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과 기중기
청나라 강희재(康熙宰)는 중국 고금의 방대한 문헌들을 모아 활용하기 좋게금 6000여 항목으로 분류해 재구성한 세계사상 최대의 유서(類書)인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 1만1000여권을 편찬 중국에 르네쌍스를 일으켰다.
조선 정조(正租)대왕은 이 고금도서집성 한 질을 사오게 하여 우리 문화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정조는 서양 축성법(築城法)이 분류된 그 중 한 책을 정약용에게 주어 현재 수원성인 '화성 성역'을 쌓게 하였으며 다산 정약용은 그 책을 활용하여 10년 공사로 예정된 수원성 축성을 3년 안에 완공 할수 있었던 것이다. 정조18년 서기 1794년 2월 28일 기공하여 정조 20년 서기1796년 9월 10일로 2년 7개월 만에 완공하였다.
정조대왕이 정성을 다하여 축성한 수원성이 세계 문화 유산에 올라가는 쾌거를 이룬것이다.
정약용은 수원성 축조시 인건비를 절약하기 위하여 현재의 도급방식과 비슷한 작업량에 따른 임금 지급방식을 채택하였으며, 작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하여 새로운 첨단 장비를 고안 하였는데 돌을 들어 올리는 거중기(擧重機)와, 자재운반에 사용하는 녹로(녹로)를 제작하여 활용하였다.
남양주의 다산 정약용 유적지에는 거중기(擧重機)의 모형을 볼 수 있다.
1792년(정조16) 정약용이 중국의 '고금도서집성'중에서 독일인 슈레크(Schreck J)가 1627년 저술한 기기도설(寄器圖設)의 그림을 보고 운반 도구로 밧줄과 도르레를 이용하여 물건을 들어올리는 기계를 고안한 것이 거중기(擧重機)이며 현재 기중기(起重機;crane)의 시초이다.
1796년에는 녹로(녹로)를 만들어 화성 성곽을 쌓는데 사용하였다.
이 거중기가 우리 나라 최초의 기중기(起重機)로 200여년 전에 제작하여 토목 공사에 활용 하였다는 것은 획기적인 사실이다. 이 거중기를 개량 발전시켜 현재의 기중기로 우리 나라에서 승화시키지 못한 것은 우리 후손들이 반성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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