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머리)
제주에서 개최하는 마라톤대회에 세번째 참가하게 되었다.
첫째는 2013년4월 제주MBC국제평화마라톤(한림운동장-차귀도앞),두번째는 2015년10월
아름다운제주국제마라톤(김녕 성세기 종합운동장-종달리 토끼섬)이고 세번째가 이번에
참가하는 조천읍 종합운동장-김녕 대풍수산 간의 제주감귤국제마라톤이다.
이대회는 작년까지 서귀포 월드컵운동장에서 중문방향의 코스였으나 금년에
이곳 조천으로 바뀌었다.
(2013.3.31 제주MBC국제평화마라톤)
(2015.10.11.제주국제평화마라톤)
朝天의 역사와 애환.
1.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거인이던 설망대 할망은 어느 날,제주도 섬사람들에게
명주옷을 해주면 대신 육지까지 이어주는 다리를 놓아 주겠다고 했다.
명주 100동을 모아야 했는데,섬사람들은 그만 99동까지 밖에 모으지를 못했다.
할머니가 다리를 놓던 손을 멈추는 바람에 결국 조천읍 조천리와 신촌리 바닷가에
놓여지던 바위섬들이 중단되고 제주는 섬이 되고 말았다.
2.기원전 3세기 불로장생의 선약을 구해 오도록 진시황제의 명을 받은 서불선단이
중국을 떠나 맨처음 도착한 곳이 이포구로 알려져 있다.다음날 아침 서불은
이곳에서 천기를 보고 조천이라는 글을 바위에 새겨 놓았다고 한다.
이바위는 고려 공민왕이 조천관 건립공사때 매몰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오늘의 출발지 조천운동장의 지척거리에는 3.1독립운동기념비와 기념관이 있다.
제주로 들어오고 나가는 모든 물류와 인적교류는 조천항을 통하여
제주관아가 종착지였다.당시 제주 해녀인구의 규모가 상당하여 자연스럽게
이곳의 해녀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이 싹트게 되었고 당연히 모든 희생은 조천에
집중된다.
그러한 역사적 희생의 소용돌이는 결국 제주 4.3사태까지 이어진다.
조촌읍 북촌리를 포함한 이지역은 4.3사태 때 가장 피해를 많이 본
주민들이 집단적으로 거주하던 곳이었고 마을이 흔적도 없이 통째로 없어 진곳도
부지기수였다.
희생된 대다수의 주민들은 공산주의와 민주주의도 구분하지 못한채 피아간에 우연한 충돌이
발단이 되어 개돼지처럼 죽고 산하에 이름도 없이 아무렇게나 뭍혔다.
살아남은 민초들은 잡초처럼 질긴 생명력으로 오늘의 제주에서 새로운 삶을 이어가고 있다.
(본론)
대회참가의 서론이 너무 길었다.
조천은 가을햇살처럼 가늘고 애잔하게 다가오는 곳이기에 어물쩍 지나칠 수가 없는 곳이다.
춘마와 중마의 메이저대회가 끝나고 뭔가가 허전하고 계절의 아쉬움이 가져오는
쌉싸름한 그리움이 온몸에 전해질 때 우리 몇사람은 제주도 섬에서 뛸멍 놀멍 쉴멍으로
천천히 그답을 찾기로 한다.
답을 찾기 위하여 박종무님(이하 존칭생략),윤상현,손문희,내가 풀코스에~
하프석권을 노리는 이홍국감독은 전날 가족과 함께 와서 대회장에서 합류하고
하프를 뛰는 최영순님과 그친구는 대회장에 짠하고 나타나서 뒤풀이 식사를 함께
한후 바람처럼 다시 휙 사라졌다.
최영순님은 도보여행클럽 분들과 제주도를 온김에 마라톤까지 함께 한다능~
제주는 언제 가는 게 제일 좋을까요?
그럼 트래킹은? 마라톤은? 여행은요?
나의 대답은 미리 정해져있다.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가든 사시사철 아무 때나,태풍이 불어도 비가 와도
폭설이 내려도 좋고요"라고.
그렇지만 가장 모범답안은 "4~5월 아니면 10~11월이 날씨도 좋고
꽃도 예쁘지요"라고 말 할 수있다.
오늘 이곳 날씨는 흐리다 저녁에 비,13/19도,1~4ms의 바람이다.
어제 저녁부터 잔뜩 찌푸린채 흐리던 날씨가 오늘 아침까지 계속되더니
운동장에 도착하면서 어느정도 개인다.일행 중에 조상님이 덕을 많이
쌓은 분이 계신가 보다.
운동장에 대회출발 9시30분보다 한참전인 8시에 도착하니 많은 경품들이 놓여있다
경품은 애시당초 나와는 인연이 없고 각종 이벤트 상품에 눈독을 들인다.
협찬도 많고 대놓고 주기에는 거시기하여 돌리는 뺑뺑이가 계속 1등에 당첨되어
썬크림을 4개나 득템하고 홍삼음료에 건강죽과 여러가지 음료를 먹고 마시고
즐긴다.
외지에서 이대회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줄 5kg짜리 귤 상자도 운동장 한켠에 쌓여있다.
이른 아침에 식당이 마땅치 않아 조금 부실하게 빵으로 때운 아침식사를 온전히 보충한다.
오잉~!서울에서 온 걸그룹이네.
손문희님이 누구라고 하는데 엑소,BTS등 몇명을 빼고는 이쪽 분야에 문외한이라서
인증사진으로 숙제를 남긴다.
스타트 라인에서 결의를 다진다.
4시간10분 전후의 목표기록에 대한 주로 페이스 전략은 다음과 같다.
5K구간 까지는 박종무님과 보조를 맞추면서 가다가 5~20K 구간은 앞서 간
윤고문과 문희님(이하 윤손조)과의 간격을 최대한 좁히고, 20~25K 구간에서
윤손조와 조우한 다음 허리우드 액션으로 한바탕 두사람의 페이스리듬을 흐트려
놓은 후에 30K지점에서 손문희님을 먼저 떼어 놓는다.
30~40K까지 윤고문과 페이스를 주고 받다가 41.5K에서 남은 에너지를 쏱아부어
춘마와 중마에서 두사람에게 참패한 레이스를 한판에 설욕하는 것이다.
나 지금 소설 쓰고있나?ㅋ ㅋ ㅋ
윤고문은 지금까지 내게는 뛰어 넘을 수없는 만리장성 같은 존재이고 손문희님는
수마클에서 만난 이래 때로는 동반자로 때로는 라이벌로 그때그때 다르다.
조천은 제주의 북동쪽에 자리한 지리적 특성으로 직접적인 태풍을 어느정도 피할 수 있어
선사시대 부터 집단으로 거주한 증거가 패총으로 남아있고 해녀들의 공동 작업장과
바람을 피하는 곳,씻는 곳등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이지역은 제주의 노천역사관이라고 할 수있다.
제주의 다른 대회와는 다르게 거의 모든 주로가 바닷가에 접한 해안로에 있다.
10k지점의 함덕해수욕장을 적정 페이스인 1시간에 통과한다.
놀라운 악연이 시작된다.
두사람이 여기서 갑자기 화장실을 해결하는 바람에 30k 지점에서 만나야 할
사람들을 20k나 땡겨서 만나게 되었다.
실제로 두사람을 목격한 것은 8k지점인데 둘의 페이스를 흐트려 놓기 위해서
페이스를 확 올렸다가 여기에서 헐리우드 액션의 연기력을 발휘하여 추월한 다음,
동시에 숨을 몰아 쉬는 척 하면서 데크계단에 자빠지고 둘이 먼저 가라고 손을 흔들었다.
늑대와 여우같은 두사람은 나의 이러한 전략을 간파했는지 좀처럼 페이스를
올리지 않는다.그래도 절반은 성공하여 15k구간은 28분에 통과했지만
거꾸로 내가 두사람에게 말려들어 오버페이스가 되었다.
결국 반환점을 낀 20k와 25k 구간에서는 오히려 내가 헤메면서 각각 33분씩을
소모한다.이구간에서 나는 낙동강의 오리알이 되어 버리고 두사람은 저멀리
시야에서 가물가물한다.
잔머리를 먼저 굴린 내가 오히려 화도 나고 어이가 없는 가운데서
투지를 살린다.30k 구간은 29분36초로 소화하면서 윤손조를 따라 잡는다.
그러나 오늘은 여기까지가 나의 한계다.나의 작전대로 손문희님을 따돌리는
데는 성공하는듯 했지만 불과 100여m 뒤를 바짝 붙어서 쉬지않고 쫒아오고 있고,
앞서가는 윤고문을 허벌나게 쫒아 가지만 그만큼 체력은 급속히 방전되고있다.
하프에 참가하여 이미 오래전에 들어온 이홍국감독은 온가족이 승용차로 주로에
다시 나와 우리를 응원하더니 어느 순간 사라지면서 피니시에서 기다리겠다고
하며 가버린다.
35k 이후에는 이븐페이스도 쉽지 않아서 윤손조는 원래대로 합쳐져서 앞에서
뛰어가고 그뒤를 내가 죽을뚱 살뚱 쫒아가는 형상이 되어 버렸다.
작전상 대반전을 꾀했던 41.5k지점에서는 오히려 윤손조가 측은지심을
발휘하여 내가 합류할 때까지 달리던 걸음을 멈추고 기다려 준다.
두사람에게 쪽 팔리지만 그래도 당당한 모습으로 세사람이 동시에 피니시 라인을 밟는다.
들어오니 이감독과 와이프가 수원에서부터 가지고 온 미역국과 파전 그리고
막걸리를 한상 가득 차려놓고 맞이 해준다.
하프 우승의 자랑스러운 트로피와 함께~
우리 풀코스조는 손문희님의 연대별 우승으로 자존감을 세워준다.
대회 끝나고 뒷풀이는 박종무님의 후배(우측 앞에서 두번째)가 소개하는 횟집에 자리를 잡는다.
가뭄으로 바짝 마른 논에 물들어 가듯이 쏘맥을 수없이 목구멍에 들어 붓는다.
수원에서 하든 짓이-여기서는 젊잖게 규칙-제주도에서 바뀌 수는 없다.
2차는 육회를 포장하여 숙소로 옮겨 청탁이나 도수불문으로 늦은 시간까지 잔들이
부딪치며 오고간다. 내일이 없는 사람들 처럼.
(날머리)
습기를 머금은 바람이 조천을 가득 채우고 있던 날,
어떤 길은 풍광보다는
그길을 함께 뛰었던 사람으로 기억에 남는다.
이번에 제주감귤마라톤에 참가한 우리들은 주로에서 무의미하지만 다정한
이야기들을 도란도란 나누며 많은 시간을 함께 뛰었다.
행복한 소통의 길이었고 시간이었다.
바닷가에서 술을 마시면 잘 취하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다.
경험적으로 분명히 맞는 것 같다.
어젯밤 박종무님의 후배가 제공해준 숙소에서 서로가 씩둑꺽둑
받아차기로 늦은 밤을 패가며 마셨는대도 아침에 눈을 뜨니
정신도 말짱하고 몸도 가볍다.
급히 행장을 챙겨 추자도행 쾌속선에 오르니 은빛바다에 아름다운
비단무늬를 수 놓는다.
추자도 올레길에서 다시 만나요~
(투비 컨티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