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산(億山)의 연봉들이 좌절우곡(左折右曲)하면서 구만산이라는 험한 준령을 솟게하고 다시 남으로 뻗어 고수봉, 꼬불산 등으로 각양의 모습을 자랑하면서 마을 뒤 중천까지 솟고 있다. 경사가 급한 계곡변의 마을이다. 동창천이 홍수때마다 마을로 잠식해 들어오고 마을 뒤는 높은산이라 이 사이의 좁은 입지에서도 수 백년을 잘 견디어 온 마을이다. 산과 계곡, 제방 없는 하천, 자연 그대로의 고산(高山) 밑의 계천변인 이런 곳에 어떻게 택리 하였을까 의문시 된다. 1600년 중엽에 철성인 이 민(李珉)공이 마을의 터전을 잡았다 하나 장연사(長淵寺)지 등으로 미루어 보아 이 공 이전에도 마을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장수곡(長水谷)에는 지성 반씨(址城潘氏)가 동기를 잡았고 고방(考方)에는 전주 이씨가 입촌했다 한다.철성인 이 공이 마을이 번창하기를 바라는 마음 즉 후손의 발복(發福)을 바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철성인 이씨들이 택리한 동명에는 한결같이 후손을 위한 소망에서 명(明), 길(吉), 호자(好字)를 쓰고 있다. 그런 탓인지 위선심(爲先心)이 강하고 일가간의 우애 우의는 타성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이다. 다행스럽고도 복된 일이라 할 수 있다.
장수곡(長水谷), 장수곡(長壽谷), 장연(長淵)
계곡이 깊고 길다는데서 유래되어 장수곡(長水谷)이 되었고 이 골 안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장수하므로 장수곡(長壽谷) 또는 절이 있었다고 절골이라고 한다. 장연(長淵)은 동창천이 마을 모퉁이인 산밑을 감아 돌면서 생긴 소(沼)가 깊고 넓어 못 같다하여 장연이라고 이름을 붙였다하나 확실치는 않다.
고암(高岩),고방(考方)
마을이 높은 곳에 있고 그 곳에 큰 바위가 있다고 고암이라 했는데 음이 변하여 부르기 쉽게 고방(考方)으로 되었다는 설과 옛날 이곳에 피난한 사람이 여기가 어디냐고 물었더니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고 고바위(거바위)라고 대답하여 이름이 되었다는 것이다.
계당(桂塘)
당목인 계수나무와 못(地)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첫댓글 장연동에 대해서 상세하게 올려주어서 고맙습니다.
장수골은 내가 태어나고 자라고 학교다닌 소중한 마을입니다.
학교다닐때 절골에 소먹이러가고 절골옆 칠밭골,독지골,장꼬지등 내고향 장수골이 그립습니다.
더구나 장수골엔 장연사가 있었으니.....
지금도 탑,당간지주,장연사 주춧돌등 많은 장연사의 유물들이 제실에 보관되어있습니다.
현재 다른곳에 있는 미륵부처님도 빨리 장수골로 갔다놓아야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