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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알피니즘’과 ‘고령화' 문제를 묻는다: 이영준(I)
일시: 2020. 09. 17(목) 15:00-18:00
장소: 우이동 마운틴저널 사무실
참석: 이영준, 이상조
이번 <ER이 간다>에서는 오랫동안 산악계의 저널리스트로 활동하여 국내외 등반계의 흐름에 밝은 이영준을 만나기로 했다. 크게 질문은 두 가지였다. 먼저 ‘한국적 등반’이란 무엇인가. 둘째는 산악계의 ‘고령화’ 문제에 대한 나름의 대책이었다. 많은 등반 활동으로 등반의 실제적인 기술 등 기타 정보에 대해서도 일가견이 있을 거로 예상하지만, 위의 두 질문이 그에게는 더 적합하다고 여겼다. 이상조 선생님은 업저버로 참여하였다. 그의 관심사이기도 하고, 평소 이영준의 산에 대한 식견을 높이 평가하였기에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 더 좋을 것 같아 초대했다.
‘한국적 등반’에 대한 질문은 오래된, 그래서 식상하기도 한 질문일 수 있다. 그러나 식상하다고 해서 논의를 멈추어야 할 정도로 가볍고 또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여러 가지 다양한 방향에서 이 담론을 풀어갈 때, 우리의 등반 행위와 사고는 풍성해질 것이다. 처음에 이 질문의 의도는 서구의 등반 가치와 비교하여 한국의 고유한 등반 가치는 무엇인가를 논의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논의가 오가는 중, 한국과 서구 사이의 차이보다는 국적을 막론하고 산사람들은 산이라는 대상 앞에서 보편적인 정서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접근하면서 ‘한국적’이라는 말을 ‘우리의’라는 말로 우선 대치하였다. 추후 더 적절한 용어가 나오길 기대한다.
두 번째 질문, 산악계의 ‘고령화’ 문제 또한 한국 사회의 고령화와 맞물려 산악계에서 많이 회자되는 질문이다. 이영준은 오래전 이에 대한 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다. ‘고령화’에 대한 그의 견해를 듣고 싶었다. 이 문제에 대한 논의는 '내버려둠'과 '실행'의 경계선에서 서로의 의견이 오갔다.
마지막으로 산에 오르고, 특히 기록을 남기는 자로서 이영준의 근황을 물어봤다. <우리우이협동조합>설립에 애쓰고 있는 그는, 내가 보기에 산악인으로서 지역사회의 이슈에 개입하여 변화를 도모하는 '사회운동가'였다. 의미 있는 결실있기를 빈다.
'우리의 알피니즘'과 '고령화' 라는 두 개의 질문이 워낙 복잡하고 다양한 관점을 담고 있는지라, 늘 그렇듯 한 부분만을 그것도 겉만 핥은 느낌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논의가 우리 담론의 밑바탕이 되기를 바라는 초심에 기대어, 특별한 편집 없이 대화의 내용을 2회로 나눠 싣는다. 읽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 참고자료를 붙였다.
I. ‘우리의 알피니즘’은 어떠해야 하는가.
순수와 포용의 개인주의적 알피니즘으로: 쇼비니즘과 자본제일주의의 극복
이상조: 프리 솔로의 알렉스 호놀드(Alex Honnold)과 던월(Dawn Wall) 등반의 토미 콜드웰(Tommy Caldwell) 같은 경우를 보면서 과연 한국의 등반 환경에서 이런 등반이 가능하겠는가 하는 생각을…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적 등반’에 대해 고민하게 돼.
심현섭: 어떤 면에서 불가능한가요?
이상조: 우리가 과연 그들처럼 그런 등반을 할 수 있겠는가라는 거야. 한국 산의 환경, 배경 등을 볼 때 적합하지 않다고 보는 것이지. 그들만의 환경에서 나올 수 있는 등반양식이라는 생각이 들어.
심현섭: 그러나 그건 국가의 차이가 아니라, 개인의 역량 차이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한국적 상황에서도, 14좌 등반에 대한 여러 해석이 있을 수 있지만, 뛰어난 클라이머가 있었고, 지금도 나오고 있는데요. 개인의 환경 안에서 최선을 다하느냐는 개인의 능력의 문제이지 국가별 차이는 아니지 않을까요?
이상조: 꼭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개인의 능력은 자신이 처한 환경에 영향을 받는거구. 예를 들어 미술, 야구, 축구의 경우 일단 열려져 있는 장이 비슷하다고 봐. 그렇기 때문에 야구 같은 경기에서는 우리가 서구사회를 이길 수 있는 거지. 그러나 산의 경우는 환경에서 너무 많은 차이가 있기 때문에 개인의 능력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해. 그리고 여기서 환경의 차이는 금력 즉 자본력의 차이를 포함해. 호놀드나 콜드웰이 그 등반을 위해서는 수많은 인력과 자본이 뒷받침 되었기에 가능하였다고 보는 거지.
심현섭: 그러니까 서구와 우리는 자연환경, 자본에서 차이가 있다. 이 차이로 인하여 등반행위의 결과가 다르고, 따라서 등반 가치에도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건가요?
이영준: 그런데 저는 호놀드 같은 사람이 한국에 있으면 좋겠지만, 어차피 그런 사람은 세계에서 한 사람 밖에 없는 사람이니까 그는 영웅인 거고, 저변이 넓어지려면 저마다의 등반에서 의미를 찾는 ‘개인주의적 알피니즘’으로 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우리는 자기 능력에 맞는 등반을 하는 대신 너무 센 목표를 잡았던 거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많은 사람이 죽었어요. 신루트, 초등... 이런 것들이 의미가 있다고 교육되어 왔었던 것이지요.
심현섭: 그런 건 의미가 없나요?
이영준: 의미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호들갑 떨 정도로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지요.
심현섭: 그럼 두 분의 말씀을 이렇게 해석해도 되나요? 신루트, 초등이 개인적인 도전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면 별문제가 없겠으나, 잘못된 알피니즘, 예컨대 국가적 ,국뽕적인, 사회적인 몰아붙임으로 인하여 형성되었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 그렇다면 예를 들어 신루트 개척이 순수하게… 도봉산 가는 사람이 설악산을 꿈꾸고 에베레스트에 도전하는 식으로, 개인적인 도전정신 측면에서 갈 수 있다라면 괜찮은 건가요?
이영준: 그렇지요. 과거에는 언론에서 잘못된 개입을 많이 했지요. 지금도 그런 경우가 많지만.
이상조: 나는 자본이 끼어들었다고 생각해. 미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 자본이 미술시장을 굉장히 혼란스럽게 만들었지. 이는 미술의 가치를 혼돈스럽게 했어. 정말 좋은 그림이 아닌, 상업적 그림, 잘 팔리는 그림이 가치 있다고 여겨지는 혼동…
심현섭: 한국의 경우 해외원정이 본격화한 70년대에는 국가적 외압요인이 강했다고 보는데요. 당시 세계정세가 민족적 경향이 강했고, 한국산악회 등 산악계에 정치인들의 참여가 활발했던 이유도 작용했겠지만. 80년대 이후 점점 산악계에 기업의 자본이 개입하기 시작한 걸로 보이는데요.
이영준: 예.
이상조: 그런데 우리나라는 80-90년대 까지도 국가주의가 강하게 작용했다고 봐. 당시에 원정 간다면 대부분 태극기 가지고 가고 그랬는데 최승철, 김형진이는 태극기를 가지고 가지 말자 그랬거든. 굳이 태극기를 가지고 갈 필요가 있냐면서.
심현섭: 아, 벌써 그때 그런 이야기를 했었나요? 국가의 개입을 거부했든지, 적어도 국뽕의 마인드는 아니었나 보군요. 국가는 그렇다치고 아까 이상조선생님께서 자본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자본이라면 기업의 돈을 말하는 거겠지요? 우리도 과거에 두 여자 클라이머의 14좌 경쟁 상황에서 업체끼리의 경쟁이 좀 논의가 되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어떻습니까? 영준씨가 보기에 우리 산악계에 자본이 개입하는 문제는 어떻습니까?
이영준: 자본이 들어와야죠. 그러나 선한 영향력으로 들어와야죠. 그런데 돈을 받은 사람들은 그것을 선한 영향력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굉장히 부담을 느꼈던 거죠.
심현섭: 스스로?
이영준: 네. 부담되죠. 등반을 못하면 돈 뱉어내야 되나보다. 뱉어내라는 말은 안하지만 스스로 무리하게 등반하는 거죠.
심현섭: 그러면 우리가 산에 도전하려고 하면 결국 국가중심적인 요소는 없어져야 하는 것이고… 시대 자체가 개인주의로 변한 부분이 있으니까요. 반면 자본은 필요악까지는 아니지만 불가피한 요소다?
이영준: 저는 좋은 거라고 보는데요. 산악인에게 스폰서가 있다는 것은.
심현섭: 그렇다면 가령 A사가 지원을 했는데 다시 뱉어내라는 말도 안하는데, 산악인 스스로 부담을 갖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인가요?
이영준: 그건 그 세대들이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에요. 방송 따라붙고… 얼마나 고민되겠어요.
이상조: 호놀드의 책을 읽어보면 그의 고민도 그거야. 자본의 지원에 어떻게 갚을 것인가의 문제가 나오는데. 부상당했을 때 스케줄이 바뀌고, 후원의 문제에 고민하는 부분이 있어. 아무리 선한 자본이라도 받은 사람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거지.
심현섭: 자본의 본질적 성격이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그러면 돈을 안 받을 수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하나요? 개인이 극복해야 하는 문제입니까?
이영준: 사회가 바꾸어 나가야 하지요. 산악계가.
심현섭: 어떻게?
이영준: 산악계가 관심 있는 사람들이 펀드를 조성해서.
심현섭: 자본의 출처를 바꿔야 한다? 혹은 다양화해야 한다?
이영준: 그렇죠.
심현섭: 기업의 지원은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자발적 개인들의 펀드 조성이 필요하다는 말씀이네요.
이영준: 꼭 기업의 자본이 안 된다는 것이 아니라, 마케팅을 해야 하니까 스타들에게 지원하는 것을 완전히 반대하지는 않지만, 그런 돈에 완전히 예속되지 않게, 예를 들어 만 명의 산사람들이 만원씩 내서 1억을 만들어서 후배들의 등반을 도와주자 이런 부분이 보완되어야 한다는 거지요. 전에 김창호씨를 열 명이서 10만원 씩 매년 100만원 을 지원한 사례가 있는데, 그런 모습을 크게 확장시키면 이런 모습은 외국에는 드문 자본의 나눔을 기반으로 하는 ‘한국적 등반’이라는 모습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거지요.
심현섭: 자본을 기업에서 받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십시일반 자본을 모아 협력하는 문화가 활성화하는 것이 한국적 등반의 한 모습일 수 있다는?
이상조: 하나의 부분인 거지. 다양한 그러한 의지들이 모여서 하나의 표상으로 나오겠지.
심현섭: 그러니까 자본 부분에 있어 해외의 경우, 호놀드의 예처럼 많은 스텝들이 따라붙고 하면서 대단위의 자본이 들어가는 등반이라면 우리는 십시일반으로 산악인과 협력하려는 사례를 확장할 필요가 있다. 요즘은 어떻습니까. 이런 흐름이 지금도 좀 있나요?
이영준: 그래서 제가 만들고 있어요. (사무실 유리문에 붙어있는 포스터를 가리키며) 저 <알피니스트>(임일진, 김민철 감독, 2016) 영화 있잖아요? 유럽에서 상으로 2,000유로를 받았거든요. 그런데 그 영화를 만든 사람(임일진 감독)은 죽었잖아요. 그래서 같이 만든 김민철 감독이 이 돈을 어떻게 하냐고 물어와서 기부하라고 했어요. 그래서 한국산악회에다 기부했는데, 저도 100만원을 기부했어요. 목표는 2,000만 원 정도를 모아서 산악영상에 관심 있는 젊은이들을 교육하자는 기관을 만들자는 거죠. 일 년에 10명 정도를 배출하면 우리 산악문화가 풍성해지는 거잖아요. 특히 우리나라가 못했던 것 중에 하나가 산에 가서 기록을 남기는 것을 잘 못했던 것 같아요.
심현섭: 결론적으로 기업의 스폰도 거부할 것은 아니지만, 뜻 있는 자들의 기부에 의한 십시일반의 문화도 병행해야만 변별력 있는 한국적 등반의 문화가 형성될 것이다?
이영준: 그렇지요. 그런데 사실 돈이 없어서 산에 못가는 사람은 없어요. 엄홍길의 휴먼원정대 같은 돈 많이 드는 등반은 지난 세대의 모습이었으니까 인정하되. 후배들은 그런 모습을 따라가면 안 되지요. 오영훈, 김진석이란 후배가 얼마 전에 랑탕 원정을 갔는데(두 명으로 이뤄진 ‘랑탕 원더러스 2014’ 원정대가 2014년 1월 네팔 랑탕 히말라야에서 3개봉을 등반했다) 김창호씨로부터 100만원씩 지원을 받아 간 거예요. 두 명이서 봉우리 세 개 등반 하는데 들어간 비용이 총 330만원 정도였어요. 물론 어프로치가 짧고 하여 비용이 덜 드는 곳이긴 하지만 이렇게 적은 비용으로도 얼마든지 할 수 있거든요. 산이 좋아서 둘이서 텐트 들고 갔는데… 그런 애들이 많아져야지요.
심현섭: 대규모 등반보다는 미니멀한 규모로 가자는 이야기지요. 외국의 경우도 이런 추세이지 않은가요?
이영준: 산악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들은 다 이런 식으로 변해가고 있어요. 굳이 높은 데에 가지 않아도 되요. 거기 갈 수 있는 사람은 한두 명밖에 안 되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은 거기에 가면 되고, 나머지 사람들은 히말라야 가서 자기 등반을 하면 되지요. 그런 등반을 하는데 있어서 누가 더 센 사람이냐는 식의 의미부여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심현섭: 경쟁하고 비교하는…
이영준: 네. 전에 어떤 자리에서 허영호가 더 세냐, 박영석이 더 세냐는 논쟁이 붙는 것을 봤어요. 저는 마치 차력사들 데려다놓고 몽둥이로 때리면서 누가 더 세냐고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예요. 결국 허영호가 이겼어요. 허영호는 8600미터 지점에서 동계에 비박을 했다는 거지요. 그렇다고 이 사람이 더 훌륭한 등반가냐,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심현섭: 아까 자본의 측면을 이야기했다면 이건 한국적 등반의 정신적 측면을 말하는 거지요. 타인과 비교하지 않고, 자기 자신과 싸워나가는…
이상조: 한국적 등반이란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이런 조그만 집단에서 이에 대한 담론들이 생겨나면 지금 우리들이 가야할 등반방향이 생겨난다고 봐. 지금은 그런 게 너무 없어서.
심현섭: 용어를 다시 생각해보는데요. 외국 산서를 읽어보면 경쟁이 아니라,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부분에 대해서도 많이 나오잖아요. 그러면 이런 부분을 꼭 한국적 등반이라는 용어를 쓰는 게 합당하냐는 의문이 들어요. 한국적이라는 용어가 자칫 아까 영준씨가 우려한 국수주의적, 국뽕적 냄새가 날 수도 있는 용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러면 이걸 다른 용어로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어떻습니까?
이영준: 저는 한국적이라는 말이 꼭 나쁘지는 않다고 보는데요.
심현섭: 자신과의 싸움, 자본에서 자유… 이런 것들이 꼭 한국이 아니라 보편적 산악인이 추구해야 할 목표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이영준: 굳이 바꾼다면 ‘우리의 알피니즘’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상조: ‘우리’라는 말은 보편성을 띠고 있으니까.
이영준: ‘우리’라는 말에 자연환경이나 뭐 그런 게 다 들어갈 것 같아요.
심현섭: 여기서 ‘우리’라는 말은 그냥 산악인을 말하는 거지요. 세계의.
이상조: 동시대에 같이 움직이는 산악인…
제국주의와 차별을 넘어: 세계적인 등반추세는 동시대 이슈와 접목
심현섭: 흔히 정신적 측면을 말할 때 높이, 깊이… 저는 동의하지 않는 편이지만 서양은 높이를 추구했고… 동양은 정신적 측면의 깊이를 추구했다는 식의 논의가 있는데요.
이영준: 그런 담론은 정말 50년대의 이야기 같아요.
심현섭: 과거의 담론이라 해도 산을 도, 인격수양의 장이라고는 하는 논의에 또 본질적인 측면이 있지 않나요?
이영준: 서양 사람들도 다른 걸 알고 있어요. 그러나 그걸 많이 이야기하진 않아요. 지금 세계 산악계의 흐름의 예를 들자면 작년에 미국에서 흑인산악단체가 생겼어요. 하얀 눈밭에 검은 사람이 있으면 왜 안되나? 이렇게 그들의 주제는 여성산악운동, 차별, 기회의 균등, 환경, 지구온난화 문제 등에 관심을 가지는 거죠. 그래서 높은 데 올라가고 센 데 올라가는 것은 물론 그렇게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거기에 대해서 좋다, 나쁘다 평가하지 않아요. 그냥 자기가 즐기고 와서 자신의 경험을 나누는 것, 그게 다에요. 북한산이나 히말라야에 가는 사람이나 개인적인 경험이라는 측면에서 차이가 없는 거지요. 전에 유럽인들은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그들이 산에 가는 첫째 이유는 조망(Landscape)이에요. 높은 데 가니까 볼 수 있는 다른 풍경이 있는 거잖아요. 보기 위해 가는 거지요.
1963년 부터 본격적인 등반을 시작한 흑인등반가이자 시인인 에드를 「Alpinist 」지에서 집중 조명했다. Ed Roberson on Mt. Washington (Agiocochook), New Hampshire, date unknown. [Photo] Courtesy Frank Daugherty, 「Alpinist 」71(2020. 9).
이상조: 바라보는 거라는 건, 나의 삶을 바라본다는 의미를 갖는데…
심현섭: 유럽인들의 설문조사의 내용에 방금 이선생님쎄서 말씀하신 부분이 포함되었다고 보는가요. 아니면 별개의 문제라고 보나요?
이영준: 포함되었다고 보죠.
심현섭: 이제 산에서 누가 높이 올라가느냐 하는 문제는 중요한 이슈가 아니라는 말씀이지요. 그보다는 우리의 삶을 돌아보는 가운데, 인종갈등 등 사회적 이슈에 대한 관심을 갖는 방향으로 간다. 차이, 차별… 등반행위에 사회이슈가 플러스되는 사회운동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이상조: 당연하지.
심현섭: 우리는 어떻습니까?
이영준: 우리는 그런 담론이란 것이 없는 거죠.
심현섭: 우리나라의 산악문화에서는 남녀차별문제라든지, 환경에 대한 산악인의 의식이라든지 하는 부분에 대한 담론이 부족하다?
이영준: 네.
심현섭: 그럼 우리 담론도, 외국인들이 그렇게 했다고 해서가 아니라, 산이 산뿐만 아니라 동시대 사회이슈와 맞물려서 그러한 방향으로 산문화가 가야한다고 보시는 것입니까?
이영준: 그런 내용으로 더 활발해지면 좋겠지요. 우리나라에는 인종문제는 없지만, 분단의 문제 같은 것이 있어요. 북한에 대한 편견, 빨갱이가 무슨 산을 다녀? 이런 것이지요. 북한산악인이 있고, 초호유도 등반하고 그렇거든요.
심현섭: 한국적 등반 이야기를 마무리 하자면, 먼저는 한국적 이라는 말은 보편적인 우리라는 말로, 혹은 다른 보편적 용어로 써야 한다. 예를 들어 미국 사람이나 러시아 사람이나 자기 국기를 가지고 간다는 일은 촌스러운 것이고, 이제 자기 개인적인 도전으로 가는 것이 좋겠다. 그게 우리가 추구해야 할 등반형태이지 않느냐는 것이지요.
이영준: 그러니까 해외등반을 가도 재밌게 즐기다 왔으면 좋겠어요.
심현섭: 우리가 한국적 등반을 이야기하다 보니까 여러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요. 한국적 등반이란 말은 시대착오적이다. 따라서 보편적 산악인을 가리키는 ‘우리’라는 말로 대체하자. 그러면 ‘우리의 등반’은 어떠해야 하는가. 우리의 등반은 국가, 자본, 경쟁 등 과거의 집단적, 제국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개인주의적 등반, 그러니까 개인의 역량 범위에서 재밌는 등반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환경, 차별 등 동시대 사회 이슈에 관심을 가지는 등반으로 나아가야 한다. 뭐 이 정도로 이야기한 것 같아요. 아까 이상조 선생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이 부분은 앞으로 우리 산악계에 활발히 논의가 전개되어 그 가치와 방향을 보완 수정해야겠지만.
이영준: 최근에 영국 산악회 회장 존 포터가 과거 '제국주의적' 등반에 대해서 사과한다고 했어요. 오늘날 세계 등반은 제국주의적 잔재로부터 벗어나는 시점인 것 같아요.
심현섭: 제국주의적이라는 억압적 요소는 한국 산악계에도 마찬가지로 작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순화되지 않은 성차별적 언어, 주관적 등반력에 따른 보이지 않는 차별, 심지어 자본의 여부에 따라 리더가 결정되기까지 하는…
이영준: 제국주의적 사고는 우리 사이에 포용력 부족으로도 나타나요. 예를 들어 인터넷 산악회에 대한 시각이에요. 사실 인터넷 산악회는 산악문화의 과정에서 나온 하나의 현상이므로 우리들이 긍정적으로 수용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이들을 거의 경멸의 수준에서 차별화하는 경향이 있어요. 이런 건 제국주의적 사고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어요. 우리가 더 강하고 옳다고 착각을 하는 일종의 '집단역학'의 작동이라고 봐야지요.
심현섭: 그러고 보니 이런 제국주의적인 심리를 우리의 일상적 등반활동에서 얼마나 없애나가느냐와 다른 것에 대한 폭넓은 수용력이 한국적 등반, 아니 ‘우리의 등반’의 지향점이자 숙제라는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