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색약수터> 오색천, 성국사 그리고 서울양양고속도로
오색약수는 유명한 관광지이자 명소이다. 물맛이 특별할 뿐만 아니라 주변경관이 뛰어나고, 설악산 정상에 이르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뛰어난 경관은 보기만 좋을 뿐 아니라, 약수 옆을 바로 오색천이 흐르고 있어서 특별하다. 환경 오염이 문제인 시대에 오색천은 맑기가 한이 없으며 그 물이 이루는 계곡이 절경이어서 특별하다.
그런데 약수는 그 맑은 물가에 있으면서도 시냇물과 전혀 다른 물맛을 보여준다. 이처럼 특별한 물맛을 보니 청송의 달기약수가 생각난다. 똑같이 탄산수 성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곳 약수맛이 훨씬 더 특별하다. 말그대로 오색의 물맛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 거 같다.
주소 : 강원도 양양군 서면 오색리
방문일 : 2020.7.7.~7.8.



약수교 아래로 계단을 내려가면 오색약수터가 두 개 있다. 사람들이 멀리 두 그룹이 보이는데 그곳에 각각 한 개씩의 약수터가 있다. 멀리 있는 약수터가 바로 아래 사진이다.
가까이 있는 세 사람이 보이는 곳에 있는 약수터에는 세 개의 구멍 중 두 개에서 약수가 난다.





위쪽에 있는 약수터. '오색약수'라는 팻말을 붙여 놨다. 철분이 들어 있어 약수구멍 아래가 녹물색으로 변색해 있다. 물 구멍은 두개이지만 한 개에만 물이 있다.
이전에는 두 개 모두 물이 났는데 이제는 하나만 난다. 아래 약수에서도 한 개가 마른 걸로 보아 자꾸 물이 말라가는 듯하다. 근처 식당에서는 대부분 이 약숫물을 떠다 밥물로 쓴다. 밥이 노르스름하면서 약간 푸른 듯도 하다.
근처에는 산채에 이 오색약수 물맛을 더해 음식을 만드는 식당이 즐비하다. 그중에는 감동을 주는 맛집도 있다. 덕분에 산채마을촌이 형성되어 있기도 하니 약수맛과 함께 산채음식맛 관광도 빼놓지 말기를 바란다.
성수기에는 관광객이 많아 물맛을 보려면 긴 줄에 서서 오래 기다려야 한다. 코로나 덕분에 기다리지 않고도 거의 독점하여 물맛을 볼 수 있지만, 마음이 편치 않다.

약숫물을 떠서 앞 시냇물에 올려놓아 보았다. 약수는 철분 때문인지 약간 붉은 기운이 돈다. 붉은 표주박 때문인지 약숫물과 시냇물 색깔은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오색천을 흐르는 물도 철분이 있지 않나 싶다. 바위들이 철색을 띄고 있기 때문이다. 시냇물에서는 별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 앞을 흐르는 물이 이렇게 맑고 투명하고 보통의 물맛을 가지는데, 어떻게 물가에 있는 약수 맛은 그렇게 특별할 수 있는지 불가사의하다.
약수를 연 이틀 계속하여 마셔보았다. 첫날은 마시기 힘들어 겨우 몇 모금을 마셨는데, 이틀째 마셔보니 첫날보다 훨씬 나아 표주박 하나는 마실 수 있었다. 그래도 익숙해지기 힘든 맛이다. 여러 맛을 포함하고 있고, 탄산의 기운도 느껴진다.
이렇게 특별한 물맛은 청송의 달기약수물을 생각나게 한다. 철분과 탄산수를 함유하고 있다는 물은 탄산 기운이 강하게 느껴지고 쌉소롬한 달기약수보다 더 다양한 맛을 낸다. 유럽에 가면 탄산수를 수퍼에서 팔아 자칫 생수인 줄 알고 샀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은데, 그 유럽물맛도 생각나게 한다.
하지만 청송 달기약수 맛이 더 풍부하고, 그리고 오색약수 맛이 한술 더 뜬다. 달기 약수로 밥을 지으면 푸른색을 짙게 띄고 쌉쏘롬한 맛도 그대로 담긴다. 오색약수 밥물은 맛이 그 정도로 진하게 나오지는 않는다. 대신 약수 자체 맛이 훨씬 깊고 풍부하다.
약수마저 이렇게 다양한 나라, 참 좋은 금수강산에 산다.

약수 바로 앞을 흐르는 시냇물.








아랫쪽에 있는 약수터. 구멍이 세 개 있다. 중간 큰 구멍에서는 물이 나오지 않고 말라 있다. 아랫부분의 두 개의 구멍에서 약수가 난다. 두 개의 물맛은 똑같이 시냇물이 섞어지 않은 약숫물이다.
바로 아래 시내가 흐르고 있는데, 오묘하고 깊은 약수가 바로 그 곁에 얕은 구멍으로 있다. 약수는 그 곁의 맑은 오색천이 흐르는 계곡 경관으로 더 볼 만하다.


이 일대는 동전을 주조한 곳이 있었다 하여 주전골로 불린다.


약수출렁교. 약수 바로 윗쪽에 있다.

출렁교에서 바라본 약수터. 그 아래 약수교가 보인다. 약수를 둘러싼 주변 경관이 절경이다.


약수를 뒤로 하고 계곡을 따라 오르면 성국사에 이르는 둘렛길을 만난다. '오색약수 편한길'이라고 이름붙여 놓았다.


등산화 아닌 편한 신을 신고도 잘 갈 수 있도록 길을 잘 닦아 놓았다.


이렇게 맑은 물이 있을까. 시내바닥이 오히려 더 잘 보일 정도로 맑은 물이 계곡을 따라 흐른다. 보는 것만으로도 눈도 마음도 개운해진다.
아치형 다리를 건너면 이번에는 계곡을 왼쪽에 끼고 오른다.





계곡은 성국사를 지나서도 계속 이어진다. 오색약수에 이어지는 오색천의 절경을 보니 어느 선생님의 말씀처럼 세계에서 제일 아름다운 곳이라는 말에 공감이 된다. 아름다움과 깨끗함에 압도된다.
산 강 바다 계곡 숲 들, 이런 자연 조건을 다 구비한 나라는 흔하지 않다. 우리는 산이 70% 가까이 되어 다양한 경관을 자랑하고 다양한 식재료가 나온다. 그 다양한 경관 중에서도 이곳은 압도적이어서 넋을 잃게 한다.
해외여행이 제한되니 다시 보는 우리나라가 얼마나 아름다운 나라인지 새삼 알겠다. 축복받은 나라다. 축복받은 삶을 사는 것만 과제로 남았다.


드디어 오색석사, 일명 성국사에 이른다. 성국사 안에도 약수가 있다.

성국사 본채. 사실 건물은 이 본채 하나로 아담한 절이다. 이 절 뒤에서 오색화가 핀다 하여 절 이름이 오색석사이다. 오색약수도 이 절의 승려가 발견하였다 한다. 절에 관한 안내문도 붙어있지 않아 소종래를 알기 어렵다. 오랜 기간 폐사되었던 절이라 한다.


1971년에 무너진 것을 복원하였다는 오색리 3층석탑.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경내의 약수. 물맛이 오색약수처럼 특별하지는 않다.


본채 옆 계곡쪽 풍광이다. 머름대 밖으로 설악산 풍광이 신선하다.



본채를 밖 아랫쪽에서 바라본 모습. 절이 아닌 고택같은 느낌이 난다.
*양양 오는 길
서울양양고속도로 - 터널고속도로
서울양양고속도로를 처음 타고 왔다. 2017년에 개통된 이 도로 덕분에 서울에서 속초 당일치기 여행이 용이해져서 많은 사람이 이용하게 되었다.
빨라져서 좋긴 하지만 터널이 너무 많았다. 그중 11키로의 인제양양터널은 그 정점을 보여주었다. 이 터널은 한국에서는 제일 길고 세계에서 11번째로 긴 터널이란다. 특별한 공법으로 공사기간을 2년이나 단축하였다 한다.
이 터널에 들어서니, 그냥 모든 도로가 다 이런 것마냥 끝없이 이어지는 같았다. 차선도 점선으로 변경이 가능하여 보통 도로같은 느낌마저 주었다. 중간중간 몇 키로 남았다는 안내판까지 붙어 있어 지하의 별세계를 달리는 기분이었다.
이보다는 짧지만 상당히 긴 터널도 여러 개 있었다. 그외 귀엽게 터널의 끝이 보이는 시원한 터널도 있었고, 아마 굳이 터널을 만들지 않아도 되는 곳같은 곳에도 짧은 굴다리같은 터널이 있었다. 동물의 이동로를 고려하여 터널로 만든 거 같았다.
처음에는 터널이 한 10개쯤 되나, 했는데 가도 가도 새로운 터널이 계속되어 한 20개, 아니 한 30개, 종국에는 아니 한 100개 되는 거같다는 추측을 했을 정도였다. 터널 전시장같은 도로, 덕분에 무지하게 거리를 단축하고 고개를 지나지 않아 안전하게 만들었지만, 답답하고 무섭게 만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곳에 있는 터널의 교통사고가 하루가 멀다하고 뉴스가 되고 있다. 터널 도로는 위험할 뿐만 아니라 경관을 포기해야 하므로 옛길을 일부러 찾아 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래도 이렇게 좋은 길을 만들어 선뜻 강원도 여행길에 나서게 해주고, 물류 이동을 빠르게 해준 것은 백번 감사해도 부족한 일이다. 산이 많은 자연조건에다 빠른 것을 좋아하는 성향 때문에 무수히 만들어지는 터널, 덕분에 터널공화국이 되었다. 아마 터널 만드는 데는 세계 최고의 기술이 아닐까 싶다. 경각심을 더 높여 문명의 이기의 장점만 살려나가도록 애쓰는 것이 최상의 대책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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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영서지방인 춘천만 해도 조선시대엔 귀양지였습니다. 한문사대가 중 한 사람인 象村 申欽의 '상촌집'에 춘천 유배 생활을 기록하고 있지요. 다산 정약용이 쓴 '汕行日記'엔 춘천을 蜀땅 成都라고 말합니다. 그만큼 산악이 험하니 당시엔 북한강 물길이 오늘날의 고속도로 구실을 했지요. 다산이 조카 혼사 일로 춘천에 갈 때마다 북한강 수로를 이용한 것이 그 예입니다. 지금은 북한강 곳곳에 댐이 만들어져 물길이 막힌데다 수량도 적어 교통로 노릇을 못하는 대신, 산을 뚫고 터널을 내어 차들이 쌩쌩 달립니다. 시대가 바뀌면 길도 변하는 게 세상사인가 봅니다.
춘천이 유배지였으면 유배 생활은 자연 귀의 그 자체였겠네요. 심흠은 평생 영화로운 삶을 산 거 같은데, 유배마저 그런 절경으로 가 있었군요. 춘천이 중국 성도 비슷한가요? 아직 성도는 못 가봐서 비유가 잘 와 닿지는 않는군요. 하여튼 좋은 곳과 인연 맺고 계십니다. 이제는 양양고속도로로 대처가 되고 중심이 되었습니다. 누가 유배지였다는 것을 믿겠습니까? 이제는 더 편하게 가볼 수 있게 되어 문명의 이기가 고마울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