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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뢰편
K은행 지점장인 윤태식씨는 오늘도 지각하는 김대리로 인해 화가 많이 나
있는 상태였다.
전국 지점 순위 일 위를 달리고 있는 K은행의 실적은 윤지점장을 중심으
로 한 사원들의 단합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특히 매일 아침에
실시하는 조회는 하루 영업전략을 구상하는
중요한 자리였다. 은행의 대출 실적을 관리하는 김정남대리는 수요일에
항상 입는 검정색 정장과 푸른 와이셔츠를 입은 채 묵묵히 앉아있었다.
어떤 여자가 봐도 빠져들 만큼 매력적인 남성인 김정남 대리는 K은행의
많은 여직원의 가슴을 설레이게 하는 최고의 미남이었다. 나도 그런 김정
남 대리를 사모하고 있는 여직원의 한 명이다. 아참! 여기서 잠깐 내 소
개를 한번 해보도록 하겠다. 내 이름은 조지현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
하고 은행에 취직한 사회 초년생이다. 워낙 미모가 출중하고 머리가 총명
하여 같은 여상을 졸업한 동기들보다는 훨씬 낳은 조건의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난 오늘도 은행의 수뇌부들만이 참여하는 조회가 원만하게 돌
아갈 수 있도록 일찍 출근하여 갖은 준비를 맞히고 옆자리에서 빼곰히 조
회를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뭐... 주요한 인사들과 친분 관계를 맺는 것
만큼 내 사회생활에 도움이 될만한 일도 드물기 때문에 좀 아양을 떨기
도 한다. 그렇다고 나를 깍쟁이라고 욕하지 말 것! 한국사회에서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을 그대로 따를 뿐이니깐. 아무튼 오늘 아침 조회의 분위기
는 다른 날과는 달리 약간 어색했다. 말쑥한 모습의 김정남 대리는 매력
적인 미소로 커피를 홀짝거리고 있었지만 웬지 불안한 듯한 기색을 감추
지 못하는 듯했다. 지점장님의 왼쪽 옆에 김정남 대리가 있다면 오른쪽
엔 항상 강구영 대리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둘은 우리 은행의 엘리
트로써 지점장의 신임을 한껏 받고 있는 기대주들이었다. 증권은 물론 은
행대출 게다가 미국증시인 나스닥에게까지 손을 뻗치고 있는 K은행의 저
력은 전문적인 일류 교육을 받은 후 타고난 능력을 발휘하는 두 엘리트
사원의 기여가 컸다. 잠깐! 은행 지점이라 해서 동네에서 보는 농협이나
작은 은행 같은 곳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여긴 하루에 수천억 원
이 왔다갔다하는 거대 기업형 은행으로 웬만한 석학이 아니고선 입사하기
조차 힘든 곳이다. 강구영 대리는 눈이 매섭고 매부리코를 가진 아저씨로
써 L증권사를 적대 합병하는데 큰공을 세워 현재 지점장을 제외한 사원
들 중 연봉 최고액을 달리고 있는 인재였다. 하지만 김정남 대리가 입사
하자 점점 설자리를 잃고 있는 강대리는 김정남 대리에게 심한 적대심을
가지고 있었다. 강구영 대리 옆에는 윤미란 과장이 앉아있었다. 이지적
인 미모를 지닌 그녀는 한국 굴지의 금융황제인 윤태후 회장의 외동딸로
서 미국 하버드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인재였다. 항상 붉은 입술
에 윤기가 나는 윤미란 과장은 도발적인 매력으로 재계는 물론 정계에서
도 노리는 사람이 많은 도시적인 미인이었다. 내 미모보다는 못하지만
쳇... 윤태후 회장의 동생이 윤태식 지점장으로 지점장과 윤미란 과장은
작은 아버지와 조카딸의 관계였다. 계속 오른쪽 옆을 훑어보면 구현주 대
리가 윤미란 과장 옆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
법고시를 패스한 수재로 K은행의 법률 고문은 물론 합병절차의 법적인 오
류를 지적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녀도 상당한 미인이었지만 윤미란 과
장을 옆에 두어 그 미가 약간 퇴색되는 듯 했다. 이렇게 5명의 임원들은
평소와는 다른 경직된 자세로 회의에 임하고 있었다.
'근대 김기덕 대리는 오늘도 지각인가?'
윤태식 지점장은 잔뜩 짜증난다는 표정으로 신경질을 부렸다. 내가 봐도
일주일동안 연속 지각을 하는 김기덕 대리의 행동은 은행을 책임지고 있
는 지점장에겐 정말 짜증나는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이 사람을.. 아무튼 김대리! 어제 증시에서 발동한 서킷 브레이커는 어
떻게 됐나?'
김정남 대리는 말쑥한 표정으로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뭐! 제 생각보단 늦게 발동하기는 했지만 약 삼백억원의 순 이익을 올렸
습니다.'
김정남 대리의 말에 임원 네 명의 표정이 순간 변했다.
'음..역시 자넨 정말 대단하군'
'뭐 별로 대단한 일도 아닙니다. 증시가 일시 정지되면 순식간에 주문이
밀리게 되죠 특히 투자자들의 심리적인 충격이 크면 클수록 말입니다.
이 기본적인 성질을 이용하면 삼백억원이 아니라 천억의 순이익도 가능
한 일입니다'
강구영 대리는 그의 매서운 눈을 번뜩였다. 몹시 기분이 상한 듯한 강구
영 대리는 내가 준비한 커피를 일시에 들이켰다.
'역시 김 대리님이군요. 대단하신 순발력이에요'
윤미란 과장은 도발적인 음성으로 김대리를 추켜 올렸다. 흥! 불여우 정
말 난 저런 여자는 질색이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주가 조작의 오해를 받을 수 있는 데다. 선량한 소
시민들이 우리 은행에 맡긴 돈을 그런 위험한 도박에 쓴다는 것은 도리에
도 어긋나는 일이에요'
'그렇게 말한다면 주가조작이 아닌 경우가 어디 있나요? 거짓정보를 흘
린 것도 아니고 사자 심리를 부치긴 것도 아니죠. 그리고 금융시장에서
도리를 찾는다는 건 너무 고지식한 소리인 것 같군요. 우리 은행에 투자
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도 바로 이런 것 아닐까요?'
윤미란 과장은 구현주 대리의 말문을 막았다.
'음.. 그건 윤과장 말이 맞는 것 같군. 우린 돈을 불리는 일을 하는 거
지 맡기만 하는 것은 아니니깐 말이야. 그건 그렇고 김대리! 금고 잔고
를 한번 확인해 봐야겠어. 요즘 큰손들 중에서 현금 인출을 원하는 고객
들이 많으니깐 말이야! '
윤태식 지점장의 말은 김정남 대리를 절대 신임한다는 말과도 같았다. 이
태가지 금고 출입은 윤태식 지점장과 강구영 대리만이 할 수 있었지만 요
즘 들어서는 김정남 대리가 그 역할을 도맡아하고 있었다.
'조지현씨! 여기 물 한잔만 갖다주지!'
조회가 끝나자 윤태식 지점장은 나에게 물을 가져오라고 말했다. 아유!
저 아저씨는 맨날 이래라 저래라야! 그리고 사건은 지금부터 시작됐다.
'음.. 조회가 끝난 시간이 정확히 9시10분전이었습니까?'
박경감은 넋이 나간 듯 앉아있는 윤미란 과장에게 물었다.
'예..'
윤과장은 목이 타는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본래부터 금고 출입을 김정남 대리가 합니까?'
박경감은 노트에 몇 자 찍찍거리며 물었다.
'본래는 지점장님이 출입하시는 대 가끔은 다른 사람이 출입하기도 해
요..'
'음 알겠습니다. 충격이 컸겠지만 이렇게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박경감은 비틀거리며 지점장 품으로 가서 안기는 윤미란 과장을 지켜보았
다.
'선배님! 이거 도대체 오리무중인대요.. 이건 아무리 봐도 자실 임에 틀
림없습니다.'
강형사는 머리를 갸웃거렸다.
'금고는 암호 8자리를 입력해야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게다가 그 암호
는 하루에 한번씩 바뀐답니다.'
'하루에 한번씩..?'
'에. 저희 은행 금고의 패스워드는 중앙컴퓨터의 숫자,영문,기호에 의한
무작위 조합으로 하루에 한번씩 바뀝니다. 그리고 그 날의 패스워드는 지
점장님의 컴퓨터로만 확인할 수 있죠'
박경감은 강형사 옆에서 있는 사내를 바라보았다. 떡 벌어진 어깨에 날카
로운 눈빛이 예사롭지 않은 사나이였다.
'이분은...?'
'아 전 이 은행의 보안 관리 책임자인 황태식 부장입니다'
박경감은 황부장과 간단하게 악수를 나눴다.
'그 말은 곧 만약 살인을 저지른다면 금고의 암호를 알고 있는 윤태식 지
점장 밖에 없다는 말입니까?'
박경감은 황부장을 예리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렇긴 합니다만 윤태식 지점장님의 알리바이가 확실하니깐 자살이라고
보는 거 아닙니까?'
황태식 부장의 말에 윤미란 과장을 진정시킨 지점장이 박경감을 향해 걸
어왔다.
'분명 금고 패스워드는 나밖에 알 수 가 없소. 그리고 내가 김정남 대리
에게 금고로 가서 잔금을 확인하라는 지시와 함께 패스워드를 가르쳐 줬
소. 그리고 나서 바로 김대리가 금고로 갔으니 다른 누군가에게 가르쳐
줄 시간도 없을 것이오'
'김정남 대리가 말인가요?'
'에'
'그렇다면 지점장님이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 주신 않았나요?'
'아니오. 난 김대리에게 패스워드를 가르쳐 준 후 윤미란 과장 그리고 조
지현씨와 함께 사건 발견 때까지 계속 같이 있었소'
박경감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피해자인 김정남 대리는 왼쪽 팔뚝에 청산가리를 주사한 후 죽었습니
다. 근대 자살을 꼭 금고 안으로 들어가서 할 필요가.. 게다가 동기도 불
확실하고.. 아무튼 윤태식 지점장님과 윤미란 과장 그리고 조지현씨의 알
리바이는 확실하구요. 8시 50분부터 10시까지 사무실을 벗어났던 사람은
강구영대리, 구현주대리 만이 있군요.. 김기덕 대리는 전날 술을 많이 마
신 후 지각을 했다고 했죠? 그리고 사건 발생 후에 출근을 했고... 그렇
다면 금고의 암호를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까? 아니면 암호가 없
이 금고로 들어간 다는지..'
'암호를 모른 채 금고로 들어가는 건 절대 불가능합니다. 게다가 중앙 컴
퓨터가 매일 암호를 조합해 제 컴퓨터로 보내기 때문에 저 아닌 다른 사
람이 암호를 안다는 건...'
윤태식 지점장이 말하자 박경감이 눈을 번뜩였다.
'해킹 할 수도 있진 않습니까?'
'오늘 아침에도 제가 맨 처음 출근한데다 제 책상에서 한번도 일어난 일
이 없으니 불가능한 일입니다. 게다가 보안 장치도 겹겹이 돼있고...'
'전날 해킹 했을 수도 있을 거 아닙니까?'
'중앙 컴퓨터에서 제 컴퓨터가 암호를 받는 시간은 정확하게 7시30분입니
다. 하지만 제가 7시에 출근해 자리에 앉아 정확히 7시45분에 암호를 확
인하고 계속해서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8시쯤 돼서 직원 모두
가 출근했습니다.'
'그렇다면 7시부터 사건 발견시인 10시까지 이 자리에 계속해서 앉아 있
었단 말인가요? 정말입니까?'
'에..지점장님과 제가 같이 출근했는데 지점장님은 한번도 자리를 뜨지
않았습니다.'
'사실입니다. 조지현씨는 정식 사원이 아니기 때문에 일찍 출근해서 자질
구레한 업무 준비를 하죠. 그래서 일찍 출근하는 저와 간간히 함께 사무
실에 들어오곤 합니다. 물론 오늘은 같이 사무실에 들어왔죠.'
조지현의 말에 윤태식 지점장이 설명을 덧붙였다.
'음 그렇다면 김정남 대리와 지점장님을 제외한 어느 누구도 금고 암호
를 알지 못했다는 뜻이군요. 거기에 지점장님의 알리바이는 의심의 여지
가 없는 데다.. 그건 그렇고 동료 사원이 죽은 것 치고는 윤미란 과장
의 상심이 꽤 큰 것 같군요'
박경감은 실신한 사람처럼 자리에 앉아 울고 있는 윤미란 과장을 가리켰
다. 그 모습을 본 윤태식 지점장은 한숨을 쉬었다.
'사실 제 조카딸과 김정남 대리는 다음주에 약혼할 사이였습니다.'
'약혼이요?'
박경감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선배님! 황태식씨가 보여드릴게 있답니다.'
강형사는 윤미란 과장을 바라보고 있던 박경감을 불렀다.
'저희 은행은 감시카메라 36대가 24시간동안 은행 구석구석을 감시합니
다. 금고로 가는 복도는 한 곳 밖에 없기 때문에 한 대만이 금고로 향하
는 복도를 감시하고 있죠'
황태식 부장은 컴퓨터 화면을 조작하며 말했다.
'금고 안 은요?'
'금고안의 내용은 은행 최고 기밀 중 하나이기 때문에 카메라를 설치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화면을 좀 보시겠습니까?'
황부장은 박경감의 질문에 간단히 답한 후 메인 컴퓨터를 작동시켰다. 화
면에는 금고로 통하는 복도를 지나 금고로 향하는 김정남 대리의 모습이
보였다. 화면의 김대리는 금고 앞에서 패스워드를 입력한 후 금고 안으
로 들어갔다.
'자 그럼 잠깐 빠른 화면으로 플레이하겠습니다.'
황태식 부장은 미디어 프로그램을 빠르게 재생시켰다. 하지만 화면 오른
쪽 하단에는 진행시간이 표시되어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
는지는 알 수 있었다. 정확히 한 시간 분의 화면이 자나가자 윤태식 지점
장과 구현주 대리 강구영 대리의 모습이 복도에 나타났다.
'음 정확히 63분이 지나간 후 세분이 나타났군요.'
'에.. 금고로 들어간 김정남 대리가 한 시간이 넘도록 안나오자 걱정이
된 나머지 갔다는군요'
화면에서 윤태식 지점장이 암호를 입력하자 금고문이 열리고 동시에 구현
주 대리의 비명이 이어졌다.
'음.. 의심의 여지가 없군요. 자실 임에 틀림없습니다.'
박경감은 확신하는 어투로 말했다.
'아무튼 이런 사건이 일어나게 되어 여러분의 상심이 크신 줄 압니다만
사건 종결을 위해서 그냥 형식적인 몇 가지 진술만 해주셨으면 합니다.'
선그라스를 끼고 잇는 그녀는 굉장한 미인이었지만 얼굴에 상심이 가득했
다. 그녀는 의자에 앉아 선그라스를 벗고 담배를 한가치 피워 물었다. 그
녀 맞은편에 앉아 있는 사내는 다리를 책상 위에 올린 채 관심 없는 표정
으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당신이 의뢰인이요?'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던 사내는 조용한 어투로 물었다. 그녀는 담배 연기
를 한 모금 내뱉으며 말했다.
'에 제가 의뢰인이에요'
사내는 여전히 무관심한 표정이었다.
'어떻게 나에 대해선 알았소?'
그녀는 다시 한번 담배를 입에 물었다.
'왜 끊은 담배를 다시 피는 거요?'
여자는 사내의 말에 움찔했다.
'어떻게 내가 담배를 다시 핀다는 것을...'
'음.. 윤미란씨 난 모르는 게 없는 사람이요. 당신이 담배연기를 폐 속
에 담고 있는 시간이 처음 담배를 배우는 사람들과 같소 하지만 능숙한
동작으로 연기를 내뿜는 것을 보고 다시 담배를 핀다는 것을 알았지. 그
게 바로 담배를 다시 피고 사흘동안 나타나나는 공통적인 현상이요... 아
무튼 윤미란씨 난 상당히 비싸다는 걸 알고 있죠?
윤미란은 담배꽁초를 비벼 껐다.
'알고 있어요.. 하지만 돈 걱정은 하지 마세요 충분한 댓가를 치룰테
니..'
'흐흐흐 .. 나에 대해 들었으니 여기에 왔겠지요.. 난 보수도 보수지만
흥미가 없으면 일을 안 하는 사람이요'
사내는 책상에 올려놓았던 다리를 거칠게 내렸다. 그리곤 윤미란을 쳐다
보았다. 짧은 머리에 강인하게 생긴 얼굴 그리고 탄탄한 몸은 마치 헤비
급 권투선수와도 같은 인상이었다. 하지만 눈만은 조용히 미소를 치은
채 아늑한 표정으로 윤미란을 바라보았다.
'흥미가 있을거에요.. 살인탐정 J.D 씨'
J.D는 잠시동안 윤미란을 바라보았다.
'음 그럼 사건 개요를 들어보도록 합시다.'
한참동안 윤미란의 얘기를 듣고 있던 J.D는 그녀의 얘기가 끝나자 오른
쪽 입술꼬리를 살짝 치켜올린 채 미소를 지었다.
'음 그러니깐 당신얘기는 그 김정남이라는 약혼자가 절대로 자살할 리가
없다는 말이지요?'
윤미란이 눈빛이 약간 흔들렸다.
'에'
'흐흐흐 그리고 만약 그가 타살로 밝혀지면 범인을 밝혀내서 처벌을 내려
달라는 그 말이군요'
'에 당신의 얘기는 아버지로부터 직접 들었어요 그리고 그 화려한 경력까
지도..'
J.D의 미소짓던 눈이 순간 먹이를 노리는 범처럼 번뜩였다.
'후후.. 그런 얘기는 하지 않는 게 좋을 텐데.. 난 나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싫어서 말이요'
윤미란은 다시금 미소짓는 얼굴로 돌아와 있는 J.D에게서 알 수 없는 섬
뜩함을 느꼈다.
'좋소.. 흥미가 있군.. 자살인지 타살인지를 밝혀내고 타살일 경우 범인
을 잡아달라..'
윤미란은 핸드백에서 조용히 수표뭉치를 꺼내들었다.
'현금으로 일억이에요'
J.D는 다시 책상 위에 다리를 옳린 채 팔베개를 했다.
'정말로 나와 계약하겠소?'
'그럼요'
'나와의 계약은 절대로 파기될 수 없다는 건 잘 알고 있겠지? 혹시 범인
이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라 해도 말이요'
윤미란은 잠시 주춤했지만 곧이어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알고 있어요'
'후후.. 좋아 이걸로 의로는 접수했소. 내일 밤 자정에 은행에 있던 사
람 전원을 힐슨 그랜드 호텔 505호실로 집합시키도록 하시오. 다른 사람
에겐 비밀로 말이요..'
'내일 밤 자정 에요? 그렇게나 빨리?'
J.D는 팔베개를 한 채 눈을 감았다.
'뭐 내겐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거든'
아니 도대체 경찰은 뭐 하는 건지 모르겠다. 흥! 얘기는 이렇다. 이미 종
결된 줄로만 알았던 김정남 대리의 사망 사건에 대해 진술할 것이 있으
니 힐슨그랜드 호텔로 자정까지 오란다. 오늘 윤미란 과장의 전화에 난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니 대체 왜 이런 황당한 모임에 나 조지현이 가야
된단 말인가? 나같이 아리따운 아가씨가 자정이 다되도록 호텔로 들어간
다면 얼마나 창피할까?
아.. 부끄러워서 벌써부터 얼굴이 빨개진다. 내 나이 이제 20 아직까지
순결한 성지인 내가 그런 곳엘 가야한다. 아빠한테 걸리면 난 맞아 죽을
것이다.... 뭐 그래도 은행직원 모두가 모인다는 대 어떻게 나만 가지 않
을 수는 없는 노릇.. 그래서 이 늦은 시간에 무서운 밤길을 혼자 걷고 있
는 것이다. 요즘은 택시 타기도 무섭다는 대 뭐 이 일과는 아무런 상관
이 없는 황태식 부장까지도 온다는 대야... 아무튼 난 택시를 타고 힐슨
그랜드 호텔인가 하는 건물에 도착했다. 와! 정말 으리으리 하군! 내 생
전 이런 곳은 처음이다. 화려한 자동식 개폐문을 통과하자마자 직원복을
입은 종업원들이 허리를 90도로 구부려 인사를 한다. 흠.. 여긴 향기도
좋군.. 꼭 내방에서 나는 향기와 같은 냄새가 난다. 이곳도 미모사 향을
쓰는가 보네 몇 호 였더라 맞아! 505호실이었다. 내가 505호실이라고 하
자 프론트 직원이 미소와 함께 내 이름을 확인한다. 조지현 정말 이쁜 이
름이다. 내 이름을 확인한 직원은 예약이 돼있다면 505호실로 직접 안내
해줄 보이를 불렀다. 이야! 이거 공주 대접이 따로 없네...
505호실 앞으로 도착하자 보이가 정중히 문으로 안내했다 그리곤 이상한
눈으로.. 쳇 난 돈 없단 말이야.. 난 울며 겨자 먹기로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 보이에게 주었다. 그러자 보이는 기쁜 표정으로 꾸벅 인사
를 한 후 다시 프론트로 내려갔다. 히잉 내 피 같은 만원 이제 집에까지
갈 택시비도 간당간당하다. 난 쓰린 속을 부여잡고 505호실 문을 열었다.
'후후.. 이제야 마지막 사람이 온 것 같군'
조용하지만 위압적인 목소리 짧은 머리를 한 남자의 모습이 내 눈으로 파
도 밀려오듯 쏠려왔다. 그리고 긴장한 표정의 나머지 직원들 모습도...
난 탐정이다. 모두들 J.D라고 부르더군. Justice Devil 이라나 난 나의
이 닉네임이 아주 맘에 든다. '정의의 악마'라 이 얼마나 아이러니컬한
이름인가? 마치 세상에서 가장 강한 창과 가장 견고한 방패가 같이 존재
할 수 없는 것처럼 '정의의 악마'라는 내 닉네임도 존재할 수 없는 모순
의 결정체이다. 하지만 그 모순이 여기에 존재하고 있지 않은가? 바로
나 J.D에 의해서...
내 본명이 뭔지는 나도 잘 모른다. 언제부터인가 J.D로 불리기 시작한 나
는 태어날 때부터 가슴에서 뿜어져 나오는 욕망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
리고 그 욕망은 필요에 의해 나의 지능을 한계이상으로 끌어올렸다. 그
욕망과 지능은 살인탐정이라는 나 J.D를 탄생시켰다. 내가 왜 살인탐정으
로 불리는지는 곧 있으면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나와 함께 잠시간의
여흥을 즐겨 보도록 할까? 크크크 왜 처음부터 반말이냐고? 불만이면 나
J.D를 찾아오도록 하라. 아마 그 시간 이후부터 당신의 존재는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아참! 저 세상에 가면 아마 날 찾아
온 몇몇 바보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틀 전 난 윤미란이라는 여자로부터 사건 의뢰를 받았다. 모두들 알고
있었나?
흐흐흐 그렇지 않다면야 이 글을 보지 않았겠군. 자 사건의 개요를 알고
있다면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나? 후후.. 바보 같군 그 간단한걸 모
르다니 말이야. 알리바이? 살인동기? 그런 것부터 먼저 생각하는 건 아
직 자네들이 미숙하다는 증거지. 수사와 추리는 엄연히 서로 다른 영역이
니까...
자 이제부터 우리 슬슬 추리를 해보도록 할까?
이런 가정을 한번 세워 보도록 하지. 우선은 자살과 타살 중 어느 것일
까? 하는 가정을 말이야.
그렇다면 여기서 내가 자살이라는 것을 입증하면 타살이라는 얘기가 되
고 타살이라는 걸 입증하면 자살이라는 얘기가 되겠군. 그렇지 않나? 흑
백논리가 부정확하고 부적절한 논리라고는 하지만 범죄에서만큼은 예외이
지. 유죄가 아니면 무죄이고 자살이 아니면 타살이니깐 말이야. 흐흐흐
법정에선 이렇게 말하더군 ' 그가 꼭 무죄인 것을 증명하지 못한다고 유
죄라고 하는 것은 논리적이지가 못하다' 라고 말이야. 난 그 말에 전적으
로 동감이네 그래서 난 김정남이라는 인물의 자살과 타살여부를 가리기
위해 어느 하나를 증명하기로 했지. 자네들은 어느 것을 고를 건가? 난
타살을 증명하기로 했네. 윤미란의 말속에는 그자의 죽음이 타살이라는
증거가 너무 명백했으니깐 말이야. 그럼 두 번째 가정을 한번 세워 보도
록 할까? 만약 김정남의 죽음이 타살이라면 반드시 필요한 조건은 무엇일
까? 그래 바로 금고의 암호이지 금고의 암호를 모른다면 김정남을 죽일
수 없어. 그럼 세 번째 가정! 암호를 알 수 있는 방법은? 크크크 세 가지
가 있네. 난 윤미란의 말을 듣고 단숨에 그 방법을 알아냈지. 자 자네들
이 생각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윤태식 지점장을 통해? 아님 컴퓨터를 해킹해서? 크크크 그건 모두 불가
능하다는 것을 잘 알텐데. 윤태식 지점장은 그 어느 누구에게도 패스워드
를 가르쳐 준 적이 없어 가르쳐 줄 수 있다면 계속 함께 있었던 조지현
이나 윤미란 정도? 하지만 이들은 모두 알리바이가 윤지장과 같아 결국
그들은 살인을 할 수 없다는 말이지 물론 윤태식이 범인인 것은 더더욱
아니고 말이야. 그 자의 알리바이는 조작여부를 의심 할 수 없는 완벽한
것이었거든. 그렇다면 해킹은? 암호가 조합된 후 해킹 한다는 건 불가능
하겠지? 윤지점장이 컴퓨터 앞을 한번도 떠난 적이 없으니깐 게다가 암
호 조합 후 중앙 컴퓨터가 암호를 보낸 뒤에는 윤지점장 컴퓨터로 연결
된 모든 하드워드 네트워크가 차단된다고 하거든 이게 바로 보안장치라
나? 하드웨어적으로 컴퓨터에 네트워크 자체가 없으니 이걸로 해킹 한다
는 건 불가능한 일이겠지. 그럼 중앙컴퓨터가 무작위 조합하는 패스워드
를 미리 알아낸다는 건? 크크크 영문은 모두 26자 숫자는 모두 10자 그리
고 기호는 모두 12개로 이뤄져 있어 여기서 8개의 패스워드를 무작위 조
합할 수 잇는 경우의 수는 모두 48의 8제곱이 되지 자넨 이 우주의 넓이
만한 경우의 수로부터 단 하나의 패스워드를 알아낼 수 있겠나?
크크크 암호를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지. 어색한 행동을
한 친구가 한 명 있었거든. 힌트는 바로 그것이라네.
그럼 네 번째 가정! 김정남 대리를 죽일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크크
크 알리바이가 확실한 3명의 직원은 김정남을 죽일 수 없지 항상 감시 카
메라를 감시하는 황태식 부장도 물론이고. 그렇다면 알리바이가 없는 구
현주 대리와 강구영 대리 중 하나인대... 둘 모두 내가 찾아낸 방법으로
는 암호를 알 수가 없거든.. 그렇다면 공범이 있겠다는 말이겠지? 자 이
제 그 공범이 누군지 알겠나? 이렇게 까지 설명 했는대도 모른다면 자네
들은 아이큐 50이하의 바보임에 틀림없네.. 크크크 공범이 밝혀지면 진범
도 밝혀지겠지!
'자! 이제 내 연극의 배우들이 모두 모였으니 시작하도록 할까요?'
J.D는 소파에 걸터앉은 후 거만한 자세로 말했다.
'그럼 모두들 당신들 이름이 적혀있는 의자에 가서 않도록 하시오'
의자는 J.D를 기준으로 오른쪽 방향 윤태식,윤미란,강구영,김기덕,조지
현,황태식의 이름이 줄줄히 적힌 채 원형을 이루고 있었다. J.D의 말에 5
명의 사람들은 서로의 의자를 찾아가 앉았다. 하지만 단 한 명 구현주 대
리는 의자에 앉지 않고 몹시 불쾌하다는 듯 J.D를 향해 날카롭게 쏘아 붙
였다.
'흥! 난 이런 불법적인 집합과 취조에 응할 수가 없군요. 윤과장이 경찰
진술이라고 해서 왔건만.. 계속 이렇게 나온다면 난 당신을 고발하겠어
요...'
J.D는 구현주의 말에 야릇한 미소를 띄웠다.
'배우가 6명인대 5명만 출석하면 이상하지 않소? 그리고 나의 무대에선
내 허락 없이 어느 누구도 이 방을 나갈 수 없소. 바로 내가 감독이거든'
J.D의 말에 구현주는 차가운 눈빛으로 윤미란을 노려보았다.
'한번 들어봅시다. 이 작자가 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지 말이요'
자리에 앉은 황태식 부장은 계속 거만한 자세로 자신들을 압도하는 J.D
가 못마땅한지 온 몸의 근육을 불끈거리며 그를 쏘아보았다. 구현주는
J.D의 행동이 아주 못마땅했지만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자신의 이름이
적힌 의자에 가서 앉았다.
'대체 당신이 할 얘기라는 게 뭐요?'
윤태식은 자신의 의자 위에 준비되어 있던 주스를 한 모금 마신 뒤 조용
한 말투로 물었다.
'후후.. 바로 김정남을 죽인 범인에 대해서 말해 주겠소'
'저..저기요 그 분은 자살한 것 아닌가요?'
조지현은 잔뜩 긴장했는지 말을 더듬거렸다. J.D는 조지현의 얼굴을 한
번 유심히 지켜본 후 말을 이어갔다.
'크크크.. 자살이라니 천만의 말씀. 그를 죽인 사람은 바로 이 자리에 있
소'
'그렇다면 대체 암호를 어떻게 알아 금고로 들어 간 것이오? '
윤태식의 말에 J.D는 미소를 머금으며 소파 옆에 있던 T.V를 켜고 비디오
를 플레이시켰다.
'흐흐... 이게 무슨 화면인 줄 아시오?'
화면은 바로 감시카메라에 찍혔던 김정남 대리의 모습이었다.
'본래 감시카메라는 화면은 물론 조그마한 고성능 마이크를 이용해 주위
의 소리를 녹음하지.. 잘 들어보시오'
화면의 김정남 대리가 금고 문 앞에서 패스워드를 누르자 각기 다른 높낮
이의 버튼 소리가 들려왔다.
'저런 소리는 경찰의 현장 검증 땐 들리지 않았는데!'
윤미란은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물론입니다. 이 화면을 플레이시킨 자가 일부러 볼륨을 틀지 않았으니
깐!'
J.D가 말하며 황태식을 노려보자 황태식은 여유로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렇다면 당신의 말은 내가 암호를 알아내 김정남 대리를 죽였단 말이
요? 난 알리바이가 확실합니다. 그리고 뒤에 화면을 보면 어느 누구도 감
시카메라에 잡히지 않았잖소?'
J.D는 황태식의 말에 슬며시 웃었다.
'아! 그거 말이오 그게 나에게는 결정적인 힌트였소. 당신은 경찰에서
이 화면을 보여줄 때 화면을 빠르게 재생시켰다죠? 난 왜 당신이 화면을
빠르게 재생시켰을까? 하고 생각을 해봤소.. 한 시간동안 아무것도 없는
화면을 보는 것이 지루하니깐 그냥 무의식적으로 그랬을까? 후후 그런게
아니더군 난 재미있게도 이런 것을 발견했소. 바로 9시30분 화면에서 9
시 31분으로 넘어가는 화면 말이오!'
J.D는 이렇게 말하며 테잎을 9시30분 화면으로 넘겼다.
'잘 보시오! 컴퓨터는 정확합니다. 게다가 컴퓨터의 시간은 세상 그 어
느 시계보다 정확하지 그런데.. 이 화면을 보면 9시 30분 58초에서 바로
9시 31분으로 넘어갔소. 여기 화면 밑의 시간 표시가 보이시오? 이건 카
메라가 디지털 방식이라는 걸 이용해 파일을 잘라 붙이는 간단한 트릭이
지만 자세히 보지 못하면 알아낼 수가 없지.. 그리고 이 사실을 눈치챈
당신은 화면을 빠르게 재생시켜 그 사실을 어느 누구도 모르도록 미리 손
을 쓴 것이오.. 뭐 금고 문을 여는 패스워드 버튼을 모두 눌러본 후 그
소리를 기억했다가 화면을 보면서 소리로 패스워드를 알아내는 건 몇 번
의 연습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간단한 일이지.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은 황태식 당신뿐이오! '
J.D의 말에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황태식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난 후 J.D
에게 달려들었다.
'빌어먹을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여기 있는 모두를 죽여버리겠어'
J.D는 느긋하게 앉아 있는 자세로 육중한 몸을 덮쳐오는 황태식을 향해
비릿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황태식이 J.D의 목을 조르려고 손을 뻗는 순
간 갑작스런 사태에 얼이 빠져있던 5명의 사람들은 번쩍이는 섬광과 함
께 황태식의 목줄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새빨간 피를 볼 수 있었다.
'크..크으윽'
얼마동안 뿜어져 나오는 피를 멈추기 위해 목을 감싸쥐고 몸부림치던 황
태식은 꺽꺽 거리는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잔인
한 미소를 지으며 혓바닥으로 손에 쥐어진 단검을 핥던 J.D는 갑작스런
살인 장면에 새하얗게 질린 5명의 사람들을 한번씩 훑어보았다.
'저..저 이제 범인도 밝혀졌으니 저희들은 이만 가봐도 돼나요?'
겁에 잔뜩 질린 강구영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옷에 묻은 피
까지 대강 닦은 J.D는 다시 소파에 앉았다.
'아니! 황태식이 패스워드를 알아내고 화면을 조작한 건 사실이지만 그
는 김정남을 죽이지 않았소. 알리바이가 확실하니깐.. 공범이겠지 그렇다
면 황태식은 알리바이가 확실하지 않은 누군가에게 패스워드를 가르쳐 줬
겠지? 바로 강구영 당신과 구현주 당신 둘 중 하나에게 말이요!'
J.D는 서서히 일어나 죽은 황태식의 옷을 뒤졌다. 그리곤 품속에서 핸드
폰을 꺼내들더니 다시 자리에 가서 앉았다.
'뭐.. 황태식의 핸드폰 통화내역을 추적해서 알고는 있지만 한번 확인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군'
얼마동안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J.D가 통화 버튼을 누르자 구현주의 핸
드백 속에서 벨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흐흐흐.. 핸드폰 사용자는 메시지를 보낼 때 무의식적으로 보낼 메시지
를 저장하게 돼지 삭제를 선택하긴 귀찮으니깐 말이야 하지만 메시지 수
신자는 메시지를 읽은 후 삭제하는 경우가 많소 투박하기 그지없는 황태
식이라면 메시지를 보낼 때 무의식적으로 보낼 메시지를 저장했겠지. 바
로 구현주 당신에게 보낸 이 메시지를 말이야...'
핸드백 속의 휴대폰은 다급하게 꺼내던 구현주는 J.D의 말에 창백해진 얼
굴로 마른침을 삼키며 자신 앞에 있던 주스를 마셨다.
'크크크! 타이밍 한번 죽이는군!'
주스를 마신 구현주는 갑자기 고통에 일그러진 표정으로 자리에 쓰러진
채 움직이지 못했다.
'뭐! 먼저 마시고 죽으면 서서히 밝히려고 했더니 타이밍 한번 기가 막히
는 대! 황태식은 간댕이가 부었는지 예상외의 행동을 하고 말이야.. 아!
안심들 하시오 당신들 주스에는 청산가리를 넣지 않았으니 말이야. 황태
식과 구현주의 잔에만 청산가리를 집어넣었소. 그게 죽은 사람에 대한 마
지막 예의일 것 같아서 크크크!'
J.D는 겁에 질려 바들바들 떨고 있는 나머지 사람들에게 위로 아닌 위로
를 건냈다.
'크크크! 이제 의뢰가 끝난 것 같군요. 윤미란씨 여기 있는 당신들은 사
실 그대로 말하면 되는거요 사건을 맡은 탐정이 이 두 사람을 모두 정의
의 이름으로 처단했다고 말이요. 그래도 법으로나 사회윤리로나 당신들에
겐 전혀 피해가 안 갈 겁니다.'
J.D는 자신의 앞에 있던 주스를 들이킨 후 문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러
던 J.D는 가던 길을 멈추고 겁에 질려 바들바들 떨고 있는 조지현의 앞
에 멈춰 섰다. 그리곤 그녀의 목에 걸려있던 목걸이를 고갤 숙여 유심히
지켜봤다.
'아가씨! 이 목걸이 당신 건가?'
J.D에게서 흘러나오는 역겨운 피냄새를 가까스로 참으며 조지현은 겁에
질린 채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크크크! 이거 운이 아주 좋군 흔적을 여기서 발견하다니... 아가씨 우
린 조만간 또 만날 운명일 것 같군 하하하!'
J.D는 조지현의 어깨를 한번 툭 친 후 웃음소리를 흘리며 문밖으로 유유
히 걸어나갔다.
'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거야? 아무튼 강형사 윤미란씨는 뭐라
고 하던가?'
박경감은 힐슨 그랜드 호텔에서 일어난 어이없는 살인사건에 머리가 지끈
지끈거렸다.
'그게 윤미란씨는 그저 유능한 탐정이라고 해서 찾아가 본 것뿐이랍니
다. 그리고 그의 지시대로 호텔로 사람들과 함께 온 것 빼곤.... 그 자리
에 있던 사람들도 모두 그렇게 말하던 대요 그 탐정이 두 사람을 죽이고
문을 걸어나갔다고.'
박경감은 담배를 한 대 문 뒤 인상을 썼다.
'그 사람들이 말한 내용은 모두 확인해 봤나?'
'에 정확했습니다. 감시카메라의 화면도 모두 조작된 거였어요 컴퓨터 전
문가에게 파일을 조사해달라고 했더니 이어 붙였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죽은 구현주를 조사해 봤더니 김정남과 구현주는 대학교 때부터 사귀던
사이였답니다.. 워낙 아무도 모르게 그래 나서 알아내기는 힘들었습니
다. 구현주는 윤미란과 김정남의 약혼소식을 듣고 충격이 컸겠죠 김정남
을 살해할 만큼 말이죠'
'후... 결국 살인동기는 치정이고 황태식은 공범이었다는 얘기군..'
'에 그 황태식이라는 자는 구현주가 변호사 시절에 크게 신세를 졌던 사
람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경찰도 못 알아채고 지나간 일을 단 하루만에...
그것도 두 사람씩이나 아무렇지나 않게 죽이다니.. 그 J.D라는 인물에 대
핸 조사해봤나?'
박경감의 질문에 강형사는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에.. 근대 그게 어떤 자료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물며 호텔에서 나온
지문조차 입력돼있지 않은 자료더군요... 국립과학연구소에선 범인이 마
음대로 만들어낸 지문모양의 실리콘을 손에 덥고 있었던 것 같답니다.'
박경감은 골머리가 썩는지 머리를 잡아 쥐었다.
'후후후~ 박경감 자넨 아마 나 때문에 더욱 머리가 아플 거야 깨질 정도
로 하하하!'