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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낭 풍물지
예낭! 나는 이 항구 도시를 한없이 사랑한다. 태평양을 남쪽으로 하고 동서로 뻗은 해안선을 기다랗게 점거하곤 북쪽에 산맥을 등진 그림처럼 아름다운 예낭.
많은 사람이 이곳에서 나고 자라고 죽었다.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아오고 지나가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의 인구는 200만. 이 200만 가운데는 열다섯 관의 육체를 팔아 한 근의 쇠고기를 사 먹는 여성들도 있고 자기의 인격을 팔아선 스스로의 돼지를 살찌우는 남성들도 있다. 부귀의 추잡도 있고 화려한 가난도 있다. 태양도 달도 별도 바람도 꽃도 나비도 있다. 사람보다 나은 쥐와 사람보다 못한 쥐도 있고 벼룩에도 낯짝이 있고 빈대에도 체면이 있다는 그 벼룩 그 빈대 들도 있다. 200만 인구의 예낭이라고 하지만 나의 예낭은 200만과 공유하고 있는 예낭이 아니다. 장님의 예낭은 촉각이고 권력자의 예낭은 군림하기 위한 예낭이지만 나의 예낭은 식물처럼 그 속에 살면서 꽃처럼 꿈꾸며 살기 위한 예낭이다. 그런 까닭에 나의 예낭에는 꿈과 현실과의 경계가 없다. 생자와 사자와의 구별조차 없다. 피카소의 그림처럼 조롱鳥籠 속에 물고기가 놀고 바닷속에서 새들이 헤엄친다. 내 두뇌의 염증을 닮아 계절의 순서가 뒤바뀌기도 한다. 그러나 영웅이 노예가 되고 패자가 승자 되길 바라는 기원과 내일의 기적을 위해서 오늘의 슬픔을 견디며 살아야 하는 사정은 지구 위의 모든 도시와 마찬가지다. 기적은 이 예낭에 있어서도 바라는 사람 스스로가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가을 날씨는 청명한 채 쇠잔해갔다. 그런 어느 날 어머니는 병석에 누웠다. 병석에 누운 어머니를 보는 건 내 평생에 있어서 처음이다. 그리고 마지막이란 것을 나는 믿게 되었다. 종언이 시작된 것이다. 어머니의 70 평생은 아버지의 50 생애를 보태어 120년을 살았고 나의 35세를 보태어 155년을 살아온 셈이다. 위대한 여성의 생애다. 어머니가 숨을 거두는 날, 나는 지구도 그 맥박을 멎을 것을 확신한다. 그 순간 예낭도 멸망한다. 성주 오필리아도 결핵균의 염증이 빚어낸 환상이란 사실로 환원되고 만다. 결핵균마저도 내 싸늘한 시체 속에서 한때 당황하다가 그들의 죽음 앞에 단념하게 될 것이다. 그들의 승리는 그들의 죽음으로써 끝난다. 진정한 승리는 사死의 승리다.
인기척의 탓인지 어머니가 눈을 떴다. 눈을 떠도 요즘의 어머니는 의식이 몽롱해져서 사람을 분간하지 못한다. 어머니가 눈을 뜨자 윤 씨는 인사말이라도 하려고 앉은 자세를 고치려는데 어머니의 말이 있었다. “네가 왔느냐, 네가 올 줄 알았다.” 나는 어리둥절했다. 어머니의 뜻밖의 소리에 놀란 것이다. 윤 씨도 놀란 모양이다. “내가 너를 찾을 작정을 했다. 그런데 그만 이 꼴이 돼서, 그러나 꼭 돌아올 줄 알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디 이 애가…….” 어머니는 윤 씨를 경숙으로 알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심히 당황했다. 그러나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내가 너무했다. 네겐 아무 잘못도 없는 것을……. 내가 너무했지. 그러나 돌아와줘 반갑다. 네가 올 줄 나는 알았다. 네 덕분에 나는 안심하고 죽을 수 있구나.” 윤 씨가 돌연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울지 마라 며늘아, 네 손을 내봐라!” 하고 어머니는 윤 씨의 손을 만지작거렸다. “손이 왜 이렇게 거세노. 그 곱던 손이……. 그러나 이젠 됐다. 네가 돌아왔으니……. 영희를 만나면 에미가 돌아와 애비와 같이 있다고 하마. 영희를 만나 할 말이 생겼구나…….” 윤 씨의 흐느낌은 멎지 않았다. “다신 집을 나가지 않겠지?” 어머니의 다짐하는 말이다. 흐느끼는 가운데 윤 씨는 머리를 끄덕였다. “그럼 됐다.” 하고 어머니는 윤 씨의 손을 놓으며 말했다. “나는 안심하고 죽을 수가 있다.”
이 어처구니없는 어머니의 오해는 윤 씨의 발을 우리 집에 묶어버리고 말았다. 그 뒤 사흘이 지나서 어머니는 조용히 영원한 잠길에 들었다. 어머니는 고운 재가 되어 예낭의 흙이 되고 예낭의 바다가 되었다. 예낭의 풍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니 예낭 풍물지風物誌란 이 땅의 숱한 어머니 가운데 한 어머니의 기록이란 뜻이다. 그 어머니의 죽음과 더불어 끝나야 하는 기록, 이른바 종언에의 서곡이다. 태양도 끝날 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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