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는 아그라포트를 관람하고 오후에는 시크라 관람을 계획한 날.
타지마할에서 시크릿 사원으로 가는 길에서 교통사고가 나서 힘들었던 날이다.
인도여행 3일째인데 마치 몇 달을 인도에 살아온 사람처럼 익숙해지기 시작한다.
복잡복잡한 인도가 익숙한 동네 같다. 사람 사는 냄새가 물신 풍겨나는 인도 . .
누가 인도여행이 재미없다고 했던가? 너무 재미가 있던데. . .
지난밤에도 1시가 넘어 잠이 들었는데 오전관광이 타지마할이다. 숙소가 타지마할 근처라서
오토릭샤를 타고 타지마할로 먼저 가서 근처의 맛있다는 식당으로 갔다.
Jonis place라는 식당인데 한국음식들을 흉내내서 파는 음식들이 많았다.
음식은 맛있다는 소문 그대로 먹을만했다.
감자고로케와 수제비도 먹고, 둥근 모양의 빵도 먹었다.
바나나 라시도 맛이 있었다. 낯선 음식은 잘 못 먹는 내가 먹을만하다고 느낄 정도로 괜찮았다.
누가 인도음식이 이상하다고 했던가? 이거 며칠동안 살 쪄가는 것 아닌가 모르겠다.
밥을 먹고 나와 드디어 타지말할로..
타지마할의 동쪽 게이트로 들어가게 되었다. 입장료가 상당히 비싼 편이었다.
한 사람당 입장료 500루피에 사진기 소지에 250루피인데 현지인들은 입장료가 20루피란다.
돈 많은 외국인들의 주머니를 털어 문화재를 유지하고자 하는 마음들에. .
그래. 비싼 만큼 많이 즐기자.
타지마할은 과연 인도 제일의 관광지로 알려질만한 곳이었다.
안개로 하늘이 다소 어둡기는 했으나 타지마할의 흰 빛은 바래지 않았다.
모두들 사진을 찍느라 바빴다. 나도 이리저리 포즈를 취해본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니 어떤 인도인이 아들에게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하고 있었다.
아들이 사진기를 빌려주자 가장 사진찍기 좋은 곳만 데려다니면서 이곳 저곳에 포즈를 취하게 하면서 사진을 찍어주었다. 나도 같이 따라다니며 같이 사진을 찍었다.
아들 말로는 그 인도인은 이곳의 직원인 듯 하다고 했다.
우리는 그 친절한 인도인에게 고마우면서도 약간은 불안한 생각도 들었다.
이 인도인이 우리의 사진 찍는 장소를 선정해준 그 인도인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곳저곳을 다니다가 어느정도 다 찍었다 싶자 이 사람이 갑자기 돈을 요구했다.
자기가 갑자기 와서 아들의 사진기로 찍어줘 놓고는 돈을 요구하자 고마웠던 마음이 갑자기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찍어준 정성이 있어서 10루피를 주려고 했다.
그런데 그 사람은 “Big money"라고 하면서 더 큰돈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이번엔 100루피를 꺼낸다. 여전히 불만족스러워 한다.
요구하는 금액은 무려 500루피였다.
하지만 아들과 내가 강하게 항의하자, 갑자기 "OK, that's OK" 라더니 기분 상한 표정으로 사라져 버렸다.
어차피 받지도 못할 것을 뭘 그리 따져가지고 기껏 일하고도
고맙다는 생각도 가지지 못하게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돈을 주려고 해서 자존심이라도 상한 건가.
타지마할의 서쪽 게이트로 나오니 말 한 마리가 끄는 마차들이 줄지어 있었다.
말 하나에 일행 7명이 같이 타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로 했다.
말 한 마리가 주인 한 명을 포함해 8명을 모두 태우고 가니, 많이 힘들어 보이긴 했다.
다음 장소는 아그라 포트라는 곳이다.
이곳은 타지마할을 지은 황제가 아들에 의해 쫓겨나 보내진 후,
결국 아사했던 일종의 감옥이라고 한다.
안에 들어가니 타지마할 만큼 멋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나름대로 사진을 찍기에 좋다고 생각되는 장소가 있어,
일행 모두 그곳에서 사진을 많이 찍었다.
중간중간 사귀게 된 인도분과 사진도 찍었다.
얼굴이 하얀 사람들이 높은 계급의 사람들이다.
다음 장소로 가기 전에 가이드 리보가 기다리고 있을 숙소로 가기위해 오토 릭샤를 구해 탔다.
중간에 오토 릭샤가 이상한 방향으로 가는 것을 눈치 채고 작은 실갱이가 있었다.
도대체 약속을 잘 못 지키는 인도인들이 조금은 짜증나기도 했다.
그리고 숙소에 도착하자 가이드 씨가 지프를 대절해 놓고 기다리고 있어,
곧 다음 목적지인 파테푸르 시크릿을 향해 출발했다.
한참을 가다가 왠지 모르게 눈을 떴을 때 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쿵 하는 충격음이 두 번 들리고 내가 본 첫 번째 광경은
내 아들의 몸 위로 떨어지는 유리 파편 조각들이었다.
우리가 타고 가던 지프와 자전거를 타던 소년(남자) 둘이 충돌을 한 것이다.
아들이 있던 쪽의 유리가 산산조각이 났지만 다행히 아들은 아무런 상처도 없는 듯 했다.
그리고 나서 약간 안도하며 바라본 바깥 쪽에는 피가 많이 나는 한 남자가 쓰러져 있었다.
그 곳은 아그라와 파테푸르 시크리 사이의 중간 지점인 시골이었다.
사고가 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동네의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운전자가 내리고 우리도 내렸다.
우리는 우선 우리의 짐을 내리고 그 쓰러진 사람을 병원으로 데리고 가라고 했다.
자전거를 타고 있던 사람은 두 사람이었는데 한 사람은 괜찮은 듯 싶었다.
일어나더니 쓰러진 사람을 일으켰다.
차가 자전거의 뒷부분과 충돌하며 자동차에 머리를 부딪치고
앞유리를 모두 깨고 쓰러져 있었던 것이다.
주위에 모여든 인도인들이 남자의 몸을 거칠게 들어
우리가 타고 왔던 차량에 실었고, 한참 뒤에 병원에 실려갔다.
그리고 우리는 바로 그 장소에 남겨졌다.
시골의 한 마을에서 고립되어 생면부지의 검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진 기분은 참으로 묘한 것이었다.
핸드폰도 없고, 전화도 없는 상태의 시골마을에서의 시간..
초조하게 시간이 흘렀다.
겨우 지나가는 군인 아저씨의 도움을 받아 차를 보내달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
한 3시간만에 연락이 되어 온 차는 . . 아니. . .
그 사고난 차가 아닌가? 창문은 깨지고, 피는 엉기 성기 묻은. . .
바로 그 차가 우리를 데리러 온 것이다.
우리는 항의를 하는데 그 사람은 'No, Problem No Problem'하며서 어깨를 들어올렸다.
결국 그 차는 가고 다른 차가 왔다.
그 기다리는 동안의 3시간정도의 시간.
동네의 사람들은 지나가다 멈추고 지나가다 멈추면서 우리를 보았다.
우리는 완전히 동물원의 원숭이처럼 구경거리가 되었다.
조급한 마음을 없애자 '여기는 인도다. 인도.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우리 일행중에는 아무도 다친 사람 없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오후에는 자이푸르로 행하는 기차를 탄다.
기차로 하는 여행은 현지인들과 친해질 수 있고 쉬고 싶을 때는
슬리핑칸에서 잘 수도 있어 좋은 것 같다.
마음이 풀어지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