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금초를 다녀와서
2016년 8월 26일 일요일 맑고 흐림
금년 여름은 유난히도 더웠다. 예년 같으면 제아무리 더위가 기승을 부리다가도 입추가 지나고
말복이 되면 "언제 그랬더냐?"는 듯
하늘이 높고 햇바람이 났다. 헌데 올해는 말복이 지나고 처서가 됐는데도, 더위가 가시질 않아 열대야로
밤잠을 설칠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 거기다 전기료 대 폭탄으로 가정마다 난리가 났고, 또한 정치권에선 전기료 누진세 문제가 하나의 쟁점이
됐다. 이처럼 올
여름은 전국민이 폭염에 시달렸다.
우리 문중에서도 금초일이 가까워 지자 수구러들지 않는 더위를 보면서 걱정이
많았다. "이렇게 더우면 어떻게 금초를 하지?" 너도 나도 한마디씩 했다.
오래 전부터 우리 문중에서는 처서가 지난 뒤 금초를
하기로 하고 음력 7월26일을 '대동금초일'로 잡고 년 중 행사로 해왔다. 금초일을 처서 이후로 잡은 것은, 풀은 처서까지는 자라지만 처서가
지나서는 자라지 못한다는 자연섭리에 따른 것이다. 선조님들의 지혜다.현 회장( 장)님이 이 음력 일자(7월26일) 자를 고집하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허나 음력 일자를 고수하다 보니 참여 인원이 적고, 또한 참여한다 하더라도 거의 노인일 뿐 젊은 사람들의 참여율이 적어 작업에
능률이 떨어지는 폐단이 있다고 날짜를 '처서 뒤 첫 일요일'로 변경하자는 사람들의 의견도 있다.
헌데, 이번 금초일은 공교롭게도
일요일이었다. 또한 그렇게 꺾일 줄 모르던 폭염도 금초 이틀 전날 비가 오더니 갑자기 기온이 떨어
지면서 전형적 가을 날씨가 됐다.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우리 문중의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일찍 아침을 먹고 방화중학교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대부 내외가 기다리고
있었다. 5분전 8시다. 대부의 차로 행주대교를 넘어
자유로를 타고 곧장 달렸다. 뭉게 구름이 저멀리 강건너 산봉우리 위에서 곡예를 한다. 백학
저수지를 오른 쪽으로 끼고 광동 고개를
넘어 새능으로 들어가니 이미 회장님을 비롯해 많은 종원들이 와 계셨다.
황산공 문중 종원은
크게 황산공 직계(弘자 基자)와 방계(昌자 基자), 그리고 죽당공후손으로 이루워졌다. 그런데 창자 기자 후손들은일찍이 경상도 성주로 내려가
참여하지 않고 오직 죽당 후손만 참여하여 결국 화자악자손(새능)과 동자악자(잣나무골)손만으로 구성됐다. 헌데 일요일이어서 그런지 그동안 보이지
않던 젊은이들의 모습이 많이 보였다.
금초는 들어오는 입구 오른 쪽 언덕 청도공 묘소를 시작으로 황산공, 그리고 산넘어 숙(璹),
아래 경씨할머니, 그리고 다시 내려와 사당뒤 조씨 할머니, 도정공 할아버지, 이씨할머니, 홍자기자 할아버지, 화자악자할아버지 순으로했다. 또
일부는 새산수 뿌리로 내려가 척자 할아버지와 사자현자 할아버지 산소를 깎았다. 이렇게 금초는 12시가 채 안돼 끝났다.
어렸을 때
낫을 들고 금초하던 모습과는 그 정경이 사뭇 달랐다. 기계를 멘 젊은이들의 모습이 름름했고, 제초기의 기계소리가 우렁찼다. 허나 언제까지 이렇게 할 것인가에 대해선 약간 고개가 갸웃둥해졌다.
금초가 다 끝나고 내려 오는 길에 철원이, 우석이 등 몇몇 사람들은
도정공할아버지 묘소에 이르러 회장님으로 부터 도정공 할아버지와 그 앞 한양조씨 할머니 묘소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도정공 할아버지 앞 묘는
한양조씨 할머니 산소로 홍자 기자 할아버지 배(配)가 되시는 분이다. 회장님의 설명에 따르면 그 할머니의 친정 아버지가 영의정을 지내셔서 권세가
높았고, 그 영향으로 시동생 낙천와공(樂天窩公; 昌基)이 악단장을 하였다 했으나 그 사실 여부는 문헌상 밝혀낼 수 없다. 그리고 조씨할머니의
친정아버지는 족보에 '父判官國俊'이라 표기 돼 있어 아버지의 벼슬이 판관임을 알 수 있다. '判官'은 종5품 벼슬로 영의정과는 거리가 멀다.
조씨할머니는 도정공 할아버지의 고손부가 된다. 아무리 친정이 권력이 있었더라도 고손자 며누리 상소를 고조할아버지 산소 바로 앞에 쓸 수
있었을까? 거기엔 무슨 사연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했다. 도정공 할아버지 원비석은 사라호 태풍(?) 때 쓰러져 파손되어 그뒤 세운 비석만
있고 장명등과 문인석 또한 도적 맞아 그뒤 세룬 것만있다. 다만 조씨할머니의 상석과 밭침대는 그대로 보존되어 당시의 석공예술을 살펴 볼 수 있는
좋은 사료가 될 것 같다.
금초는 단순히 풀만 깎는 작업이 아니라 이처럼
현장을 통해 선조님들의 행장을 살펴 볼 수 있는 산 교육장이 될 수도 있다.
재실 제수실에선 여자들이 점심 준비에 바쁘다. 그
옛날 아주머니들 모습은 안 보이고 낮선 젊은이들의 모습만 보인다. 그러고 보니
세월이 많이 흘렀다.
여러 사람의 밥을 하느라 그런지 밥이
설었다. 그래도 어떻게 하겠는가! 모처럼 일가 친척들이 뫃여 먹는 밥이니 좀 선들 어떠리.삼삼오오 상머리리에 둘러 앉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술잔을 주고 받는 모습이 사뭇 정겹다.
점심 식사가 끝나고 바로 회의가 시작됐다. 2016년도 정기총회다. 회의에앞서 각자 소개가
있은 뒤, 총무 일원의 사회로 회의가 시작됐다. 회의는 회장님의 개회 선언을 시작으로 선조에대한 묵념, 성원보고가 있었고, 이어 회장님의
인사말씀이 있었다. 회장님은 인사 말씀에서 "금년 총회가 우리 회가 결성된 뒤 부터 54차 정기 총회가 됩니다"하시고, "그렇게 덥더니 마침
날씨가 서늘해 한 부주했습니다."하시면서, "그래서 옛날부터 처서 뒤에 금초날을 잡았습니다. 그러니 이 날짜는 도저히 바꿀 수
없습니다."하시었다.
회의는 식순에 따라 경과보고, 감사보고, 예산 집행결산, 예산안 심의 순으로 진행됐다. 금년 회의는
젊은이들이 많이 참석해 그런지 예년과 달리 많은 질문이 쏟아졌다. 바람직한 현상이다. 특히 동원(70세)과 근원(70세)의 질문이 관심을
끌었다. 사실 예산안 결산에 대한 것은 어느 정도 회계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으면 질문할 수 없다. 그럼에도 많은 질문이 낭왔다는 것은 회의
발전을 위해 고무적이다. 토론 과정에서 다소 격양된 어조로 얼굴을 붉히기도 했으나 그뒤 사과로 자숙하는 모습은 보기에 좋았다.
문중회는 일반 사회단체의 모임과 다르다. 문중회는 혈연으로 결속된 단체이다. 따라서 거기엔 년령과 함께 항렬적 서열이 있다.
그래서 거기엔 반드시 '예(禮)'가 따른다. 공자는 "예의 효용은 화가 가장 귀하다"(禮之用, 和爲貴)했다. 화(和)는 조절과 절제를 통해
이루어진다. 나이가 많은 사람은 조절과 절제, 즉 사랑으로 아랫 사람을 보듬어주고, 아랫 사람은 경건한 마음으로 윗사람을 공경해야 한다. 아랫
사람은 아무리 논리적으로 옳은 말이라 해도 윗사람에게 대화할 때는 겸손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당돌한 모습을 보이면 다른 사람의 지탄을 받는다.
중도(中道)의 예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아무리 행렬이 높아도 나이가 적은 사람은 행렬은 낮으나 나이가많은 사람에게는 경건한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 역시 그것이 중도이기 때문이다. 예컨데 우리 종손(일원)은 양경공70세로 항렬이 69세 우(遇)자 항렬 보다 낮다. 그렇다해서 종손 보다
나이가 적은 사람이 항렬이 높다해서 종손에게 말을 낮춰서는 안된다. 종손은 그문중의 정신적 지주다. 예를 갗추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제 회의 과정을 지켜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지금까지의 문중 운영이 보수적이 었다면 앞으로 문중 운영은 분명 새로워 져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 '새로워져야 한다' 하는 것은 결코 '중도(中道)'의 '화(和)'를 떠난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앞으로 우리 문중이 발전하려면 '조화'와 '절제' 속에서 상호간의 소통이 있어야 한다. 홈페이지나 카페는 소통을 위한 현대 과학 문명의
리기(利器)다. 이 러한 문명 리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활용하지 못한다면 그 시대에서 뒤떨어져 낙오자가 된다. 허나 여기에도 반드시 앞서 지적한
절제와 조절이란 중도의 예가 지켜져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회의를 마치고 집으로 오면서도 총무직을 사퇴하겠다는 종손의
얼굴이 자꾸 떠 올랐다. 고심 끝에 작심하고 한 말일 것이다. 얼마나힘힘들었으면 그랬겠는가? 종손에게 너무 무거운 짐을 지우지나 않았는지 반성해
본다. 우리 문중의 현실이 안타깝다. 애는 쓰면서도 능력의 한계에서 오는 현실을 어떻게 하겠는가? 그렇다고 막상 대신할 사람도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또 나냥 이대호만 끌고 갈 수도없다. 이사들이 이마를 맞대고 언젠가는 풀어야할 큰 과제다.
문중의 발전을 기원하며
대동금초의 유감과 총회를 보면서 느낀 감회를 여기 적었다.
2016. 8. 29. 김포 허산 자락 귀락당 낙우재에서 황산공
14대손 우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