하는 특별한 환경 하에서, 어떻게 공산주의자들이 사회주의를 건설해야 하는가? 이 문제를 중심으로 논쟁이 진행되었다. 좌파는 계급투쟁, 노동계급과 공산당 권력의 지배를 촉진시키는 것을 선호했지만, 우파는 후퇴나 타협 그리고 다양한 자본주의적인 사상을 사회주의에 혼합시키는 것을 선호했다. 이러한 점에서, “좌파”와 “우파”는 선과 악에 대한 동의어는 아니었다. 오히려 정책의 정확성과 적절성은 그 정책이 주어진 상황 하에서 사회주의의 단기간이나 장기간의 이익을 가장 잘 나타내느냐 아니냐와 관계가 있었다. 그러므로 쏘련 정치사는 복잡한 문제이다. 한편으로, 사회주의를 위한 계급투쟁을 두려움 없이 추구했던 블라지미르 레닌도 브레스뜨-리또프스끄 조약(the Tréaty of Brést-Litóvsk)16)
3장에서는 고르바쵸프의 정책 변화의 근본적인 원인과 그 물질적 기초에 대해 논의할 것이다. 고르바쵸프의 정책 변화 원인은 대부분의 맑스주의자들과 비맑스주의자들이 간과했던 현상의 발전, 즉 사적 기업이라는 “2차 경제”가 사회주의 안에서 발전한 것과 이와 함께 새로운 쁘띠부르주아 계급의 성장, 새로운 수준에 달한 당의 부패이다. 2차 경제의 성장은 인민들의 상승하는 기대를 충족시키는데 있어 사회화된 부분인 “1차 경제”가 지닌 문제점의 반영이다. 또한 불법 경제 활동에 대한 법을 집행하는 당국의 모호함과 사적 경제 활동의 부식 효과를 인식하는데 있어 당의 실패를 반영했다.
4장에서, 우리는 1980년대 중반 쏘련 사회를 괴롭혔던 경제적, 정치적, 내부적 문제들과 개혁을 위한 탐색을 불러일으켰던 문제들에 관해 설명할 것이다. 또한 고르바쵸프 초기 개혁의 몇 가지 유망한 점과 문제가 되는 점을 자세히 다룰 것이다. 5장에서, 1987년과 1988년 고르바쵸프 정책의 변화와 그 변화의 유해한 결과에 관해 설명할 것이다. 6장에서, 쏘련 체제의 와해에 관해 설명할 것이다. 7장에서, 쏘련 붕괴의 중요성에 대해 논의하고 결론을 내릴 것이다. 맺음말에서, 다른 견해를 비판할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1) 역주: the ordeal은 옛날 튜턴 민족 사이에 행해진 재판으로 시련을 견딘 자를 무죄로 하였다.
2) Anthony D’Agostino, Gorbachev’s Revolution(고르바쵸프의 혁명) (New York: New York University Press, 1998), 9.
3) Alexander Dallin, “The Causes of the Collapse of the Soviet Union,” Post-Soviet Affairs(쏘련 붕괴의 요인, 쏘련 이후의 사건들), Vol. 8, No. 4 (1992), 279.
4) “Fidel Castro quoted by Andrew Murray”(앤드류 머레이의 피델 까스뜨로 인용), Flashpoint: World War III (London: Pluto Press, 1996), 38.
5) Victor and Ellen Perlo(빅터와 엘렌 페를로), Dynamic Stability: The Soviet Economy Today(동적인 안정: 오늘날의 쏘련 경제), (Moscow: Pr-ogress Publishers, 1980), passim(여기저기에서); USSR: 100 Questions and Answers(쏘련: 100가지 질문과 답), (Moscow: Novosti, 1977), 60, 63; Albert Szymanski(앨버트 지만스키), Class Structure: A Critical Perspective(계급구조: 비판적 관점), (New York: Praeger, 1983), 590.
6) Perlo, 144; USSR: 100 Questions and Answers, 65-66, 71.
7) Szymanski, 586-592.
8) 칼 맑스(Karl Marx), “프랑스 내전”과 프리드리히 엥엘스, “서문”, ≪칼 맑스와 프리드리히 엥엘스 선집≫ 제2권(Moscow: Foreign Languages Pu-blishing House, 1962), 473-545.
9) Edward Boorstein, Allende’s Chile(아옌데의 칠레) (New York: International Publishers, 1977).
10) Edward Hallett Carr(에드워드 할렛 카), What Is History?(역사란 무엇인가?), (New York: Vintage Books, 1967), 125-127.
11) Eric Hobsbawm, On History(역사에 관하여), (New York: The New Press,
1997), 243-249.
12) 역주: 평화 배당금은 절감된 국방비가 복지 교육 등에 할당될 것으로 기대되는 예산을 말한다.
13) 오마르 노만(Omar Noman), ed. Poverty in Transition(전이되고 있는 가난) (New York: United Nations Development Program, 1998), 6.
14) Stephen Cohen, Failed Crusade, (New York and London: W. W. Nor-ton, 2000), 40-42.
15) Marx and Engels, 485, 542.
16) 역주: 1918년 3월 동맹국 측과 러시아 사이에 체결된 단독 강화 조약.
노동사회과학연구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